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연어 이야기
코스트코의 한 매장에서 연어를 살펴보던 고객이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저번 달에 비해 가격이 천원 정도 싸네요? 혹시 품질이 더 안 좋아졌나요?”
“천만에요. 판매량이 늘어 더 좋은 매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연어입니다.”
다음 달에도 한 고객이 연어의 가격을 살핀 뒤 물었습니다.
“연어 가격이 또 2천 원 정도 내렸는데요? 품질이 괜찮은가요?”
“물론입니다. 고객님들이 연어를 많이 사주셔서 지금 1주에 2억 원대의 매출이 나옵니다. 그래서 더 좋은 품질의 연어를 껍질과 뼈를 제거한 더 좋은 상태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정성을 다한 대답은 고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흘렀습니다. 어이없게도 고객들은 무려 5년간 코스트코 연어의 연매출과 단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으며 1파운드에 7천 원 하던 연어가 더 좋은 품질인데도 어떻게 4천 원에 판매됐는지 소위 ‘코스트코의 연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이 연어 이야기는 미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 정도로 열풍을 일으키며 퍼져나갔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일지라도 감동이 있는 내용은 저절로 전파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복음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섬기고 감동을 주는 신앙인과 교회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에 감동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 말고 좋은 이야기만 세상에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명의 의무
일본의 사업가 안도 시로후쿠는 우연히 밀가루를 튀기는 방식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라면을 개발한 그였지만 라면이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고 맛의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후의 삶의 목표를 ‘라면을 세계에 퍼트리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국경이 없다고 생각한 안도는 먼저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 라면을 유행시키면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에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체류하며 현지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의 습관을 연구한 안도는 젓가락질을 못하고 적당한 그릇이 없어 인스턴트 라면을 반으로 쪼개 머그컵에 담아 먹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먹기 좋은 용기에 넣은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컵라면’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70여 개 국에 수출되며 많은 비슷한 상품들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라면을 향한 한 사업가의 열정이 컵라면을 만들고 70여 개 국에 라면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도 복음 전파를 위한 우리의 열망이 훨씬 강해야 합니다. 복음전파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잊지 말고 나의 사명으로 삼으십시오. 아멘!
주님! 복음을 향한 간절함과 뜨거운 열정을 주소서.
말이 아닌 행동이 수반되는 복음을 향한 사명감을 가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대 차이를 없애라
고대 이집트, 중세 로마, 춘추전국 시대의 중국에도 각종 문헌을 연구하다 보면 소위 요즘 말하는 ‘세대 차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지금 시대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도 ‘세대 차이 문제’는 마찬가지로 심각합니다.
다음은 경제잡지 포브스에 실린 ‘직장 안에서의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입니다.
1. 내 고정관념으로 판단하지 말아라.
2.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함으로 장애물이 되지 말아라.
3. 내가 적응하기 어렵다고 불평하지 말아라.
4. 누구나 나이는 먹으니 지금 젊다고 늙은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라.
5.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아라.
6.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보여라.
7. 식사를 같이 해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인종, 성별, 교파, 나이, 국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믿음으로 연합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가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젊은 세대는 어른들에게 지혜를 배우고, 어른들은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신지식을 얻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교회와 가정을 세우십시오. 아멘!!
주님! 서로를 이해할 여유와 배려를 마음에 심어주소서.
나이와 지역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돌보고 연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다함이 없는 능력
미국 텍사스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예이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장 경영에 영 소질이 없었던 예이츠는 해마다 부채가 늘어 감당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은행은 예이츠의 농장을 조금씩 압류했고 남아있는 땅은 집과 마당, 그리고 약간의 목장이었습니다.
버는 돈마다 빚을 갚아서 생활도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히 이어가던 예이츠에게 하루는 유전개발회사가 찾아와 높은 확률로 예이츠의 목장에 유전이 있을 것 같다며 시추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예이츠는 시추를 허가했고 다행히 압류 당하지 않은 유일한 목장에서 유전이 터졌습니다.
예이츠의 이름을 따 ‘예이츠풀’로 불리는 이 유전은 하루에 8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고 이로 인해 예이츠는 하루에 수억 원씩 30년이나 받는 큰 부자가 됐습니다.
