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왼쪽 사진)이
올해 2월 3일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서울가정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롯데그룹의 대주주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최근 한국 사회에 기여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성년후견인 제도‘홍보’다.
베일에 가려진 롯데그룹의 일본 측 지배구조가 일부라도 드러난 것은 덤이다.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62)·신동빈 롯데 회장(62)이 경영권 다툼 중에 부친인 창업주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94)의 정신건강 상태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가 지난해 12월 오빠 신격호 회장에게 성년후견인이 필요하다고 서울가정법원에 신청하자 일반인에겐 아직 낯선 이 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롯데 경영권 다툼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이 온전한지 여부가 막판 변수가 되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시작한 이번 경영권 다툼은 한마디로 표현하면‘아버지의 이름으로’라고 할 만하다.
그는‘아버지가 롯데그룹 경영을 자신에게 맡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신동빈 회장 측은‘신동주 측이 내세우는 아버지의 말이 올바른 정신상태에서 나온 게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만일 정신건강이 온전치 못하다면 자칫 부친의 지시서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신 총괄회장, 치매치료 받았나 논란
신 총괄회장이 앞서 치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부터 양측 입장이 엇갈린다. 롯데그룹 측이 앞장서진 않지만 신정숙씨 쪽에서 신 총괄회장의 치매설이 흘러나왔다. 신씨 측 이현곤 변호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신 총괄회장이 치매 증상을 보인 것을 가족들은 안다. 얘기한 걸 금방 까먹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질문과 상관 없는 대답을 하거나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 배회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형적 치매 증상으로, 신 총괄회장의 치매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게 신씨의 판단으로 전해졌다. 이미 서울대병원 등에서 치매약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고 신씨 측은 밝혔다. 이 변호사는 “단지 기억력 쇠약과 인지력 저하는 증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반면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의 치매 치료 경험이 없다고 반박했다. 법률대리인인 김수창 변호사는 “90대가 되면 약간 깜빡할 수 있는데, 신 총괄회장은 기억력만 조금 떨어졌지 판단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기억력과 판단력은 다른 차원이며, 신 전 부회장을 후계자로 한다는 지시는 판단력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2013년 12월 골절로 세브란스병원에 20일 입원했고, 지난해 서울대병원에 두 차례 종합건강검진과 요로감염 때문에 간 적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2012년 7~10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밤에 잠을 못 자는 문제로 진료는 받았지만 치매치료는 없었다. 진료기록도 다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2월 3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청구 심리 첫날 신 총괄회장은 판사의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내 판단능력은 50대 때와 같다. 내가 왜 여기까지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34층 호텔롯데 집무실에 매일 들러 보고를 한다는 SDJ코퍼레이션 정혜원 상무가 전하는 신 총괄회장의 일상은 대체로 이렇다. 8시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다시 잠을 자고 11시쯤 깬다. 12시 정도에 식사를 한다. 중식·일식·양식 등을 하는데, 스테이크도 잘 먹는다고 한다. SDJ 측이 공개한 사진에는 신 총괄회장이 직접 스테이크를 써는 모습이 나온다. 운동은 34층 전체를 다니거나 맨손체조를 한다.
