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569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2:8-11절 (신400)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말씀(2)
오늘 우리는 선한목자교회 창립 9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창립’이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주의 교회 연장, 또는 확장’입니다. 이는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 즉 성도의 교제’라는 신앙고백과 같이 우리 교회는 원래 하나인 주의 교회에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목자교회’라는 우리 교회 이름에서 ‘목자’는 우리(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왕’이라는 의미이며, ‘선한’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라는 말씀대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즉 처음이며 마지막이요’(8)이신 주 예수를 가리키지, 결코 목사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선한목자교회’는 주 예수에게 속한 교회라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 이름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주 안에서 우리 교회와 연합된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창립 9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55Km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로 일곱 도시 중에 가장 아름답고 번성한 도시였으며, 현재 지명은 ‘이즈미르’입니다.
서머나는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26년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전을 건축하였고, 하드리안 황제(117-138년)의 신전과 카라칼라 황제(211-217년)의 신전을 건축하여 주변 전 지역의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들을 총괄하였습니다. 황제숭배 제도의 활성화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황제숭배 제의에 참여하는 것을 면죄 받았는데, 1세기의 말까지 기독교는 유대교의 종파로 생각되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는 유대교의 종파가 아니라는 것과 황제숭배를 거절한다고 고발하였고, 서머나 교회는 환난을 받아 심히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는 주 예수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라는 자기 계시와 같은 의미로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b)로 자신을 소개하시며, 그 교회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9a절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기서 ‘궁핍’은 아무것도 없는 절대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는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하나님의 저주(심판)라고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b)라는 자기 계시에 있습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라는 자기 계시는 하나님(1:8, 사44:6)과 같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왕), 즉 ‘땅의 임금의 머리’(1:5)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서 모든 역사의 주관자인 ‘처음이며 마지막이요’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실 때에 주 예수는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통치하십니다. 이 언약에 따라 죄인에게는 저주와 사망의 심판으로 통치하시고, 의인에게는 생명과 복의 구원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자기 계시가 중요합니다. 1:5b절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러므로 그의 피로 인하여 의인들의 모임인 서머나 교회를 생명과 복의 구원으로 주관하시기에 주 예수는 환란과 궁핍의 그 교회에게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니라’(9a)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이요, 새 언약의 관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피로 속량함을 받은 우리 교회도 주 예수가 새 언약대로 되게 하시는 교회이므로, 실상은 ‘부유한 교회’요, ‘복의 사람들(창12:2) 모임’이라는 그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9b절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여기서 유대인들의 비방은 서머나 교회가 유대교의 종파가 아니면서도 황제를 주님으로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는 황제숭배를 거부한 서머나 교회를 비방하는 자신의 혈통에 근거하여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칭 유대인들’을 ‘실상은 유대인(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십니다. 요8:44절입니다. “너희(예수를 거절하면서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유대인들)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이것에 대하여 바울도 말합니다. 롬2:28-29절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 그의 칭찬(참 유대인이라는 인정)은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서니라.”
성도 여러분, 왜 이럴까요? 율법 언약을 다 지켜야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참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출19:5-6절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유대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모든 유대인은 율법 언약을 지키지 못하므로, 그들은 참 유대인이 아니라 마귀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면 이면적(참) 유대인은 누구일까요?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 따라 율법 언약을 그의 죽음으로 다 이루신 유일한 유대인이신 주 예수 안에 있는 서머나 교회가 새 언약에 따라 참 유대인(하나님의 백성), 즉 그의 나라입니다(1:6).
