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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강 스크랩 제사상 차리는법
마스터 우 추천 0 조회 21 10.07.29 12: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성스럽게 제수를 장만하였으면 진설을 해야 한다. 제사 음식 차리는 것을 진설이라고 한다. 제수 진설법도 각양각색이나 대체적으로 지켜내려 온 법칙과 응용진설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육고기가 으뜸이라고 생각해서
동두서미(東頭西尾)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숙서생동(熟西生東)  익힌 나물은 서쪽, 생김치는 동쪽. 익힌 나물이 정갈스럽고 귀해서
시접거중(匙楪居中)  수저 올려놓은 그릇 위치는 신위의 앞 중앙
적접거중(炙楪居中)  적(구이)의 위치는 중앙. 술안주에 제격이어서

반서갱동(飯西羹東)  메(밥)는 서쪽, 갱(국)은 동쪽
면서병동(麵西餠東)  면(국수)은 서쪽, 떡은 동쪽. 면이 주식에 가까우므로
면서병동(麵西餠東)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동조서율(東棗西栗)  대추는 동쪽, 밤은 서쪽. 한문자 속에 방향을 나타내서
건서습동(乾西濕東)  마른 음식은 서쪽, 젖은 음식은 동쪽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동쪽, 식혜는 서쪽. 포가 육고기로 만들고 더 정갈스럽게 만들어서
고서비동(考西婢東)  남자 신위는 서쪽, 여자 신위는 동쪽. 고인은 음(陰)을 으뜸으로 해서
정세과위선(精細果爲先)  정갈스럽고 곱고 몸체가 작고 섬세하여 진귀하고 보기 좋은 것을 서쪽으로부터                                             순차적으로 차린다.
 
 
응용진설법
달걀 등은 육(肉) 옆에, 해삼 낙지 홍어회 등은 어(魚) 옆에, 김은 포(脯) 옆에, 전골 삼계탕 등은 탕(湯) 옆에, 잡채 도토리묵 등은 물김치 옆에, 게장은 식혜나 젓갈류 옆에, 풀에서 난 딸기 참외 수박 등도 나무에서 열린 과일 동쪽에 진설한다.
 
합설할 때의 제수 진설
제1열 : 메, 잔, 갱, 수저, 메, 잔, 갱
제2열 : 면, 전, 육적, 소적, 어적, 조기, 편
제3열 : 육탕, 소탕, 어탕
제4열 : 포, 숙채, 간장, 김치, 식혜
제5열 : 밤, 배, 곶감, 약과, 사과, 감, 대추
 
가정의례준칙 제찬도
제1열 : 메, 잔, 갱
제2열 : 채소, 간장, 김치
제3열 : 어류, 탕, 육류
제4열 : 과일, 과일, 과일
 

 
      과일을 놓는줄(1번)
   * 조율이시  대추,밤,배(사과),감(곶감)의 순서로 차리며, 그외의 과일은 정해진순서는 없으나, 나무과일,넝쿨과일 를 쓰기도한다.
   * 과일줄의 ?에는 
조과류(손으로 만든 과자)를 쓰되 그 순서는 다식류(송화,녹말,흑임자)를 먼저쓰고 그 다음이 유과류(산자,강정등) ,마지막 끝에에 당속류(오화당,원당,옥춘등)를 놓는다.

     반찬을 놓는 줄(2번)
   * 좌포우혜라 하여  왼쪽끝에 포(북어,대구,오징어,문어 등)를 올리고,  오른쪽끝에 혜(식혜)를 쓴다.
   * 그중간에 나물반찬 삼색나물 (콩나물,숙주나물, 무나물 또는 고사리,도라지나물 등)과 간장  동치미 순으로 올린다.

     탕을 놓는 줄(3번)
   * 대개는 3탕으로  육탕(육류), 소탕(두부 채소류류), 어탕(어패류)을 사용하나
      오탕을 사용할 때는  봉탕(탕 ,오리), 잡탕 등을 더 올린다

     적과  전을 놓는줄(4번)
   * 대개는 3적으로  육적(육류), 소적(두부 채소류), 어적(어적 어패류)의 순으로 올리나, 5적을 사용할 때는 봉적(닭.오리), 채소적을 더 사용하기도 한다.

     반 ,잔 , 갱을 놓는 줄(5번)
   * 메(밥)를 오른쪽에, 갱(국)을 왼쪽에 올리며  술잔은 메와 갱 사이에 올린다.
   * 시저(수저와대접)는  단위제는 왼쪽 갱옆에, 양위합제는  중간부분에 올린다.
   * 면(국수)는 국물없이 건데기만을하여  왼쪽끝에 올리며,  청(조청,꿀,설탕)은 편의왼쪽에올리고 ,편(떡종류)은 오른쪽끝에 올린다..
 
 
 
**과일을 올릴 때 우측에 붉은색 좌측에는 흰색 과일을 놓고 그 가운데에 조과류(다식, 유과, 당속)를 놓는 예법도 있다. 그 경우는 시접과 잔반을 제일 먼저 올린 뒤 앞줄서부터 순서대로 놓으면 된다. **
 

  ※ 제상  진설의 원칙

진설(陳設)이란, 벌일 진(陳) 베풀 설(設)로, 제사나 혼인 때 그 법식에 따라서 음식을 상 위에 벌여 차린다는 말이다. 그 법식은 음식마다 자리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원칙을 정해 상황에 적용시키는 상대적인 것이다.
 
좌포우혜(左脯右醯)
좌측에 포  우측에 혜
어동육서(魚東肉西)
동쪽에는 어류  서쪽에는 육류
동두서미(頭東西尾)
생선의 머리가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방향으로 놓을것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색은 동편으로  흰색은 서편으로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놓는다(배와 감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동쪽은 제관의 우측,  서쪽은 제관의 좌측을 말한다


 


 


 
 여기에 적힌 사항은 일반적인 사항이며, 지역이나 집안 풍습에 따라 각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과일과 조과류 놓는 순서
  • 조율시이(棗栗枾梨) 진설법
진설자의 왼편으로부터 조(대추), 율(밤), 시(곶감), 이(배)의 순서로 진설하고 다음에 호두 혹은 망과류(넝쿨과일)을 쓰며 끝으로 조과류(다식,산자, 약과)를 진설한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진설법

 
붉은색 과일을 동쪽(참사자 우측), 흰색과일을 서쪽(참사자 좌측)에 진설하고 그가운데 조과류인 다식, 산자, 약과 등을 진설한다.
 
2) 반찬류를 놓는 순서

  •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문어, 명태, 오징어 등)를 왼편에, 식혜를 오른편에 진설하며 침채(김치, 동치미 등), 숙채(불에 삶거나 쪄서 익힌 나물), 청장(간장)을 그 가운데 놓는다.

 
3) 탕을 놓는 차례

  •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물고기 탕은 동쪽(우측), 육류탕은 서쪽(좌측)에 진설하고 그 가운데 채소, 두부 등으로 만든 소탕을 진설하되 단탕, 삼탕 등 반드시 음수(홀수)로 쓴다.

