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維菊秋之節 癸卯年 五月 初七日 |
국화 향기 그윽한 가을을 맞이하여 귀댁의 평안하심을 앙축합니다. 계묘년 5월 7일 |
1.전통혼인 풍습
우리 민족은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등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 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여자 집에 서옥(壻屋)을 짓고 살았다. 그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처와 아이들을 데리고 남자 집으로 돌아와 살았는데 이러한 풍습은 그 일부가 조선 초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 결혼관을 살펴볼 때 신라시대의 처용가,서동요등 향가나 원효와 요석공주 이야기,그리고 김유신 여동생의 혼인과정등에 나타나듯 이 시절의 혼인 규율은 비교적 관대하였다. 고려가요인 동동,쌍화점등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결혼관은 큰 변화없이 고려에까지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가 지나면서 당시 유입된 학문의 영향으로 혼례를 비롯한 관혼상제의 모든 예절은 격식을 중시하는 풍조를 띄우면서 점차 그 절차가 서구적 패턴화되어지기 시작했다. 구한말, 신 문화의 등장과 더불어 "신식 결혼식"이 등장함에 따라 여태까지의 혼인 의식은 따로 "전통혼례"라 이름하게까지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의 혼인 풍속은 이러한 흐름을 가지고 지금의 우리에게 닿아있는 것이다.이 페이지를 통하여 옛 방식으로의 회귀를 주장할 의사는 없다. 다만 함보내기 등과 같이 예전에 이루어지던 절차중 아직도 항간에서 흔히 행하여지고 있는 일부 절차에 대하여는 옛 방식을 더듬어보고 이를 근거하여 현실성있게 개량하므로서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자하는 의도가 있을 뿐이다. 원형대로 보존하려다 없어지는 것보다는 고쳐가며 유지하는 것이 전통의 올바른 보전(保全)법이라 확신한다.
이어가자. 있는 것은 잇고,없어진 것은 찾아서 잇자. 디지털로 대변되는 최첨단 정보화 시대이지만 전통결혼식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 조상의 숨결을 더듬어보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2.함에 대하여 납폐와 함 신랑집에서는 보통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婚需)와 혼서지(婚書紙) 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신부집으로 보낸다. 이 의식을 납폐라 하며 봉채(封采) 또는 봉치라고도 하는데, 봉치란 좁은 의미로 함에 넣어 보내는 예물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물품과 함 속에는 신부용 혼수(婚需),물목(物目),혼서지가 들어가게되며 이외에 오방주머니등도 있으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혼서지 혼서지란 함을 보내는 의식에 대하여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말하는데 신부에게는 무척 소중한 것으로서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의미로 일생 동안 간직하였다가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간다고 한다. 혼서지는 필묵으로 정성스럽게 쓰고, 단정히 접어서 봉투에 넣은 다음 네 귀에 금전지를 단 홍청색 겹보자기에 싸서 상중하에 근봉(謹封)을 한다. 근봉이란 봉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종이띠를 말한다. 자료에 의하면 혼서지보는 검정색 겹보자기, 흑색,홍색의 겹보자기,홍색 보자기,홍청색 겹보자기등 서적마다 각각 다르게 표현하고있다. 민간 사회에서 관행에 의해 이루어진 격식이기 때문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지나 사주보가 홍청의 겹보자기이듯이 혼서지보 역시 홍청의 겹보자기이어야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혼서는 집안의 제일 높은 남자 어른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최근 들어 포목집이나 주단집에서 모조지에 인쇄된 것을 구해 사용하기도 한다.그러나 정성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가급적 필묵으로 작성하는 것이, 전통의식을 행하는 의미를 가장 잘 살리는 방법으로 생각한다. 함싸는 함속에는 가장 속에 종이나 한지를 깔고. 그 위에 혼수를 순서대로 넣는다. 다시 위에 종이를 덮고 흔들리지 않도록 잘 고정해서 담는다, 그 위에 혼서지를 놓고 함을 홍색 겹보자기로 싸되, 네 귀퉁이를 맞추어 모은 뒤 묶지 않고 謹封이라고 쓴 종이로 감는다. 또한 혼서지를 먼저 넣은 후 물품과 물목을 차례로 넣는다는 기록도 있는데 모든 것은 시대와 가문과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며 현대 생활습관과 연관지어 볼 때 혼서지가 맨 위에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어느 문헌에는 혼서지는 함과 별도로 가지고 간다고 기록된 경우도 있는데,그래서 혼서지에는 보가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함 끈은 무명천으로 어깨에 맬 수 있게 묶는다, 이 천으로 첫 아이의 기저귀를 만들어 쓴다고도 하지만 버리지 않고 적절히 재활용한다는 것을 의미일 것이다. 봉치떡 신부, 신랑집에서는 찹쌀 두 켜에 팥고물을 넣은 찰떡을 만드는데 가운데 대추와 밤을 박아서 찐다. 이것을 봉치떡이라 하는데 이 떡시루를 마루 위에 있는 소반에 떼어다 놓고 홍색보를 덮은 후 이 위에 함을 올려놨다가 지고가게 한다. 신부집에서도 화문석을 대청에 깔고 소반에 봉치떡을 준비했다가 함이 올 때 올려놓도록 한다. 함을 받은 뒤에 가운데 묻은 대추와 밤은 색시 주발 뚜껑에 퍼서 혼인 전날 색시가 먹도록 하는데 지방에 따라,또는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은 납폐함,또는 혼함이라고도 한다. 함은 옻 칠을 하거나 화려한 자개를 사용한 함을 사용하였으나 오늘 날에는 가방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목
