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은 몇 번이었던가

[철면천사]

며칠 전, 오랜만에 삼일회 총무로 부터 문자를 받았다.

삼일회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1년 가까이 다녔던 선산군 고아면(지금은 구미시 고아읍) 고아초등학교 31회 졸업생들의 모임이다. 학교이름이 고아초등학교라서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생각하실 어리석은 분은 계시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높을 고(高)에 어금니 아(牙)자를 쓰는데 높은 어금니라 무슨 뜻으로 그런 지명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지형의 생김새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의 학교를 다녔는데 5학년 을 지나 6학년 초에 아버지가 다시 고향인 상주의 화서면(화령)으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는데 상주읍(지금은 시소재지)내에다 가게가 딸린 방을 얻어, 나와 23세에 죽은 누나와 여동생 둘과 91년에 죽은 남동생을 그곳에 살게 하고 당시 막내인 여동생과 두 분이서 화령의 면사무소 뒤에 집을 얻어 가셨다.

나는 누나의 뒷바라지로 상주읍에서 처음 입학했던 상주초등학교가 아닌 상영초등학교에 전학을 하여 다녔는데, 네개의 초등학교가 있던 상주읍에서 두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지금 대구에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서 산후 조리를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하기가 어려우셨던지 우리남매들은 다시 화령으로 가서 합가를 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6학년 2학기를 화령초등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였는데, 내가 왜 화령초등학교동창회에 나가지 않고 5학년 때 다닌 고아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하면, 첫사랑과 관계도 있고 상주 화령초등학교 동창생들의 행위에 대한 섭섭함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새로운 1000년이 시작 되던 2000년 1월 4일에 운명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집을 나와 처음에는 경비원이라도 취직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해 보려고 L제과의 양산공장에서 뽑는 경비원에 지원하였으나 뽑히지 못하고 손 쉬운대로 당시 유행하던 정수기판매원을 하게 되었는데 정수기판매원의 교육을 받는 날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전 날의 공장에 경비로 오지 않겠느냐고 뒤 늦게 전화가 왔었는데 운명은 또 나를 그냥 앞으로만 나아 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검은가방(일명 007가방)을 들고 친구나 친지들을 찾아 다니게 되었는데, 영업인으로서의 자질이 없고 능력이 없다보니 실적은 별로 올리지 못하고 그저 추억을 더듬듯이 친척집이나 친구집, 철도나 경찰에서 같이 근무했던 옛 동료들을 찾아 다니는게 고작이었는데, 삼십 몇 년만에 찾아 간 화령에서 아직 시골에 남아 있던 친구 몇명을 만나고 서울에 사는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서울로 올라 가서,  같은 시장 소재지에서 살았었고 그의 어머니가 음식점을 운영하고 아버지가 이장일을 맡아 보시던터라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고 꽤나 친하게 지냈던 C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청 반가워하며 "지금 좀 바쁘니 이따가 꼭 전화해서 한 번 만나자"고 하기에 "역시 어릴 때의 친구는 몇 십년의 세월 쯤은 가볍게 뛰어 넘는구나 "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오랜만에 올라 온 서울을 되도록 많이 눈에 담으려고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는게 아닌가?

내가 비록 머리가 그렇게 비상하지는 않지만 감이 잡혔다. 중학교 시절에도 상당히 깨어 보이고 약빨라 보이던 그 친구가

여기 저기 안테나를 돌려서 나의 정보와 소식을 알아 본 것일게다. 이 풍진 세상에서 그 것도 서울이란 숙성고에서 구린내가 날 만큼 숙성되고 잇속의 때가 더깨더깨 앉았을 그가 어릴 때의 동심 따위는 쉽게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세월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고향 상주 친구에게 마음 아픈 일을 당하였는데, 2007년도에 천하장사를 한 적도 있는 임용제의 맏형인 한규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 일찌기 80년대 중반부터 목동에서 부동산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는 상주농고 동창생(그들은 나를 동창생으로 취급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녀 결혼식에는 청첩장을 보내 오기도 하지만, 한 때 상주농고카페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졸업을 하지 않아서 가입할 자격이 없다라는 답변을 받은 적이 있다.)인 T라는 친구가 발산지구 바로 앞에 건물을 지어서 부동산사무실을 내 명의로 열어 준다고 해서 한 3개월 정도 같이 부동산사무실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 역시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결국은 실망과 원망만을 안고 결별을 하였는데, 올해 초에 부산에 있는 친구로 부터

그가 지은 빌라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지방에 도피해 있다가 간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렇게 욕심을 부리던 그가 이생에의 미련과 아쉬움 때문에 어떻게 죽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연민의 마음도 적지 않았다.

