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던 자신감은 어디로 간 걸까. 두꺼운 코트 속에 비즈가 달린 톱을 입어내던 무모함은 완만히 상승 곡선을 그리는 몸무게와 함께 사라진 걸까. 그러나 작년 내내 팔다리를 꽁꽁 싸맨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털 때문이었다. 면도도 싫고, 셀프 왁싱도 귀찮아진 이후 폐허를 뒤덮은 가시덤불처럼 까실한 털은 예전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온몸을 파고들었다. 아침마다 짧은 소매의 옷을 입었다가 다시 벗어던지길 여러 차례, 이쯤되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게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끝에 결국 왁싱으로 유명한 핑크 네일 오브 뉴욕을 방문하게 되었다.
“으흠, 인그로운 헤어(Ingrown Hair)가 상당히 많네요.” 김정연 실장의 한마디에 마치 성적표를 받아든 하위 30%처럼 온몸이 위축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젯밤에도 마감 뉴스를 보며 몇 가닥 뽑지 않았던가.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여드름을 짜내며 희열을 느끼는 여고생처럼 꼬부라져서 표피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털을 뽑아내는 재미에 빠진 지 여러 달 되었다.
“제모 중에 털이 끊어지거나 모근에 이상이 생기면 털이 제 방향으로 자라지 못하고 삐뚤어져 자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장을 해도 자연스럽게 표피로 나오지 못하게 되고 털은 어쩔 수 없이 피부 속에서 성장을 계속해 인그로운 헤어가 되죠. 제모를 잘못한 피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요.” “이유가 뭐죠?”“모근이 약해진 데다 제모 후 뒤처리를 잘못해 모공이 막히면 더욱 심해지죠.”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왁싱 후 알코올로 깨끗이 소독할 것과 족집게를 이용해 억지로 뽑지 말고 인그로운 헤어 전용 제품을 쓸 것을 권했다.
살롱에서의 제모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좀더 생산적인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것이 에디터가 내린 결론이었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섭렵했던 모든 제모 방법-면도와 제모 크림, 셀프 왁싱, 살롱에서의 왁싱, 심지어 제모 패드(마치 샌드 페퍼와 비슷한 이치로 털을 갈아서 없애준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영원히 털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점. 단지 새치머리를 가리는 염색약처럼 살짝 위기를 모면케 해줄 뿐이다. 그러나 새치보다는 원치 않은 털로 고민인 경우가 훨씬 나은 편이다. 바로 레이저를 이용한 영구 제모라는 빅카드를 쓸 수 있기 때문.
아닌게 아니라 에디터의 주변에도 레이저로 제모를 한방(물론 말이 한방이지 4회에서 6회까지 레이저 치료를 거듭해야 한다)에 끝냈다며 통쾌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비용은 문제가 아니야. 평생 제모 때문에 쓰는 비용과 시간, 그리고 스트레스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스러워”라고 입을 모았다. 이쯤되면 나의 제모 방황기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따끈하게 데워진 목욕물처럼 기분 좋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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