물목이라 하는 것은 함 속의 예물들에 대하여 적은 물품목록을 말한다.
혼수는 채단(采緞)을 말하는데 보통 청색과 홍색의 비단 치마,저고리감을 일컫지만 신랑집 경제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 노리개등 패물을 넣기도 하였다.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내용물이 달라져왔던 것이니 만큼 물품의 종류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로부터 예단은 두 가지 이상, 열가지 미만, 또는 한냥 이상 열냥 이하로 정하여 허세를 배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하니 함의 의미를 잘 되새겨 현대에 맞도록 갖추면 좋을 것이다.
요령
(봉채떡)
<1> 이어짐의 문화 - 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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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문화에 |
한국의 전통문화에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그대로 엉켜있다.노래가 그렇고 춤이 그렇고 음식과 의상이 그러하며 모든 일상생활의 풍습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면면히 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수 많은 세월을 말 없이 흘러갈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는 이어짐의 문화라고 말한다.가시는 님 붙잡고 싶지만 서운하면 다시는 아니 올까봐 잡지도 못한 채 다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속으로만 울부짖는 "가시리",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잭"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한 순간 미련없이 시신을 바다 속으로 떠밀어내고 구조대 쪽으로 향하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이 두 경우를 비교해 볼 때 서구인들은 현실성을 강조한 삶을 살고있는 반면, 우리는 시공을 초월한 이어짐을 중시하면서 이 날까지 이 땅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 혈연주의를 선호하는 민족이 우리 이외에 몇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어가자.있는 것은 이어가고 잊혀진 것은 것은 찾아서 다시 잇자.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우리는 우리 민족 중심의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는 면에서 특히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문제를 한가지 알아야 한다.옛 삶의 숨결을 지키되 원형 그대로의 유지가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른 인간의 사고변화에 호응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단장되어야만이 살아 숨쉬는 전통이 된다는 사실이 그 것이다. 징,꽹과리,장고 그리고 북. 이 네가지 국악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그러나 이 들의 조화를 사물놀이로 새 구성한 다음, 전 국토에 뿌리 내리고 세계를 순회하며 박수를 받아왔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더 신명나게 두드리는 것 아닌가? 단순유지와 개량의 차이는 아무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혼서지등 혼례절차도 개량해보자.단지 너무 급격히 하지 말고 모든 이들이 호응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살펴가면서. 꼭 흙가마가 아니라 디지털 온도계가 달린 Gas가마에서도 전통도자기는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
<2> 함에 많이 넣으면 좋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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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
신부의 한복감은 함속에 넣는 기본적인 품목이었으니 상징성이 있어 중요하다고 본다. 약간의 예물은 결혼기념으로 보통 하게 마련이니 본인끼리 주고 받고 하는 것보다 함에 넣어 보내면 본인들 사이를 뛰어넘어 두 집안끼리의 교류가 확인된다는 점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그 외에 양가의 특성에 맞게 품목이 추가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문제는 과도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과시형이 되서도 안된다.단지 신랑집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신부집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접수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가장 훌륭한 납폐의식이 될 것으로 본다. 사전에 양가에 의논이 되어 품목이 절충되는 것도 두 집안의 차후 교류에 보탬이 될 것이다. |