 
4) 적과 전을 놓는 차례
 
적은 불에 굽거나 찐 음식을 말하며 전은 기름에 튀긴 음식을 말한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진설법에 의하여 어류를 동쪽(우측)에, 육류를 서쪽(좌측)에 진설하며 그 가운데 채소, 두부를 진설한다. 두동미서(頭東尾西)라 하여 어류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진설한다.

  • 건좌습우(乾左濕右) :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쪽에 놓습니다.
  • 접동잔서(?東盞西) :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습니다.
  • 좌반우갱(左飯右羹) : 메(밥)는 왼쪽에, 갱(국)은 오른쪽에 놓습니다.
  • 남좌여우(男左女右) : 제상의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로 모십니다.
5) 제사상 차릴때 주의 사항!
  • 과실 중 복숭아는 제사에 안 쓴다.
    (복숭아는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 생선 중에 '치'로 끝나는 꽁치, 멸치, 갈치, 삼치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 제사 음식은 짜거나 맵거나 현란한 색깔은 피하는 것을 원칙이다.
  • 고춧가루와 마늘은 사용하지 않는다.
  • 설에는 밥대신 떡국을 놓으며 추석 때는 밥대신 송편을 놓아도 된다.


◆ 기제(忌祭)사
 
일년에 한번씩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제사를 전후하여 금기하여 처신한다고 하여 기제사라고 한다.
원래는 돌아가신 날의 첫 시간인 밤 12시를 기해 제사를 올리고 늦어도 첫닭이 울기 전에 끝마쳤다. 하루의 시작을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일부터 시작하고 사자(死者)는 조용한 밤에 거동한다고 하여 밤에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한밤 12시가 힘이 들어 초저녁에 제사를 드린다면 기일 해가 진 다음부터 밤 11시 사이에는 끝마쳐야 한다. 11시 30분이 지나면 다음날 자시(子時)로 바뀌기 때문이다. 생전에 뵈온 적이 있는 조상까지는 기제사를 지내는 것이 도리이다.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조부모 부모 2대 봉사에 고인 내외분을 함께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제사는 부녀자도 참석한다.
 함께 모실 때는 살아서 따로 먹는 메, 갱, 술, 국수, 숭늉은 따로 담는다.
불천위 제사도 기제사이다. 조선시대에는 4대까지 기제사를 지내는 관례를 깨고 특별히 공훈이 많은 사람에게 자손 대대로 기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나라에서 허락하였는데 이것을 불천위 제사라고 한다. 사당에는 기제사를 올리는 4대조까지만 위패를 모신다.
후대의 위패가 들어오면 제일 동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조부님 위패는 한 칸 서쪽으로 옮긴다. 계속 옮기다 보면 제일 서쪽에 모셔졌던 5대조 위패는 자리를 그만 내어 주어야 한다.
 
이것을 친진(親盡)으로 체천(遞遷)한다 하였으니 4대가 지나 지극히 가까운 어버이 사이가 끝났으므로 신주를 폐하여 무덤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그럴 때 5대조 위패는 무덤 오른쪽 하단에 묻는다.
그러나 임금으로부터 불천위를 하사 받으면 5대조가 되어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붙박이로 사당에 모시고 자손대대로 기일제사를 지낼 수 있어 불천위 제사가 많을수록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다.
 
◆ 절사(節祀)
조상님들께 명절제사를 올린 것을 절사라고 한다.
 4대 본제사를 드리면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순으로 지방을 쓴다. 제수와 절차는 기제사와 비슷하지만 기일제사는 유축삼헌이나 명절제사는 무축일헌이다.
즉 축문을 읽지 않고 술을 한번만 올린다. 술을 올릴 때 좨주도 하지 않는다.
지내는 시간도 아침 아홉시쯤 지내 정오까지는 마쳐야 한다.
명절날에는 제철음식으로 차려드린다고 하였으니 설날에는 떡국을 드리고 추석 절사 때는 송편과 토란국을 올린다. 진찬 때에는 3적을 함께 차린다.
 
절사 때는 주인이 향안 앞에 나아가 읍을 하고 주전자를 들고 젯상 위의 잔반에 직접 술을 따른 헌주를 한 다음 재배한다. 주부는 몸을 약간 굽혀 예를 표하고 떡국에 숟가락을 꽂아 담그고 시접 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4배를 한다.
합문 계문을 하지 않고 참례자가 약 7분간 공수하고 서 있는다.
떡국을 올렸으므로 숭늉을 올리지 않는다.
설날 절사는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 후에 올린다. 생자(生者)가 사자(死者)보다 우선 한다는 이치이다.
 
◆ 세일사(歲一祀)
1년에 한번씩 조상의 묘지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5대조 이상의 조상을 지낸다. 세일사는 문중에서 지내므로 문중 대표가 주인이 된다.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중 하루를 정해 제사를 올린다. 묘지에서 지내기 때문에 제상 위에 차일을 친다. 묘지가 없으면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나 편리한 장소에서 지방을 모시고 지낸다.
초헌시에 삽시정저(揷匙正箸)를 하므로 유식 합문 계문 절차가 없다.
요사이 1년 중 가을에 적당한 날을 잡아서 문중의 사람들이 산소를 찾아가 모두 함께 5대조 이상 조상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시제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세일사이다.
 
◆ 사시제
전통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제사가 철에 따라 1년에 네 번 드리는 사시제였다.
 율곡선생에 의하면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2월, 5월, 8월, 11월 상순에 날을 정하면 제사 전 3일전에 사당에 고한다. 제사 하루 전날에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신주 모실 자리를 마련한다.
향탁과 향로 향합 촛대를 놓고 주부는 제기를 갖추어 손질하고 제찬을 정결하게 마련한다.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두고 다음날 날이 밝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 이하 모든 참석자는 옷을 갖추오 입고 사당으로 나아가 분향한 뒤 신주를 모셔와 절차에 따라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사례편람에도 사시제야말로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였지만 요즘에는 이 사시제를 거의 지내지 않는다.
대신 세일사를 시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묘제(墓祭)
한식 단오 또는 참배가 필요할 때, 산소를 찾아가서 드리는 제사를 묘제라고 한다.
제찬은 기제와 마찬가지로 준비하고 일년에 한번 정도는 토지신에게도 따로 제수를 마련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묘소 앞에서 올리기 때문에 지방을 쓸 필요가 없으나 축문은 준비한다.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을 보면 1년에 네 번 설날, 한식, 단오, 추석에 묘제를 지낸다고 되어 있고 주가가례에는 해마다 3월 상순에 날을 택하여 무덤에서 지낸다고 적혀 있다.
 4대를 지나 5대가 되면 사당에 모셔왔던 신주를 친진(親盡)으로 체천(替遷)하여 친족 공동 제사를 올리는데 음력 시월에 한번씩 날을 정하여 제사를 드리게 되니 이를 친진묘제(親盡墓祭)라고도 한다.
제주를 비롯한 여러 참사자들이 옷을 갖추어 입고 일찍 산소에 가 재배하고 묘지 봉분과 산소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풀이 있으면 벌초하고 상석(床席)등이 있으면 닦아 놓는다.
 
