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등명 법등명’ 마음의 지표로
금생에 짓고 있는게 내생 모습
“오계(五戒)를 잘 지키면 혼탁한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중앙승가대 교수이면서 통도사 강주 소임을 보고 있는 혜남(慧南)스님은 물질문명 시대의 혼돈에서 방황하는 불자들에게 ‘지혜의 보검’을 알려주며 말문을 열었다. 주석처인 통도사 패엽실(貝葉室)에서 지난 7월말과 8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에 응한 혜남스님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잊지 말고 늘 정진해야 한다”는 당부를 더했다. 패엽실은 ‘부처님 경전을 보는 방’이라는 뜻으로 역대 통도사 강주스님들이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 나라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 때문에 ‘국난(國難)’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데 불교계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삼국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국사(國師) 혹은 대국통(大國統)이라는 소임을 보면서 난국을 지혜롭게 해결했던 원광스님과 지장스님의 모습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로 불살생계를 지켜야하는 입장과 백성으로 나라를 버리지 못하는 모순에 번민하면서 계율을 ‘현실’에 맞게 받아들여 나라가 처한 일을 ‘신중하게’ 결단했던 두 스님은 지금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혜남스님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면서 “나라가 처한 현실을 바로보고 유연성 있게 대처하여 더 이상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이 나온 김에 ‘혼돈시대’를 살고 있는 중생들의 바른 삶에 대한 지표를 질문했다. “난국을 돌파하는 길은 오계를 수지하는데 있다”며 혜남스님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불살생은 서로 사랑하라는 뜻으로 상대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살생은 단지 목숨을 뺏는 것만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의견을 묵살하는 것도 살생인 까닭입니다. 훔치지 말라는 계율을 잘 지키면 절도나 강도가 없어져 사회가 맑아집니다. 또 음행을 하지 않으면 풍속사범이 없어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기꾼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불음주를 지키면 술 마시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좋지 않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혜남스님은 “오계를 통괄하는 정신은 자비심”이라면서 “자비심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인은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서, 노동자는 기업인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비심입니다. 둘은 주종관계가 아니고 서로 살려주는 상생관계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난제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편 네편 가리지 말고 함께 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한 혜남스님은 “더불어 사는 진리인 연기법칙을 명심하고, 홀로 산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현대인들을 경책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자살’에 대한 의견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고 하지만, 가족을 비롯한 친구와 이웃 등 주변사람에게 굉장한 고통을 주게 됩니다. 오죽 답답하면 자살까지 고민하겠냐만 그렇다고 목숨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도 안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로 무책임한 현실도피이며 큰 죄입니다.”
화제를 교단 안으로 돌렸다. 선(禪)을 우선하고 교(敎)를 뒤에 놓는 풍토에 대해 혜남스님은 “선이 있어야 교가 살고, 교가 있어야 선이 산다”면서 “선교는 서로 돕는 관계이지, 서로 옳다고 싸우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것이 ‘통불교 사상’입니다. 자장스님, 원효스님뿐 아니라 선과 교를 둘로 보지 않은 보조스님이나 선과 정토가 하나라고 했던 서산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통불교를 지향해왔음을 되새겨야 합니다. 선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 말씀이고, 율은 부처님 행동입니다. 선과 교와 율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입니다.
- 경전 가운데 마음의 지표로 삼는 구절은 어떤 것입니까.
“〈유행경>에 나오는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등불로 삼으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마음에 지니고 삽니다. 또 〈인과경〉에 나오는 ‘자신이 지어 자신이 받는다’는 부분입니다.”
혜남스님은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내가 받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고,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내가 짓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라면서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 재가불자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지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고, 스님을 믿고, 근본을 믿으라는 네 가지 믿음(信)을 말하고 싶습니다.”
혜남스님은 “통도사의 사계절은 언제나 아름답다”면서 “통도사는 봄에 한번 꽃이 피고 나면 가을까지 연결된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통도사는 지금 백일홍이 활짝 피어서 좋고, 가을이면 단풍이, 겨울이면 영축산 상봉에 서설이 옵니다. 봄이 오면 홍매가 피고, 그 다음에는 산수유가 피고, 그 다음에는 동백꽃이 피고, 백목련과 자목련이 핍니다.”
통도사=이성수 기자 3D3Dsoolee@ibulgyo.com">3Dsoolee@ibulgyo.com">3Dsoolee@ibulgyo.com">soolee@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3D3Dcooljoo@ibulgyo.com">3Dcooljoo@ibulgyo.com">3Dcooljoo@ibulgyo.com">cooljoo@ibulgyo.com
- 혜남스님은...
1963년 창녕 관룡사로 입산해 월하스님께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강주와 법주사 강주를 거쳐 현재는 통도사 강주 소임을 보고 있다. 통도사 전계사와 중앙승가대 교수도 겸하고 있으며 조계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일본 대정대학에서 불교학 공부를 마쳐 전통교육과 현대교육을 겸비했으며, 해인사와 용화사 선원 등에서 정진해 선과 교에 두루 밝다. 지난 77년 대흥사에서 운기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강호는 남주(南洲). 법호는 중산(中山).
향후계획에 대해 혜남스님은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스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자장스님을 율사인 측면뿐 아니라, 화엄법사인 부분 그리고 외교국방에 기여한 공로 등에 대해 자세히 밝힐 계획”이라면서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최초로 모셔온 분이 자장스님이라는 부분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한 연구와 선양을 병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종단 미래를 짊어질 학인들에게
수행자는 무엇보다 3귀의 5계 지켜야
“학인들은 우리 종단의 미래이며, 한국불교를 짊어질 동량입니다. 때문에 학인스님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행자는 3귀의 5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길인 까닭입니다. 계율을 통해 선정을 닦고, 선정을 닦아 바른 지혜를 만드는데 신명을 다해야 합니다. 계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처한 장소와 시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 헛된 욕심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하면 선정을 얻게되고 선정을 잘 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공부하는 방법 가운데 참선, 염불, 주력은 모두 정신통일을 요구하는데, 한 가지 경을 꾸준하게 독경하는 것도 훌륭한 수행입니다. 하지만 경전만을 외고 읽는 옛날식 공부방법은 수행자 입장에서는 좋은데, 남에게는 전해 주지 못해 포교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경전의 꾸준한 독경과 함께 논리적인 토대를 갖추고, 현대인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데 학인들은 힘을 쏟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