그런데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교회가 참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무지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천이니’(7:4)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육적 유대인들이라고 주장하며, 11:1-4절에서도 ‘두 증인(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을 충성된 증인의 역할을 하는 참 유대인인 주 예수의 교회가 아닌 육적 유대인 두 사람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구약을 그의 죽음과 부활로 다 성취하신 참 유대인이신 주 예수의 복음(눅24:44-49)을 부인하는 심각한 잘못(이단)이므로 아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과 자칭 유대인들의 비방을 아신다고 하신 주 예수는 무엇을 더 말씀하시나요? 환난을 피할 방법이나 경제적인 부를 약속하시는 대신에 장차 받을 더 심한 환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0). 주 예수가 그 교회의 고난과 가난을 좋은 것으로 여기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딤전2:1-3절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여기서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을 위한 우리 기도는 하나님 앞에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받을 더 심한 고난이 세상에 존재하는 서머나 교회에게 피할 수 없는 실제(1:9)이기 때문에 주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10절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십 일’은 문자적으로 10일이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런 교회에 주신 주 예수의 권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머나 교회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b)라는 그의 자기 계시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사 모든 역사의 주관자(처음이며 마지막이요)로 우리 환난의 시작과 끝(열흘 동안)을 아신 주 예수가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에베소 교회만 아니라 서머나 교회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에베소 교회만 아니라 서머나 교회도) 사이를 거니시는 이’(2:1)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환난의 배후에 주 예수를 대적하는 마귀가 자칭 유대인이나 로마 관리들을 통하여 서머나 교회를 시험(유혹)을 받게 하지만, 주 예수가 그 시험이 그 교회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롬8:28). 성도 여러분, 이런 주 예수가 우리 교회도 그의 오른손에 꽉 붙잡고 계시며, 우리 교회 안에 거니시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시험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어떤 고난들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의 명령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서머나 교회 가운데서 몇 사람이 감옥에 갇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음까지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라’를 몸이 피곤하도록 열심히 봉사하거나 힘에 부치도록 헌금하고 섬기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충성’으로 번역된 ‘피스토스’는 ‘신실한, 믿을 만한’이라는 의미로‘믿음’이라는 ‘피스티스’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환난 중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 세례를 받은 때에 ‘주 예수와 세운 믿음의 서약(맹세, 언약)에 신실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한 부부가 결혼예식에서 세운 서약(언약)을 죽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신실하게 지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의 반대는 영적 간음이며, 우상 숭배입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156년경에 86세에 순교한 ‘폴리갑’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이 스타디움에 폴리갑을 끌어다 세우고 믿음을 버릴 것을 강요했습니다.
‘폴리갑’은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 왔는데,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배반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시며 나의 구세주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어 총독이 “내게는 사나운 맹수들이 있는데, 만일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맹수들 앞에 던져 버릴 것이다. 만일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불태워 없애 버릴 것이다”라고 위협하였습니다. 이에 ‘폴리갑’은 “당신은 한 시간 타오르고 얼마 후에 사라질 불로 나를 협박하지만, 악인을 위하여 예비 된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무지한 자이다. 어찌하여 당신은 주저하고 있는가? 당신이 원하는 바를 속히 행하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은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명령대로 끝까지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폴리갑’과 같이 ‘죽도록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주 예수의 명령에서 중요한 것은 ‘죽었다가 살아나사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모든 역사의 주)’가 되사 현재 우리를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주 예수께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복음의 이해에서 단순히 그의 대속의 죽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편에서 만왕의 왕으로서 현재 모든 역사(우리 교회)를 통치하고 계시는 주 예수의 복음도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7-18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주 예수가 죽었었다는 과거 사건보다 부활하여, 현재 살아 있는 즉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1:5)로서 통치하시는 주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어린양의 이미지도 죽어있는 어린양이 아니라, 과거에 죽었다가 현재 살아 있는 자,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어린양으로 제시합니다. 그의 십자가는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기 위한, 즉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만유의 주)’가 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하실 때도 현재 우리를 통치하시는 주 예수에게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마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명령을 받은 서머나 교회에게 주 예수는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첫째는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10c)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관’이 ‘생명’과 동격이므로 ‘생명의 관’은 영생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2:7)과 같은 의미입니다.
‘영생’은 우리 충성(순교)의 값이 아니라, 그의 은혜의 선물로서 복음을 믿은 우리는 이미 ‘생명의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3:11). 우리 믿음이 그의 은혜의 선물(엡2:8)이듯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그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폴리갑’과 같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들을 귀 있는 자들’인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20:6). 11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영원한 죽음, 즉 불 못(지옥)에 던져지는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20:11-15).
20:6절입니다. “이 첫째 부활(생명의 관)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기서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기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들을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귀’, 즉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 예수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마11:25-27). 그러므로 겸손하게 주 예수의 멍에를 메고 주 예수께 기도하며 배우시기를 바랍니다(마11:29). ‘이기는 자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가 새 언약대로 모든 환경(죽음까지)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음의 약속대로 우리에게 영화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주 예수의 말씀, 즉 성령이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생의 약속인 주 예수의 복음이요, 그 복음의 진리에 근거하여 그 교회에 적용하시는 그의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서머나 교회에게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들, 즉 우리 교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창립 9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서머나 교회의 편지와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주 예수의 복음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의 복음의 관점에서 우리 교회 그 자체와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가 복음의 새 언약대로 우리 교회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성령을 통하여 주 예수의 복음을 계속 반복하여 듣고 이해하여 복음의 열매(풍성한 생명)를 누리면서, 세상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교회의 선한 목자이신 주 예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서 우리 교회의 지체인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찬송 570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