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 한나라 금석학 ·죽간 은작산한간 铁器时代 · 银雀山汉简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은작산 1, 2호 한묘 출토 죽간 당시의 현장사진 한무제 때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산둥성 린이현 은작산 1호와 2호 한묘에서 각각 출토되었습니다.린이현은 산둥성 남동부에 위치하고 고대에는 鄅국에 속했으며 서한 시대에는 동해군에 속했습니다.
은작산은 린이현 성남면에 있습니다.두 묘는 1972년 산둥성 박물관 및 기타 부서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두 무덤은 모두 직사각형 수직혈로 한 관과 한 덧널입니다.덧널방은 관실과 변상자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부장품은 대부분 옆 상자에 넣어져 있었고, 토기, 칠기, 동경, 동전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1호분의 죽간은 변상자 북쪽에서 출토되었으며, 죽간과 함께 반량전과 삼수전 1매가 출토되었습니다.2호분 죽간은 변상자 남쪽 동벽 부근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두 무덤에서 출토된 동전과 2호분에서 출토된 원광원년력보에서 1호분의 하장연대는 기원전 140년~기원전 118년, 2호분의 하장연대는 기원전 134년~기원전 118년으로 추정됩니다.은작산 한묘 죽간의 필사 연대는 묘지보다 빨라야 합니다.
▲ 제1호 무덤 죽간 서체는 초기 예서로, 서한문과 경지무제 초기에 쓰여졌습니다.1호분에서 출토된 옻칠한 귀잔 2점은 바닥에 예서 '사마(司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무덤 주인의 성씨로 여겨집니다.2호분 출토시 어깨에 '소씨십두(召氏十斗)'라는 글자가 새겨진 항아리로, '소씨(召氏)'는 2호분 주인의 성씨여야 합니다.
▲ 2호분인 은작산 한묘의 죽간은 총 4,942개의 완전간, 그리고 수천개의 잔해가 있습니다.그 내용은 '손자병법', '손빈병법', '육도', '위현자', '안자', '준법수령십삼편', '원광원년력보' 등 선진 고서적과 고일서를 포함합니다.
중국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이렇게 많은 귀중한 고서가 출토된 것은 드문 일입니다.이 고서들은 모두 서한 때 손으로 쓴 것으로, 비교적 이른 필사본입니다.그것은 중국 역사, 철학, 고대 병법, 역법, 고대 문자학, 책자 시스템 및 서예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은작산 한간 죽간(銀作山 漢简竹简)의 형태인 죽간(竹简)은 모두 죽간(竹质的)이고 죽간(竹简)과 함께 나오는 죽간(竹牍)만 목질입니다.죽간(竹简)의 길이는 3가지로
①길이 69cm, 한척 3척, 경첩련 32간, ②길이 27.6cm, 한척 2촌 5천간, ③복원길이 18cm, 한척 8촌 10간입니다.한대 책자의 다양한 길이는 한대의 예절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죽간(竹简)은 가는 실로 엮어 만든 것으로, 실오리는 오래 전에 썩어 끊어졌으나, 간(简)에 남은 실오라기 자국은 2줄과 3줄의 실오라기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편흔에 남은 여백을 보면 죽간을 먼저 엮어 책으로 만든 다음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간문은 묵서이며 간체당 글자 수가 다르며 일반적으로 길이 27.6cm로 약 35자를 씁니다.
기사의 끝에는 대부분 이 기사의 글자 수를 나타내는 카운트가 있습니다.필기 형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간결한 상단 및 하단 끝에 1~2cm의 공백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백을 남기지 않고 전체 간인을 위에서 아래로 채우는 것입니다.
죽간편제의 책은 ①단독으로 제1간( 1)의 간수(简首) 앞면에, 본문은 제2간(第)부터, ②제1간(简首) 뒷면에 본문(本文)을, ③편의 말미에 마지막 간(简)의 글 끝자락 아래에 적은 형식입니다.간첩을 쓴 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말아 올려 첫 번째 간첩 뒷면의 제목이 노출되어 검색에 편리합니다.
▲ 은작산에서 출토된 도정죽간(陶丁竹简)의 내용 은작산 1호분에서 출토된 죽간(竹简)은 전본(傳本)의 서적과 고일서(古佚書)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고일서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요약본과 원본의 문장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 유형이 엇갈립니다.
현존하는 전본의 서적은 ① 손자병법(孫子兵法, 즉 손자 13편)과 산실된 편입니다.지형'편을 제외한 나머지 12편의 텍스트가 발견되었습니다.그러나 간이와 함께 나온 편제 목독 파편에는 '9지' 편제 앞에 '□형'이 있습니다.
금전본 '손자·구지'의 전편은 '지형'이고, 목독의 '□형'은 바로 '지형'이며, 이로 미루어 볼 때 간본 '손자병법'은 13편의 족본이어야 합니다.
산실된 편은 총 4편으로 '오문'편은 오왕과 손자가 진나라 육경의 군사, 정치 제도에 관한 문답을 담고 있습니다.'황제벌적제', '사변', '지형2' 3편은 각각 '행군', '구변', '구지'의 일부 내용을 해석하고 표현합니다.