땅 밑의 충분한 석유를 몰랐기에 예이츠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하는 대로 주실 주님은 믿지 않고 세상의 방법에만 목을 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주시는 주님께 큰 믿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경험하게 하소서.
굳건한 믿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은 주님께 간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약점을 쓰시는 주님
발음이 어눌해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님은 매일 아침 식사를 하며 토론을 했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신문을 읽게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아이는 달변가가 됐고, 누구와 대화를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 미국의 대통령이 됐던 케네디 대통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의 19살 먹은 한 청년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알고 싶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의 단점 9가지를 적고 고치려고 노력하던 청년은 뛰어난 글 솜씨와 인생을 깊게 성찰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가장 먼저 썼던 글은 바로 일기였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많은 교회를 다니며 사람들의 모습에 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의 연약함은 부족함이 아니었습니다. 연약함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쓰임 받는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결해주십니다. 나의 약점도 귀하게 쓰실 주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약점까지도 주님 앞에 드리오니 귀하게 사용해주소서.
사람들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사랑으로 감싸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그리스도인의 자랑
인도 관청에서 일하던 터커는 젊은 나이에 고위직에 오른 유능한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영접한 뒤로는 기존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수많은 인도의 영혼들이 자꾸만 터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국 소명에 응답하기로 한 터커는 일을 그만두고 동역자들과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신발이 녹아내려 일행은 맨발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목적지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서 퉁퉁 부르터 있었습니다.
첫 출발부터 너무 고생을 한 일행은 후회도 됐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터커 일행의 부르튼 발을 보고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우리를 찾아왔다면 필시 중요한 말을 전하러 왔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발로 인해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터커 일행은 계속해서 신발을 신지 않고 인도를 돌며 복음을 전했고 영적 불모지와 같은 인도에서 2만 5천 명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복음을 위해 받은 고난뿐입니다. 복음을 위해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이 유일한 자랑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만을 자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상의 빛
1999년 12월에 미국의 시사화보잡지 ‘라이프(Life)’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밀레니엄을 기념해 ‘지난 1000년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1위는 발명왕 에디슨이었는데 사람들이 에디슨을 뽑은 가장 큰 이유는 ‘전구로 빛을 발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의 ‘와이어드(wired)’라는 회사에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조회수 기준으로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입니다,
1. 예수
2. 공자
3. 뉴턴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지에서는 아예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을 뽑았는데 1, 2, 3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
2. 마호메트
3. 나폴레옹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빛’, 그것도 영혼의 ‘빛’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등대의 역할을 감당하십시오. 아멘!!
주님! 영혼을 밝히는 유일한 빛인 주님을 품고 살게 하소서.
유일한 빛 되신 주님을 따르고 세상에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합심 기도
몇 년 전, 어느 장로님으로부터 아들의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 관련 기도를 부탁받았습니다. 필기시험 날, 저는 1교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장로님 부부도 집 근처 교회에서 기도했으며, 수험생도 6개월간 휴대전화를 정지하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수험생은 필기시험 합격 후 체력검사와 면접시험을 거쳐 경찰공무원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던 중 검찰직 공무원 시험도 합격해서 지금은 검찰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인이 기도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한 후 목회자의 합심 기도 도움을 요청하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합심해서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을 봤습니다. 합심 기도는 위대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두세 사람이라도 말씀을 붙잡고 합심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선명한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조개나물 이야기
희귀 식물인 조개나물은 놀라운 꽃입니다. 두 가지가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이름이 꽃이 아니고 나물이라는 점입니다. 이유는 분명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꽃이 달린 원줄기와 잎이 고혈압과 감기 등의 약재로 쓰이고 이뇨제로도 사용되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이 나물이 주는 유용성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부른 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이 나물이 갖고 있는 보슬보슬한 털입니다. 이것은 이 나물의 자기결정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꽃에 접근하는 벌레와 곤충에 대해 일부에만 접근을 허용합니다. 무엇보다 꿀벌에게 자기를 허용하는 독점성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훌륭한 꿀을 선물 받을 수 있습니다.
