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믿음/영향력
제목 :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
성경 : 눅 7:1~10찬송 : 545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092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눅 7: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눅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눅 7: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눅 7: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눅 7: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눅 7: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눅 7: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눅 7: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눅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눅 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김광동 장로님의 저서 "세상 끝에서 만난 더 멋진 세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2015년 4월 25일, 강도 7.8 규모의 강진이 네팔을 강타했고, 3주 후 7.3 규모의 2차 지진이 찾아왔다. 두 차례의 지진으로 9,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 가옥 붕괴 등 피해를 본 인구가 800만 명에 이르렀다. 즉시 긴급 구호팀을 꾸려 네팔로 보냈다. 당시 구호를 펼쳤던 마을 중에서 해발 1,300미터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레다라 마을이 있었다.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어져서 구호팀은 2시간을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지진으로 인해 가옥 82채가 모두 무너졌고, 학교 건물도 부서져서 아이들이 천막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선교사님이 3~4개월간 그들과 함께 지내며 마을을 복구하기로 했다. 건축 자재들을 산꼭대기 마을로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길을 닦아야 했다. 도로를 깔고, 상수도 시설을 복구했으며, 샤워가 가능한 71개소의 화장실을 지었고, 69채의 새집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마을 전체가 회복되는 데는 결국 1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마을 주민의 1%도 안 되던 그리스도인의 수가 35%까지 늘었다. 지진 전에는 12명이 모여 예배했는데, 1년 후에는 9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이름으로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그들 스스로 예배 처소로 찾아왔고, 마지막에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교회를 지었다. 선교사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주민들 마음이 열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 사람들은 그의 믿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칭찬받은 백부장의 경우처럼, 주님께도 그 믿음을 칭찬 받을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믿음
눅 7: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눅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눅 7: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예수님이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신 사건의 공간적 배경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고 있었고, AD 44년까지는 이 지역이 로마의 직접 관할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백부장은 헤롯 군대의 백부장이었을 것이며, 로마 군대의 백부장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유대인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장로들이 이 백부장이 예외적임을 설명한 것이나, 이 백부장이 집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나, 예수님이 이 백부장의 경우처럼 큰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이 백부장은 분명 이방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은 아마도 자신의 군대를 위해 이방인을 고용했을 것입니다. 헤롯의 군대에 유대인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가정하더라도 이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눅 7: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눅 7: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 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종을 치유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유대인 장로들은 백부장이 주님의 은혜를 받기에 충분히 경건한 사람임을 설명합니다. 이방인을 배척했던 유대인 장로들에게 그렇게 인정받은 것은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형식적 신앙생활을 했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헤롯 군대의 백부장은 식민지에서 힘과 재력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남용하기보다 식민지였던 유대 사회를 존중하고 인격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가버나움에 회당을 지어 준 일에서 식민지이지만 유대 백성을 사랑한 백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백부장의 인격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부장의 종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유대인 장로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예수님을 찾아와 그를 신원하기에 이릅니다.
이같이 믿음을 실천하는 성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식적인지 진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감독과 장로를 세울 때 외인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딤전 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인의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마을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백부장의 모습을 통해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을 대할 때 그들의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서로 다름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기 시작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하인의 구원을 요청했고, 이방인으로서 처음으로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과 지역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축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할 길은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마음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해는 곧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동기가 되며,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의 열매를 맺을 기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
백부장은 그의 집으로 오시는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했나요?
√눅 7: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눅 7: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백부장이 예수님을 ‘주여’(헬, 퀴리에)라고 부릅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주님께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내가’로 번역된 헬라어 ‘에마우톤’은 ‘나 자신도’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은 유대인의 선생님이자 기적을 베푸시는 신적 권위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백부장은 군인으로서 권위와 명령의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시지 않더라도 말씀만으로 충분히 종을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같은 이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백부장은 자신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기에 명령을 받으면 충성을 다해 그 명령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눅 7: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것은 믿음이 개념과 일치합니다. 또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믿음에 대한 백부장의 명확한 개념 이해에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높게 사십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기적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눅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했다고 감탄하십니다. ‘이만한’이란 ‘토수토스’라고 하는데 ‘그렇게 큰’, ‘그렇게 많은’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백부장처럼 인정받고 칭찬 받는 믿음입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눅 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백부장의 믿음대로 예수님이 그 집에 방문하지 않았어도 그 종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대로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도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 곧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에 이르셨습니다.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였습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왕의 신하의 아들은 중병이었습니다. 거의 죽음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신하는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가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집안이 다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꼭 직접 가셔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가라 네 종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종을 구원했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에 그 말씀이 그대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기 때문입니다(약 1:6)
백부장의 믿음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많은 시간이 지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바로 보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 인생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생명의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게 합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있는 ‘집’에 오셔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19). 이 평강이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비록 백부장의 믿음에 비해 볼품없는 제자들의 믿음이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사도로 살아가도록 믿음의 훈련을 사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믿음의 도전입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사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첫째,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구원하고자 오셨습니다.
√둘째, 유대인 장로들이 인정하듯 백부장은 이방인이지만 그가 몸담은 유대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셋째, 백부장은 ‘말씀만 하사’ 자기 종을 고쳐 달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도 놀라워하신 믿음의 고백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이 존재하시고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데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삽시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이 진리에 대한 확신이 예수님도 놀라실 정도의 믿음을 내보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이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음으로 주님을 감동시키고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