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40편1~17절
제목 :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구원과 회복을 기다리던 시인이 마침내 응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그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습니다.
1. 하나님이 구원을 찬양(1~11절)
1)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 찬양(1~3절)
(1) 기다렸더니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1절)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 (카오 키위티). 문자적인 뜻은 기다림 속에서 기다렸다'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 보여주듯이 시편 기자의 기대와 소망의 행위는 일순간적인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절은 그의 기도가 당장에 그 응답을 보지 못했지만 여러 차례의 반복 끝에 그 응답을 보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2절)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
기가 막힐 웅덩이 - '웅덩이'는 '보르'로서 '감옥', '퇴비 구덩이', '무덤' 등을 뜻하는데 특히 '무덤'이란 의미는 28:1 ; 88:4 ; 사 14:19 ; 38:18등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구덩이에 빠진 것과 같은 '재앙'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 혹은 '무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Barnes).
그리고 본절의 또 다른 단어 '기가 막힐'(솨온)의 문자적인 뜻은'소음', '포효하는 소리', '(특히 파도에서 들을 수 있는, 혹은 전쟁이나 군중의 회집으로 야기되는) 소동' 등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죽음(무멈)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바 '황량' 혹은 '멸망'이란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하여 어떤 학자는 이곳의 웅덩이를 아비규환으로 가득 찬 동굴 혹은 너무 소란스럽고 야단법석이어서 그곳을 통과할 수 없는 무저갱과 같은 곳으로 이해합니다(De wette).
한편, 또 다른 학자들은 그곳에 물이 넘실거려서 으스스 함과 공포가 가득한 동굴 혹은 깊은 어두움으로 해석하는데 이 해석이 전자의 견해보다는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Rosenmuller).
왜냐하면 70인역(39:3, LXX)이 이 단어를 '랖쿠 탈라이포리아스',즉 '재앙의 호수'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본 시편 기자는 소망이 없는 깊고 시시한 동굴과 같은 곳, 분명한 멸망과 같은 상태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수렁에서 - (미티이트 하야이인). 문자적인 뜻은 '웅덩이의 밑바닥으로부터'입니다.
이곳은 그 위에 설 수 있는 단단한 기초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69:2, 14 ; 렘 38:6), 이 단어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반석'과 대비를 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이 분명합니다.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 하나님께서 저자로 하여금'단단한 땅 위를 걷듯 그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시는 내려가거나 빠지는 웅덩이와 같은 위험한 곳이 없이 안전하게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표현을 구속주(Gedee-mer)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그것이 완전히 성취되는 때는 그분의 속죄 사역이 완성되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다시는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없고 항상 안전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만을 돝리게 되는 때, 즉 '주의 재림의 때'일 것입니다.
(3)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습니다(3절)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새 노래...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 본 표현이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찬양할 만한 새로운 경우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베푸신 구원은 너무 특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자비 행위에 덧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감사의 표현을 매우 적절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구속 행위는 과거의 자비 행위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때 사용하였던 언어로는 불충분할 만큼 놀라운 하나님 편에서의 중재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번의 구원 사역은 슬픔의 깊음 이후 영광으로 승귀(昇貴)하신 그리스도의 사건 때만큼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에는 언어가 불충분할 정도의 위대한 사역이었다는 뜻입니다(Barner).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인류의 많은 백성들이 저자가 노래했었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목도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예배하고 경외하는 것을 배워서 그분만을 온전히 의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그의 진실 된 예배자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복과 하나님의 위대하심(4~5절)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4절)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교만한 자 - 원문에 복수형인 '레하빔'으로 되어 있는 이 단어는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단수형 '라하브'는 자기 자신의 힘을 소문내듯 소란스럽게 잰체하듯 의존하는 자를 의미하는 애굽 이름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에는 실망 속에 낙담 할 힘을 의존하는 교만한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Perowne).
한편, 어떤 학자는 이 '라하브'를 신비스러운 바다 괴물인 라합으로 보고 이를 '이방 우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같은 해석은 70인역(LXX)의 지지를 받습니다(Da-hood).
이 두 해석 중 전자가 신뢰할 만한데 그 이유는 전(前) 문맥이 '의존'의 개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에 치우치는 자 - 문자적인 뜻은 바른 길에서 이탈하는 자, 즉 영적인 의미로는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자입니다.
