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병장 증후군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흔히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 내가 전역하면 관물함속 박보영같이 샤방샤방한 여자랑 사귈 수 있어! 이건 단지 시간 문제야!' 전역과 동시에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건 뭐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고 그냥 안습이다. 제대후 돌아와서는 새내기 여후배에게, 그리고 만나는 모든 여자사람에게 열심히 눈빛을 보낸다. 그냥 '진상'이다. 아니면 누군가의 어장에서 '일등참치'가 되어 북치고 장구치고 사물놀이까지 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연애'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제대후 뭐 먹고 살지?'에는 한숨 푹푹 내쉬는 이들이 많은 반면, 제대후 '여자친구 만들기'에게는 알수없는 근자감으로 무장하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처럼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쉬운것도 아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가 보자. 사실, 우리 20대에게 연애란 일종의 대세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음반까지 사랑 놀음이 주제가 아닌 것을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 연애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럴 듯한 상태가 되었다. 연애를 못하는 솔로는 패배자이고 커플은 승리자로 여긴다. 쉽게 말해, 연애가 쉽고 가볍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로움' 그리고 '연애'대한 욕구가 샘솟는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지는 말자. 어떻게하면 상대방을 꼬실지, 진도를 나갈지 이런 고민을 하기전에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번쯤은 연애를 '미래' 고민으로 생각하고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깃털같이 가벼운 우리의 만남
이와 관련되서 한편의 영화같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남자가 있다. 바로 알랭 드 보통이다. 그의 소설은 20대의 러브스토리에 플라톤, 니체, 푸루스트, 톨스토이등 인문학자들의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있다. 왜 우리가 '좋은 오빠'가 되려다가 '일등 참치'가 되는지, 소름끼치도록 우리의 현실을 짚어준다.
그는 우리의 연애 욕구는 현 상황 때문에 시작된다고 한다. 즉, 외로워서 복학하고도 여자친구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크다. 쉽게 말해서 '그녀'를 사랑해서 보기보다는, '사랑'을 사랑하는 거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어떤 사람의 '한 부분'만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는 한다. 나머지 부분은 상상에 맡기는 것이다. 당연히 사랑이 시작되면 이제 슬슬 그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 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中
우리는 모두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中
그렇다면 무거움?
그렇다면 무거움이 정답일까? 가벼움이 존재하면 당연히 무거움이 존재할 것이다. 사랑에도 가벼움이 있다면, 진지함도 존재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순간적인 원 나잇 스탠드적인 사랑이 있다면 영혼적인 사랑도 있다. 사실 둘 다 정답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도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와 관련되어서 철학적 담론을 다뤘다.
언젠가 연애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릴때, 반창고가 역할을 할때가 있으니 읽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보자. 최소한 빈속에 소주로 위청소를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누군가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가 존중하는 마음을 기초로 서로 능동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외로움 정도는 다스려야, 남의 외로움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에리히 프롬은 이와 관련하여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적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연애의 작업 기술 그런 책은 아니다. 사랑이 예술(art)이 되기 위한 기술(art)이다.
사랑의 요소중 하나는 존경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기욤 뮈소는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만남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아주 조금은 또는 아주 많이 그 또는 그녀의 삶에 들어와 있고 또 기억되기 때문이란다. 간단한 만남도 이런데, 하물며 '사랑'은 어떨까? 그렇기에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짧은 공간을 할애해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여백의 공간은 여러분들께 맡기고 싶다. 아래 독서 목록을 나열하니, 숨은 여백이 궁금한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명언 하나를 남기며 이글을 마친다. "커플이든, 솔로든 국방부 시계는 간다" 우리 군인 화이팅!
사랑과 관련된 책들
알랭 드 보통. 2011. <우리는 사랑일까> 은행나무.
알랭 드 보통. 2007.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청미래.
알랭 드 보통. 2013. <인생학교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샘앤 파커스.
밀란 쿤데라. 201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에리히 프롬. 2006.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앙드레 지드. 2013. <좁은문> 문학과지성사.
플라톤. 2003 <향연-사랑에 관하여> 문학과지성사.
글 : 일병 김승환 디자인 : 일병 진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