조개나물은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유익하고, 동시에 자기결정을 통해 귀한 선물도 줍니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하다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존엄합니다. 조개나물의 꽃말이 ‘존엄’과 ‘순수’라고 합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이름이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매력적인 한국인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를 장악한 이후 애플TV+를 통해 또다시 세계의 관심을 끈 드라마가 있습니다. ‘파친코’입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4대에 걸쳐 살아온 재일 한국인들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재미교포 소설가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재미교포 1.5세인 이 작가는 예일대 재학 중 선교사 강연을 통해 재일동포 중학생의 비극적 사연을 듣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가는 이미 재미교포들의 삶을 조명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을 출판한 바 있고, 한국인의 교육열을 다룬 ‘아메리칸 학원’(가제)을 집필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입니다.
이 작가는 한국인 이야기를 계속 쓰는 이유에 대해 일본과 미국, 한국에 사는 한국인의 삶이 각기 다른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한국인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한국인 이야기를 세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밝힙니다. ‘매력적인 한국인’.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다시금 새기고픈 구절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
어릴 적에 경험한 일입니다.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데 갑자기 마당으로 무언가 툭 떨어졌습니다. 꿈틀거리는 미꾸라지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미꾸라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시냇물에 있던 미꾸라지가 도랑을 거슬러 오르고, 소나기 때문에 파인 물길을 거슬러 올라와서, 추녀 끝에 떨어지는 물살을 치고 오르다가 마당으로 튕겨 나간 것입니다.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생명의 신비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에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거센 도전에 맞서 거슬러 오르는 것입니다. 아널드 J 토인비는 언제나 도전에 응전해 나간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진보한다고 보았습니다. 환란과 박해에 맞서 이겨낸 믿음의 선조들에 잇대어 오늘의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히 10:39, 새번역) 고난의 싸움을 견디며 물러서지 않았던 믿음의 선조들의 증언입니다. 그러고 보니 물고기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이었네요.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남과 다름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화려한 음악의 선율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내내 더 강하게 흐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쉼표도 없이 이어지는 비교의식, 경쟁의식입니다. 비엔나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에게는 나름의 중후한 음악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모차르트의 재능과 자신의 음악을 비교하고 시기합니다. 그러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자기 인생을 쓰라리게 되돌아보는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이 어느 누구나 일차적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남과 다름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또 그 다름을 누리는 인생만큼 보기에 아름다운 인생이 없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자꾸 남과 비교하며 그 사람처럼 되라고 하는 것은 그 자녀에게는 희망고문입니다.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무엇보다 그를 남다르게 지으신 하나님의 뜻에 어깃장을 놓는 것입니다. 자녀가 불필요한 경쟁의 희생자가 돼 여기저기서 실패자란 이름으로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하나님이 그를 지으신 목적대로 ‘너는 남과 다르다’ ‘네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는 점을 확실히 일깨워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율법적 회개와 복음적 회개
회개 기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율법적 회개와 복음적 회개입니다. 율법적 회개는 죄의 징계와 심판의 두려움 즉,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결과 때문에 고통스러워 기도하는 것입니다. 반면 복음적 회개는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실이 고통스러워 회개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의 균형을 경건이라 정의하면서 “경건한 사람은 지옥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일상적 모습은 어떻습니까. 율법적 회개에 머문 채 참된 회개는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회개는 내 죄로 인한 징계와 심판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한 통곡입니다. 죄를 이기는 회개의 능력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오랫동안, 아버지는 제 마음속에서 거짓말쟁이이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혹시 열대야로 고생하신 것은 아닌지요? 오늘은 ‘소양인’에게 필요한 보양음식을 소개합니다. 소양인은 ‘상체가 발달하고 하체가 날씬한 체형이며, 여름나기를 어려워하는 체질’이랍니다. 소양인은, 돼지삼겹살과 오징어회가 좋고, 보리밥을 청국장에 비벼 오이냉국과 함께 먹는 게 좋답니다. 과일로는 자두, 수박, 참외, 멜론입니다.
