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소(無名簫)] 사망곡(死亡谷)의 노래 (1)
사월(四月) 초 이레. 사마전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한달간 사마전은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수라마교에서 사월 열흘날에 사망곡에서
개파대전을 열겠다는 초청장이 도착한 후
이 소식은 전 무림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무림맹은 본격적으로 무림맹의 역할을 시작하게 됐다.
수라마교의 개파대전(開派大典)이 단순한
개파대전으로 끝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난세(亂世)를 체험한 무림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개파대전을 시작으로 무림의 판도가
바뀌는 일들은 무림에 있어서는 공식적인 일이었다.
이제 사흘 후에 열릴 수라마교의 개파대전을 두고
강호인들은 설왕설래 하고 있었다.
여지껏 백도(白道)의 주도 아래 놓여 힘을 쓰지 못했던
많은 흑도무림(黑道武林)의 고수들이 사망곡으로 떠났다.
사백년 전의 개세마두 수라마제(修羅魔帝)의
전인(傳人)이 교주라는 소문이 퍼졌고,
수라마제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는
사도고수들은 모두 수라마교에 참여하고자 했다.
무림의 정파 구파일방에서는 무림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작전수립에 들어 갔다.
이미 예상하고 잇었던 일이었기에 그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다.
정사지간(正邪之間)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이제 거취(去就)를 결정지어야 했다.
무림천하가 사도의 발굽 아래 짓밟히느냐
아니면 정도의 깃발아래 다시 평화를 유지하느냐….
그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의 명성을 무림에
드날리고자 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도 있었고,
어느 쪽으로 가담해야지만이 가문의 이름을
보존할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고수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점차 혈겁은 다가오고 있었다.
무림맹도 여지껏 없던 분주한 나날을 맞게 되었다.
구파일방의 영도자들이 모두 모여 연일 작전을 짜고 있었다.
소림은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동원했고
무당은 오행검진(五行劍陣)을 열다섯 조로 조직했다.
그 밖의 각파의 절기나 절진 등이 동원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구대문파의 영재(英才)들을 모아
각파의 절기들을 결합한 실전무예를 연마시켰고,
야전(夜戰)에 대비해 복장을 통일시켰다.
만독기인은 독중지성의 극악한 독장에
항거할 수 있도록 해독약을 조제했고,
만음기인은 각파의 장로급 다섯 명을
소집하여 '천향오절음'을 연마시켰다.
그리고 개파대전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들은 대오를 지어 사망곡을 향해서 차례로 출발(出發)했다.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는 관도에는
사람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수라마교의 개파대전 장소인
사망곡은 문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무림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은 죽음의 공포를 젖혀두고
그들의 발길을 사망곡으로 향하게 했다.
무림천하의 향방(向方)은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죽더라도 그 구경을 놓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장엄했다.
그가 흑도인이건 백도인이건 이것이
자신(自身)이 세상에서 걸어보는 마지막 길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들의 걸음걸이조차도 엄숙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림맹의 행렬은 사마전을 선두로 세 채의 가마가 뒤따르고 있었다.
특수제작(特殊製作) 된 두 채의 가마에는 이제 독중지성이 되어버린
기문환과 맹우림이 타고 있었고
또 한 채의 가마에는 사마연이 타고 있었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사마 맹주는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려 행렬을 둘러보았다.
허나 거기에 사마웅은 없었다.
아비가 생사(生死)를 걸고 격전장(激戰場)으로 가는데
그 아들은 또 어느 곳에서 술에 취해 있는 것인지 몰랐다.
살짝 안타까운 표정이 사마전의 얼굴에 드리웠으나 곧 지워졌다.
(자식이 아비와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지!)
[무명소(無名簫)]351-사망곡(死亡谷)의 노래 (2)
사마전은 말고삐를 다시 힘껏 잡았다.
그의 곁으로 신지기인이 다가왔다. 신지기인이 말했다.
"사망곡을 답사한 우리 측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폭약이나 독약과 같은 매복은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라마교의 교주인 수라마인의 지시는
결코 비겁한 행동 없이 떳떳하게 승부를 겨루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깨끗한 승부를 저쪽에서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마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신지기인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그들의 그러한 태도를 믿어도 되겠소?"
"믿어도 될 것입니다. 수라마교의
교주는 비겁한 성품을 타고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마전이 힐끗 신지기인을 바라보았다.
"신지기인은 수라마교 교주의 정체를 알고 있소?"
신지기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가만히 사마전을 쳐다봤다.
표정(表情)으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신지기인과 천면기인이었다.
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신지기인이 천천히 말했다.
"모르고 있습니다. 허나 그가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마두였다면
아마 차례로 각대문파를 쳐부수었을 겁니다.
그들에겐 그럴 힘이 있으니까요.
허나 그는 오랫 동안 조금의 혈겁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이 사망곡에서의 한판 승부로 모든 것을 결정지으려는 까닭이지요.
게다가 천축의 마라가타 일당을 쫓아낼 때에
수라마인도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중원무림을 대신해서 천축과 격돌했던 것이지요
. 만약 그가 비겁한 자였다면 우리 무림맹의 힘을 약화시켜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해서라도 천축인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겁니다."
사마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적이지만 칭찬할 만한 상대구료."
"그런데."
신지기인이 사마전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만약 수라마교의 교주가 이 신지라면
장주 어른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소? 신지기인!"
"그러니까 만약에 라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사마전이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뚜벅 말했다.
"신지기인께서는 수 십 년 동안 본인을 도와주셨소.
신지기인이 아니었더라면 현재까지의
이만한 평화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오.
본인은 항상 신지기인께 깊은 감사의 염을 느끼고 있소. 허나."
그 말을 신지기인이 받았다.
"허나?"
"허나 만약 신지기인이 혈겁의 흉수라면
난 당연히 내 온 힘을 다해 그대를 제거할 것이오.
'울면서 마속을 벤다'라는 옛 고사처럼 말이오."
신지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혈겁이란 참으로 슬픈 것인가 봅니다."
"그렇소. 그렇기에 우리는 그 혈겁을 없애
천하에 평화를 정착시키기를 노력해야 하는 것이오."
사마전이 갑자기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사흘 후의 결전에서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신지기인께서는 내 아들 사마웅을 좀 책임져 주시오.
그 아이는 이 애비의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출발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소.
부디 그 아이가 천하를 위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신지기인께서 돌보아 주시오."
신지기인이 말했다.
"사마웅 공자는 당세에 둘도 없는 영웅입니다.
장주님께서는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웅 공자는 오늘의 결전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신지기인은 말머리를 돌려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사마전은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용사공자라고 일컫는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을 신지기인은 당세의 둘도 없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유 없는 얘기를 하는 신지기인이 아니었다.
도대체 그것은 무슨 얘기일까? 사마전은 말을 달리면서도
내내 신지기인의 말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