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51년만에 이뤄 진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분의 글이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이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것이 개인블로그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개인의 사설이나 늘어 놓는 것이라고 비난조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정안님(허형철목사님)의 권유로 쟁쟁한 분들이 대다수인 이 카페에 가입하는 것이 주제 넘는 짓이라 고사하였으나 누구나(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가입하여 서로 비우고 나누며 교류하는 곳이라고 하고, 아쉬람이란 어원적 설명을 보면 쉼터, 또는 영성공동체(영성이 꼭 종교를 동반해야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라고 되어 있는 것 처럼 삶의 팍팍함과 영혼의 피폐함을 벗어 던지고 녹 슬은 정신에 내려 앉은 무지와 탐악의 먼지를 쓸어 버리기 위한 새로운 빗질을 위해 가입을 하였고, 굳이 종교가 있는 사람만 가입이 된다든가 하는 조건도 없고 해서 가입을 했고, 내가 회장님이나 여러 석학분들 처럼 신학이나 철학에 대한 이해도 없고 아는 게 없다보니 그저 일상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글로 써서 올리고 했는데, 고담준론이나 신학,철학만이 글로 취급되어 지거나 사설(私說)이 아닌 공설(公說)만이 카페가 지향하는 목표와 일치하니 사설은 금지한다든가, 형이상학적이거나 고답적이고 현학적인 글들만이 이 카페의 지향할 길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이 카페에 적을 둘 수도, 두고 싶은 생각도 없기는 하다. 회원 제위분의 다수 의견을 여쭙고 싶다. 만약 그 분의 얘기에 동의하는 분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면 미련없이 이 카페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의 일은 오늘 아무도 예단하거나 확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니 그 건 그 때에 가서 운명따라 흘러 가면 되겠거니와 지금 이 순간에는 나의 얘기를 해야겠다. 나의 지난 글에 초등학교 때의 첫사랑 YH가 지난 토요일에 친구인 MA가 몸이 아프지 않으면 같이 상암동 하늘공원에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는데, 금요일 오후에 전화를 했더니 MA가 몸이 많이 안 좋고 자신도 손주 둘 중에 큰애가 감기를 앓아서 애기를 돌봐야 해서 알 수가 없으니 방송일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토요일 KBS의 드라마 "미래의 선택" 이천셋트장에서 2년 만에 고두심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무료한 시간을 오래 전에 사 놓고 못 읽었던 무라까미 하루끼의 "1Q84"를 읽고 있는데 YH로 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어?" "지금 이천 미래의 선택 셋트장에 있어" "그래 일 받았구나, 나도 오늘 못 나갈 것 같았는데 잘 했어." 그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다음 토요일(10월 26일)에는 어떻겠냐는 의논을 하니 그 때 가 봐야 되지만 우선 그 날로 정해 놓고 보자고 했는데, 내가 다음 달 초에 지방의 산골로 떠난다고 했던게 마음에 걸렸는지 일요일에 성당에서 일을 마치고 오후 늦게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며 일요일에 일을 할 확률이 어떠냐고 묻기에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사실이기도 하지만 만약 일이 들어 와도 거절하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대단한 로맨티스트는 아니지만 내가 일을 안 하면 큰 일이 일어 난다거나, 지구의 자전이 반대방향으로 전환이 된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 보다는 사랑이 우선이니까.) 그녀가 일요일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일요일, 늦으막히 일어나 침대에서 빈대떡 뒤집듯이 이리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전국노래 자랑"을 시청하고 "1Q84"를 펼쳐 들었는데 방이 지하나 반지하도 아니지만 남쪽으로는 막히고 동쪽으로 돌아 앉아 있는 구조라 온 종일 어둡다. 그래서 전등을 켜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청소나 음식을 해야 하는지라. 답답하기도 하고 눈도 자꾸 침침해 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차비 때문에 15인승만 어린이회관 주차장에 돈을 주고 주차를 하고 마티즈는 불암산 입구의 공터에다 주차해 놓은 터라 혹시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불암산 입구에 가서 기다리며 책을 읽기로 하고 7호선을 타고 먹골역에서 하차하여 시내버스로 갈아 타고 불암산 입구로 갔다. 아파트 단지옆 도랑 가 계단에 앉아 책을 읽다가 걷다가 했다. 3시 40분 쯤 실망과 함께 거의 포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로 부터 전화가 왔다. 성당에서 일을 마치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방동 공군회관 건너편에서 만나기로 하고 도착하기 20분 쯤 전에 전화를 해 주기로 했다.