그러나 '거짓'으로 번역된 '카자브'가 하나님과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임을 고려 할 경우(Ander-son)이 단어는 '하나님을 배교하는 자'의 개념 으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Perowne).
(2)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5절)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의 생각도 많아 - 여기에서'생각'이란 성도의 필요를 채우고 유익을 제공하기 위한, 즉 성도의 복지를 위해 하나님 경영하신 계획들, 목적들, 섭리들을 가리킵니다(17절).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 '아라크'는 '열을 따라 배열하다', '질서 있게 정돈하다'의 뜻을 지닌 군대 용어인 바 '줄을 세우다' 혹은'전투 대형으로 포진하다'(삿20:20, 22)란 말입니다.
또한 이 용어는 '논쟁을 위해 개념들을 정리하다' 혹은 '논쟁을 위해 사고를 논리 정연하게 하다'(욥 13:18) 등의 의미와 '재판관 앞에 소송을 제기하다'(욥 13:18)라는 뜻도 더불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독특하걔 '어떤 것과 함께 배치하다' 혹은 '무엇을 나란히 놓다', 즉 '무엇과 비교하다'의 의미(Gesenius)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게졔니우스(Gesenius)의 견해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서 이미 본절의 전반부에서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 그분의 자비로운 그리고 선하신 생각에 관해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와 성실과 구원 선포(6~11절)
(1)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6절)
“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 본 구절 해석의 관건인 '들려 주시기를'(카라)은 그 문자적인 뜻은 '우물을 파다'(창 26:25), '무덤을 파다'(창50:5), '구멍을 뚫다' 등과 같은 '파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난해한 단어를 포함한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의 여러 가지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주께서 나를 위하여 귀를 건설하셨다'로 번역하는 견해.
이 의견은 제롬(Jerome)과 같은 초대 교부들의 생각인데 이것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것을 들을 수 있는 상태의 귀를 부여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는 귀를 부여하셨다는 것인데 이는 사 6:9,10과 신 29:4의 '볼 수 있는 눈', '이해할 수 있는 마음' 등과 평행 구를 이룬다 하겠습니다.
(나)'주께서 귀를 관통하셔서 진리의 계시를 전달하셨다'로 번역하는 견해.
이 의견은 신적 전달, 초자연적인 지식의 전달을 암시하는 많은 구절, 즉 삼상 9:15 ; 20:12, 13 ; 욥 33:16등의 '귀를 열다'와 동일한 의미로 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파다'라는 의미의 '카라'를 기준으로 한 해석이 아니라 '카라'의 의미를 유추적으로 해석한 '꿰뚫다', '관통하다'를 기준으로 삼아 석의(釋義)의 논리를 이끌어갔다는 점을 생각할 때 타당한 견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순종케 하셨다'로 해석하는 견해.
이 생각은 대부분의 랍비들이 갖는 의견인데 그들은 '순종하는(듣는)것이 희생보다 낫다'고 하는 삼상 15:22을 바탕으로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부여한 나머지 이러한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 견해 역시 문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소찰(小察)을 통해 볼 때 그 과정은 분명치 않으나 하나님께서 저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들려주실 계시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어떤 영적인 귀를 부여받았던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가)의 견해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Ba-rnes, Perowne).
제사와 예물 - '제사'에 해당하는 원어는 '제바흐'로 속칭 '피 제사'를 뜻하고 '예물은 '미하흐로' 피 없는 제사, 예를 들면 감사제와 같은 제사를 의미합니다(사1:11).