아버지는 제과회사의 영업사원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이가 썩을 수 있다’며, 생일이나 성탄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과자를 조금씩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날 저녁, 아버지께서 초코파이 여러 상자를 들고 오셨습니다.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라.” 그때부터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과장상자를 들고 오셨습니다. 동시에 아버지의 월급봉투는 얇아져 갔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께 넌지시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그러자, 아버지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아버지께 새로운 가게가 배정되었는데, 기록을 보니 유독 외상이 많았답니다. 밀린 과자 값을 받으러 찾아가자, 꼬질꼬질한 어린아이 둘이서 찬 바닥에 앉아 놀고 있었습니다. 구멍가게 주인 내외는 ‘장사가 안 되어 쌀마저 이웃한테 구걸하여 아이들을 먹인다.’고 했습니다. 차마 밀린 돈을 받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 대신 과자를 한 상자씩 사 오신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다음 날 검은 봉지에 쌀을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상사는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폭언을 하면서 계속 월급을 깎았습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위암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씀했습니다. ‘당신과 자식들은 저세상에서라도 꼭 지켜주겠다.’고 말입니다.
한동안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아버지는 길을 걷다가 옷 가게가 보이면 ‘마네킹이 입은 옷을 빤히 바라보시다’가 말씀했습니다. “수연이가 저런 옷을 입으면 예쁘겠다. 대학 가면 사 줄게.” 저는 그날을 간절하게 기다렸지만, 결국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버지는 제 마음속에서 거짓말쟁이이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이수연 / 경기도 남양주시)
저는 이런 글을 대하게 되면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사실 저야말로 하나뿐인 자식한테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서 능력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목회하는 동안 내내, 딸한테 잘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됐습니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융통성이 있었다면, 아니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돌아볼 것 없이 그냥 자기 앞길만 잘 챙겼다면, 딸한테서 ‘조금은 인정받는 아버지’가 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물맷돌)
[이 아비도 네 할아버지한테는 아들이었으며, 또 네 할머니한테는 애지중지하는 어린 외아들이었다. 네 할아버지께서 이 아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내가 이르는 말을 네 마음속에 새겨 두어라. 내가 이리저리 일러주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살아야 하느니라. 그래야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느니라.’(잠4:3-4,현대어)]
"어떻게 매일 행복하고, 언제나 서로 아껴주기만 할 수 있겠어요?”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중복 날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삼복더위 잘 이겨내시고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복날에 먹는 보양식도 자신의 체질에 맞게끔 먹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답니다. 태양인에게는 쇠고기, 돼지고기, 장어 등의 고단백 식품과 고지방 음식, 맵고 뜨거운 음식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태양인의 여름철 보양식에는 맵지 않은 잉어탕과 잉어죽, 메밀국수, 냉면, 막국수가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내일은 태음인)
대부분의 모든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원합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가정’을 말할 겁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미워하는 집’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은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할까요?
연인과도 갈등이 생기고, 매일 보는 직장상사에게도 반감을 갖게 되는데, 가족에게도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과 욕심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동생, 나, 머릿수만큼의 욕심이 모인 집합이 바로 가족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갈등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 나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구성원이나 자기 자신에게 ‘가중처벌’을 내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감정만 취하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족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감정의 불순물’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미움도 사랑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을 미워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사랑부터 미움까지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다 보면,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하면서 ‘가족 간에 생긴 갈등’에 대한 사연을 듣고 있으면, ‘가족에 대한 순결의식’이 ‘당사자의 자책감’을 가중시킨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병원에 와서 상담을 받는 쪽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받는 쪽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가 짊어진 짐’을 덜어주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 해요. 가족이라는 이름을 빼면, 그냥 ‘관계의 집합’일 뿐입니다. 어떻게 매일 행복하고, 언제나 서로 아껴주기만 할 수 있겠어요?”(출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정신과전문의 유은정 박사)
아시다시피, 국가 간 전쟁도 먼 나라와 싸우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대개는 이웃해 있는 나라끼리 싸우게 마련입니다. 어쨌든, 인간 사이의 갈등과 다툼은 이웃해서 함께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물론, ‘가족끼리는 서로 다퉈서는 안 된다’는 금기(禁忌)가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 박사는 ‘그런 순결의식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깊은 인간관계’는 ‘서로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뿌리내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생겼을 겁니다.(물맷돌)
[가족끼리 서로 싸워 의가 상하면 다시 화목하게 지내기가 든든한 성채 빼앗기보다도 더 어려우니, 가족 간의 다툼을 풀기가 성문의 문빗장 열기보다 어렵다.(잠18:19,현대어)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주 예수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고전1:10,현대어)]
“우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요!”
