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사자석탑과 공양상
한국 고대의 건축 미술 작품 중에서 한국의 석탑처럼 그 다양한 창의성과 공간 조형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다시금 재평가받는 건조물은 없다. 이러한 석탑의 조형(祖形)은 물론 백제시대 익산 미륵사탑이나 부여 정림사 같은 데에서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비롯된 석탑 양식을 대성, 세련시켜서 사각 3층으로 된 한국 석탑 양식의 정형을 이룩한 것은 8세기 무렵에 통일신라 시대였다.
이러한 석탑들은 본래 중국에서 받아들인 목조 고층건물을 석재로 바꾸어 세우게 된 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백제나 통일신라의 초기의 석탑들이 대개는 규모가 클 뿐더러 목조 건축물의 구조 부분이나 깊은 추녀의 특색을 나타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 양식이 정형화될 무렵부터는 두 층으로 이루어진 기단의 양식과 각 층 크기의 비례를 비롯해서 균제미나 체감률의 적정함이 이를 데 없이 아름답게 세련되었다. 특히, 석탑의 크기는 주위의 산천과 법당의 크기에 알맞게 조화되도록 그 규모에 자연스러운 제약이 생겼으며, 또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진 건조물이 아니라 정밀한 비례 계산과 역학적인 설계에 따라서 세워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 석탑들을 정밀하게 실측해보면 미학상으로나 건축 구조학상으로나 당초부터 너무나 빈틈없는 세련된 설계였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구례 화암사 뒤 언덕에 서 있는 3층 사자석탑의 예를 들어 보더라도,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3층석탑 양식을 기본으로 했으면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자주 양식을 곁들인 탑으로 기교나 창의 면에서 매우 높이 평가해야 할 한국미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두 층으로 된 탑기단의 하층 기단에 해당하는 사면에는 각기 세 분씩 열두 천인상이 양각되어 있어서 제각기 주악과 비천하는 아름다운 해화미를 나타냈으며, 상층 기단에 해당하는 부분은 네 마리에 앉은 사자가 삼층탑을 네 귀에서 기둥처럼 떠받치고 있는 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자주의 중앙부에는 합장하고 서 있는 한 사람의 승상(僧像) 조각이 서 있는데, 이 승상은 발 밑과 머리 위에 장식 조각된 연화좌로 탑의 상하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절에 전해 내려온 전설에 따르면 이 승상은 신라시대 고승 자장법사의 모습이라고도 하지만 이것을 밝힐 도리는 없으며, 이 탑 앞에 놓인 배석과 그 앞에 서 있는 삼발 석등 아래 한 무릎을 세우고 정좌해서 합장 공양하고 있는 보살형의 모습은 어쩌면 신라 불교미술인들에게 비치는 경건한 찬양의 자세라고 나는 느끼고 싶은 것이다. 산자수명한 지리산 송림은 푸르고, 탑이 서 있는 나지막한 이 언덕은 이 탑이 세워짐으로써 아름다움의 생명력이 샘솟는 곳이 됐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신기스러운 일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에 잠기고 싶은 심정의 세계이다.
사자석탑 앞에 정면해서 세워진 공양상은 팔각석등을 떠받치고 있는 세 기둥 사이에 한 무릎을 세우고 연화좌 위에 정좌한 경건한 자태는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노송의 검푸른 줄기와 함께 부처님에의 간절하고도 영원한 숭앙을 찬가하는 아름다운 한국미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자연과 그 속에 점지된 조형작품의 신기한 해화가 빚어 준 아름다운 한국적 분위기의 한 토막으로 다른 풍토와 인물 속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고요와 청순의 아름다움이 지리산 깊은 산 속에 맥맥히 넘쳐 흐른다는 느낌이다. 이슬 머금은 아침 햇살을 받고 영상지어진 이 탑 앞에 묵묵히 서서 법당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한 순간과 이 한 토막의 아름다운 정경이 모든 사람의 망막속에 아름답게 점지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금할 수가 없다. 이른 봄날 아침 이 공양상 앞에 걸터앉아 불경을 펴 들고 사색에 잠긴 젊은 승려의 자태가 있어서 그리도 청정하게 보이는 까닭은 돌로 빚어진 이 공양상의 경건한 기도가 이 젊은 승려의 심신에 이심전심으로 상통하는 까닭이 아닌가 한다. 이 한 토막에 정경에서 우리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보는 느낌이며, 민족적인 아름다움이란 어디서나 그 자연과 인문 그리고 그 족속의 감정이 멋지게 해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격조가 생기는 것이라는 표본을 여기에서 보는 듯도 싶다.
이 석등과 공양인물상은 배좌와 아울러 삼층 사자석탑의 부속물로 이루어진 것이며, 화강석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석조미술의 뛰어난 솜씨가 맥맥이 전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부슬비 내리는 늦은 가을날이면 이 석등 위에 돋아난 해묵은 돌이끼가 파랗게 하나하나 살아나서 이 석탑 언덕은 마치 삼층석탑에 새겨진 비천상들이 보여준 주악과 율동을 일깨우는 듯 한층 더 신비로움과 정적의 아름다움이 뼈에 시리도록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