산소 앞에 자리를 깔고 제찬을 진설한다. 그리고 강신 참신 진찬 헌주 정저 시립 낙저 사신 철찬 음복 철기구의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산신제를 지낸다면 묘제를 드리기 전에 산소의 동북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토지신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다.
토지신은 지하에 계시므로 분향은 하지 않고 뇌주만 한다.
보통 성묘를 할 때는 무덤을 살피러 가서 조상을 추모하면서 인사드리는 것이니 무덤을 3회 정도 돌아보면서 이상 유무를 살핀 후 다시 묘 앞으로 돌아와 재해하면 된다. 아무 제물 없이 성묘하는 것이 원칙이나 주과포를 올릴 수도 잇다.
 
 
 
기제사와 차례의 차이
 
기제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차례는 명절에만 지낸다.
기제는 밤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낸다.
기제는 그날 돌아가신 조상과 배우자만 지내고, 차례는 자기가 기제를 받드는 모든 조상에게 지낸다.
기제는 장손의 집에서 지내고 차례는 사당이나 묘지에서 지낸다. (물론 집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 
기제는 메와 갱을 올리나 차례는 설에 떡국을, 한가위에는 송편을 올린다.
기제는 적(炙)은 고기와 생선 및 닭을 따로 담지만 차례에서는 한 접시에 담아 미리 올린다.
기제는 술을 세 번 올리지만 차례는 한번만 올린다.
기제는 첨작을 하지만 차례는 하지 않는다.
기제는 합문과 개문을 하지만 차례는 하지 않는다.
기제는 숭늉을 올리지만 차례는 하지 않는다.
기제는 반드시 축문을 읽지만 차례는 읽지 않는다.
 
 
기제일 및 시간
기제(忌祭)란 사람이 죽은날, 즉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3년상을 치른 경우의 기일은 그 이후부터가 된다.
기제의 봉제사 대상은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4대, 즉 고조(高組)까지가 이상적 입니다.
제주(祭主)는 고인의 장자(長者)나 장손(長孫)이 되며,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에는 차자(次子)나 차손(次孫)이 대행한다.
현대에는 거의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으므로 지방(紙榜)으로 대신하거나 사진을 모시기도한다. 지방(紙榜)을 쓰고 돌아가신 분을 모실 준비가 되면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는 돌아가신 날 00시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형편에 따라서 돌아가신 당일 일몰 이후에 지내기도 한.

예문에는 별세한 날 자시에 행사한다고 되어있다. 자정(12시) 부터 인시(5시)까지 날이 새기 전 새벽에 기제를 올리는 것이 예이다. 신도는 음이라 하여 늦밤 중에 활동을 하여 닭소리가 나기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예문에 없는 미신적인 말이다.

 날이 바뀌는 첫 새벽 즉 궐명행사의 예문정신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제일 먼저 고인의 제사부터 올리는 정신을 강조한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와 생활여건에서 볼 때 한 밤중 제사는 가족들이 핵가족화 되어서 분산거주하여 참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음날 출근과 활동에는 지장이 많아진다.
그래서 근래의 가정의례준칙을 보면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이 시간이면 사업하는 분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분이나 공무원이나 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며 제관들이 모이기 좋은 시간이어서 도시에서는 저녁 7~8 경에 행사하는 집들도 많이 있다. 간혹 기제일을 잘못 알고 별세한 전일 저녁 7~8시경에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기제는 별세한 날에 지내는 제사이므로 별세한 전일에 지내는 것은 잘못이다.
또 축문에 보면 휘일부림(諱日復臨)이란 말이 있고, 이 뜻은 돌아가신날이 다시돌아오니라는 뜻이다.



 
1. 영신
먼저 대문을 열어 놓는다. 참례자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을 씻은 후 집안의 좋은 자리에 병풍을 두르고 그 앞에 제상을 차리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다.
가문에 따라서는 미리 제찬을 진설하지 않고 참신 뒤에 진찬이라 하여 제찬을 올리기도 한다. 사진을 내오거나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의 준비를 마친다. 고례에는 출주라 하여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오는 의식이 있었다.
제사의 순서는 지방마다 가문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성균관에서 행하는 절차를 따르면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유식, 합문, 계문, 진다, 사신, 철상, 음복 순이다.
가정의례준칙은 혼령모시기(분향, 뇌주, 일동 재배)잔 올리기(한번) 축문 읽기(일동 묵념) 물림절(일동 재배) 순으로 단순화 하였다.
 
2. 강신
조상의 영혼이 내려오심을 청하는 의식이다.
제주가 제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향로에 향을 피우고 재배한다. 향을 태워 하늘로 올리는 것은 천상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의 영령이 향기를 타고 내려오시라는 상징적 행위이다.
제주가 모사그릇 앞에 꿇어 앉아 잔반을 두 손으로 받쳐들면 집사가 잔에 술을 조금 따른다.
제주는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들어 모사 그릇에 꽂혀있는 풀묶음 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조금씩 세 번 나누어 붓는다.
3번 부은 것은 3헌을 뜻한다.
술잔을 잔대에 올려 집사에게 다시 건네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지하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상징적 행위이다.
 
3. 참신
참례자 모두가 오신 조상님을 뵈옵는 의식이다.
조상의 혼령을 모셨으면 마땅히 인사를 해야 한다. 모두가 동시에 두 번 절을 올린다.
여자는 4배가 원칙이나 남녀 모두 두 번 절하는 것이 좋겠다. 신주를 모실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하고 지방을 써놓고 할 때는 강신을 먼저 한다.
 조상님을 뵈었으면 이제는 진찬이라고 하여 식어서는 안되는 제수를 상에 올린다. 제주가 육, 어, 갱을 올리고 주부가 면, 편, 메를 올린다. 집사는 탕을 올린다.
 
4. 초헌
제주가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제주가 제상의 서쪽으로 가서 제상의 잔반을 두손으로 받들고 향안 앞에 서면 집사가 술을 가득 부어준다.
제주는 원 자리에 잔반을 올린다. 두 분을 모시면 아버님위에 먼저 올린다. 두 번째는 제상 동쪽으로 가서 잔반을 올린다. 제상에서는 서쪽이 아버님위의 위치이다.
잔반의 위치는 메 그릇과 갱 그릇 사이의 앞쪽이다.
집사는 제상 위의 잔반을 집어서 받든다. 제주와 집사가 꿇어 앉는다.
 
 제주는 잔반을 집사로부터 받으면 왼손으로 잔반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부은 다음 잔반에 올려 두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그것을 받아서 원 위치에 놓는다. 땅에 술을 붓는 것을 좨주라고 한다.
좨주의 원 뜻은 조물주께 감사드리는 의미이다. 어머님위 잔반도 같은 요령으로 한다.
제주는 일어나 집사의 도움을 받아 육적을 올린다.
집사는 반, 갱, 면의 뚜껑을 열고 탕의 덮개도 벗긴다. 제물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기도 한다. 집안에 따라서는 술을 올린 뒤 메 그릇의 뚜껑을 연다.
초헌이 끝나고 참례자가 모두 꿇어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축관이 옆에 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제주가 읽어도 되는데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모두 일어나되 제주만 두 번 절한다.
 과거에는 독축 때는 제주의 선창을 시작으로 하여 참례자 전체가 소리내어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하였으나 요즘에는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인을 추모한다.
집사는 퇴주그릇을 들고 잔반의 술을 비운 후 제 자리에 놓고 육적을 내려 놓는다.
 
