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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시는지 ?
지난45년을 어떻게 나그네 생활하셨는지 궁금하고 요즘 무슨 일로 지내는지.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고, 친구의 옜 모습을 떠 올리네.
내 앨범에는
우리가 졸업하기 전날 교대 강당에서 R.N.T.C 수료식이 끝나고 같이 찍었던
사진 한장의 그순간이 친구와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이었네.
가끔 청량서실이라는 이름으로 보네만
반갑네.
나는 교직 6년을(RNTC 의무연한)
마치고,
C.C.C에서 13년을, 그 뒤 신학대학
거치고 199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네.
지금은 미국 땅 캘리포니아 주 로스안젤레스 근처에서 지낸다네.
건강하여 지내다 보면 다시 만날거고,
작년 11월 조재형, 윤석우,
양직승 친구를 LA 공항 근처에서 2시간쯤
만나 우정을 확인했다네.
내 인생은 CCC가 완전히 바꾸었고, 그
결과 국제적인 인맥을 갖게되었고, 한국에서는 전국적인 인맥을 가지고,
나를 거쳐간
학생은 셀 수는 없지만 약 3,000명이되지 않을까?
이 곳에서도 한국 각지에서 활동을 했던 CCC 회원들이 매월 둘째주 일요일에
만나서 교제한다네
지난 인생은 돌이킬 수 없지만 남은 인생 목사로서 소임을 다하면서 신앙안에서 사는 수 밖에 없다네.
만약 이글을 읽는다면, 68-69년의 3반 동기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억해 주길 바라네.
그럼 사모님과 가족, 점영 친구의 건강을 빌면서 Hi 하면서 마음으로 웃어보네.
안녕 ! 김영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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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많은 것을 생각하게하는 희귀한 기록사진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는가? 갓 스무살 넘은 애띤 얼굴과 하사 복장 볼 수록 재미있다.
재형이와도 같이 한 사진도 있어.
필요하면 올맇께.
그래 군복입은 사진일까? 궁금하네 나는 없는데.............
윤영윤, 조재형, 윤석우, 김영렬,조기만
사진과 함께 우정을 보관하고 있는걸세.
자네 옆에 5반조기만이라고, 전라북도 정읍에서 기차통학을 하면서 교대를 다녔는데 교회다나며 피아노를 완전히 마스터해 동요정도의 기악, 가창은 깜이 안되고 1학년 때 합창대회 지휘자로 우리에게 합창을 가르쳐 입상을 하게하고 아무튼 부러웠던 친구인데 전북으로 발령받은 후 지금까지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여기서 얼굴을 보내, 이메일로 사진파일 받고 여기에 댓글 다네 고마워
아름다운 소식들입니다.
맨 아래 사진 속 윤영윤은 뭐가 그리 급해서 먼저 갔다지요?
영혼이 맑은 사람이었으니 좋은 곳에 가 있을 겁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