사53:1-9 예수를 생각하자 2019.4.7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생각한다.
불교인-부처를 생각
기독교인-예수를 생각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를 생각하는가?
오늘은 설교라기 보다는 넋두리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났는데, 나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방에서 태어났고, 요즘아이들은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진 병원에서 태어나고, 예수는 교육도 변변치 못 받고, 아버지 요셉을 따라 목수일을 배웠는데, 나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무 근심 걱정없이 대학을 몇 개나 졸업하는 고등교육까지 받고, 예수는 고향에서 푸대접받고 쫒겨났는데 나는 고향에서 큰소리치면서 살고 있고, 예수는 머리 둘 곳 없었는데, 나는 넓고 따뜻한 아파트 방에서 잠을 자고, 예수는 팔레스틴의 그 비포장 도로의 먼지 나는 길을 뜨거운 태양아래 걸어 다니셨고, 예루살렘 입성때 겨우 나귀새끼를 타셨는데, 나는 좋은 도로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따뜻한 불을 피워가면서 다니고, 예수는 보리떡과 물고기로 배를 채우셨는데 나는 맛난 음식점을 골라 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골라서 먹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배반당해 아픈 가슴 안고 온갖 모욕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나마저 예수 이용해서 대접받고, 잘 먹고 살고.... 예수는 평생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소외받은 자들과 어울렸건만 나는 화려하고 돈 많고, 지위 높은 사람과 사귀길 좋아하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셨건만, 나는 조금만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예수를 원망하고, 뒤통수를 친 놈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고,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이었는데, 나는 잘난 사람만 좋아하고, 더 잘나기 보이기 위해 화장도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예수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할 말도 못하고,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예수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는데, 나는 누구를 위해 슬픔을 한번이라도 느꼈던가? 그는 우리의 허물을 위해 찔림을 당하고, 우리의 죄악을 위해 상함을 당하였건만, 또한 우리의 평화를 위해 징계를 당하고, 우리의 나음을 위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건만 나는 예수를 위해 무엇을 했던가?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하고 고난을 당했던가?
이사야가 말하는대로 그릇 행하여 내 갈 길을 갔으며, 예수를 돌아보지도 않았네. 그리고 고난당하는 이웃에게도 무관심 하였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처참한 십자가를 지고 양손과 발에 못을 박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셔서 피를 쏟아 부으셨건만 나는 그를 위해서 무엇을 했던가? 예수는 33살 때 죽었는데 나는 50, 60이 넘도록 살고 있고, 날마다 좋은 것만 찾고, 날마다 편하고 안락하게 살기만 원하는 나는 도무지 예수를 닮은데라고는 한군데도 없는데 어찌 예수를 믿고 따라간다고 할까?
우리는 왜 화려한 예수만 생각하는 걸까? 화려한 예수의 모습이 과연 성경에 있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왜 화려한 예수를 그리면서 자신도 화려해지려고 하는가? 예수는 평생 화려한 곳에 가보지도 않았으며, 화려한 생활을 하지도 않으셨으며, 화려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으셨다. 그런데도 목사와 신부는 화려한 가운을 입고, 장로들도 비싼 가운을 입으려고 하고, 교회의 종탑을 높이 올리고, 화려한 샹데리아 불빛과 대리석으로 치장한 건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그리고 봄 가을에는 쾌적한 공기아래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예배드리려고 하고, 목사는 코메디언이 되어 사람들을 웃겨야하고, 얼마나 잘 웃기느냐에 따라 인기있는 목사가 되어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십자가와 진리를 증거하면 듣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고, 별 볼일 없는 목사가 되는 오늘의 교회, 그리고 교인들은 앉아서 오늘 목사의 설교를 비평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예배 후에는 좋은 음식, 좋은 차, 좋은 교제가 뒤 따라야 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교인은 대접받고, 그렇지 못한 교인은 안중에도 없는 교회,
교회에는 허름한 옷 입은 사람보다 화려한 옷을 입을 사람을 환대하고, 높은 지위와 이름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은 교회는 팽개치고 고급호텔에서 많은 돈을 들여 고급요리를 시켜놓고, 희희낙락거리면서 암투를 꿈꾸고, 노회장이나 총회장을 하려고 수많은 돈을 들여 불법선거를 일삼고, 교회의 재산들은 서로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오늘의 교회여! 예수님 당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로마정권에 빌붙어 잘살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에 젖어 자기들의 기득권에 방해가 되면 그 누구라도 없애버리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기관과 제사장의 모습보다 더 추한 모습이 되었네.
목사는 양심을 팔고, 장로는 돈으로 거들먹거리고, 권사는 그것에 부채질하고, 집사는 편하게 신앙생활하려는 오늘의 교회는 과연 예수를 믿는 교회인가?
주기철목사처럼 계명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고, 손양원목사처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고, 최권능목사처럼 배운 것은 없어도 예수 천국을 외치면서 삼천리 곳곳에 복음을 전하던, 이원영 목사처럼 신사참배로 옥고를 치루고도 결코 내세우지 않으시던, 그리고 목사의 설교를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너무나 멀리 와 있는가?
청담스님-해방후 불교계의 개혁을 이끄신 분-은 부처님(80세)보다 오래 사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셨고, 일본의 어느 의사는 예수는 돈 한푼 받지 않고 병자들을 치료해주었는데 나는 왜 돈을 요구하는 걸까 하면서 매일 아침 예수를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진정 예수가 가장 귀하게 여기시던 그런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우리도 간직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