본절에 등장한 네 단어, 제사, 예물, 번제, 속죄제는 히브리 공동체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희생과 예물을 포함하는 말인데 그들이 드리는데 익숙해져 있던 바로 이러한 희생과 예물을 하나님은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본 시편 기자를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2) 나에 대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다고 밝힙니다(7절)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
내가 왔나이다 - 쉽게 풀이하면 '당신 앞에 섰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열등한 자가 존귀한자 앞에 나아갈 때, 혹은 노예가 그 주인 앞에 설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인데(민 22 :38) '보소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가까운 마음에 대한 강조적 표현입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 '의무로 내게 부과된 것'으로 바꿔 쓸 수도 있는데 이 말은 율법책을 발견한 후 요시야가 그 책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실린 왕하 22:13에 등장하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절은 저자 자신에게 부과 된 의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제 입을 열어 동료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희생이나 예물이 아니라 내적인 순종이며, 그 순종은 하나님이 부여하는 불법의 내용을 지키는 것으로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일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 구절을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는데 그는 6절의 '제사'나 '예물'의 무용성에 관한 표현이 있는 사실을 중시하여 본절의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란 이제 완전한 제사와 예물이 되실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후속절의 '두루마리 책'은 시편뿐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Barnes).
그러나 전후 문맥이 외적인 종묘 의식이나 형식 대신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두는 것(8절)을 강조하고 있는 성향을 고려 할 때, 후자의 메시야적 해석은 견강 부회(牽强附會)의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두 마리 책에 - 앞서 하나님께서 그의 귀에 들려주신 혹은 가르쳐 주셨던 내용이 하나님의 율법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책에는 하나님의 영이 저자의 마음에 이미 기록했던 것과 동일한 진리가 있다는 고백 입니다.
이 율법책은 모세의 율법책이며 두루마리는 그 율법의 내용이 양피지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사실은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Perowne).
(3)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합니다(8절)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 문자적인 뜻은 '주의 기쁨을 행하기 위하여'입니다.
이 표현은 선행 구절 '내가 왔나이다'(7절)의 연장선에서 해석되어야 하므로 앞절과 본절을 합쳐 '주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위하여 내가 왔나이다'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의 심중에 - (베토크 메아이). 문자적로는 '나의 창자 중간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는 표현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법이 그의 행동과 자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7:31 ; 신 6:6 ; 렘 31:33).
(4) 많은 회중 가운데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고 합니다(9절)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
회중 - 이에 대한 원어는 '카할'로 예배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22:25 ; 35:18 ; 89:5).
여호와의 전령과도 같이 구원받은 경험이 있는 자는(1, 2절)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구원을 선포하기 마련입니다.
한 공동체의 요원이 구원받은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좋은 소식이 되며 그 공동체의 연합과 교제의 분위기를 북돋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대부분의 현대 교회 공동체 속에서는 드문 일로 여겨집니다.
(5) 주의 공의와 성실과 구원을 선포 하겠다고 합니다(10절)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
공의 - 이것의 히브리어 '체데크'는 구약 용어들 가운데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용어 중의 하나인데 그 이유는 여러 차례 다양하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116회 등 장).
따라서 그 문맥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어떤 학자는 본 시편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선포로부터 출발되는 사실을 중시하여 '구원하시는 도움'으로 이 단어를 번역합니다(Anderson).
또 다른 학자는 이를 '인간을 의롭게 하는 신적인 방법'으로 해석합니다.
이 방법이란 '칭의'(秤義)를 가리키는데 이 해석의 경우 롬 1:17에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둡니다(Ba-rnes).
그런데 만일 이 해석을 따른다면 본장 1절의 구원 사실은 바로 불신앙 상태로부터 신앙의 상태로의 구원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 시편은 다윗의 것으로 그는 이 시편을 기록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을 받은 자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자의 번역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숨기지 아니하고...선포하였으며...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 9절 '전하였나이다', '입술을 닫지 아니하였다'등과 의미가 동일한 단어들이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를 보이기 위해 타오르는 듯한 마음의 의욕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6) 당신의 인자와 진리로 항상 지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11절)
“[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여기서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바꾸어 간절한 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현제 슬픔 가운데 있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과거의 구원을 회상하면서 과거 자신의 행실을 근거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서 저자의 '행실'이란 하나님의 구원, 성실, 인자, 진리를 입이 닳도록 회중에게 선포하고 선전한 일을 가리킵니다(9, 10절).
2. 구원을 소망(12~17절)
1) 죄의 고백과 은총을 간구(12~13절)
“[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 저자의 죄가 초래한 결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재앙'은 고통당하는 자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위협하고 있는 일종의 홍수의 물줄기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삼하22:5 ; 욘 2:5).
나의 죄악 - 저자가 자기의 불행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징계임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32:1 ; 51;2).