5. 아헌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원래는 주부가 올린다.
주부가 올리면 집사도 여자가 한다. 주부가 올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주의 다음 가는 근친자가 올린다. 주인 혼자 제사를 지내면 주인 혼자서 세 번을 올린다.
아헌 절차는 초헌 때와 같으나 축을 읽지 않고 모사에 술을 따르지 않는다. 조물주께는 한번만 좨주하는 것이 마땅하다 보기 때문이다. 집사는 어적을 올린다. 주부는 네 번 절을 한다. 집사는 퇴주하고 어적을 내린다.
 
6. 종헌
세 번째 술을 올리는 의식이다. 종헌자는 참례자 중에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올린다. 아헌 때와 같이 하나, 술잔에 술을 7부쯤 따르고 계적(닭구이)을 올린다. 종헌관이 재배를 한 뒤에도 술과 적접시는 그대로 둔다.
 
7. 유식
조상에게 더 많이 잡수시기를 권유하는 의식이다.
 제주는 술주전자를 들고 나아가 술잔에다 3번에 걸쳐 아버님위 어머님위 순으로 술을 가득차게 붓는다.
주부는 제상의 서쪽으로 가서 메 뚜껑을 열고 숟가락 안쪽이 동쪽으로 향하게 메그릇에 꽂고 젓가락을 가지런하게 한 뒤 시접 위의 손잡이가 서쪽이 되게 걸친다. 젓가락을 두 세 번 들어 진설 접시 위에 옮겨 놓기도 한다. 제주와 주부는 동시에 절하고 물러난다.
 
8. 합문
조상이 마음놓고 식사를 하시라고 참례자 모두 잠시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의식을 말한다.
축관이 제일 나중에 나가면서 문을 닫는다. 나갈 방이 없을 경우에는 커텐이나 병?으로 가려도 좋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제 자리에 엎드려 7,8분 가량 있다가 일어난다.
조상이 아홉 숟가락을 뜨는 시간이 약 7,8분이기 때문이다. 식사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밖에서 공손히 서 있는다.
 
9. 계문
닫았던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절차다. 축관이 인기척을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주 이하 모든 참례자가 뒤따라 들어와 제 위치에 선다.
혼령이 놀라지 않게 인기척을 하는 것이다.
 
10. 진다
식사 후 숭늉을 올리는 의식이다.
주인이 집사와 함께 갱을 내리면 주부는 갱 자리에 숭늉을 올린 뒤 메진지에 꽂혀 있는 수저를 빼서 숭늉 그릇에 내려놓고 제자리로 와서 선다.
잠시 기다린 후에 주인과 집사가 나아가 수저와 젓가락을 거두어 시저에 내려놓고 메진지 뚜껑을 덮고 제 자리에 선다.
 
11. 사신
고인과 작별하는 의식이다. 참례자 모두 두 번 절한 뒤 지방과 축문을 불 때운다.
재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묻거나 쓸어서 정리한다.
신주일 때는 사당으로 모신다. 사진이라면 잘 간수한다.
 
12. 철상
제사상의 음식을 모두 거두는 의식이다. 제수를 집사가 신위 앞쪽부터 차례로 거둔다.
 
13. 음복
참례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의식이다.
음복도 제사의 순서이므로 함부로 옷을 벗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제주가 제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을 동(東), 왼쪽을 서(西)라 하고, 제사상 앞은 남(南), 지방 붙이는 쪽을 북(北)으로 삼습니다. 상을 놓는 순서는 맨 앞줄에 과일, 둘째 줄에 포와 나물, 셋째 줄에 탕(湯), 넷째 줄에 적과 전, 다섯째 줄에 메(밥)와 갱(국)입니다.
전통예절에서의 동서남북은 웃어른이 계신 곳을 상석으로 보고 북쪽으로 친다. 혼례에서는 주례가 서있는 곳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게신 곳이, 직장에서는 상사의 자리가, 행사장에는 단상이, 제사에서는 신위를 모신 곳이, 건물이나 사당, 묘지는 실제 방위와 상관없이 북쪽에서 남향한 것으로 간주한다.
웃어른의 위치가 북쪽이므로 어른의 위치에서 보아 그 왼쪽을 동쪽, 오른쪽을 서쪽, 그 앞을 남쪽으로 보았다. 실제 방위에 관계없이 어르신이 앉는 자리가 북쪽이고 남향해 있는 것으로 친 것이다. 그리고 동쪽은 해뜨는 곳이므로 음양으로 따지면 양이어서 남자의 방위이고, 서쪽은 해지는 곳이므로 음이어서 여자의 방위가 된다.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이란 의미로 남동여서(男東女西)이다. 그러나 어른의 위치에서 볼 때 남자의 방위는 동쪽인 왼쪽에 있고, 여자의 방위는 서쪽인 오른쪽에 있어서 남좌여우(男左女右)가 되는 것이다. 두 손을 마주잡는 공수를 할 때도 이 원리로 하기 때문에 남자는 동쪽이며 양을 상징하는 왼손을 위로 올리고, 여자는 서쪽이며 음을 상징하는 오른손을 위로 올린다.
남좌여우, 남동여서이기 때문에 어른과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북쪽에 어른이, 서쪽에 여자가, 동쪽에 남자가 앉는다. 혼례 때는 주례가 북쪽에서 남향해 서면 신랑은 동쪽에서 북향해 서고 신부는 동쪽에서 북향해 선다. 제례를 올릴 때도 북쪽의 신위를 향해 동쪽에는 남자 자손이, 서쪽에는 여자 자손이 선다. 제상 가까운 곳부터 항렬이 높은 사람 순으로 선다. 일렬로 자리 배치를 할 때는, 동쪽은 해다 뜨고 밝은 곳이어서 동쪽이 상석이다. 단상의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로 좌석을 배치할 때는 중앙이 1순위자가 앉는 상석이 되고, 2순위자는 1순위자의 서쪽에 자리배치를 한다. 짝수일 때는 동쪽을 상석으로 하여 일렬로 배치하면 된다.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는 높은 곳이 상석이다. 그러므로 행사를 할 때는 단상을 만들어 어른을 높은 곳에 모신다. 앞쪽과 뒤쪽은 앞쪽이 상석이다. 어른의 앞에 가리는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곳이, 안전한 곳이, 상석과 가까운 곳이, 전망이 좋은 곳이, 들락날락하는 문과 먼 곳이,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 여름에는 시원한 곳이, 어른이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상석이다.
어른을 안내할거나 수행할 때는 어른의 3보 앞이나 3보 뒤에서 인도하거나 수행한다. 수행자나 인도자는 어른의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 여럿이 수행할 때는 좌우로 서서 수행한다. 제1수행자가 오른쪽에, 제2수행자가 왼쪽에 서야 한다.
국기 게양할 때도 마찬가지의 방위를 적용하면 된다. 우리나라 국기를 상석에 놓는데, 기타 다른 나라의 국기는 나라에 상하가 있을 수 없으므로 알파벳 순으로 게양한다. 그러나 국제연합기와 함께 게양할 때는 국제 연합기가 우리나라 국기보다 우선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주인이 서향립(西向立)해야 한다. 주인의 자리는 동쪽이고 손님의 위치는 서쪽이다. 이때 주인은 동쪽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서향립이다. 손님은 서쪽에 서서 동향을 바라본다. 전통예법은 동쪽 계단은 주인이 사용하고, 서쪽 계단은 손님이 사용한다.
이상의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예법에 해당한다. 생사유별, 즉 산 자오 죽은 자와는 다름이 있다. 죽은 사람은 어두운 세상인 음부로 갔으니까 이제는 서쪽이 상석이 된다. 그러므로 두 분 신주를 모실 때나 시신을 안장할 때에는 서쪽을 상석으로 해서 웃어른을 모신다. 또 합설할 때 서쪽에 남자 신위를, 동쪽에 여자 신위를 모신다. 저승에서는 남녀의 방위가 바뀌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대 조상 신위를 모실 때도 서쪽부터 고조, 증조, 그 다음에 조부 신위, 아버님 신위를 차례로 모신다. 그러나 웃대 시조를 중앙에 모시고 아랫대 조상을 좌우로 모실 때는 시조를 중앙 북쪽에 모시고 그 앞에 제상을 차리고, 그 동쪽에 고조 신위와 제상을, 그 서쪽에 증조 신위와 제상을 차리고, 중앙과 떨어진 동쪽에 조부 신위와 제상을, 중앙과 떨어진 서쪽에 부친 신위와 제상을 차리면 된다. 고조를 시조의 동쪽에 모셔야만이 시조가 상석이 되고 또 좌우로 채워졌으므로 중앙이 상석이 된다. 살아있는 자손들은 동쪽에 남자 자손들이, 서쪽에 여자 자손들이, 연장자는 앞쪽에, 연하자는 뒤쪽에 서면 된다. 같은 항렬이라도 가운데 절하는 자리 가까운 곳에 서열이 높은 사람이 서고, 먼 곳에는 낮은 사람이 선다.
 
