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인들’을 작사·작곡한 고 방희준씨(오른쪽)와 고 민병무씨. / 김형찬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제1회 대학가요제 동상 수상곡, 작사·작곡자 모두 세상 떠나 확인 불가능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동상 수상곡인 ‘젊은 연인들’의 첫 소절이다.
민병호, 민경식, 정연택 세 명의 구성원 모두가 서울대 학생이어서 이름 붙인
‘서울대 트리오’의 이 노래는 그해 대상 수상곡이었던 ‘나 어떡해’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다.
널리 알려진 지 4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도 이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특히 가사에 언급된 ‘연인’이 실제로는 비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이라는 내용이 함께 따라붙는다.
‘젊은 연인들’의 실제 사연이라는 글들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야기의 곁가지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줄거리는 비슷하다.
겨울 산행을 떠난 한 대학의 선후배들이 급격히 나빠진 날씨 탓에 조난을 당한다.
땔감도 없는 산장에서 겨우 눈보라를 피했지만 날씨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은 가장 막내 후배에게 외투를 벗어주며 구조 요청을 하라고 하산시켰고,
천신만고 끝에 며칠이 지나서야 구조대와 함께 산장을 찾아온 후배는 언 채로 세상을 떠나버린 선배들을
마주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사연대로라면 가사에 나오는 낙원은 죽은 다음의 저세상으로 읽힌다.
노래의 아름다운 곡조 뒤에 음울함과 오싹함이 숨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 법하다.
과연 원곡의 작사자는 정말 사연의 내용처럼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리며 가사를 썼을까.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곡의 작사자인 방희준씨는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고교 동창이자 대학까지 같은 과로 진학한 작곡자 민병무씨와 같은 날 세상을 뜬 것이다.
1971년 성탄절. 역대 최악의 호텔 화재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충무로 대연각호텔 화재 참사로
당시 19세에 불과하던 대학 1학년 방씨와 민씨는 목숨을 잃었다.
‘훅스’라는 이름의 밴드 멤버였던 둘은 전날 공연에서 무대에 오른 뒤
주최 측의 배려로 대연각호텔에 묵게 됐던 것이다.
“같이 투숙했던 다른 멤버들은 아침에 방을 나섰는데 두 분은 샤워를 마치고 나가겠다고 하더니….”
서울대 트리오 출신인 정연택 명지전문대 교수는 당시 조금만 일찍 방을 나섰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훅스의 이름으로 1971년부터 불리던 ‘젊은 연인들’이 대중 앞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건
고 민병무씨의 동생 민병호씨가 서울대 트리오로 대학가요제에 나가면서부터다.
하지만 서울대 트리오 멤버 정 교수는 대학가요제 당시에도,
이미 노래가 만들어져 있던 이전에도 ‘겨울 산행 중 조난’에 얽힌 가사의 사연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작곡자 동생인 민병호에게서도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다만 추측하건대 예전에 <가요드라마>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인들’ 노래 가사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사람들이 오해한 건 아닐까 싶긴 합니다.”
1970년대 통기타 음악에 정통한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씨도 대학가요제 전부터 훅스의 노래로
‘젊은 연인들’이 조금씩 알려지긴 했지만 가사의 배경에 조난 사연이 얽히게 된 경위는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김씨는 “노래를 만들게 된 배경에 그런 사연이 있다는 소문 같은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확실한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작곡자 민씨가 대연각호텔 사고로 숨진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작사자 방씨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꽃다운 청춘들이 화마에 스러져간 사실은 가사에 얽혀 있다는 사연만큼이나 비극적이다.
두 음악인 모두 노래 속 ‘낙원’에서는 뜨거운 불길을 염려치 않고 영면하길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