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에는 향기가 난다. 수많은 이들이 밟아 반들반들해진 돌계단, 검은 때가 낀 옛집의 아름드리 기둥, 물자국이 패인 수로, 검은 물때가 낀 돌다리, 이끼가 거뭇거뭇 내려앉은 석조물. 오래된 사찰에서 만나는 세월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초연함과 경건함, 절대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불교가 자친 경건함이기도 하지만 그 세월만큼 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존재들이 가지는 푸근함과 친근함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그 형태를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은 손길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을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특히 우리나라의 GNP가 급성장하면서부터 그 검은 때들은 벗겨지다 못해 통째로 밀려나가고, 그 자리에는 반들반들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새 건조물들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눈에 현대식으로 재건축된 전통사찰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국립문화재연구소은 11월 21일 상명대 밀레니엄관에서 ‘사적지조경 보존·관리·활용방안’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전통사찰 보수와 정비에 따른 경관상의 제문제’를 발표한 동국대 조경학과 홍광표 교수는 전통사찰 가운데 보수 정비가 잘못된 부분들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해 주목을 끌었다.
“국적없는 양식의 무분별한 도입”
홍 교수는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으로 인해 한국 고유의 경관적 정체성을 잃게 되는 첫 번째 요인으로 “국적없는 양식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석단의 경우 “전통사찰은 원래 잡석을 사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하거나 돌을 다듬어 축조하는 바른층쌓기 방식이 있어왔는데 최근 아파트조경에서 많이 도입하고 있는 들여쌓기방식과 같은 국적불명의 이상한 돌쌓기 방식이 도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못의 경우 전통사찰의 못은 연지의 형태가 방형이나 원형의 경우가 많고 축조기법은 호안석축이 높게 축조되는 편이다.
홍 교수는 “불국사 진입로에 조성된 못의 경우 전통사찰의 못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불국사 못은 1970년대 복원공사를 하면서 덧붙여진 것으로, 호안이 자유곡선으로 돼있고 호안석축의 높이도 높지 않은데다, 못 주변에 상록성 관목을 전지를 하여 잘 다듬어놓았는데, 이런 제반상황으로 볼때 일본사찰의 못과 유사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남 대흥사의 무염지, 보성 대원사의 못도 전통사찰의 못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조형물, 전통사찰에서 OUT"
홍 교수는 사찰 경내에 들어오는 외국 조형물도 조경을 해치는 요소로 지적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사찰에서는 경내에 도입하는 조형물들이 정해져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국 사찰에서 도입하여 설치하는 조형물 같은 경관요소들은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며 “특히 그런 조형물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정해진 장소 이외의 곳에는 설치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그 예로 “보성 대원사에서 화계를 조성해야 될 외부공간에 불상을 봉안한 것, 예산 수덕사에서 진입동선 변에 포대화상을 도입한 것”을 꼽았다.
“잘못 모방하면 오히려 촌스러워”
홍 교수는 또 타 사찰의 무분별한 모방도 전통사찰의 경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모방품은 전통사찰의 경관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불국사 석단의 형식을 모방한 청하 보경사 석단, 선암사 삼탕을 흉내낸 대흥사 일지암 석수조 등을 꼽았다.
“부적절한 재료의 사용”
전통사찰의 석단 보수공사시 가장 골칫거리 중의 하나는 재료를 구하는 일이다. 원래는 그 주변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발파석을 사용하여 축조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주 마곡사와 대구 북지장사의 경우 발파석을 사용해서 축조한 경우이며 서울 화계사는 발파석과 콘크리트를 사용해 축조했다. 양산 통도사의 경우 금강계단 외부석축이 일본양식으로 돼 있던 것을 수년전 전통양식으로 개축했는데, 자연석을 사용해 고찰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기는 했는데 너무 큰 돌을 사용했고 축조방법도 좋지 않아 부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계단 역시 석단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안성 칠장사에서는 철도침목을 사용하여 계단을 조성하고 합천 해인사는 화강석을 다듬어 조성함으로써 전통조경의 정체성이 훼손됐다.
“자갈돌, 일본 자객 막기 위한 것”
홍 교수는 사찰 마당에 자갈돌(쇄석)을 까는 것도 전통사찰의 조경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는 일본에서 자객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됐던 것으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통 사찰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도 사찰 조경을 해치는 요소의 하나로 꼽힌다.
“지나치게 화려하면 과유불급”
홍 교수는 “의왕 청계사의 경우 석단 조성을 위해 외부에 화강석으로 조각한 석판을 건식공법으로 붙여서 장엄했고 마당에도 대리석을 깔아놓아 지나치게 화려한 경관연출방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구 동화사와 서울 봉은사도 잘못된 조경으로 꼽았는데 “두 절 모두 대형불상을 외부공간에 조성하면서 후면부 지형을 절토하여 공간을 확보했고 절토면에 인간척도를 넘어선 과다규모의 석단을 설치했고 바닥에는 대리석과 물갈기 한 화강석을 포장하여 지나친 장엄을 하고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홍 교수의 지적들은, 그동안 대학 역사수업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점들이다. 하지만 불교계와 사찰간의 소통 단절로 인해 이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영역 속에서 묻혀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문화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전통사찰에만 가면 한결같이 투덜이 스머프로 돌변한다. 이게 잘못됐고, 저건 아니고...등등. 이들의 눈에 비친 사찰의 풍경 속에는 과거의 조형물을 잘못 복원한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지적을 결코 투덜이 스머프의 투덜거림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전통이라는 것은 우리의 것도 그들의 것도, 그 절을 지키는 이들의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과 키치는 당대에는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지만, 10년 뒤 100년 뒤가 되면 이에 대한 평가는 하늘과 땅이 된다. 전통은 계승돼야 할 귀중한 것이 되지만, 키치는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된다. 키치를 한자어로 하면 ‘사이비’이다.”
홍광표 교수가 발표하기 바로 직전 ‘전통조경시설물 도입에 나타나는 키치적 양상’ 발표를 마친 중부대 홍형순 교수의 마지막 멘트가 마치 전통사찰을 향한 지적처럼 들려 귀가 쫑긋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