차례는 조상숭배 의례의 한 종류로 시제, 묘제, 기제와 달리 약식 제사다. 차례는 다른 제사와 달리 아침에 지내 촛불을 켜지 않고 축문이 없다. 술도 한 번만 올린다. 약식제사이기 때문이다. 
제사나 차례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어동육서(魚東肉西) 등 제사상 차림을 표현한 말이다. 많이 듣기는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는 상차림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차례상은 5열로 진설한다. 제일 앞줄에는 과일을, 둘째줄은 나물과 채소를, 셋째줄에는 전과 적을, 넷째줄에는 탕, 다섯째 줄에는 메(밥), 갱(국) 등이 올려진다. 각 열은 조상이 먹던 음식을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다. 즉 앞의 과일은 수렵-채집 시대에 먹던 음식을 의미한다. 제수상차림은 일반적으로 우주와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과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을 따른다. 음양오행설이 과학적이 아니라는 이론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차례상에도 그들이 생각한 일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차례상에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하는 식으로 방위를 맞추려 한 것이다. 땅에 뿌리를 둔 음식은 음(陰)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그 종류의 수를 짝수로 맞추려 했고 그 외의 음식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라 해서 양(陽)의 수인 홀수로 맞췄다.

차례나 제사 때 향을 피우는 것은 부정을 깨끗이 하는 정화 기능과 신성을 상징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인간 삶의 더러움을 털어내고 조상신이 와서 앉을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신화를 보면 용궁에 다녀온 수로부인의 몸에서 향내가 났다는 기록이 있다. 신선계를 그린 그림에는 향연이 자욱한 것을 볼 수도 있다. 향이 신계(神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향은 신과 인간의 교통매개체이기도 하다.
술잔을 올릴 때는 모사 그릇에 술을 나누어 붓는다. 모사 그릇에는 모래가 담겨 있는데 이는 땅을 상징한다. 땅 속에 있는 조상을 부르는 의식인 셈이다. 이 의식은 향을 사르며 하늘에 있는 조상을 부르는 행위와 대응된다.

첫째 줄의 과일을 놓을 때는 동조서율(東棗西栗), 조율이시(棗栗梨枾) 순이다. 동조서율의 의미는 〈가례집람〉에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원리로 설명돼 있다. 대추의 붉은 색은 해를 상징해 동쪽에 두고 밤은 한자에서 보듯 서쪽에 심은 나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서쪽에 놓는다는 것이다. 조율이시는 대추는 동쪽에 밤은 서쪽에, 대추-밤-배-감의 순으로 놓는다는 것이다. 밀양박씨 문중에서는 이를 대추는 씨가 하나니 왕을 뜻하고 밤은 한 아람에 세 톨이니 3정승을, 배는 씨가 6개니 6판서를, 감은 씨가 8개이니 팔방백 즉 팔도관찰사를 뜻한다. 하지만 문중에 따라서는 '조율시이'로 대추, 밤, 감, 배의 순으로 놓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율시이 순서로 놓는 집안이 더 많다고 한다. 

과일의 종류는 원래 짝수로 맞추도록 돼 있다. 이는 땅에 뿌리를 둔 지산(地産) 즉 음산(陰産)이기 때문에 음수인 짝수로 놓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이후로는 홀수로 놓는다. 이유는 명확지 않다. 과일 숫자는 귀함을 뜻하는 양(陽)의 수인 홀수로 놓는다. 이때 과일의 위아래를 깎아 놓는데 잘 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조상이 드실 수 있도록 정성으로 다듬는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 줄은 삼색나물과 식혜, 김치, 포 등이 올라간다. 삼색 나물은 역시 귀함을 뜻하는 양의 수인 홀수로 놓는다. 김치도 희게 담근 나박김치만 올리는데 이는 깨끗하고 순수한 음식만을 올리는 것이 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는 양념이 발달하기 전부터 굳어진 상차림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셋째 줄에는 전과 적을 놓는다. 생선 중에 장어는 올릴 수 없다. 이유는 장어가 용을 상징해 왕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머리와 꼬리가 분명한 제수는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는 두동미서(頭東尾西)에 따른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동쪽은 남쪽과 더불어 양의 방향이다. 동쪽은 해가 솟듯 소생과 부흥을 뜻하고, 암흑과 소멸을 상징하는 꼬리는 서쪽을 향하도록 했다.

넷째 줄은 탕의 자리다. 어탕-육탕-계탕. 이렇게 3가지를 올린다. 땅에 뿌리를 박지 않은 고기나 생선은 하늘에서 얻어진 천산(天産)이기 때문에 양의 숫자인 홀수로 놓는다. 탕에 건더기만 떠서 놓는 것은 조상이 먹기 편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다섯째 줄에는 메(밥)와 갱(국)을 신의 수대로 놓는다. 그런데 평상시 밥과 국 놓는 위치와 정반대다. 즉 밥이 서쪽, 국이 동쪽이다. 이를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 한다. 이는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다름을 의미한다. 추석에는 메와 갱 대신 송편을 올린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떡이다. 곡식으로 만든 가장 정결한 먹을거리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특히 송편은 둥근 달과 알곡을 의미한다.

