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오랑캐꽃
- 이용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구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인문평론, 1939.10)
* 도래샘 : 도랑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빙 돌아서 흘러 나가는 우물(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 오랑캐꽃 : 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등의 이칭이 있음.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시의 서두에 오랑캐꽃에 대한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다. 시인은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김동환의『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비극적 여주인공 ‘순이’가 바로 여진족의 여자로 등장하는데, ‘오랑캐꽃’이나 ‘순이’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당대적 현실 상황을 암유(暗喩)하는 것이다.
▶ 성격 : 낭만적, 민족적, 독백적
▶ 표현 : ① 이 시는 재래의 서정적 감정 처리 방식과 서사적인 표현 방식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다.
② 이 시인은 오랑캐꽃을 마치 가깝게 다가가서 이야기하듯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③ 간접화법의 종결어미 ‘갔단다’와 영탄적 종결어미 ‘흘러갔나’를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경과를 나타냈다.
④ 유사 어휘를 반복 사용하였다.
▶ 구성 : ① 고려 군사에 쫓겨간 오랑캐(제1연)
②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제2연)
③ 오랑캐꽃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슬픔(제3연)
▶ 제재 : 오랑캐꽃
▶ 주제 : 유․이민(流移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연구 문제>
1. 오랑캐가 오랑캐꽃으로 명명(命名)됨으로써 비롯되는 존재의 슬픔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연약하고 순수한 우리 민족의 한없는 억울함과 비통함.
2. 이 시와 관련하여 다음 ( )에 알맞은 시인의 이름을 쓰라.
☞ 김소월, 김영랑
이 시는 ( ), ( )으로 이어오던 서정적인 독백 형식의 전통적인 시적 표출 방식 위에 다양한 서사적 표출 방식을 혼용하고 있다. |
3. 이 시에서 제1연의 ㉠‘오랑캐’와 제3연의 ㉡‘오랑캐꽃’의 ‘오랑캐’는 엄밀하게 분석하면 그 의미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120자 내외로 설명하라.
☞ (1) ㉠ ‘오랑캐’ : 북방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으로, 우리 민족을 넘보던 적대적(敵對的)의미가 담겨 있다.
(2) ㉡ ‘오랑캐꽃’의 ‘오랑캐’ : 식물 자체로서의 이미지 그대로, 남을 해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 결부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인의 고향은 함북 경성이다. 옛날 이곳에는 국가의 통치권 밖에서 살아가던 여진족의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몇 백년 동안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고려 때 윤관(尹瓘)의 여진 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장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후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여러 대를 살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에서는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
김동환의『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순이’가 바로 그런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인데 이용악의『오랑캐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이들을 통해 두 시인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채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당대적 현실 상황을 암유(暗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오랑캐꽃은 북방 오랑캐의 혈통이나 관습과는 관계없는 야생의 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장수꽃 또는 제비꽃이라고 한다.)
결국 화자는 처음에는 오랑캐와 오랑캐꽃을 동일 선상에 놓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조명하였지만, 얼마 안가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먼 옛날 고려 즉, 우리 민족에 의하여 쫓겨간 오랑캐(여진족)의 모습이 오늘에 와서 상황이 반전된 우리 민족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의 혹독한 압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 준 시라고 하겠다.
<맥락 읽기>
1. 1연에서 쫒은 자와 쫒겨난 자를 지적해 봅시다
☞ 쫒은 자 : 구려 장군님
☞ 쫒겨난 자 : 오랑캐
2. 쫒겨난 자의 상황을 짐작해 봅시다.
☞ 경황없이, 정신없이... 구려 장군님의 표현대로라면 혼비백산해서...
3.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 돌봐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낙(약한 자)과 지켜야 할 자존심(우두머리)도 버리고 가야 할 절박한 상황.
☞ 맑게 흐르는 도래샘도 정든 초가집도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 가랑잎처럼
4. 오랑캐가 쫒겨간 뒤 구려민들의 삶은?
☞ 구름이 태평스럽게 골짜기를 흐르듯, 평온한 삶이 수백년 동안 계속되었다.
5. 3연을 통해서 볼 때 말하는 이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나?
☞ 너, 오랑캐꽃
6. 허고 많은 이름 놔두고 왜 하필 오랑캐 꽃인가?
☞ 너의 뒷 모양이 머리테를 드리인 오랑캐와의 뒷머리와도 같기 때문
7. 오랑캐와 오랑캐 꽃의 차이점이 있다면?
☞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
8.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은 채 오랑캐라 불린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 기가 막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9.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나온 시대적 상황(1939년)을 고려할 때 그 시대의 오랑캐 꽃은 누구이겠는가?
☞ 우리 민족
10. 말하는 이가 오랑캐 꽃에게 해 주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 두 팔로 햋 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11. 오랑캐꽃(우리 민족)이 울 수없었던 이유와 오랑캐꽃(우리 민족)에 대한 작중 화자의 태도는?
☞ 고구려 장군님이 오랑캐로 부터 오랜 투쟁 끝에 지켜내고 대대로 삶을 이어오던 이 땅을 어이 없이 빼앗긴 기막힌 심정으로 인해 울 수도 없음. 작중 화자는 오랑캐 꽃의 처지를 같이 슬퍼하고 오랑캐꽃의 슬픔을 토로하도록 유도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려 한다.
12. 결국이 시는 누가 무엇을 노래한 시인가?
☞ 작중 화자는 외세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중의 아픔을 오랑캐꽃을 통여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