예 부터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던 상주사람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어쨋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도 상주사람이지만 상주사람에 대한 불신의 념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2009년 가을에 5학년 때의 첫사랑인 YH가 생각나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다음 카페에서 "고아초등학교"를 검색하였더니 고아초등학교카페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62년도에 그 학교를 다녔고 담임선생님의 성함은 누구셨고 첫사랑인 YH에 대한 술회를 하며, 같은 마을에 살던 남자친구의 이름과 내 바로 밑의 여동생과 친구였던 아이의 오빠인 친구의 이름이 기억이 나서 카페에 올렸더니 내 가슴에 고이 간직해 왔고 앞으로도 아마 평생 동안 내 가슴에 간직하게 될 첫사랑인 YH의 댓글이 달리고, 삼일회 총무로 부터 동창회 모임에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상주 친구들이었다면 이렇게 아무 의심없이 사십 몇 년 전에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을 같이 다녔다는 친구를 선듯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너무 고마워서 그 동창회에 나가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까지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의 첫사랑인 YH는 내가 어린 나이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최초의 여자였었다. 면소재지의 학교에서 몇 걸음 안 되는 삼거리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정확한 집의 위치는 몰랐지만) 아직도 망막에 각인 되어있는,하얀 원피스를 입었으며 마치 공주처럼,동화 속의 선녀처럼 보였었고 시골아이 같지 않게 흰 얼굴에 예쁘고 키가 커 보였었는데 2009년도 9월 말에 종로 2가 국일관 근방의 횟집에서가진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비록 어릴 때의 모습과는 약간 변해보이기는 해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남녀 모두 10여명 이었는데, 유일하게 내가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47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키가 훨씬 작아 보이고 코도 약간 매부리코처럼 보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릴 때의 내가 기억하고 있던 YH보다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모는 남아 있었고 미모 보다 더 돋보이는 기품이 있어 보였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닮아 보이기도 하니 아마 그녀도 남편을 닮아서 그렇게 얼굴이 바뀐 것이 아닐까? 다정하고 친밀한 부부라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것을 바라 보고 같은 길을 걷고 하다 보면 얼굴 모습이 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살아 오면서 언젠가 내가 내로라 하는 위치가 된다면 첫사랑인 그녀를 찾아 보리라 마음 먹었었고 그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궁금함을 참아 오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의 강을 건너 만나고 보니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 막고 있고 다른 친구들도 전혀 기억이 없다 보니 얘기를 나눌 공통분모가 없었고 터 놓고 그녀에 대해서 물어 볼 수도 없어 얘기를 할 수도 없었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서예로 한 때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었다고 하고  지금은 혼자 몸이 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토록 오매불망 가슴 속에 간직해 왔던 첫사랑이 혼자라고 하는데도 내 처지가 형편이 없다 보니 데이트 신청이나 프로포즈를 할 수가 없어서 오늘까지 그냥 옛날 어린 시절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의 두 번 째의 첫사랑은 중학교 때 였었는데 화령초등학교 동기이기도 한  SO 인데 화령중학교에 진학을 해서 같은 반이 되었고 자리도 내 왼편 줄의 바로 뒷 자리였는데, 메뚜기를 잡으러 그녀의 마을 논에 들어 갔던 게 하필이면 그녀 삼촌의 논이었고 그녀의 삼촌에 쫓겨 도망을 가기도 했었는데 무척 예뻤었고 내가 만나자고 쪽지를 접어서 그녀의 책상에 넣어 놓았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우리의 사랑은 불발로 끝났고, 그러다가 3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로 도망을 왔고 내가 서울에 있는 사이에 우리 집이 화령에서 고향마을인 청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 뒤로 그녀를 못 봤는데 항상 궁금하게 생각하다가 상주경찰서에 근무할 때 화령의 친구들을 만나 물어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대전에서 다방 마담으로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발 그녀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빌고 싶다.