 
제사를 지내는 날자와 시각
 
기일제의 제삿날은 조상이 돌아가신 당일이다.
제사는 이날 첫새벽[질명(質明):바야흐로 날이 새려는 시각] 닭이 울기 전에 행하는데, 보통 밤 0시가 지나 새날이 시작되면 행한다.
 조선시대의 모든 왕실 제사는 축시(丑時)1각(刻)에 시작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1시 15분에 해당한다.
 제사를 한밤중에 행하는 것은 귀신이 음도를 따르므로 고요하고 그윽한 시간에 거동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며 또 제사를 그 날의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것에 우선해서 행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 전날은 입제일(入祭日)이라 하여 제사에 들어가는 날로 제구와 제기를 정비하고 제찬을 준비하는 날이다. 제사를 지낸 당일은 파제일(罷祭日)이라고도 부르는데, 흔히 친지와 이웃을 초대하여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가정의례준칙」에는 제사를 사망한 날 해진 뒤에 지내도록 하였으나 이는 잘못이다. 제사를 사망 당일 첫새벽 그윽한 시간에 지내는 것은 그 날이 되자마자 맨 먼저 신을 영접하여 제향하려는 뜻이며, 동시에 날이 밝아 세상이 혼탁해지기 전에 신을 불러 정성을 바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가 다 지난 초저녁에 제사를 지낸다면, 이는 산사람들이 종일 온갖 볼일을 다보고 하루세끼를 다 먹은 후에 귀신을 맨 나중에 대접하는 격이니 성실한 도리가 아니다.
 게다가 초저녁은 시끄럽고 번잡해서 귀신을 영접할 시간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의 정신도 혼탁하고 피로한 때이므로 생각을 경건하게 통일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공경과 정성을 제일로 여기는 제사를 어떻게 이러한 시간에 거행할 수 있겠는가? 어떤 집에서는 하루 전날 즉 입제일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제사의 날짜가 아니다.
입제일이란 제사를 준비하는 날이지 제사를 거행하는 날은 아닌 것이다.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게 된 데는 옛날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제사에 참여한 친지들이 각자가 집으로 귀가하기 편하게 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산사람이 편하자고 귀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굶길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통행금지도 없어졌으니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는 잘못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사는 모름지기 주위가 고요한 한밤중에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야 그 신성함을 느낄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는 잘 지내지 않는 제사들, 즉 매년 일정한 계절에 행하는 합동 제사인 사시제(四時祭)는 일정한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제사지내기 전달 하순에 점을 쳐서 택일을 한다.
 점은 사당에서 행하는데 두 개의 윷짝과 같은 점괘를 던져 두 개가 각기 다른 면이 나오는 것을 길하게 여긴다.
먼저 상순 중에 하루를 잡아 점을 치고, 불길하면 다시 점을 치지 않고 하순 가운데서 적당한 날을 잡는다.
이러한 제사들도 그 시각은 역시 첫새벽이 된다.
명절의 차례는 속절제(俗節祭) 혹은 절사(節祀)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사당을 모시고 있던 집에서 설(음력 정월 1일), 청명, 한식, 단오(음력 5월 5일), 칠석(음력 7월 7일), 추석(음력 8월 15일), 중양(음력 9월 9일)에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올리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설과 추석의 차례만 남게 되었다.
차례는 정식 제사가 아니라 인정에서 우러나서 올리는 약식 의례이므로 그 시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나 보통은 이른 아침에 행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날에는 제사를 묘소에서 행하는 집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묘소까지의 거리나 여러 가지 준비를 감안하여 적당한 시각에 행하는 것도 무방하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제수(祭需)라 하고 제수를 제상 위에 놓는 것을 진설(陳設)이라고 한다. 한분을 모시면 단설, 두 분을 함께 모시면 합설이라고 한다. 합설 때는 메(밥) 잔, 갱(국), 수저만 두 개씩 차린다. 제수에는 향신료나 진한 양념인 고춧가루와 마늘 파를 쓰지 않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 제수를 장만할 때에는 정성을 다한다. 준비된 음식을 자손이 먼저 먹으면 안 된다. 덜어놓고 먹어야 한다. 밤은 껍질을 벗긴다. 과일은 괴기 좋게 위  아래를 도려내고 꼭지부위가 위로 가게 한다. 고인이 특별히 싫어했던 음식이나 복숭아, 잉어, 치자 생선(갈치, 꽁치, 넙치)은 놓지 않는다.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제수 음식은 조상들에게 올리는 음식이므로 명칭도 다르게 한다. 
메(반)  밥. 밥을 수북히 담고 뚜껑을 덮는다.
 국
 국수. 건더기만 담고 뚜껑을 덮는다. 계란 흰자로 지단을 부쳐 장식한다.
 떡. 정사각형의 접시 위에 담는다. 고물은 껍질을 벗겨 흰 빛깔이 되게 한다.
편청  꿀이나 조청을 작은 그릇에 담는다.
 부침개. 육전과 어전 두 가지를 부친다.
김치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물김치
숙채  익힌 나물.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배추나물 등 세 가지를 올린다.
초첩  식초 종지
청장  간장. 종지에 담는다.
 식혜 건더기를 둥근 접시에 담고 잣을 박는다. 기제사에는 올리지 않는다.
 북어포, 건대구, 건문어, 건전복, 육포 등의 말린 것
제주  술. 맑은 술을 사용한다. 청주
숙수  숭늉. 물에 밥알을 약간 풀어 넣는다.
 홀수로 준비한다. 재료를 끓여 건더기만 담고 뚜껑을 덮는다.
      소고기로 끓인 육탕, 채소나 두부로 끊인 소탕, 생선을 재료로 쓴 어탕이 3탕이다.
 구이. 3적 즉 3가지를 준비한다.
      육적(소고기구이), 소적(두부구이), 어적(조기구이), 계적(닭구이)
과실  나무에 달린 생과일과 곡식으로 만든 과자를 말한다. 전체의 접시수를 짝수로 한다.
          생과일로는 대추, 밤, 배, 감(곶감), 사과가 있고,
          유과류로는 약과, 산자(흰색), 강정(검은 깨, 땅콩) 등이 있다.


