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안동 우 함양.
한양에서 봤을 때 왼쪽에 안동, 오른쪽에 함양에서 유학하는 선비가 많이 나왔기에 부르는 말이다.
얼마 전에 삼토회에서 함양 답사(11.20.일)를 다녀왔다.
삼토회는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흥선 스님에게 공부 배우는 모임이다. 빔프로젝터로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제발을 해석하고 제발과 관련된 좋은 한문장을 공부한다. 문화재, 미술, 역사, 철학, 고전, 한시 등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누에가 실을 토하듯 쉼 없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처럼. 이런 인문학 강의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요즘은 자장율사, 의상 스님 등 고승 진영을 공부한다.
스님과 함께 하는 답사도 일품이다. 전체적인 맥을 잡고 입체적, 다층적, 심층적으로 해설하신다. 답사가 예술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본다고 다 본 것이 아닙니다.”라는 스님의 말씀을 실감한다
답사 일정은 남계서원~승안사터 삼층석탑과 정여창묘소, 신도비~개평마을로 들어옴~점심 식사(고택향기에서 떡국)~하동정씨 고가~노참판댁 고가~풍천노씨 대종가~정여창 고택~솔송주 문화관~옥계 노진 가족묘와 신도비~구졸암 양희 신도비~저녁 식사(함양 상림 내 나무달쉼터)
종일 15,000보를 걸었다. 최근에만 사전 답사, 본 답사, 사후 답사로 세 번을 함양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함양의 넓고 두꺼운 역사와 문화와 경관을 다 살펴보지 못했다. 최치원,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 등이 지방관리로 함양을 거쳐 갔기에 상림, 학사루, 정여창고택, 남계서원, 안의초등학교 등 관련 유적이 많다. 풍광이 빼어난 화림동 계곡에는 팔담팔정 중에서 네 개의 매우 아름다운 정자가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고, 불교 유적지도 곳곳에 산재해있다.
답사의 시작은 남계서원 풍영루 앞이다. 남계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오현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을 향사한다. 영주의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서원이다.
<風咏樓>는 <논어>에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늦은 봄날에 봄옷이 마련되면 관자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과 같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렵니다.”에서 따온 편액이다. 편액은 서원이 공부하고 제사 지내는 곳만이 아니라 휴식을 취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곳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힌다. <학기>에 “군자의 학문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닦고, 쉬고, 노닐 줄 알아야 한다.”라는 글에서도 서원의 역할이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로 논어뿐만 아니라 대학, 중용, 맹자에도 앎의 즐거움이 곳곳에 별처럼 빛난다. 남계서원에 들어서면 일두가 좋아했다는 연꽃이 피는 네모난 연지가 좌우 두 개가 있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 앞에는 굵은 배롱나무 두 그루가 그림처럼 서있다.
함양에 일두를 이어서 유학하는 선비가 많다. 대표적인 선비가 天嶺(함양의 옛 지명) 三傑이다. 천령 삼걸은 구졸암 양희, 옥계 노진, 청련 이후백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유명세를 타고 입구부터 넓은 주차장과 식당,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입장료도 받지만, 함양 개평마을은 소박하고 조용하다. 믈론 입장료도 없다. 개평마을은 두 개울이 하나로 모이는 곳에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옥이 60여 채가 보존되어있다. 낮은 돌담으로 두른 한옥들은 咸陽이라는 지명처럼 탁 트여서 밝고 화사하다. 남부지방 특유의 넉넉함은 안채에 잘 나타난다. 북부지방의 안채는 폐쇄적인 ‘ㅁ’자형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정경부인이라도 네모난 마당을 몇 바퀴 돌면 하루가 끝나고 일생이 끝난다. 위를 우러러보면 네모난 하늘과 사랑채의 용마루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남부지방의 안채는 개방적인 ‘ㅁ’자형이다. 넉넉한 대지에 나지막한 돌담, 건물이 사방으로 개방적으로 분할되어있고, 다른 건물과 통하도록 담도 여기저기 뚫려있다. 정원도 우물가도 채마밭도 여유롭다. 유교적 예법을 지키면서도 조곤조곤 수다를 주고받으면서 여인네들의 삶도 윤기있고 재미질 것 같다. 안의초등학교 옆에 있는 ‘허삼둘가옥’의 허삼둘은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는 여주인의 이름이다. 사랑채보다 안채 중심으로 건물이 지어졌고, 특히 ‘ㄱ’자 꺾이는 모서리 부분에 부엌을 만들어 안채의 중심이 된 것도 특이하다.
또 남부지방은 비가 많이 오기에 맞배지붕 측면에 덧붙여진 부섭지붕(가적지붕)도 많이 보인다.
가장 좋았던 곳은 개평마을 가운데 위치한 一蠹 鄭汝昌 고택이다. 3,000평의 너른 고택에는 양반가의 너그럽고 위엄있으면서 정갈한 기운이 가득하다. 다섯 장의 정려패(충신1, 효자4)가 걸린 높은 솟을대문을 지나면 훤칠한 사랑채가 탄성을 자아낸다. 동향한 ㄱ자 팔작지붕 아래 시원스레 높은 돌축대, 큼직하고 힘차게 쓴 ‘忠孝節義’,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 추녀를 떠받친 경쾌한 활주, 아기자기한 예쁜 누각, 용 비늘이 뚝뚝 떨어지는 우람한 소나무와 후리후리한 전나무를 심어서 정성스레 가꾼 석가산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인기 높다. 넉넉하게 탁 트인 안채, 단정한 곳간채와 별당, 가묘, 사랑스러운 안사랑채. 우리나라의 고택이 이다지도 멋있고 품격이 있었던가.
특히 안사랑채에 반했다. ‘안사랑채’란 말도 처음 알았다.
안사랑채는 안채에 여주인이 살다가 며느리를 보면 며느리에게 안채를 물려주고, 사랑채 뒤편에 지은 작은 건물이다. 아담하고 그윽하고 깊은 정취가 우러나는 다정한 집이다. 유학의 中和, 불교의 中道가 생각나는 집이다. 장성한 아들이 사랑채에 당당하게 거주하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법도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공자가 말한 “從心所欲不踰矩”가 떠오르는 집.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개평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천령 삼걸의 한 분인 옥계 노진의 가족묘도 꼭 추천하고 싶다. 줄잡아 20여 기 정도 되는 크고 풍성한 봉분들과 신도비, 석물이 양지바른 언덕 위에 모여있는 것이 장관이다.
다음에 다시 함양을 간다면, 상림을 천천히 밟아보고, 불적지를 찾아서 참배하고 싶다.
첫댓글 늘 정진하시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아직도 허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살곰살곰 다니고
천천히 쉬어갑니다. 이제 기력이 점점 떨어질테지 우찌 살아야할지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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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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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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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