정 상무는 오후 1시30분~2시 정도에 경영보고를, 3시쯤에는 이번 소송에 대해 변호사의 보고를 받는다고 전했다. 오후 5~6시에는 과일, 단팥죽이나 딱딱한 한과 같은 간식을 먹는다. 신 총괄회장은 아직 틀니나 임플란트를 한 이가 없다고 정 상무는 밝혔다. 저녁엔 TV도 보는데, 일본 NHK 방송이나 바둑TV 등을 즐긴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안경을 쓰지 않는다. 정 상무는 “청력만 좀 떨어지는 편일 뿐 신 총괄회장이 성년후견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신동주 측은 2월 11일 신 총괄회장이 조치훈 9단 옆에서 바둑을 두는 영상을 공개했다. 정확히는 조 9단과 다른 사람이 바둑 두는 옆에서‘훈수’를 두며 근황을 묻는 모습이다.‘롯데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한 SDJ 코퍼레이션의 입장’이라는 웹사이트(www.savelotte.com)에 올라온 약 1분짜리 편집 영상에는 신 총괄회장이 지난해 12월 4일 조 9단에게 “지금 바둑 1위가 누구냐” “지금 어디 살고 있는가” 등을 묻는 모습이 나온다. 앞서 2월 9일에도 일본어 웹사이트(www.l-seijouka.com)에 동영상을 공개했다. 신 총괄회장은‘롯데홀딩스 후계자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십시오’라는 질문에 “장남인 신동주가 후계자이고, 이건 일본, 한국 마찬가지 아닌가. 이것이 상식이다. 다른 사람이 하면 신용이 없어지게 된다”고 답했다. 롯데그룹 측은 이런 영상이 편집된 이미지이거나 신 총괄회장의 정신이 잠시 괜찮을 때를 활용한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
주주총회 결과를 떠나 양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신청 결과가 마지막 카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와 맏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전 부회장, 신 회장,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 자녀 4명이 성년후견인 후보다. 신 총괄회장의 정신감정 방법과 병원 등을 결정할 2차 심문기일은 이달 9일이며, 진단을 거쳐 법원 최종 심판은 몇 개월 뒤에 나오게 된다.
성년후견인 후보는 부인과 자녀 4명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성년후견인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질병, 장애, 노령이나 다른 사유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대신해 도와줄 후견인을 두는 제도다. 성년후견인제는 2013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됐고, 꾸준히 신청이 늘었다.
비인권적이라고 유엔의 비판까지 들은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대체하는 것이다. 금치산제는 중증 정신질환자 위주로 당사자 능력을 제한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어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반면에 성년후견인 제도는 대상을 일반 노인이나 장애인 등으로 넓혔다. 특히 당사자의 재산을 보호하고 치료·요양까지 고려하는 등 더 적극적인 취지다. 살아 있는 동안 존엄을 지키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금치산자 제도의 후견인이 친족에 제한됐던 데 비해 성년후견인은 친족이 아니어도 된다. 후견인은 자연인 이외 예컨대 한국장애인부모회 같은 법인도 될 수 있다.
종류별로는 질병, 장애, 그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 좁은 의미의‘성년후견’ 대상이 된다. 성년후견은 당사자의 행위능력이 원칙적으로 없는 경우다.‘한정후견’은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인데, 당사자의 행위능력은 원칙적으로 인정된다.‘특정후견’은 노령이나 그밖에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으로 후견이 필요한 경우로, 행위능력은 제한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일반인이 계약을 맺어 후견인을 두는‘임의후견’도 있다. 예컨대 현재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향후 치매나 사고 등으로 판단능력을 잃을 때를 대비해 후견인을 두는 경우다.
서울가정법원은 국립정신건강센터(옛 국립서울병원)와 촉탁 업무협약을 맺었다. 감정을 맡긴 뒤 1~2개월이면 정신감정서가 법원에 제출된다. 비용은 진료기록감정은 30만원, 외래감정은 기본감정료 30만원에다 실비로 심리검사비용(중증은 10만원, 기본심리검사의 경우 25만~40만원)이 추가로 든다.
성년후견인 신청 늘었지만 문제도 많아
제도적으로 보완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후견이 필요한 사람은 보통 인구의 1% 정도인데, 앞으로 성년후견제를 이용하는 사람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많은 사건을 맡은 서울가정법원은 판사 2명이 전담하는 실정이다. 대법원은 2014년 7월 이후 지난해까지 성년후견 2366건을 포함해 한정후견(302건), 특정후견(368건), 임의후견(5건) 등 총 3041건의 후견인 신청이 법원에 접수됐다고 집계했다.