제례에는 축문을 읽는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나타내고 넋이라도 오셔서 준비한 제수를 드시라고 권하는 내용이 축문에 담겨 있다. 축문은 가로 36센티 세로 24센티의 백지에 붓글씨로 쓴다. 전통식 축문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난해하므로 한글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요사이 축문 읽는 의식을 생략하는 집안도 많으나 축문을 읽음으로써 후손들이 제사의 의미도 깨우치게 되고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도 애틋해진다고 하겠다.
백지에 정성스레 쓴 축문은 축판 위에 얹어서 향안 서쪽 위에 둔다. 그러나 붓글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컴퓨터의 한글 궁서체를 출력해서 쓰는 방법도 잇다. 
◆ 부모(조부모) 기제사 축문
×년×월×일
아버님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 신위 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버님 어머님(또는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별세하시던 날을 다시 당하오니 사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어
흠향하소서

◆ 남편(아내) 기제사 축문
×년×월×일
남편(아내) ○○○는 당신의 신위 앞에 고합니다.
당신이 별세하던 날을 당하니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
흠향하소서

◆ 추석 묘제 축문
이제
2003년 한가위 날에 큰아들 철학박사 ○○는
아버님과 어머님 산소 앞에 감히 고합니다. 계절이 바뀌어 이미 찬이슬이 내렸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삼가 맑은 술과 갖은 음식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리오니 어여삐 여기사
흠향하시옵소서

◆ 묘제 축문
아뢰옵건대
오늘은 2003년 음력 ×월×일입니다.
큰아들 ○○는 감히 아버님의 무덤에 소상히 아뢰옵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봄이 돌아왔습니다.
무덤을 우러러 어루만져보고 쓸고 다듬어본들
하늘보다 더 높고 넓은 끝없는 은혜 그 어디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술과 음식을 만들어 해마다 정성껏 받들어 드리오니 두루
흠향하시옵소서

◆ 친진묘제
아뢰옵건대
오늘이 2003년 음력 ×월×일입니다.
○○대손 문학박사 ○○(초헌관 이름)가 감히 아뢰옵니다.
시조할아버님 할머님.
이제 풀과 나무의 기운이 줄기에서 뿌리로 내려가는 시기입니다.
이렇듯 풀과 나무도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알리는데 에절인들 어찌 조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봉분을 우러러 바라보니 문득 추모하는 마음 이길수 없어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으로 정성껏 받들어 제사드리오니 두루
흠향하시옵소서

◆ 세일사 축문
이제
2003년 시월 초하루날에 ○○대손 문학박사 ○○(초헌관 이름)는
○대조 할아버님과○대조 할머님 산소에 감히 밝혀 아뢰옵니다.
비록 세대는 머나 끼치신 은덕은 더욱 새롭사옵니다.
삼가 해마다 한 번 제사드리는 것은 예절에는 중용의 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리와 이슬을 밟으니 문득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으로 정성껏 받들어 올리오니 두루
흠향하시옵소서
 
 
☆ 한글 축문의 예
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아버님 어머님, 해가 바뀌어서
아버님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과 하늘같이 크고
넓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전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한문 축문의 예(부친제사)  초록색 부분은  고쳐 쓰도록 한다
 
*축문은 神 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에는 한문의 뜻을 풀이하여 알기쉽게 한글로 쓰기도 합니다.  
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씁니다.
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습니다.  學生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씁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쓰지 않습니다.
 
 
☆ 축문 쓸때 알아두어야 할 점
 
  ◑
維(유) ; 이어서 내려오다.

  ◑ 歲次(세차) ; 해의 차례.

  ◑ 干支(간지) ; 간지는 천간지지 육십갑자의 그해의 태세를 쓴 것이며 그 예로 금년이 丁丑 (정축)년이면
                        丁丑 (정축)이라고 씁니다.

  ◑ 某月(모월) ; 제사날을 따라 쓰며 제사달이 정월이면 正月 8월이면 八月(팔월)이라 씁니다.

  ◑ 干支朔(간지삭) ; 제사달의 초하루라는 뜻으로 제사달 초하루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초하루 일진이 丁亥 (정해)이면 丁亥朔 (정해삭)이라 씁니다.
  ◑ 某日(모일) ; 제사날을 쓴것이며 제사날이 15일이면 그대로 十五日(십오일)로 씁니다.
  ◑ 干支(간지) ; 그 제사날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15일이 제사날이고, 15일의 일진이 甲子(갑자)이면
                         甲子(갑자)라고 씁니다.
  ◑ 敢昭告于(감소고우) ; 삼가 밝게 고한다는 뜻으로 妻喪 (처상)에는 敢(감)자를 버리고 昭告于(소고우)만 쓰며,
                          아우 이하는 다만 告于(고우)만 씁니다.
  ◑ 예제 축문은 양친이 별세한 경우 부친 제사의 축문이며, 모친제사의 경우에는,
                         청색 글의 顯考(현고)를  顯비(현비,비:죽은어미비字)로 고쳐 씁니다.
  ◑ 부부중 한쪽이 살아 계신 때에는 顯考學生府君 (현고학생부군) 혹은 顯비孺人ooo氏 (현비유인ooo씨)중
                         한쪽을 쓰지 않습니다.
  ◑ 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현고)를  顯祖考(현조고),  顯비(현비)를 顯祖비(현조비)로 고쳐씁니다.
  ◑ 증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현고)를 顯曾祖考(현증조고),  顯비 (현비)를 顯曾祖비(현증조비)로 고쳐 씁니다.

  ◑ 고조부모 제사의 경우 顯考(현고)를 顯高祖考(현고조고),  顯비(현비)를 顯高祖비(현고조비)로 고쳐 씁니다.
  ◑ 孝子이름은 겸양의 표현으로 조금 작게 씁니다

 
    고사이야기


민간신앙에 뿌리박고 발전해 온 고사의 유래는 아직까지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고래의 "상달고사"라는 의례가 현재의 고사제/기원제의 원형으로 추측된다.
상달 고사란 음력 10월에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 세시풍속 상에서는 고사라는 말 이외에도 안택(安宅)이라는 말이 고사와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고사는 주로 상달고사를 말하며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강하고, 안택 은 주로 정월에 행해지며 연초의 액막이 및 행운 기원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 혹은 안택이라는 이름은 중부를 포함한 중부 이북지방에 분포되어 있고, 영호남 지방에서는 도신(禱神) 또는 도신제라 부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고시레·고사·굿'을 같은 어원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그 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의례를 '고시레' 라 하고, '고사'는 굿의 규모는 아닌 중간 정도의 의례를 말하며, 장구를 울리고 무악(巫樂)을 갖추어 춤을 추는 등 규모가 가장 큰 의례를 '굿'이라고 하였다.
상달고사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는 바가 없으며 다만 옛 기록을 통하여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최남선은《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상달" 은 10월을 말하며, 이 시기는 일 년 내 농사가 마무리되고 신곡신과(新穀新果)를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이다. 따라서 10월은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게 되는 달로서 열두달 가운데 으뜸 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달에는 예로부터 무수한 종교적 행사가 전승되어 왔다. 고대에는 고구려의 동맹(東 盟),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추수감사의 의미를 내포하는 제천의식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팔관회(八關會)가 그 맥을 이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고사 혹은 안택으로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볼 때 상달고사의 유래는 고대 국가 행사인 제천의식에서 민간신앙이 합쳐 저서 가정의례로 변모하여 전승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고사음식의 특징은 청주대신 막걸리와 팥 시루떡, 돼지머리와 북어, 실 타래, 소금 등이 일반적인 약식 고사음식의 특징이고 제사음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그 예법은 흡사하여 우리의 전통 문화의 하나로 지금도 상당히 치르는 곳이 많으며 주로 안녕과 번영을 위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술은 穀酒(곡주)로서 즉 쌀로 만든 막걸리를 사용한다. 술은 원래 神들의 음료로서 즐겨 먹던 것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인간들이 마신다고 한다.
돼지머리   땅에 사는 짐승 중 돼지는 다산 다복을 의미하므로 고사에 돼지머리를 사용하며 귀를 세우고 이마나 얼굴에 상처나 흉터가 없어야 좋은 돼지머리 이다.
  고사에는 일반적으로 팥 시루떡이 사용되나, 다만 산신제용으로는 백설기가 사용된다.
      고사를 마칠 때까지 칼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떡을 썰지 않는다.
과일  가능한 한 햇과일이나 새로 나온 과일을 사용하며 형편에 따라 성의껏 준비한다. 씨 없는 과일은 준비하지 않는다. 陰陽五行에서 陽을 대표하는 대추, 陰을 대표하는 밤, 감(곶감), 배, 사과 등은 깨끗이 씻어서 홀수로 놓는다. 이 때 과일의 종류도 홀수여야 하며 각 과일의 개수도 홀수여야 한다.
 포는 북어로 하되 통 북어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 문어 포를 쓰던지 생 문어를 간혹 사용하기도 한다.
 이 때는 말린 것이나 생 문어 또는 다리만 준비해도 된다.
 전은 과거에는 고사장소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는데, 요즘은 미리 적당량을 준비하면 된다. 동태전, 육원전, 고기산적, 꼬치전, 두부적 등 일반적으로 제사상에 오르는 전을 사용한다.
나물  나물은 三色으로 하되 시금치,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등을 준비한다.
생선  조기를 놓는다. 조기는 서쪽에 놓는다.
정화수  물은 정화수로(한 그릇) 사용할 것.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 있음.
 쌀은 될 수 있으면 햅쌀로 하는 것이 좋고 한 그릇을 준비한다.
북어와 실 타래  실은 굵은 실 타래로 준비하며 이는 길게 뻗어 나간다는 영속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북어는 실 타래로 감아서(묶지 말고) 시루떡 중앙에 꼬리부분이 약간 묻히게 하고 머리는  북쪽 으로 눕게 한다.
 