그런데 이 구절은 본 시편을 메시야적 시편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에 결정적인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하고있습니다(Perowne).
즉,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 당하고 있는 저자를 죄 없이 고통당하셨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 삼상 3:2 ; 4:15) 왕상 14:4등의 용례와 같이 연약함 혹은 노쇠로 인한 시력의 쇠퇴 및 상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을 제대로 보고 비전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임한 재앙이 무겁고 혹독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 (리비 아자바니). 문자적인 뜻은 '내마음이 나를 버렸다'입니다.
그런데 문맥상'마음'을 가리키는 '레브'(가때로는 '용기' 를 뜻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고려 할 때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본절로부터 본 시편 끝절(17절)까지의 내용은 70편과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따라서 70편이 삽입절의 의미로 이곳에 첨가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Hupfeld).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시편의 후반부는 그 내용에 있어서 전반부의 내용을 사용하는 것이 도무지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꼈을 수 있는 어떤 후대 저자에 의하여 분리되었거나 변형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Pero-wne).
여호와여 - 원문에는 이 단어 앞에 '라차' 즉, '즐거워하소서', '기쁨을 가지소서'라는 의미의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절 전반부의 의미를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여 은총 베푸시기를 즐거워 하소서'입니다.
한편, 이 구절은 분명히 8절의 '즐기오니'(레촌카)와 평행구를 이룹니다.
2) 생명을 해하려는 자들로 인한 탄식(14~15절)
“[14]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15]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나의 생명을 파괴하려고 찾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나를 '죽이기 위하여 찾는 자', '죽이기를 원하는 자'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만일 13-17절을 후대 저자에 의해 삽입 및 변형된 구절로 본다면 이 구절을 메시야적 구절로 간주하여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12절과는 달리 13-17절은 득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12절 주석참조).
만약, 메시야적 언급으로 볼 경우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거의 임박한 혹은 죽을 위기에 처한 시기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마 26:16 요 7:6,Barnes).
신약 성경에 의하면 이 당시 그리스도의 대적들은 예수의 말씀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의 사역을 저지키 위하여 그를 죽이려고 힘썼습니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 (예보슈 에야흐페루).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그들이 수치를 당하고 뒤죽박죽이 되게 하소서' 이지만 이 기도의 실현에 대한 기자의 강력한 믿음을 엿볼 수 있는 두 강조 동사가 연결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그들이 수치를 당하고 뒤죽박죽이 될 것을 믿습니다'로 의역하는 것이 좀 더 원문에 가깝습니다.
즉, 이 구절은 소원이나 바램 보다는 일종의 확신에 찬 기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Barnes).
한편, 뒤죽박죽이 된다는 것은 대적의 목적, 의도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므로 대적의 목적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하 - (헤아흐 헤아흐). 이것은 비난이나 경멸을 표시하는 의성어로 다른 사람에 대한승리, 특히 다른 사람이 재난 당함을 보고 즐거워하는 태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35:21, 25 ; 겔 25:3).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 여기 '놀란다'는 말의 뜻은 황폐하게 된다는 것, 무용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말은 대적들이 그 목적들, 소원들이 완전하게 성공적이지 못하고 성취되지 못함을 보고 예상 밖의 일이라는 듯 깜짝 놀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한 '수치로 말미암아'(알 에케브 바슈탐)는 그 문자적인 뜻이 '그들의 수치의 보상 때문에'입니다.
여기서 보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 에케브'(로'끝', '어떤 것의 마지막', '어떤 행위 과정의 종국', '결과' 등인 바 '배상', '보상', '임금','상급'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저자가 대적들에 대해 기도한 '황폐하게 됨'은, 대적들의 목적 혹은 그들이 말했었던 내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3) 여호와를 찾는 자들의 구원(16~17절)
“[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찾는 자 - (바케쉬). '찾다'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의 렘 50:4, 5의 경우처럼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예배를 암시하는 예식 용어로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24:3 ; 69 ; 105:4 ; 호 3:5 ; 말 3:1).