특히 친족후견인 비중이 높은 점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신청 건수가 가장 많은 서울가정법원의 경우 2014년 5월까지 약 92%가 친족들이 후견인을 차지했다가, 2015년 4월 기준 83%로 줄었다. 대신 제3자인 전문가나 시민 후견인 비율이 늘었다. 재산을 놓고 친족 사이에 갈등이 커서 전문가 선임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청구하는 특정후견이 증가한 결과로 해석된다. 법무법인 상록의 김명진 변호사는 “금치산제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도입한 성년후견인에 위임된 권한이 너무 커서 피후견인의 인권침해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주로 친족인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 통장을 온전히 관리할 필요가 없다. 이들의 역할을 제한하고 한정후견·특정후견으로 대체하는 등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친족후견인 개인이나 가족들이 짜고 피후견인 재산을 횡령하거나 배임하더라도 처벌할 근거 규정이 미흡하다. 앞서 도입한 일본처럼 사법부에‘성년후견센터’를 만들어 신청부터 감독까지 관리·조율하는 기능을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시행 2주년을 맞아 지난해 11월 대한변호사협회와의 간담회에서 김지숙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성년후견제 정착 여부는 적정한 성년후견인을 선정하고, 효율적이고 적합한 후견사무의 관리·감독에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가정법원 판사로 성년후견제를 준비하는 대법원 TF에 참여했고, 첫 후견 심판을 맡았던 이현곤 변호사는 “성년후견제의 본래 취지에 맞게 사회복지적 부분을 담당할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돈 없는 사람이나 독거노인도 후견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공후견인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심판이 어떤 쪽으로 결론날지는 롯데 경영권 분쟁 못잖게 성년후견제도 자체에도 상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종업원지주회 표심 잡기 경쟁
성년후견인이 신청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롯데의 지배구조상 형제 간 입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결정적인 지렛대는 종업원지주회의 표심으로 보인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의 롯데홀딩스 지분 비율은 광윤사 28.1%, 종업원지주회 27.8%, 공영회 15.6%, 임원지주회 6.7%,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가족 7.1%, 롯데재단 0.2% 등이다.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과 일가, 일본의 L투자회사들이 광윤사를, 광윤사가 일본 롯데홀딩스를,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호텔롯데를, 호텔롯데가 국내 롯데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월 1일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이용해 신 총괄회장이 0.1%, 오너 일가 전체는 2.4% 지분율로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모순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본 내 총수 일가 등의 지분 현황은 캐내지 못했다. 롯데 측이 개인정보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의 지분 위임으로 신 전 부회장이 광윤사의 최대주주 지위를 얻어서 개인지분 1.5%인 신동빈 회장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 회장 측은 쓰쿠다 다카유키 대표 등이 지배하는 임원지주회와 공영회의 의결권을 등에 업고 23.8%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신동주 측은 약 30% 수준, 신동빈 측은 약 24%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분상 어느 한쪽도 확실한 과반수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일단 현 경영진인 신동빈 회장 측이 우세하다는 평이 적지않다. 지난해 8월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 회장은 자신이 요청한 사외이사 선임, ‘법과 원칙에 의거하는 경영에 의한 방침의 확인’이라는 두 안건을 모두 통과시키며 기선을 제압했다.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종업원지주회 지지를 얻기 위해 신 전 부회장은 ‘당근책’을 내밀었다. 2월 19일 롯데홀딩스를 상장하고 130여명인 종업원지주회 회원당 주식가치 약 25억원씩을 보장해주겠다는 ‘주식보장제도’를 제안하고 나섰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 심판 결과가 경영권 다툼에 향배를 가르게 되었다.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60305171805576
첫댓글 왜 한국에서 난리들인가? 하긴.. 유통업체 중에서는 뭐.. 롯데가..
어떻게 판결이 날런지?
흥미진진하네. 주식이 한바탕 요동칠까? 아니면 이대로 쭈욱?
열심히 봐야겠다. 롯데. 망하기는 쉽지 않은 기업.
일본에서 신동빈 지지가 우세했다고 뉴스떳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