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뿌리를 찾아서 2006.11.2.목
7. 해풍김씨
해풍김씨는 같은 뿌리이면서도 덕수김씨, 정주김씨 등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당초 해풍김씨의 시조는 김숭선(金崇善)이다. 그는 고려조에서 예부상서와 병부전서를 지내고 해풍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관향을 해풍으로 하게 되었다.
해풍(海豊)은 경기도 개풍군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정주를 고려 충선왕 때 해풍군으로 개칭했다. 그후 1442년 덕수현과 합하여 풍덕으로 고쳤으며, 1930년에 개성의 개자와 풍덕의 풍자를 따서 개풍군(開豊郡)으로 하였다.
일찍이 경기지방에서 무반의 지위를 굳혀온 해풍김씨는 시조의 아들 천일(天一)과 손자 대(岱.문하찬성사), 증손 재인(在人)이 고려조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 뒤 대사헌 장(樟)의 맏아들 수종(壽宗)은 길주목사를 역임하여 가통을 이었다.
한편 후손 영(煐)은 형조판서를 거쳐 금위대장(종2품)에 올랐다. 숙종과 영조 때의 상진(相進)은 학행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건(鍵)은 고종 때 형조판서에 올라 어영대장(종2품)을 겸임하였다.
특히 해풍김씨는 지명의 변천과 종문(宗門)간의 연락 두절로 동일 시조인데도 파 가 해풍,·덕수,·정주 등으로 나누어 부르게 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최근에 대종회를 창립하고 문중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해풍김씨는 2000년 현재 9,293명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화성군. 개풍군 일원,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대이리, 제주도 제주시 일원, 황해도 사리원시 신창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