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가요무대에는 <대전부르스>가 등장하지요. < 대전 부르스>는 대전을 노래한 대중가요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전 부르스>는 1963년 상영된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영화의 주제가로도 사용됩니다. 이후 <대전 부르스>는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대전 블루스 >라고 표기되지요. 그러나 본 글에서는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대전 부르스>라고 표기하고자 합니다.
<대전 부르스>는 대전역을 무대로 한 남녀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노래하고 있지요.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요지이기도 합니다. 대전역사는 한국전쟁으로 붙탔고, 1958년 새로운 역사가 준공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도 2004년 한국고속철도(KTX) 개통으로 북쪽으로 수평 이동하여 현대적인 역사로 개축되지요. 이 노래는 1958년 대전 역사가 새로 지어진지 1년 뒤에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가 지어질 무렵 목포행 완행열차는 오후 8시 45분 서울역을 출발하여 새벽 0시 40분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열차는 10분 동안 대전역에 정차한 뒤 0시 50분에 출발하여 새벽 6시 종착역인 목포에 도착했습니다. 열차가 10분 동안 대전역에 정차할 동안 승객들은 열차에서 급히 내려 가락국수를 1, 2분 내에 뚝딱 먹어 치우곤 했지요.
비극은 승객들이 가락국수를 맛있게 먹는 동안 일어납니다. 1959년 어느 날 대전역 역무원으로 근무했던 작사가 최치수 님은 새벽 0시 40분 경 대전역 안의 플랫폼 가스등 밑에서 두 손을 꼭잡고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청춘 남녀를 목격합니다. 마침내 목포행 완행열차가 기적 소리를 울리며 서서히 플랫폼으로 진입합니다. 남자는 열차에 몸을 싣고 여인은 열차를 바라봅니다. 0시 50분이 되자 증기 기관차는 칙칙폭폭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출발합니다. 최치수 님은 남녀의 이별에 깊은 인상을 받고 퇴근 후 숙소에 돌아와서 좀 전에 느낀 소회를 시로 쓰기 시작합니다.
< 대전 부르스 >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플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최치수 님으로부터 시를 건네받은 작곡가는 3시간 만에 곡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블루스의 여왕’으로 명성이 자자한 안정애 가수님에게 취입을 시킵니다. 안정애 님은 1956년 <밤비의 부르스>로 데뷔한 이래 주로 블루스가 들어간 가요를 열창한 분이었죠. 대표적인 곡으로는 <순정의 부르스>, <연락선 부르스>, <비정 부르스>, <여인 부르스>, <다방 부르스>, <자매의 부르스>, <카바레 부르스>, <도라지 부르스>, <호남선 부르스>, <탄식의 부르스>, <섬진강 부르스>, <청춘 부르스> 등이 있습니다. 그 결과 안정애 님은 1950~1960년대 블루스 열풍의 선봉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전 부르스>는 안정애 님의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타고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대전 부르스>는 음반 출시 3일 만에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합니다. 그 결과 이 음반을 발매한 신세기 레코드사는 창사 이래 최고의 판매 수익을 기록하게 됩니다. 또 <대전 부르스>가 특이한 것은 1판은 SP, 2판은 LP로 발매됐다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후 <대전 부르스>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1980년도에 크게 히트를 칩니다. <대전 부르스>는 <창밖의 여자>가 타이틀곡인 조용필 1집 앨범에 수록되지요. 조용필 님 특유의 절규하는 창법에 힘입어 <대전 부르스>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1980년의 어두웠던 시대 상황에서 조용필 님이 허공을 향해 외치는 듯이 부른 <대전 부르스>는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고 할까요. 결국 <대전 부르스>는 리메이크된 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사례가 되었지요.
https://youtu.be/HRYZ_l_Di18
대전 지역에서는 <대전 부르스>를 대전을 대표하는 노래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결과 1999년 대전역 광장에는 거대한 규모의 노래비가 건립되었고, <대전 부르스>라고 명명됩니다. 그러나 안정애 님은 <대전 부르스>가 유명해진 것은 조용필 님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노래비에 조용필 님의 이름을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논란 끝에 노래비에서 가수 이름은 빠지게 되지요. 세월이 흘러 노래비는 균열이 일어나 2016년 철거됩니다.
<대전 부르스 >는 기적 소리를 울리며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를 배경으로 보여주지요. 지금은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증기 기관차는 1967년 디젤 기관차에 임무를 남겨주고 퇴역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전발 0시 50분 열차는 딱 1년간 운행됐다는 사실이지요. 대전에서 0시 50분 출발하는 목포행 완행열차는 1959년 2월 신설되었지만, 불과 1년 만에 운행이 중단됩니다. 즉 1960년 2월 시간이 변경되어 대전발 오전 3시 50분 열차로 변경됩니다. 따라서 <대전 부르스>는 시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여러 차례 열차의 차종이 바뀝니다. 즉 비둘기호, 통일호가 교대로 완행열차 구실을 하다가 지금은 무궁화호가 완행열차 구실을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