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가장 괴로운 작업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재고 조사라고 답할 것이다.
월마트가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시스템을 적용해 재고 관리는 물론 매출 상승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월마트는 제품 케이스에 RFID 태그를 장착해 제품이 진열대에서 팔려나가면 그 즉시 직원에게 통보해 진열대에 제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일명 ‘스마트 선반’으로, RFID 시스템에 기록이 남으므로 별도의 작업 없이 재고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재고 조사의 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RFID는 미국 월마트나 테스코, 유럽의 메트로, 스위스의 마노 등 대형 유통업체, 제조업체 중심으로 재고 관리나 물류 관리에 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활용 방법과 적용 업종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RFID 태그로 수집한 정보를 마케팅, 신제품 개발, 고객 불만 파악을 위한 고객 서비스, 이력 추적에 의한 품질 관리 등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적용 업종 또한 확산되고 있다. 회전초밥집과 법률사무소, 음료 자판기 등에도 RFID 시스템이 구축, 적용되고 있다.
◇회전초밥 접시에 장착된 RFID=블루 C 스시(Blue C Sushi)는 미국 시애틀 지역에 5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회전초밥 레스토랑이다. 블루 C 스시에서는 회전초밥을 담는 접시에 RFID를 장착해 손님들이 어떤 초밥을 즐겨 찾는지 파악하고 초밥 요리사들이 초밥을 만들어내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블루 C 스시는 우선 특정한 초밥 접시가 얼마나 오랫동안 컨베이어 벨트에서 돌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RFID를 사용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공산품과 달리, 초밥 요리사가 손으로 주물러 즉석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초밥은 신선함이 생명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언제나 신선한 초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손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오랫동안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고 있는 초밥은 생선살과 밥이 마르거나 굳어 신선함이 떨어지고 맛도 변하게 된다. 혹시라도 그런 초밥을 먹게 된 손님은 식당에 대한 불쾌감은 물론, 맛없는 식당으로 각인된 상태에서 식당을 떠날지도 모른다. 식당의 재방문은 물론 포기해야 한다.
블루 C 스시는 모든 접시에 RFID 태그를 부탁하고 RFID 리더를 초밥 요리사의 작업대마다 설치했다.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가 한번 순환되는 지점에도 RFID 리더를 설치했다. 초밥이 접시에 담겨 컨테이어 벨트에 올려진 순간부터 모든 것이 기록된다. 접시가 컨테이어 벨트에 올려진 순간부터 시간을 체크해 90분이 지난 초밥은 버려진다. 만일 90분이 지난 후에도 컨베이어 벨트에 남아 있으면 시스템은 경보를 발생해 접시를 치우도록 한다.
RFID 시스템을 적용함으로써 블루 C 스시가 얻은 또 다른 효과는 역시 생산량 관리와 원가 절감이다.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초밥을 만들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특히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식사 때처럼 손님들이 폭주하는 시간에는 손님들의 수요에 맞춰 적정량의 초밥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었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특성상 초밥이 모자라 시간이 오래 걸리면 손님들의 불편함은 늘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테이블의 회전률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식당의 매출에도 손해를 끼친다. 반대로 속도를 올려 초밥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예상 외로 손님들이 없거나 많이 먹지 않을 경우 만들어진 초밥은 쓰레기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생산 원가가 높아져 수익성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RFID 시스템을 설치한 후에는 초밥 접시가 컨베이어 벨트를 떠나는 순간마다 기록되므로 요리장은 초밥이 벨트에서 줄어드는 속도를 미리 체크해 대비할 수 있다. 초밥 접시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지면 초밥을 덜 만들고, 속도가 빨라지면 손을 분주히 놀려 더욱 많은 초밥을 만들어내면 된다.
또 손님들의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 잘 팔리는 초밥과 그렇지 않은 초밥을 가려내 어떤 초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블루 C 스시는 초밥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접시를 사용하고 이 접시들을 태그로 구분하고 있다. 요리사들은 작업대에 설치된 RFID 리더를 보면서 인기가 높은 초밥은 넉넉히 만들어내 초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RFID 시스템 적용 전 블루 C 스시는 영업을 마치고 식당 문을 닫을 때 일일 평균 80~100개의 초밥을 버려야 했다. 현재는 버려지는 초밥이 그 절반 수준이며, 원가 또한 줄었다.