▲ 손무 손빈 ② '위감자'는 총 5편.간본과 전본 '위감자'의 원본은 모두 6편으로, 그 중 '병령' 1편은 '준법수령 13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간본은 전본 위현자의 병담 정권 수권 장리 원관 5편과 맞물려 있습니다.
③육도'는 총 14개 그룹으로 3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1~7군은 첫 번째 범주로 '육도', '문도' 4군, '무도' 3군에서 볼 수 있습니다.그룹 8~13은 두 번째 범주로 모두 '군서치요', '통전', '태평어람' 및 기타 책에 인용되었지만 원본에는 없는 산실된 문서입니다.14군은 카테고리 3으로 일부 흩어져 있는 잔해로, 그 약식 및 글꼴은 카테고리 1, 2와 유사하며, 약문에서는 문왕 또는 태공망을 언급하는데, 이는 약본 '육도'에 속합니다.
④『안자』는 모두 16장으로 되어 있으며, 전본 8편에 산재해 있습니다.그 중 제10장과 제11장의 판본은 각각 2장으로 분석됩니다.
▲ 육도
산실된 책에는 ① '손빈병법'이 포함됩니다.《한서·예문지》는 《제손자》라고 불립니다.약본은 모두 16편입니다.1~4편 기손자와 제위왕, 전기의 문답은 손빈서임이 확실합니다.
제16 '강병'편에도 손빈과 제위왕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으나, 손빈서의 본문이 아닐 수 있으므로 잠시 권말에 첨부합니다. 5번부터 15번까지의 각 편의 수도는 '손자왈'이라고 합니다.그러나 그 문체와 스타일은 '손자병법' 및 산실된 글과 유사하지 않습니다.
이 편에서 손자는 손빈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손빈서(孫膑書)라고도 합니다. ②준법수령 13편.총 10편으로, 편제문서를 단서로 하여 정리한 것입니다.그 중 '준법'과 '준법'은 나누기가 쉽지 않고 일시적으로 하나로 통합됩니다.
상편'과 '하편'은 간략한 '육도'로 의심되며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두 편의 글이 부족합니다.「준법」편의 내용은 「묵자」가 수성의 법을 논한 「비성문」 및 「호령」 등과 유사합니다.
▲ 은작산에서 출토된 도자기 스토브 '요언'의 글은 격언의 모음집입니다.창고법', '시법', '전법', '위적' 등은 토지, 시전, 창고 및 과세의 법제를 기술합니다.
왕병'편의 내용은 '관'편의 '참환', '칠법', '병법', '지도'편에 흩어져 있습니다.《이법》은 관리를 처벌하는 일을 기록합니다.《왕법》은 왕의 도를 기록합니다.병령'편의 약식은 '준법'편과 동일하지만 '위현자'편의 약식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 내용은 전본 '위현자'의 '병령'편과 일치합니다.
③《지전》 편.《한서·예문지》 병음양가하 저술.④탕러 편.당륵과 송옥을 위해 부를 다스립니다.⑤화병을 논한 글.십관 오의 무과 위국지과 기사 등 40여 편.⑥음양, 계절, 점후의 책.조씨음양 등 10여 편.⑦《상구》, 《장만들기》 등의 잡서.이 외에도 많은 잔류물이 계속 정리되고 있습니다.
은작산 2호분에서 출토된 '원광원년력보'는 10월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 최초의 완전한 고대력보입니다.기록된 회삭간지는 송나라의 '통감목록' 이후 관련 책의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 은작산에서 출토된 도호 은작산 한묘 죽간 중 육도 위현자 안자 등은 당송 때부터 후세에 위조한 것으로 의심돼 온 위서.이번 발굴로 위 서적이 전한(前漢) 전기에 이미 전해진 것으로, 후대에 위서(伪書)가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동시 출토와 함께 중국 문화사의 성대한 행사로서, '사기·손무오기열전'이 손무사오와 손빈사제와 관련된 각각의 병법 전래의 기록을 확인시켜줍니다.한서·예문지'는 '오손자'(즉, '손자병법')와 '제손자'(즉, '손빈병법')를 저술합니다.
《수서·경적지》 중 《제손자》는 이미 저술에 보이지 않습니다.당송 이래 '손자병법'은 조조가 '번잡한 것을 깎고 정수를 붓으로' 쓴 책이라고 생각하거나, 후세 사람들이 위탁한 것이라 생각하거나, 세상에 손무기가 없다고 생각하여 병법은 손빈이 지은 것입니다.'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동시에 발굴되어 이 오랜 의문점이 해결되었습니다.
▲ 은작산에서 출토된 반량전 은작산 한묘 죽간(竹简)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전래의 사적이 다른데, 예를 들어 사기·손무오기열전(史記·孫武吳起列傳)은 제위(齊魏) 계릉(桂陵)의 전투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방연(庞涓)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13년 후, 마릉 전투는 방연이 자살하고 위혜왕의 태자 신(申)이 포로로 잡혔습니다.요약본 '손빈병법·금방연'은 손빈이 계릉을 잡았다고 하는데, 이는 '사기'와 분명히 모순됩니다.현재 자료를 보면, 손빈이 방연을 잡았을 가능성은 확실히 계릉에 있지만 말릉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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