샬롬! 어저께 주일은 편안히 잘 보내셨는지요? 중복을 하루 앞둔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이미 뉴스보도를 통해서 아시겠지만,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 중증으로 악화해서 입원할 위험이 보통사람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 혈압이 높으신 분들은 각별히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주말에 등산 갈래?” 친구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습니다. ‘동네 산 정도야 별거 아니겠거니!’했습니다. 약속당일, 저는 공복 상태로 산에 올랐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일어났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흙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놀란 친구가 발만 동동 구를 때였습니다. “괜찮으세요?” 별안간 누군가가 제 등을 툭툭 두드렸습니다. 이윽고 제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습니다. 새큼한 향이 물씬 나는 귤이었습니다. “혹시 공복이신가요? 공복에 등산하면 위험해요!” 또 다른 목소리와 함께 반대쪽 손에는 초코바가 쥐어졌습니다. “힘들어 보이는데, 이거라도 드세요.” 이내 입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저를 위해서 누군가가 직접 사탕껍질을 까서 입에 넣어준 것입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제 주변은 걸음을 멈춘 등산객으로 가득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저는 퍽 당황스러웠습니다.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에게 등산객들은 안도의 눈빛과 미소를 보냈습니다. “괜찮아져서 다행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요! 우리.” 그러곤, 다시 정상을 향하여 발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베푼 호의에 가슴이 일렁이었습니다. 다시금 내디디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 등을 다정하게 밀어주는 듯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상 풍경을 둘러보니, 등산객들이 저마다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도 시원하게 웃었습니다. 비로소 등산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습니다.
‘서로 의지하면서 동행하는 일, 낙오자 없이 모두 함께하는 짧은 여행길!’(출처; 좋은생각, 김유진 / 경기도 안산시)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도 없잖아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고로 서로 모여서 도와가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도와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의 손길을 통하여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물맷돌)
[‘너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듯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여러분이 지키고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부자들에게만 친절히 하고 아첨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죄를 짓는 것입니다.(약2:8-9,현대어)]
‘아, 내가 살았구나!’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7월 들어 네 번째로 맞이하는 주말아침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나태주 시인의 시(詩) ‘부부약속’을 소개함으로써 아침을 열어갈까 합니다. ‘사람의 가장 큰 소망은 /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 필요한 것은 기쁨 /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 기쁨이 되겠습니다. / 당신도 내 기쁨의 / 이웃이 되어주십시오.’
지난 연말, 저는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목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신마취는 여든을 앞둔 고령 환자에게 깊은 근심거리였습니다. 전신마취로 인한 부작용, 기저질환의 악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 등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꽃길을 건너 저세상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폭죽처럼 피어나는 봄날을 걷고 싶었습니다. 삶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도 어려운데, 속절없이 등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까지, 저는 건강악화로 최악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왼쪽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개월을 꼼짝없이 집안에만 갇혀 살았습니다. 제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병이 재발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답답함에 숨통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겨우 몸을 추슬러 지내던 와중에 또다시 질병과 맞닥뜨리게 된 겁니다.
다시 떠오르는 악몽 같던 기억을 애써 외면하면서, 저는 수술대에서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의료진은 제 다리와 팔을 끈으로 동여맨 다음, 코와 입에 풍선 같은 것을 끼워 여러 번 심호흡을 시켰습니다. 갑자기 몸의 한 부분이 아프게 찔린 느낌이 들더니,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뭇별들의 제자리걸음처럼, 저의 밤하늘을 지켜내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잠든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득히 울렸습니다.