<3> 아직도 "함 사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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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을 팔지 |
사례의 하나로 납폐가 이루어지던 시절,신랑집에서는 봉치떡을 쪄 시루째 마루에 올려놓고 그 위에 함을 놓았다가 지고가게 하는데 함진아비는 신랑집 친지 중,내외간에 금슬이 좋고 인품이 있는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함을 받는 신부집 역시 봉치떡을 준비하였다가 혼수함을 정중하게 받아 올려놓고 납폐문을 읽고 예물을 꺼낸다. 함진아비 등에게 음식을 후하게 대접하고 혹은 옷감이나 돈을 주는 등 시종 하나의 의식으로서 정중하게 납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 풍습이 변질하여 함진아비는 검뎅을 얼굴에 바르고 "함 사세요---!"를 외치며 받을 금액을 요구하는가 하면 신부집 역시 적은 비용으로 함을 인수(?)하기 위하여 함진아비 일행과 실랑이를 부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은 어떠한 대가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한데 관행상 재미를 겸하여 이러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납폐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며 바로잡아져야 할 부분이다. 조용히 함을 전달하면 신부댁에서는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약간의 여비도 제공하여 잔치 전야제를 축하 분위기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자아작고(自我作古)라는 말이 있다. 나부터 시작한 일이 후세까지 이어져 먼 훗날 나의 행위가 후손에게 본받을 만한 고전이 될 수 있도록 처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이라면 당연히 고쳐야 할 것이며 남들이 그리하지 않는 이 때에 나부터 실천해야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다. 젊은 이들이여! 함진아비 일행들이여! 그대들이 새로운 고전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겠는가? |
<4> 한문혼서지는 읽기가 어려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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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혼용 |
예전,한글이 많이 보급되기 전에 모든 문자생활은 당연히 한문 위주로 행해졌고 한글은 언문(諺文.상스러운 글)이니 의식 등에서까지 사용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선조,숙종,추사등이 쓴 한글편지는 지금도 보존된 것이 있지만 역시 서찰에 한한 것일 뿐, 그 당시 관혼상제의 의식에 한글이 쓰여진 예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비석을 보자. 전국의 오래된 비석은 다 한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언젠가부터 한글 비석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이제 새로 세우는 묘비,시비(詩碑)등 비석은 대부분이 한글로 쓰여지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혼서지는 편지글이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이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면 혼서지 보내는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납폐란 것이 혼인 의식의 일부이기 때문에 의미전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통과의례로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로 굳이 해독을 못해도 주고받는 자체로서 예절은 갖추어진다고 보지만 한문으로 작성하면 정통성이 있으리란 생각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개선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위 세 가지 방법 중 어떠한 것을 택하든 주관만 확실하면 되는 것이지만, 주고 받는 사람들이 내용을 파악하고 행해야 더 의미있게 의식이 진행된다는 점으로 보아 전통적인 요소에 편의적 요소를 가미해서 국한혼용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으로 본다. |
<5> 혼서지보가 왜 시꺼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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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서지보는 |