떼어 놓았던 배터리의 마이너스 단자를 연결하고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채우고 목적지를 향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월릉교에서 동부간선도로로 갈아 타고 강변북로 쪽으로 향하는데 중랑천변의 자전거 길을 달리는 시민들, 걷고 있는 시민들, 그리고 하늘공원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밭과 억새밭이 부푼 가슴을 안고 달려 가는 나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강변북로로 접어 드니 길이 제법 밀렸다. 마음이 급한만큼 길은 점점 더 더뎌지는 것 같았다.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들어서니 거기도 좀 밀렸지만 내가 20분 전에 알려 준 시간인 다섯 시 십 오분보다 1분 빨리 도착했다. 그녀를 기다리지 않게 해서 다행이었다. 그녀를 태우고 여의도 중고교 골목으로 가서 상가 앞에다 주차를 하고 100여 미터를 걸어서 여의도 선착장 부근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그동안의 살아 온 얘기를 했다. 그녀는 75년도에 사돈 뻘 되는 친척의 중매로 결혼을 해서 서울로 왔는데, 그녀의 남편은 처음에는 교도관으로 근무를 했었는데, 친정 아버지께서 그 걸 못 마땅해 하셔서 공부를 해서 서울시 행정직 공무원으로 이직을 했고 금슬이 좋았었는데, 매사에 정확하고 꼼꼼한 성격의 그녀의 남편은 IMF때 너무 일을 열심히 하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얼마 후에 세상을 떴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의 가정환경과 상주사람인 내가 그 곳 학교를 다니게 된 배경 그리고 나의 인생관과, 그 시절에 느꼈던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을 얘기했고, 고아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입했던 2009년도보다 1년 전인 2008년 여름에 그녀의 자취를 더듬고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해서 구미시 고아읍에 갔던 일등 그녀에 대한 나의 일념을 얘기 했다. 그녀는 자신은 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거나 기억할 수 없었는데 내가 그녀를 그토록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며 자신이 행복한 여자라고 했다. 사실 나는 2000년에 집을 나와 부산에서 굴러 다니다. 그 해 여름에 서울로 올라 와서 여러 일들을 하며 가끔씩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귀어 볼려고도 했었지만 재산이나 지위 학력등의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이 시대에 진실한 마음을 가진 여성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첫사랑 YH는 학력도 없고 무알푼이고 직업도 그저 운전을 해서 먹고 사는 나를 아무 거리낌없이 대해 주고 유람선을 타러 가며 내가 내민 손을 일말의 망설임없이 잡아 주었고, 선상에서 "손이 참 따뜻하다."고 말해 주었었다. 처음에 시댁 쪽의 친척이 암자를 운영하고 있어서 남편을 따라 불교를 믿고 있었는데 시집의 연이은 불행에 불교에 실망한 시어머니가 "얘야 이제 네 고모따라 가거라"해서 수녀님인 고모를 따라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오래 전에 '요셉"이란 세례명을 갖고 있다가 무신론자가 되어 냉담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나타난 성모마리아의 화신은 아닐까?
