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99가지 기분과 나머지(달쏘)
강주
강원도 동해 출생. 2016년 《시산맥》으로 등단. 정남진신인시문학상,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흰 개 옮겨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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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이 시집의 시편들이 시인의 독백과 어둠이 겹쳐지면서 형성된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독자에게 미리 알려주면서 시집의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 이전에, 시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마련된 <시인의 말>에서, 강주 시인은 “달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사이에 시가 있고/그 사이 무수한 세계에/가 닿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해독하기 쉽지않는 말이다. 언어와 같은 기호를 의미한다고 여겨지는 ‘손가락’과 ‘달’과 같은 사물 사이에 이미지-시의 장–가 있으며, 그 이미지가 무수한 세계를 낳는다는 것이 <시인의 말>이 의미하는 바라고 추측해본다. 이에 강주 시인은 그 시적 세계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집요하면서도 다채로운 시적 탐구를 이 시집 안에 겹겹으로 펼쳐놓는다. 그중에서 아래의 시는, ‘손가락’이 사물을 가리키자 시적 세계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방인들이 불면을 견디며
모국을 향해 혼잣말하는 동안
겨울을 뚫고 끝내 봄은 올 테지만
동그랗고 던지기 좋은 크기의 달을 기다렸다
던졌던 달이 되돌아오는 동안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면
얼굴도 성별도 모르는 별이 돋아났다
검지에 묻은 마음은 한없이 조용했다. 모든 것이 우연이며 세계 속에 얼마나 많은 우연이 마음에서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과 공간이 이루는 대칭에 따라
돌아가고 돌아오는 철새는
모두 겨울의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며
계절은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 「홀수의 새벽」 부분
인간의 언어는 대상 세계를 추상화하고 자의적으로 체계화한다. 시의 말은 인간의 언어에 비추어볼 때 이방인의 말이다. 시의 말은 대상 세계-우주-의 존재성을 드러내면서 시의 세계를 다채롭게 생성시킨다. 이 세계는 대상 세계로부터 분리된 단순한 환상 세계가 아니다. 손가락과 대상 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응-겹침-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불면을 견디며” “모국을 향해 혼잣말하는” ‘이방인들’은 시인이란 족속을 가리키겠다. 그들이 혼잣말-독백-을 하다가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킬 때 시의 말은 탄생하며 “얼굴도 성별도 모르는 별이 돋아”나는 시적인 세계는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세계는 비인칭이다. 그래서 이러한 세계를 여는 시인이란 족속 역시 비인칭으로 존재하며 그래서 이방인인 것이다.
그런데 시의 말-검지-에는 우주의 마음이 묻어 있다. “한없이 조용”한 마음. 왜 조용한 마음인가? 우주는 동그란 시간과 공간 속을 말없이 운행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주는 “돌아가고 돌아오는” 시간과 공간을 철새처럼 운행한다. 그래서 우주의 운행 속에서 봄은 “겨울을 뚫고 끝내” 오겠지만, 우주 속의 사물들은 봄이 와도 “겨울의 말을 주고받”기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주의 존재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면서 우주의 시간은 “끝없이 자”란다. 이 둥근 시공간 속에서의 우주의 운행은 말없이 이루어지기에, 우주의 마음은 “한없이 조용”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시의 세계는 우주에 던져진 시의 말-검지-이 우주의 운행과 부딪치면서 발생되는 것이기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 우주의 운행과 겹쳐지는 시의 말에는 우주의 조용한 마음이 묻게 되며, 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시의 세계는 우연하게 변형된다
-이성혁(문학평론가), 시집해설 「침묵 속의 연꽃, 시의 존재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