나의 세 번 째의 첫사랑은 20세 때 였었는데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일방적인 짝사랑이였다면, 그 첫사랑은 쌍방이 사랑한 최초의 사랑이었다. 내가 대구에서 염색공장에 다닐 때의 친구인 DH의 시골집에 추석에 놀러를 갔었는데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양복을 맞춰 입고 갔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면 그런 추억이 있으시겠지만 시골에서는 처녀총각들이 좁은 방안에 모여서 화투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온갖 재미난 애기들로 밤 늦도록 놀았었다. 내가 친구보다 이틀 앞서 대구로 올라 오려고 하니 같이 놀았던 처녀 중에 YW라는 아가씨가 예정에도 없던 대구행을 따라 나서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어서 예정을 변경해서 일찍 자신이 근무하는 직물공장이 있는 대구로 돌아 갔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순진하기 이를데 없었던 나는 같은 좌석에 나란히 앉아 가면서도 그녀와 몇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당시에는 신암동에 있던 동부터미널에 도착해서, 차나 한 잔 하자든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든가 하지 않고 잘가라는 한 마디만 하고 그냥 와 버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멋대가리 없는 놈이었었다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그런데 며칠 후에 올라 온 친구가 그녀가 나를 좋아 한다며 자신에게 편지를 해 달라고 한다고 하며 그녀의 주소를 적은 종이를 주는게 아닌가. 그래서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는데 얼마 후에 대구지방의 주종산업인 직물산업에 부도라는 태풍이 몰아쳐서 그녀도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갔다는 편지가 왔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서울에 왔던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가 있던 대학로 뒤의 낙산 기슭의 이화동에서 이종사촌과 같이 살면서 이발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거의 모든 이발관에 다 있던 면도사로 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나 역시 변변치 않은 놈이라 상관치 않고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대구로 내려 갔었는데,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시고 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고 해서 그녀와 점점 소원해 졌는데, 그녀도 아예 소식을 전해 오지 않게 되어 잊고 지내다가 삼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이 되어 공장에 다니고 있을 때 친구인 DH가 그녀의 소식을 전해 왔는데 대구에 와서 대구역 근방의 이발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친구가 알려 준 전화로 연락을 하여 삼년 만에 만난 그녀는 왠지 그늘 져 보였었다. 그랬든 어쨌든 우리는 다시 사랑을 했고 나는 한 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에 한일극장 부근의 다방에서 만났는데 그녀가 헤어지자고 했다. 너무 갑작스런 충격때문인지 내가 잡은 물컵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며 깨져 버렸다. 뭔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처음에 그녀가 내세운 이유가 같은 이씨라는 것인데, 그녀와 나는 본관이 다르니까 그냥 핑계를 대기 위한 것이어서 내가 따지며 물으니 사실은 자신은 서울에서 이발관에서 일을 할 때 손님으로 온 놈팡이를 알게 되어 동거를 했는데 그녀가 벌어 온 돈으로 빈둥빈둥 놀면서 건달로 지내서 견디다 못해 몰래 도망치듯 대구로 내려 온 것이라며, 자신의 몸은 이미 더럽혀 졌다며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손도 한 번 깊이 잡아 보지 않고 고이 간직해 온 사랑을 다른 사람이 짓 밟았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은 변치 않았고, 당시에 오유경,신영일,송재호 김창숙씨 등이 출연한 어느 창녀의 사랑에 대한 영화인 "눈물의 웨딩드레스"가 힛트를 치고 난 뒤라 "그런 경우도 있는데 뭘 그러느냐"며 오랜 시간 설득을 하여 가까스로 사랑을 하기로 했는데 며칠 뒤에 또 태도가 바뀌어 설득을 하며 집에 까지 따라 갔더니 그냥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대문을 닫아 버리기에 멍하니 서 있으려니 그녀를 보살피고 있던 그녀의 외할머니가 나와서 "YW는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을 했으니 그만 돌아 가게"하시는게 아닌가? 그 얘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돌아 서 버린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많은 눈물을 흘렸고 밤하늘의 별 들도 나를 비웃고 흉 보는 듯해서 그 때 이후로 별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접어 버렸고, 또 하늘은 얼마나 많이 원망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반전인 것이 내가 가방을 들고 정수기를 팔러 다닐 때 대구에서 농협공판장을 운영하던 DH가 그녀의 소식을 알려 주기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그 때의 순정을 간직한 첫사랑은 아니었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외판원인 나의 행색을 보고 실망해서인지 아니면 옛정을 떼어 버리기 위해 의도적인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내게 했던 얘기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별로 반갑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무거운 재회를 마지막으로 나의 아름다웠던 성인으로서의 첫사랑은 내 가슴에서 지워버렸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지만, 여자는 입속의 혀에는 간직할지언정 가슴속에는 간직하지 않는다."였다.

