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깊은 맛 차(茶)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떫은 인생의 맛을 알고 오미(五味)의 조화를 깨닫게 하는 차 한잔의 맛. 손님을 환대하며 나누는 따뜻한 대화의 자리에, 온 가족이 모여 정담을 나누는 자리에 차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는 차는 생활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한 잔의 녹차 안에는 항암효과, 노화방지, 콜레스테롤 생성 억제, 환경 호르몬 배출, 피부정화 효과 등 놀라운 효과까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비인 허황옥이 아미타국에서 가락국으로 건너올 때 차나무를 가져와 김해 백월산에 심은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된 것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다. 그 후 천여년 동안 차는 우리 민족에게 예절과 풍류를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차는 술, 시와 함께 문화코드로 표현될 정도로 성장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우정의 선물로 사용됐다고 한다. 고전에 남겨진 시와 산문 기록을 살펴보면 차를 통해 친구와 스승, 지인과 정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까지 교류를 유지하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차(茶)는 단순히 마실 거리를 넘어 나눔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소중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주역, 녹차
녹차는 토마토, 브로콜리, 마늘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에 오를 만큼 우리 몸에 이로운 식품이다. 혈관외과 의사이면서 미국 예일대 교수인 섬피오 교수는 아시아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자주 담배를 피우는 데도 심장혈관 질환률과 암 발생률이 현저히 적은 역설(paradox)이 발견된다며, 이러한 ‘아시아 패러독스’의 주역으로 녹차를 지목했다. 녹차의 단맛과 상쾌한 맛을 전해주는 테아닌(Theanine)은 머리를 맑게 해주는 작용도 있다. 가톨릭의대 김경수 박사팀이 [한국영양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녹차의 함유물 가운데 테아닌이라는 물질이 별다른 부작용 없이 알파파를 유의하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을 밝혔다. 연구 결과, 녹차의 테아닌 성분은 섭취 후 약 30분 이내에 뇌에 도달하며, 40분 정도면 뇌에서 알파파를 생성했다. 알파파는 암기력 향상과 스트레스 회복 촉진 등에 영향을 미치고 숙면을 취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테아닌은 차에만 함유돼 있는 고유한 성분으로 현미 등의 성분을 첨가한 혼합 녹차보다는 100% 순수 녹차를 마실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몸을 살리는 녹차
녹차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의 한 종류인 카테킨(Catechin)은 신생혈관이 자라는 것을 막아 암세포가 증식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녹차가 암 예방을 돕는다는 것은 동물 실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됐다.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 조사에서는 하루에 녹차 7잔 이상을 마신 경우 위암의 발병률이 31%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또 카테킨은 혈관 건강에도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혈관에 축적되는 유해 산소를 항산화 성분인 카테킨이 없애주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기 때문이다.
녹차에 들어있는 이 항산화 물질은 비타민 C보다 약 100배의 작용을 한다. 다만 녹차에는 카페인이 소량 들어 있기 때문에 민감한 사람의 경우 취침 3~4시간 전에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또 빈혈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녹차가 철분 흡수를 방해할 수 있는 만큼 복용 시간과 30~60분 간격을 두고 마시는 것이 좋다. 녹차는 제조 시기에 따라 첫물차(4월 하순~5월 초순 채엽), 두물차(6월 중순~6월 하순 채엽), 세물차(9월 하순~10월 초순 채엽) 등으로 구분하는데 차의 성분은 계절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첫물차는 아미노산이 많아 감칠맛이 강하고, 두물차나 세물차는 카테킨이 많아 떫은맛이 강하다. 또 뜨거운 물로 차를 끓이면 떫은맛 성분이 빨리 우러나 차의 맛이 떫고 낮은 온도의 물로 천천히 우리면 감칠맛이 나는 차가 된다. 고급 잎차는 50~60℃의 물에 넣어 1분가량 우려내는 것이 좋고, 티백 녹차는 70~80℃의 물에 30초가량 우려내야 떫은맛 성분이 적게 침출된다.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가 건강의 적인 줄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차 한잔을 손에 들고 입에 머금어 차를 음미하며 마시는 순간, 스트레스는 찻잔 속에 녹아 그 흔적을 감추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차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가치다.
#카톨릭대인천성모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