“환자분, 수술 끝났어요. 눈떠 보세요!” 그 순간, ‘아, 내가 살았구나! 정신이 또렷하다’라는 안도감이 온 몸을 에워쌌습니다. 아직도 뛰는 가슴이 남아 있는지, 시국이 안정되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녀보고 싶은 염원이 있습니다.(출처; 샘터, 이인환 / 시인)
앞서 소개한 나태주 시인의 시(詩)에도 나왔듯이 ‘사람의 가장 큰 소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차치하고서더라도 ‘잠자듯이 조용히 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신 분들도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욱 간절한 소망은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은 그나마 기운이 남아 있어서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라고 큰소리치지만, 글쓴이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아, 내가 살았구나!’하며 안도했다고 했습니다.(물맷돌)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선한 소망과 영원한 위로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위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말과 모든 선한 일에 더욱 힘이 되어 주시길 기도합니다.(살후2:16-17,쉬운성경)]
“너도 나처럼 살아라!”
샬롬! 밤새 별고 없으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은 ‘삶이 끝나가는 말기 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네 가지 후회’입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둘째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셋째,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넷째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입니다.
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때 그 무렵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이랑 있다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어릴 적 자주 들은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곧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나는 아버지가 내게 했던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처럼 ‘너도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다만, 제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아버지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할 꿈, 살지 못한 인생의 회한’이 깊이 스며있었다면, 제가 하는 말에는 ‘이루어보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었던 인생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으리라’고 여겨졌습니다.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저의 인생 전체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불현 듯, ‘저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 결과, 임상진료에서 벗어나 ‘심리훈련’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의 나이 38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자기 돌봄 워크숍’을 하면서, 지난날의 저와 같은 사람을 여럿 만났습니다. 이들은 ‘자존감(自尊感)’이전에 ‘자기감(自己感,Sens of Self)’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 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정체성 혼란’과 ‘개별성 장애’로 이어집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 훈련’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기감 회복’은 ‘자기다움’으로 이어져서, 자연스레 자존감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 덕분에 자기감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크면 이렇게 이야기해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너도 나처럼 살아라!”
(출처; 좋은생각, 문요한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어제 보내드린 아침편지 제목은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라”였습니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아침편지의 제목은 “너도 나처럼 살아라!”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글쓴이가 그의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어제 ‘아침편지’를 읽어봐서 아시겠지만, 글쓴이가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어쩌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녀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에서 두 번이나 “나를 본받아 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나를 본받아라!”고 했습니다. 평소 저는 ‘사도바울’의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바울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요한 씨가 그의 자녀에게 “너도 나처럼 살라!”고 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아서 그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물맷돌)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롬12:2,현대어) 사랑하는 자여, 그대는 이런 악한 일을 본받지 말고 선한 일을 본받으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지만,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요삼1:11,현대인)]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라!”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푹푹 찌는 삼복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아무 이상 없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비흡연자로서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 중, 환풍기에서 나오는 담배연기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한 제품이 나왔습니다. 온라인마켓에서 ‘에어스케이프’로 검색하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에 비하여 가격이 꽤 셉니다.
어린시절, 아버지께서 술에 취하시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행정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평소엔 술을 잘 마시지 않았으나, 일이 년에 한 번씩은 만취상태로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대개 직장에서 수모를 당했거나 승진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런 날이면, 자고 있는 자녀들을 깨워서 일장연설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등, 신세한탄에 가까운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끝은 늘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공무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불안스러운 나머지, 삶이 버겁게 느껴졌던 겁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고, 주어진 일이 있으니 해야 한다’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뭔가를 선택하는 게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것도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한 것입니다. 그 과(科)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과(科)를 선택할 만큼, 제가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부터 이해하고 치료하고 싶었습니다. 전문의(專門醫)가 되고, 차츰 고통이 옅어지자, 그 동기조차 약해졌습니다. 