내가 디너를 포함한 크루즈를 타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가격을 보고 나의 형편을 생각해서 인지 극구 " 3섬 유람선(일반회항선)"을 타고, 나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녀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면서 가난한 나의 처지가 서럽기도 하고 좀더 좋은 나들이를 시커 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야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얘기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 줄 몰랐다. 그래도 기념은 해야 했고 그녀와 찍은 사진을 휴대폰의 배경화면으로 저장하기 위해 앞자리에 앉은 젊은 애기아빠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다. 배에서 내리면서 잡은 손을 주차해 놓은 차에 도착할 때까지 꼭 잡고 놓지 않았다.일요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어서 여의도역으로 갔다. 칼국수집과 중국집, 낙지마을이 영업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칼국수를 메뉴로 선택했다. 그리고 왕만두도. 음식값은 그녀가 내겠다고 우기기에 그 마음이 고마워서 조금 쪽팔리기는 해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여의도공원이나 갈까?" 그녀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어의도 환승센터 뒤편(마표대교쪽)의 공휴일 주차허용구역에 차를 세워 두고 공원 안의 편의점으로 갔다. 두 손을 꼭 잡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또 얘기의 꽃을 피우다가, 그만 돌아 가자는 그녀의 말에 따라 놓아 버리면 영영 다시 잡를 수 없을 것 처럼 손을 꼭 잡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난 여기서 버스 타면 바로 가니까, 여기서 그냥 가."한다. 사나이 이철훈이 그럴 수야 있나. 나는 안된다며 그녀를 태워 그녀의 아파트 입구에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으로 돌아 오며 생각하니 손주들을 보느라고 자신의 인생은 내팽개치고 사는 그녀, 누굴 만나러 나갈 시간도 없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성질 같아서는 벤틀리, 아니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에다 기사를 딸려 서울대 출신 보모를 두 명 구해서 그녀의 딸 집에 보내고, 그녀에게는 빨간색 페라리나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싼 (25억에서 35억 정도,최근에 레바논계 자동차회사에서 슈퍼카 "라이칸 하이퍼 스포츠"라는 차가 나왔는데 340만달러,한화 약37억원 짜리가 있기는 하지만) 부가티베이론을 한대 사서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내가 참기로 했다. 이세상에서 이별보다 더 쓴 것이 없고, 사랑보다 더 달콤한 것이 없겠지만, 나 같은 빈자에겐 사랑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하는가보다. 그렇게 쫓기 듯 살아 가는 그녀를 도울 힘이 없는 내가 한 없이 작아 지고, 미안한 마음은 산처럼 쌓여만 간다.
그래, 우리의 사랑이 비록 Physical Love가 아닌 Platonic Love이더라도 난 이제부터 죽을 때 까지 내 마음의 손이 잡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기로 했다. 장윤정의 첫사랑을 컬러링(Ring to you)으로 바꾸고 2년이 가까워 왔는데 이제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어 찾아 왔고, 장윤정의 첫사랑 다음 곡이 "초혼"으로 "살아서는 갖지 못하는 그런 이름 하나때문에...."하는 가사 때문에 살아서는 그 이름을 다시 불러 보지 못할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 그녀의 이름을 살아서 다시 부르게 되었다, 지난 여름 경인 교대에 촬영차 갔을 때, 매미가 우는 소리를 휴대폰에 녹음을 해서 MP3파일로 변환시켜 컬러링(Ring to me)으로 사용하다가 일 주일 쯤 전에 떵리쥔의 "샹빠 칭런류,想把情人留,사랑하는 이를 붙잡고<머물게 하고>싶어"로 바꾸었더니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사랑이 내 곁에 영원히 머물게 하고 싶어 진다, 인생이 노래 따라 간다는 말처럼, 51년 만에 찾아 온 마지막사랑을 소중하게 가꿔 나가리라! 시드니 카튼처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런 극단적인 희생은 아니더라도 만약 그녀를 위해 써야한다면 나의 모든 것(목숨까지도)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나의 마음을 그녀는 알까?
첫댓글 참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의도는 모르겠지만 세상 사는 또 한편의 드라마에 그저 감동할 뿐입니다. 차제에 말씀드리면, 이 카페는 고담준론만 하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철학적 카페만은 분명히 아님을 말씀드리지요^^ 아무런 이야기라도 우리들의 가슴에 진솔한 감동을 주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못난 저에게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아마 그분이 코아 초고 조회수를 자랑하는 철면천사님을 시샘하는가 봅니다.ㅎㅎㅎ
이왕 그렇게 만나셨으니 좋은 연이 닿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주시는 정안님 덕분에 내일도 웃으며 살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친구 만나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철면천사님의 순애보가 광명을 찾은 오늘, 축하합니다.
누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지요? 누님의 응원 덕분에 더욱 행복합니다.
아....저도 작년에 하루키의 1Q84 읽었는데....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참 강렬한 소설이었죠.....하늘에 달이 두개.....공기 번데기......천재라고 생각했던 작가예요........^^
그런데 1권을 거의 다 읽어 가는데 2,3권을 읽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재미 있다거나 감동적이지 않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라는 느낌도 그리 많지는 않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문열선생님이 우리 동포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이문열선생님의 글들이 훨씬 더 깊이 있고 폭이 더 넓다고 생각 되는군요 어쩌면 작가의 지명도도 국력과 비례하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