시중에서 혼례에 대하여 기술한 자료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서적이 혼서지는 먼저 봉투에 넣고 네귀퉁이에 금전지(金箋紙.金箔紙)를 붙인 검정색 겹보자기에 싼 후 "謹封"이라 쓴 종이 띠를 3개 둘러 흐트러지지 않토록 한다고 전하고 있으며 극히 일부 서적만이 홍색 겹보자기,홍색,흑색겹보자기,또는 홍청색 겹보자기에 싸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른 부분과 달리 혼서지보에 관하여는 각각의 견해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시중 포목점이나 한복집에서 취급하는 혼서지는 거의 다 봉투식 검정색 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왜 하필이면 혼례절차에 사용하는 보자기가 검정색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주단자는 봉투에 넣어 청홍색 타래실로 두르고.청.홍색 겹보자기에 싼다고 하였으며 사주를 보낼 때 함께 보내는 납채문 역시 홍색 보자기에 싼다고 하였다. 채단의 경우 홍색채단은 청색 종이에 싸서 홍색 명주실로 감고 청색 채단은 홍색 종이에 싸서 청색 명주실로 감는다고 하였다. 함은 홍색 보자기에 싼다고 하였고, 함진아비는 홍단령(紅團領.깃을 둥글게 만든 붉은색 옷) 을 입도록 한다 하였으며, 신부집에서는 봉치떡을 쪄서 소반 위에 홍색보자기를 편 후 그 위 떡 시루를 올려놓는다 하였다. 이렇게 혼인과 관련된 절차에서 색깔을 선택할 때는 항상 홍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예기(禮記)에 기록되어있는 "남홍여흑(男紅女黑)"에 근거한다고 보고 있다. 남성은 홍색으로 양(陽)에 해당하며 여성은 흑색으로 음(陰)에 해당하므로 남성과 여성,음과 양의 결합과 조화라는 동양사상에 근거한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남홍여흑(男紅女黑)이었다. 그런데 이 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남홍여청(男紅女靑)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청색도 흑색과 마찬가지로 음에 해당하지만 청색은 흑색보다 밝고,힘차고,희망이 있는 것으로 우리 민족은 생각하였기 청색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의식에서의 검은 색은 어둡고 무거우며 음의 기운이 도는 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혼인이라고 하는 축복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행사에는 밝고 아름다운 색이 어울리는 것이며,더구나 신랑집에서 준비하는 행사에 여성을 상징하는 음의 색깔을 사용한다는 것은 옳치않을 뿐더러 검정색을 대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감안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상례(喪禮),제례(祭禮)의 경우 과거에는 흰색 계통의 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서구의 방식을 대폭 수용하여 상복,관보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것을 검정색 위주로 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상례나 제례가 침통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의식인 만큼 엄숙하고 장중함을 나타내고자 한데서 온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혼례는 상례,제례와 그 성격이 다르다. 혼서지보가 검정색이어야 한다는 지금의 방식은 재고 되어야하며 사주보와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를 상징하는 홍색,청색의 겹보자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꾸자. 아니 바꾼다기 보다 올바른 방식을 찾는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
<6> 사주봉투를 싸리가지 대고 묶자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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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가지는 |
전통적인 방법에 의하면 사주단자는 흰 봉투에 넣고 풀로 봉하지 않으며 싸리가지를 반으로 쪼개 봉투 양면으로 댄 다음 청,홍색 실로 감은 후 보자기에 싸고 이를 다시 "謹封"으로 두른다 하였다.실을 감는 것은 남녀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굳이 싸리가지를 대는 것은 실을 감을 수 있도록 지주의 역할이 되는 것 아닌가 보여진다.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니 따라 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꼭 실을 둘러야 하느냐 하는 것은 의문시된다.실을 두르므로서 의미가 강조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를 다시 청홍색 사주보자기에 싸게되니 굳이 보자기 속에서 또 실을 두르지는 않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또한 수도권등 도시 주민의 경우 싸리가지는 어디서 구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매년 치루어지는 결혼식은 약 25만회 정도로 짐작된다. 싸리가지 25만개를 ,그 것도 곧고 굵은 것으로 확보하자면 수 많은 싸리나무가 훼손될 것이니 별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절차를 위하여 지나친 노력이 요구된다면 그 것도 허례허식류에 속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사주는 싸리가지와 타래실이 없어도 아름다운 비단보자기에 싸히게 되니 그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대의(大義)를 따르고 있다면 꼭 작은 것에까지 집착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생략하자. 환경보호를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