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한위석경 铁器时代 · 汉魏石经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희평석경》 잔석 낙양 태학 유적 출토
동한과 조위 때 새긴 비석 경서.중국 역사상 최초의 관정 유가 경전입니다.한석경은 희평석경, 일체석경이라고도 하고, 위석경은 정시석경, 삼체석경이라고도 합니다.한위석경(漢魏石經)은 원래 낙양 고성(洛陽) 남쪽 교외 태학강당의 동서쪽에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한위의 태학 유적(한위의 낙양성 유적 참조)은 지금의 허난성 옌스현 소작좡향에 있습니다.한나라와 위나라 이후 석경은 계속해서 심하게 훼손되어 원래의 비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송나라 이후로 석경 잔석이 때때로 출토되었습니다.
송홍적(宋洪适)이 '예석'에서 석경 탁본을 저술한 이래, 전대에 걸쳐 석경 잔자를 수집하여 경전을 교정하고 서예를 연구하는 데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1920년대 후반에 마헝과 다른 학자들은 한위와 위나라의 석경을 수집 및 연구하고 석경의 탁본을 기반으로 비도를 복원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뤄양 태학 유적지에서 다수의 석경 잔석과 비석이 내륙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수집되었으며, 동시에 한 석의 양면에 새겨진 글자에 주목하여 석경의 비수, 배열 순서, 배치 위치 및 교정 경전 방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습니다.
한흥 태학, 오경 박사를 두다.박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쳤지만, 장기간의 전전 및 필사 때문에 경전의 문장에 오류가 매우 많습니다.동한의 환령에 이르렀을 때, 제경 박사가 갑을과 을과를 시험했을 때, 경쟁이 치열하여, 경적을 사문에 맞추려는 뇌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평 4년(175)에 이르러 채옹(蔡邕)·이순(李巡) 등이 주관하여 경적문자를 정정하고 영제의 허락을 받아 비석에 간행하여 태학강당의 동쪽에 세워 두었으므로, 제유만학(諸儒晩學)이 정본(正本)으로 삼았습니다.
▲ 희평석경 《주역》잔석(탁편) 하남박물관 소장
희평석경은 후한 영제 희평 4년에 새겨져 광화 6년(183)까지 9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양룡양의 '낙양기'에 따르면 태학강당 앞 동쪽에 세운 각석 46비에는 '노시(魯詩)', '상서(尙書)', '주역(周易)', '의례(儀禮)', '춘추(春秋)', '공양전(公陽傳)', '논어(論語)' 등 7종의 경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비석은 기와와 지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사방에 울타리를 치고 남쪽으로 문을 열며 하남윤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졸을 배치합니다
.동한 광무제 때 오경학관인 십사박사를 두었는데, 모두 오늘날의 문경학자입니다.《시경》에는 노, 제, 한 세 집안이, 《역경》에는 시, 맹, 양구, 경씨 네 집안이, 《상서》에는 구양, 대소하후 세 집안이 있고 《예경》에는 대소대이 집안이 있고 《춘추공양전》에는 엄과 안 두 집안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14개의 장구를 모두 새기려 하였으나, 그 형세로는 불가능하여 매경마다 1개의 장구를 기본으로 하였으며, 매경의 비말에만 각 가경의 문장구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별도로 나열하여 교기에 기록하였습니다.한석경 비면에는 종횡경계격(從横界格)이 없고 일자예서(一字隶書)를 매어 직하행문(直下行文)을 씁니다.
돌마다 행의 수와 행마다 글자의 수가 다릅니다.비석은 직사각형으로 경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각 경문이 시작되고 끝납니다.왕국유고증에 따르면 각 비석의 한 면에 약 35줄, 각 행에 약 75자가 있으며 표준 사분체 예서로 10자마다 약 1척의 '건초척'에 해당하며 비 아래에 좌석이 있고 좌석에 비석을 삽입합니다.
희평석경을 판각한 후 7년, 동탁은 낙양궁묘를 불태워 낙양태학을 황폐화시켰고, 석경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 한위석경산동박물관장
《정시석경》 위 문제 황초 원년 [220)에 태학을 낙양에 복립하고, 정시 2년(241)에 태학강당 서쪽에 《정시석경》을 세웠습니다.서고문경 석경으로 이를 보완하여 새긴 석경은 《상서》, 《춘추》 2편뿐입니다.경전은 모두 고문, 소전, 예서의 3가지 글씨체로 쓰여져 있어 후대에 '삼체석경'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 정시석경 《상서》잔석(拓石) 하남박물관 소장
『정시석경』은 비면마다 종횡선이 경계격으로 새겨져 있습니다.일자 삼체 직하 서각, 각 면은 약 33줄, 각 행은 60자입니다.비석은 모두 평평한 지붕의 직사각형입니다.비마다 행수가 다릅니다.
1922년 낙양태학유적에서 출토된 삼체석경 1점은 양면 1800여자로, 앞면에는 상서의 무일, 군석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춘추 희공, 문공의 일대기가 있습니다.1930년대 초 '군석'편의 왼쪽 하단 모서리에 있는 잔비(残碑)가 출토되었는데, 앞면에는 '21' 3자, 뒷면에는 '8' 2자를 새긴 것으로 보아 마형(馬亨)은 '정시석경(正始石經)'이 28비로 추정됩니다.
1957년 시안시에서 '상서·재재'의 잔비 한 단락을 발견하여 아래에 '정시 2년 3월'과 '제17석'이라고 새겼는데, 이 두 잔비의 기록은 모두 28비의 추론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분류:고고 표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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