그러나 때때로 이 용어는 호5:15-6:1의 경우처럼 '여호와께로의 귀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는 표현과 같이 쓰이기도 합니다(호5:15).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 '주의 구원'이란
(1) 하나님의 구원 방법, 혹은 그것을 따라 인간을 구원하기로 약속된 방법,
(2) 죄책 죄의 지배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에로의 완전하고 영원한 회복(Barnes)을 말합니다.
한편,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 이외의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거나 의뢰하지 않는, 오직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자를 가리킵니다(62:6, 7).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 이 구절은 대적듸의 조롱하는 외침과 대조를 이루는(15절) 예배자들의 반응입니다(Ander-son).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 (아니 아니 에브욘). 문자적인 뜻은 나는 고통당하고 있고 가난하다'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용어들은 고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난했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절박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Barnes).
나를 생각하시오니 - (야하솨브). 이와 동일한 단어를 '나에게 속히 임하소서'로 번역하고 있는 70:5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과 하반절의 '지체하지 마소서'는 서로 평행구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Anderson).
한편 이 유사한 표현이 욘 1:6에서도 발견됩니다.
나의 도움 - (에즈라티). 70인역(LXX은 이용어를 '나의 구원자'와 나란히 사용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나의 도움'은 '나의 구원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묵상 Point
1) 부르짖음에서 찬송으로
하나님은 끈질기게 구원을 기다리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망의 자리에서 안전과 안정의 자리로 옮겨주신다.
영광스런 구원을 통해,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거짓에 치우치지 않는 자의 입에서 찬송이 나오게 하신다.
2) 제사보다 순종
하나님은 제사보다 당신 뜻 순종하기를 기뻐하신다.
마음에 주의 법을 담고 그 뜻에 따르기를 즐거워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관습적인 묵상의 껍데기를 벗고, 깨달음대로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말씀을 심비에 잘 새겨 늘 주와 동행하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구하자.
3) 많은 생각, 많은 기적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느라 생각이 많으시다.
어찌 근시안적이고 우둔한 우리 생각에 비하겠는가?
그래서 “머리 털 보다 많은” 죄악 때문에 찾아온 ‘무수한’ 재앙에 둘러싸인 시인은 ‘셀 수 없이 많은’ 기적(5절)으로 구원하셨던 그 하나님께 다시 은총을 구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7절 삶을 다시 힘차게 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 발을 수렁에서 건져 반석 위에 두십니다.
인생의 곤궁한 처지가, 빠져나오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수렁과 같아서 제 힘을 쓸수록 상황은 악화될 뿐입니다.
시인은 모든 노력이 허사임을 깨닫고 기다리고 기다렸고, 부르짖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의 힘과 지혜가 전적으로 무능함을 깨닫기까지 침묵하시고, 그의 기도가 진실하고 충만하기까지 기다리시며, 마침내 구원이 전적인 은혜가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애쓰고 수고해도 허공을 밟는 것처럼 삶이 추락하고 있다면, 모든 수고를 멈추고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인생의 도움과 구원이신 주님을 뵐 것이며, 말씀의 반석 위에서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4-8절 주님의 사랑이 그분의 셀 수 없는 구원의 일과 생각에 담겨있는 것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은 우리 마음과 순종의 행위에 담겨야 합니다.
마음을 대신하려는 예물과 행위를 대신하려는 제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을 종교의식 안에 가두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들의 습관입니다.
오늘 온 하루, 주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8-10절 주님의 진실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마음에만 품을 수 없고, 주님의 성실과 진리를 머릿속에만 감춰둘 수 없습니다.
찬송이 마음과 입술에 차올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노래하고 고백하고 싶은 주님의 일과 성품은 무엇입니까?
11-16절 수많은 재앙과 대적의 공격, 원수의 조롱에 억울하고 분할 만도 한데, 시인은 머리털보다 많은 자기 죄를 생각하며 낙심합니다.
그가 마주하는 곤경은 죄 많고 무능력한 모든 인생이 맞닥뜨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죄 아래 있는 인생은 은혜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주님의 은총만 바라며 기도합니다.
지금도 인자하신 주님의 성품이 우리 죄인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기도]
공동체-부당한 일을 당할 때에도 말씀을 따르며 주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열방-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의 이슬람 종교기관은 소수종교의 집회 장소 건설을 금지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소수종교들이 차별받는 상황이 개선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