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본다는 건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여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눈부신 족적을 남긴 화가 네 명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번잡한 세상을 피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도피처이자 당대에 이해받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후대에 전하는 미술관, 예술적 영감의 원천 또는 작업의 연장이자 무대였던 화가의 집을 공개한다.
1869년, 살롱에 ‘유피테르와 에우로페’, ‘프로메테우스’를 출품하여 수상했으나 그림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귀스타브 모로는 작품을 더 이상 살롱에 출품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그림 주문도 수차례 거절했다. 화가로 지내는 동안 개인전을 단 한 번밖에 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1890년부터 자신의 집을 개인 미술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귀스타브 모로는 1895년, 건축가 알베르 라퐁을 고용해 자신의 저택을 전면 개축했다. 식구들이 사용하는 공간까지 개조해 갤러리를 두 군데 만들고 자신의 작품이나 소장품, 가구, 집기 등을 전시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개인사적 미술관으로 꾸몄다. 그의 집에 들어서면 약 1천2백 점의 유화와 수채화, 1만 3천 점에 달하는 데생 작품이 금색 액자를 두른 채 끝없이 이어진다. 작품의 모티프는 주로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취한 것으로, 그 숭고하고 비극적인 경이감에 압도당한다. place 2 윌리엄 모리스의 집 장식미술의 혁명을 이뤄낸 거대한 실험실
중세역사와 응용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윌리엄 모리스는 1851년 만국박람회에 전시된 추한 공산품들에 충격을 받아 응용미술을 완전히 혁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본격적인 첫 시도는 바로 1859년 건축가 필립 웨브에게 맡긴 자신의 신혼집, ‘레드하우스’였다. 지금까지도 필립 웨브의 걸작이라 불리는 이 저택은 내부 인테리어의 큰 틀은 웨브가, 세세한 실내 장식은 모리스와 그의 친구들이 맡았다. 특히 모리스는 이 저택을 꾸미는 일에 엄청난 열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세풍의 대형 서랍장,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커튼 등을 손수 디자인했다. 1861년 레드하우스의 완공 직후 그는 ‘모리스, 마셜, 포크너-그림, 조각, 가구, 금속공예 상회’를 설립해 신고전주의 진영과 맞서 싸우는 중세파의 시각에 부합하는 가구와 장식품, 직물, 벽지, 병풍,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생산했다. 그러나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과 현대적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회사에 이윤을 안겨주지는 못했고 윌리엄 모리스는 1871년 레드하우스를 떠나 런던의 옥스퍼드셔 남서쪽의 켐스코트 매너로 이사해 중세 채식서적의 영향을 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윌리엄 모리스에게 집은 장식미술의 형식과 스타일의 혁명을 이뤄낸 거대한 실험실이었으며 아르누보, 미국 아나키스트들의 리버티운동에서 빈 분리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후예와 아류를 낳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산실이었다. place 3 클로드 모네의 집 꽃향기로 가득한 색채의 왕국, 지베르니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야외에 나가 원하는 각도와 광선이 나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렸던 모네는 아예 자연을 집에 옮겨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원을 세심히 구상한 후 식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꽃과 나무를 심었다. 우선 희귀종 나무들을 골라 큰 얼개를 짜고 다양한 꽃과 식물을 배치해 정원이 계절과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색을 연출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연못을 만들어 수생식물들이 자라게 하고 그 위에 일본식 홍예교를 설치했다. 여기서 탄생한 수많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수련’ 연작일 것이다.
그는 미술품 수집에도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 특히 일본 판화 수집에 열을 올렸는데 그의 일본 판화 컬렉션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의 일본 판화 사랑은 부채와 도자기 등 일본식 장식품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 ‘명상, 소파의 모네 부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작품의 이상적 소재가 될 만한 풍경들을 빠짐없이 집 안에 두었는데, 그에게 집이란 자신이 창조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킨 인상파 미학을 개괄하고 요약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place 4 알프레트 쿠빈의 집 평온하고 소박한 안식처 오늘날 누군가가 오스트리아 북부 린츠 지방, 츠비클레트의 알프레트 쿠빈의 집을 찾는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알프레트 쿠빈의 내면은 어둡고 고통스러웠지만 그의 집은 모든 것이 깔끔히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편안한 느낌의 집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반증한다. 그는 유난히 굴곡 많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클라겐푸르트에 사는 사진사 외삼촌 밑에서 사진을 배우던 시절에는 모친의 무덤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뮌헨미술학교에 재학 중이던 1898년, 그는 막스 클링거의 ‘장갑의 역사’를 마주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깨닫게 된다.
《화가의 집》(아트북스) 19세기와 20세기의 유명 화가 14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살펴본 책. 미술사가인 저자가 인테리어 전문 사진작가와 함께 이들의 작업실, 침실, 거실, 부엌, 복도 등을 찬찬히 둘러보며 그들의 정신과 작품세계를 세밀히 관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