저의 인생은 빈 배처럼 물결 따라 흘러갔고, 제가 하는 일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고도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묘하게도 그 느낌은 저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고 다그치는 마음이 줄어들고, 이전보다 저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내일 계속)(출처; 좋은생각, 문요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부정적인 언어를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들 앞에서 부모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진정 삼가야 할 일입니다. 글쓴이가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하여 막연히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선친이 보여준 ‘부정적인 모습’이 그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부모는 자녀가 자연스레 본받아 살게 되는 모델이고,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신8:5,현대어)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나처럼 ‘괜찮은 사람’ 만난 것을 축하해요!”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다시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7월 17일자 인터넷신문에는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멕시코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맨몸으로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 15일자 신문엔, ‘외국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멕시코가 꼽혔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기념일’입니다. 결혼기념일은 ‘19세기 영국에서 매년 결혼한 날짜에 축하기도회를 가졌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날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결혼관계란, 때때로 어렵고 아픈 과정을 지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며 친밀한 관계’입니다.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부부사이에서, 남자가 원하는 것은 ‘감사와 인정’이고, 여자가 원하는 것은 ‘관심과 이해’라고 합니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따스한 말 한마디로 ‘감사와 인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 연예인들은 매년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예인은,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로 미얀마의 빈민촌에 학교를 세웠는데, 결혼기념일에는 미얀마에 있는 그 학교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션, 정혜영’부부는 ‘매일 1만 원씩 모아 결혼기념일에 365만원을 한 봉사단체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물론, 결혼기념일 하루를 잘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머지 364일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에 서로가 ‘나처럼 괜찮은 사람 만난 것을 축하한다.’고 축하메시지라도 날려 보내면 어떨까요? 아니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맞추며 사느라 고생이 많다.’고 격려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아무튼, ‘당신을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날을 새롭게 마음에 간직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윤청실 / 한국연합회 가정봉사부장)
사실, 결혼 전에는 남녀가 서로 한껏 예의를 갖춰 상대하다가도, 결혼 후에는 그 예의를 차츰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선물 아니면 사랑의 메시지’라도 날린다면, 그동안 배우자에게 실수했거나 부족했던 점을 벌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남아있는 세월 동안 매끄럽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써 이런 노력을 해야 하리라고 봅니다.(물맷돌)
[그 자녀들은 자기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며, 그 남편도 그녀에게 ‘세상에는 훌륭한 여성들이 많지만, 당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여성이오.’하고 칭찬한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여성은 칭찬받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것이다.(잠31:28-31,현대인)]
외롭고 불안한 새벽,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샬롬! 어젯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도 더위를 잘 극복하시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미국의 ‘앤드류 웨일’ 박사가 개발한 ‘복식 호흡법’은 ‘빠르면 1분, 늦어도 3분 안에 잠들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째, 4초간 입을 다문상태에서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부풀린다. 둘째, 7초간 숨을 참는다. 셋째, 8초간 입으로 숨을 천천히 내쉬며 배를 당긴다. 이렇게 순서대로 3회 정도 반복한다.’
제가 어릴 적에 이혼하신 아버지는 비행기로 열(10)시간도 넘게 걸리는 먼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볼 수 없었던 8년 동안, 삼촌은 저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멀리 살면서도 종종 학교로 찾아와 밥을 사 준 것은 물론, 용돈도 쥐어주셨습니다. 삼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 어릴 적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밤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막 다니기 시작한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른들은 ‘다시 입시를 준비하겠다.’는 저를 말렸습니다. 처음으로 제 가슴을 뛰게 만든 꿈을 두고 ‘어린 날의 치기’라고 꾸짖을 땐,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진짜 내가 모두를 힘들게 하는 걸까? 그래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외롭고 불안한 새벽,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삼촌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면 맞을 때가 많단다. 안정된 길을 권하니 말이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 말을 거슬러 훌륭하게 해낸다면 ‘지난 우려’를 한낱 노파심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니? 너라면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해. 마음껏 욕심내고 꿈꿔! 실패하면 어떠니? 너는 아직 젊은데.”
뒤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저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한참 울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꿈꾸라’라는 말은, 당시 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마음이 심란하면, 이 문자메시지를 열어봅니다. 삼촌이 건넨 따뜻한 시(詩)를.(출처; 좋은생각, 김민재 / 경기도 남양주시)
여기까지 글을 다 읽으신 분이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참 좋은 삼촌’이라는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나도 이런 삼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이웃’이란, 바로 이분처럼 그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우리 모두, 이 삼촌처럼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물맷돌)
[너희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너희 동족에게 앙심을 품지 말며, 너희 이웃을 너희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다.(레19:18,현대인) ‘그대가 베푼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주었다’는 말을 듣고, 나 역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빌레몬서1:7,현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