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서울 은광여고 nie 학습 사례

[하동희]

서울 은광女高 1학년생들
매일 1편씩 스크랩 요약한 뒤 의견 붙여
"한 달밖에 안지났지만 사회 현상 보는 눈 생겨"

지난 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은광여자고등학교(교장 김정열)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일제히 식당으로 향하는데… 1학년 열두 반 학생들은 교실에 남아 일제히 공책 한 권씩을 꺼냈다.

공책에는 각자 아침에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온 신문 기사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모두 각기 다른 신문의 사설(社說)들이다. 교사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학생들은 습관처럼 '사설노트'를 꺼냈다. 일종의 '신문 활용 자습 시간'. 활동도 간단하다. 학생들은 20분 동안 사설을 읽고 베껴 쓰거나 요약한 뒤 자신의 의견을 붙이면 된다. 이렇게 짧고 단순한 활동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중요한 건 습관이잖아요. 매일 한 편씩 읽는데"라고 학생들이 답을 줬다.

은광여고 1학년 학생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매일매일 사설 한 편을 읽어야 한다. 지금이 4월이니, 이 학생들은 벌써 20개 이상의 사설을 읽은 셈. 1년이 지나면 약 150개의 사설을 읽게 되는 것이다.

"한 달밖에 안 지났지만 지식도 늘고 시사상식도 분명히 늘었어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눈도 생기는 것 같고요. 사회 돌아가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갖다 보면 나중에 사람들을 접할 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케팅을 전공하려고 하거든요."

1학년 5반 송선주 학생은 자신 있게 말했다. 송선주 학생은 칼럼을 2~3차례 읽고 요약한 뒤 다시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고 했다.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은광여고 1학년 학생들은 사설 노트를 꺼내고 각자 준비해온 기사를 읽은 뒤 의견을 쓰는‘신문 자습 시간’을 갖는다. 20분밖에 안되지만 매일 한 편씩 1년 동안 의무적으로 하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이 높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이 반 반장인 백수민 학생은 "처음에는 안 하던 것을 하려니까 잘 안 써졌는데, 이제는 한 번만 읽고 생각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백수민 학생은 요약보다는 의견 위주로 20줄을 채운다.

유담 학생은 1문단엔 사설을 요약하고, 2문단에는 '나의 생각'을 써넣는 형식으로 한다. 유담 학생은 "300자 정도로 쓰는데, 한 달 지나니까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진 학생은 "사설만 보는 게 아니라 앞뒤의 다른 기사들도 읽게 된다"며 "사설이 생각을 깊이 하도록 해준다면, 다른 기사들은 지식과 정보를 많이 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각자 수준에 맞는 형식을 선택하면 된다. 1단계는 베껴 쓰기. 2단계는 요약하고 생각을 쓰기. 3단계는 생각을 쓰고 비판하기. 담임교사는 매일 확인 도장을 찍어주면 된다. 1학년 5반 담임인 김은숙 교사는 "1학년 때 습관이 들면 2학년에 올라가서 학교에서 시키지 않아도 신문을 읽더라"며 "신문 읽기야말로 1학년 때 길들여야 하는 가장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숙 교사는 28년 교직 생활 중 25년간 1학년만 맡아온 '1학년 전담'의 경험을 말했다.

학생들의 사설 읽기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은광여고에서는 학기말에 시상하는 제도를 뒀다. 김현우 교감은 "국어 선생님들 위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최우수상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10명의 학생을 뽑아 학교장상을 주고 생활기록부에 기록도 한다"며 "우리 학교의 특색사업 중 하나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광여고에서는 신문활용교육을 좀 더 받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학교 NIE반도 진행하고 있다. 기초반과 심화반을 두고 20명 정원으로 주 1회씩 실시하되, 한 번에 4시간씩 '마라톤 수업'으로 한다. 기사, 광고, 도표 등을 활용하고 각 신문의 쟁점들을 이해하는 활동부터 토론, 각 대학 논술 예제 학습까지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김현우 교감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이 좋아서 반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백수민 학생의 어머니인 김정은(48)씨는 "신문을 읽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요즘엔 학교 갔다 오면 신문을 잡더라"며 "수시전형을 대비하려면 논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지만, 학교에서 분위기를 잡아주니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사설 읽는 점심시간' 운영하는 김정열 은광여고 교장

은광여고 1학년 학생 450여명의 '사설 읽는 점심시간'은 김정열(金貞烈·사진) 교장의 작품이다. 2005년 이 학교에 부임한 김 교장은 각 학년 학년부장교사와 국어과 교사들을 불러모으고 지시를 내렸다. "논술 실력을 갖추려면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사고력을 키우려면 신문만한 게 없다. 1학년 학생들만이라도 사설을 읽히자. 잘한 아이들에게는 직접 시상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4년 전부터 은광여고 1학년 학생들은 매일 신문을 읽게 됐다.

"지금은 교과서만 공부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떠한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반짝반짝하는 생각, 바로 그것을 익혀야죠. 그런 취지에서 NIE를 도입한 겁니다."

김 교장은 학교의 3대 특색사업으로 영어와 NIE, 글로벌리더십 프로그램을 꼽았다. 학교에 원어민 교사 3명을 배치하고 오후 5~10시 수시로 인터넷 영어 방송을 듣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한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하고 2주간 교환학생을 보낸다. 1학년 학생 전원에게 매일 사설을 읽히고 1~2학년 희망자에 한해 4시간짜리 '마라톤 NIE' 방과후학교를 수준별로 진행한다.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을 영역별로 초청해 글로벌리더십 교육도 한다.

이 세 프로그램을 맞물려 진행해 은광여고를 강남 최고의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 김 교장의 야심 찬 계획이다.

"수십만원씩 주고 학원 간다는 강남 얘기요? 강남 한복판에 있는 우리 학교에선 안 통하게 될 겁니다. 학교에서 다 해결해주겠다는 말이지요."

김정열 교장은 학생과 1대 1 면담용으로 마련한, 전교생의 프로필이 담긴 B4 사이즈의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 "학교 분위기가 좋아야 학생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하죠. 분위기는 선생님들이 만드는 것이고요."

김 교장은 그래서 학생들과 일일이 만나고 얼굴과 이름, 출신 중학교와 성적까지 모두 외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과 면담한 뒤 수준별로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