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기 위해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을 어기는 사람에게 최대 10년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새로운 내용의 여성 억압법안을 제정했다. 이란 의회는 20일 이런 내용의 ‘히잡과 순결 법안’을 찬성 152표, 반대 34표로 가결 처리했다고 영국 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른바 ‘히잡 의문사‘ 1주기 이후 불과 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 법안은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옷을 입거나 복장 규정을 4회 이상 위반한 사람을 대상으로 5∼10년 징역형과 1억8천만∼3억6천만리알(3천600∼7천300달러)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각종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히잡 착용을 조롱하거나 신체 노출을 조장한 사람에게 벌금형을 부과하고, 히잡 등 적절한 복장을 하지 않은 여성 운전자와 탑승자를 태운 자동차의 소유주에게도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 법안은 이슬람 규범과 헌법 해석권을 가진 헌법수호위원회의 승인 절차만을 남겨 놨으며, 3년 시범 적용 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된다. ▲ 이란 테헤란 거리의 여성들 앞서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달 초 이 법안에 대해 “여성과 소녀들을 완전히 복종시키기 위한 의도를 갖고 체계적인 차별을 위해 만들어진 ‘젠더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성차별 정책)”라고 경고했다. (Gender Apartheid) 이란의 인권 변호사 호세인 라에시는 “이란 의회가 여성의 신체에 거대한 자물쇠를 채웠다”며 “이란은 이미 여성에게는 공개된 감옥이었고, 이번 조치로 여성에 대한 잔혹함을 더 확장했다”고 비판했다.
이란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법에 따라 사춘기가 지난 여성의 경우 머리에 히잡을 쓰고, 길고 헐렁한 옷으로 신체를 가리도록 하고 있다. 히잡 거부 등 복장 위반 여성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이번 법안은 ‘히잡 의문사’ 1주기 이후 나흘 만에 전격 처리됐다. 작년 9월 16일 당시 22세 쿠르드계 여성인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아 이슬람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풍습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했고, 이 사건은 이후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히잡' 안 썼다고 경찰이 무차별 폭행? 16세 소녀 혼수상태에 이란 '발칵'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란 소녀가 테헤란 지하철에서 쓰러진 뒤 열차에서 끌려나오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로 불리는 '지도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에 폭행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이란 소녀의 어머니가 당국에 체포됐다고 이란 인권 단체가 주장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쿠르드족 인권 단체 헨가우는 5일(현지시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당해 혼수상태인 16세 소녀 아르미타 가라완드의 어머니가 딸이 입원 중인 병원 근처에서 당국에 체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영 뉴스 통신사 IRNA는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IRNA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적들이 가라완드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헨가우는 최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지하철에서 가라완드가 히잡 규정을 위반해 도덕 경찰의 공격을 받은 뒤 혼수상태로 입원했다고 주장했다.
헨가우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머리와 목을 다친 채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란 당국은 가라완드가 저혈압 쇼크로 실신했다고 반박하면서, 가라완드가 쓰러질 당시 지하철 플랫폼에서 찍힌 영상을 제시했다.
가라완드의 부모도 이란 국영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딸이 저혈압으로 쓰러졌다고 밝혔지만, 인권 단체는 인터뷰 현장에 보안 당국의 고위 관리가 입회해 압력을 행사했다고 반박했다.
가라완드 사건은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과 맞물려 이란 안팎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서방 외교 관리들은 가라완드가 '제2의 아미니'라며 이란의 여성 억압을 다시 이슈화하고 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란에서 또 한 명의 어린 여성이 지하철에서 머리카락을 보였다는 이유로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다"고 썼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이란에 대한 간섭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말, 이란 여성에 대한 가식적인 우려는 그만두고 대신 미국과 독일, 영국의 의료진과 환자의 상태나 걱정하라"고 맞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