축(祝: 사회자)이 고사의 시작을 선언한다.
1. 강 신  초헌관 (회사의 대표나 고사의 주인)이 1.향을 피운다 2.술잔을 올린다
2. 독 축  행사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축문을 낭독한다.
3.  초헌관은 신위 앞에 두 번 절한다.
4.  고전(돼지머리에 돈 꽂음)을 한다.
5. 아 현  기타 참가자나 임원들도 같은 순서로 한다.(단 술잔만 올리거나 향만 피워올려도 무방함)
6. 종 헌  사회자나 마지막 참가자가 술잔을 올리고 고사의 종료를 알린다.
7. 사 신  모든 참가자들이 다같이 두 번 절한다.
8. 철 상  소지종이를 사르고 음복 후 철상 한다.
 
축(祝: 사회자)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호령하면서 전례를 진행한다.
개회 선언  축이 고사의 시작을 선언한다.
1. 강 신  초헌 관이 신위 앞에서 두 번 절하고 꿇어 앉아 향을 피우면, 집사가 초헌 관에게 잔을 건네주고 술을 따른다. 그 술잔을 향로 연기에 한번 돌리고 모사 그릇이나 땅에 붓고 일어나 두 번 절한다.
2. 참 신  고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축의 구령에 따라 두 번 절한다.
3. 초 헌  초헌 관이 신위 앞에 두 번 절하고 집사에 도움을 받아 첫 잔을 올리고 꿇어앉아축문 읽기를 기다린다.
4. 독 축  독축관이 초헌 관의 오른편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초헌 관이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5. 아 헌  아헌관이 두 번 절하고 집사의 도움을 받아 술잔을 올리고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6. 삼 헌  삼헌관이 아헌과 같이 술잔을 올린다.
7. 첨 작  집사가 신위의 잔에 첨작하고 두 번 절한다. 이후 모든 사람이 꿇어앉아 신의 흠 향을 기다린다.(9식경 동안)
8. 헌 다  차(혹은 정화수)를 올린다.
9. 사 신  모든 참가자들이 축의 구령에 따라 두 번 절한다.
10. 음 복  집사가 초헌관에게 술잔과 안주를 조금 드려서 대표로 음복하게 한다.
폐회 선언  축이 고사의 폐회를 선언한다.
이 후 새해의 시무식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국민의례와 기관장 신년사, 내빈 축사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고사의 축문은 고사를 받드는 이가 고사를 받는 신에게 고사의 연유와 지난감회 앞으로의 염원 그리고 액운을 막고 건강과 번영을 비는 마음으로 간략하나마 마련한 제수를 흠향 하시라고 권하는 글이다. 고사축문의 내용은 그 고사를 지내게 된 연유를 "언제"-"누가"-"누구에게"-"무슨 일로"-"무엇을" 의 형식으로 고하고 고사를 받으시라는 줄거리로 이루어진다.
일반 제사가 아닌 여러 제를 올릴 때 쓰는 축문들을 소개합니다. 다음 축문들은 '제문,축문,고유문(여영택 著)'이라는 서적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개통축
어허
굽어 살피소서 천지 신명이시여
○○의 대표(○○○장관)은 ○○선 ○○도로(철로) 개통에 즈음하여
삼사 잔을 올리오니 만인이 안전쾌적 유익하게 이용되도록 한결같이 보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제막축
어허
굽어 살피소서 천지 신명이시여
여기 ○○○ 시비를 건립 제막하고자
건립 대표 ○○○는 잔을 올리오니 이 시비를 오래오래 보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해신제(진수식,풍어제) 축
어허
굽어 살피소서 영특하신 해신이시여
연락선(어선) ○○호의 선주 ○○○는 진수(운항,출어)함에 있어
온 정성 모아 잔을 올리오니 안전 번영(풍어)을 한결같이 보살펴 주소서
(여러번 되풀이 할 수도 있다.)
공원 一九九○년 ○○월 ○○일

안전고유문
어허
굽어 살피소서 천지 신명이시여
주식회사 대표 ○○○는 중장비 ○○○를 운용하고자
잔을 올리오니 안전과 번영을 한결같이 보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집들이 고유문
어허
굽어 살피소서 천지 신명이시여
○○○ 한 가족은 여기를 보금자리로 삼고자
잔을 올리오니 안전 건강 쾌적 다복을 두루 보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준공 고유문
어허
굽어 살피소서
건축주 ○○○는 ○○빌딩을 준공하매
잔을 올리오니 안전 번영 쾌적을 한결같이 보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기공 고유문
어허
굽어 살피소서 천지 신명이시여
주식회사 대표 ○○○는 여기 ○○공사를 기공하고자
잔을 올리오니 안전과 성취를 두루 살펴 주소서
공원 一九九○년 ○○월 ○○일

동물위령제 축문
어허
굽어 살피소서
연구를 위하여 희생 당한 뭇짐승 혼령들이여 ○○의과 ○○대학 ○○○는 삼가 잔을 올리나니
저승에서 한결 안령할지며 이승에서 인류를 비롯 만물이 공존 안녕 번영하도록 더한층 돌볼지어다.
공원 一九九○년 ○○월 ○○일

분묘산불고유문
굽어 살피소서
○○대조 ○자 ○자 할아버지 ○○대조모 ○○○씨 할머니
○○손 ○○는 무덤을 잘 지키지 못하여 산에 불이 나 놀라시게 하와 삼가 잔을 올리며 용서를 비나이다.
공원 一九九○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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