나의 네 번 째의 첫사랑은 중국에서의 첫사랑인  왕써쩐인데 그녀의 얘기는 나의 지난 글들에도 여러 번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녀는 내가 사촌 형을 따라 중국을 오가는 배를 타며 보따리상을 할 때 만났는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그녀도 다른 중국인 못지 않게 자기보호 본능이 강하고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다른 중국인들 처럼 돈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돈만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의 사상에 물 들어 있어서 가난한 나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6개월 정도 깊이 사랑하다가 나의 형편을 파악한 그녀의 계산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끝나 버리고 그 후에도 가끔씩 통화를 하다가 지난 8월에 그녀로 부터 걸려 온 전화를 끝으로 우리의 사랑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초등학교 때의 첫사랑인 YH를 만난다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우중충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대방역 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더니 십여 분 전이긴 해도, 육식과 음주를 일삼는 자칭 타칭 대사님, 땡초인 IB만  와 있고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총무인 DS와 JS가 왔다 그래 봤자 13명의 회원 중에 3분의1도 오지 않은 것이다. 여자들은 모두 손주들을 본다고 못 온다는 거였고 사업을하는 친구는 전라도 광주에 내려 갔다가 올라 오는데 차가 밀려서 제 시간에 올 수 없고, 구리에 사는 친구는 아버님 기일이라 못 오고, 회장 조차도 공장에 일이 많아서 못 온다고 했다. 그나마 회장은 몇 번의 전화 끝에 늦게나마 왔고 나의 첫사랑인 YH는 늦게라도 온다고 했다가 결국 못 온다고 총무에게 알려 왔다. 총무인 DS가 이렇게 참석들을 하지 않을 바엔 모아 놓은 회비를 돌려 주고 동창회를 해체해 버리자는 의견을 내 놓고 회장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서로 고성이 오가고 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 하고 YH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허탈함을 안고 집에 돌아 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11시 쯤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뜻밖이라 반가움이 더욱 컸다. 꼭 참석하고 싶었고 나를 보고 싶었는데 사위와 딸이 늦게 오는 바람에 손주들을 놔 두고 올 수 없었다며, 암 수술 때문에 몸이 좋지 않은 MA라는 친구와 같이 다음 토요일에 상암동 하늘공원에 갈까 하는데 같이 갈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다고 했다. MA라는 친구가 그 때 가서 몸이 안 좋아 지거나 날씨가 추우면 둘이라도 만나서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기로 했다. 야호! 인간 이철훈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 구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해야겠다. 첫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첫사랑이 이루어 진다면 그 것은 동시에 그들의 마지막 사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이제 더 이상 사랑으로 인한 방황은 하기 싫다. 내 운명에 아직 허락된 사랑이 있다면 비록 플라토닉러브가 되더라도 그것은 YH이고 나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희망해 본다. 이제 꿈 속으로 여행을 떠나 그녀를 만나야겠다. 잘자요! YH!

[박진서]

ㅎㅎ 첫사랑이란 남녀가 만나 최초의 사랑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어쨌든 10대의 사랑, 20대의 사랑 화려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이제는 진실한 참사랑 이루시기를. 비록 슬픈 사랑의 추억을 지녔어도 항상 밝은 표정을 지니신 철면천사님의 인격에 감동합니다.

[철면천사]

기품있으시고 멋쟁이이신 누님. 항상 감사 드립니다. 항상 좋은 말씀과 칭찬을 해 주셔서 깊이 감사 드립니다.저 보다 더 기구하고 슬픈 사연과 아픔을 가진 분 들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제 아픔을 얘기한다는 것이 사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 여천누님과 즐거운 시간 가지시고 잘 내려 가셨는지 안부 전해 주시고 누님처럼 열정적이고 지성을 갖추신 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앞으로 누님을 제 인생의 등불로 삼겠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박진서]

에구...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 우리 좋은 인연 이어가요. 심신을 단련하면서 그날까지.....

[정안]

이런 글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언젠가 책으로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좋은 가을날에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기를 빕니다.

[철면천사]

감사합니다 정안님은 번역작업의 중압감에서 해방 되셨는데 난 이제 글을 쓰는 중압감 속으로 들어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갑갑하군요 단풍처럼 하늘처럼 화려하고 맑고 푸른 나날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