블루 C 스시는 일본을 포함해 늘어나고 있는 체인점들에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며, 휴대용(헨드헬드) RFID 리더를 구매할 생각이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는 순간 청구서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이 초밥집에선 점원이 뛰어와 식탁 위 초밥 접시의 숫자를 종류대로 세어서 계산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종이문서 관리에 RFID 적용한 로펌=워싱턴 D.C에 위치한 Sughrue Mion PLLC는 1957년 설립된 지식재산권과 특허 전문 로펌이다. 한국인 변호사도 3명 근무하며 한국 특허청 등과도 접촉하고 있다. 이 대형 특허 전문 법률사무소에서는 그동안 작업해온 종이 문건만 2만건이 넘는다. 또 이 기록물들은 계속 보관돼야 한다. 종이 서류들이 소실되거나 파일링이 잘못돼 있거나, 혹은 누군가의 책상에서 다른 서류들 밑에 깔려 있기라도 하면 이 로펌에서는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Sughrue Mion는 방대한 종이 문건들을 쉽게 찾아내고 편리하게 관리하기 위해 문서보관실에 RFID 시스템을 구축, 적용하고 있다. 문건마다 RFID 태그가 내장된 라벨이 붙여져 있다. 따라서 RFID 스캐너로 전체 파일을 한번에 읽어 변호사나 사무관들이 요구하는 문서 파일을 신속히 찾아낼 수 있다. 문서 파일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으며 이전에 누가 읽었는지도 다 추적할 수 있다.
RFID 스캐너는 사무실 천장에 설치돼 있다. 문서보관실에서 문서 파일을 찾을 수 없을 때는 태그 번호를 시스템에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태그가 리더기를 지나간 모든 기록들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누가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장비 도난 방지에 적용한 웰파고=대형 금융 서비스 기업인 웰파고는 장비 도난 방지를 위해 RFID를 사용하고 있다. 웰파고 데이터센터에 있는 모든 서버, 저장장치, 노트북 및 기타 장비 일부에 RFID 태그가 부착돼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노트북이 빌딩을 벗어났을 때 그 노트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법한 사용자인지 확인 가능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사무실을 벗어나 이동할 때 특히 유용하다. RFID 시스템 적용 전에는 보안 관리자가 모든 노트북의 시리얼 번호를 일일이 리스트와 대조해서 확인해야 했다.
데이터센터의 장비 재고 파악도 훨씬 쉽고 빨라졌다. 이전에는 장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바코드를 스캔해야 했다. 이젠 RFID 리더로 태그 정보만 읽으면 단 몇 초만에 파악된다. 장비 목록에서 없는 것만 조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며칠씩 걸리던 전 데이터센터의 장비 재고 조사가 단 하루면 된다.
웰파고는 대규모 테이프 라이브러리에 RFID를 적용하는 작업 중이다. 고객 정보를 담고 있는 이 백업 테이프들에 RFID 태그를 장착하는 것이다. 테이프의 누락을 신속히 파악하고 누락된 테이프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도 추적 가능하다. 향후 지점의 컴퓨터 장비는 물론, 현금봉투, 종이 문서, 기타 추적하기 어려웠던 품목으로 RFID 적용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자판기의 선호 음료 파악에 활용=코카콜라는 최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소비자들이 음료를 골라 마실 수 있는 자판기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자판기는 맥도날드와 버거킹 등 주요 패스트푸드 매장에 설치되며 100여종의 탄산음료와 주스, 차 등을 선택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 점에 자판기라는 사실도 특이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이 자판기가 RFID를 장착해 자판기 음료의 판매 현황을 코카콜라 본사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코카콜라에서는 소비자들이 어떤 음료를 더 선호하는지 구체적이며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프리스타일은 캔이나 병음료 등을 판매하는 자판기가 아니라 즉석에서 음료를 조제, 제공하는 자판기다. 커피 자판기와 유사하다. 커피 자판기에서 밀크커피, 설탕커피, 블랙커피를 선택하면 자판기 내 디스펜서에서 해당 원료를 내려보내 컵에서 혼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프리스타일 자판기는 그 이름이 뜻하듯이 대단히 다양한 스타일로 음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 100종의 음료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디스펜서마다 30개의 카트리지가 설치되며, 디스펜서에 RFID 리더가, 카트리지에 RFID 칩이 장착된다.
이 RFID 시스템에 의해 자판기의 원료 소비 정보가 코카콜라 본사로 전송되는데, 코카콜라에서는 소비자들이 어떤 음료를 더 선호하는지 파악해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다. 새로운 음료에 대한 평가나 지역별 소비자 취향 등을 파악하게 돼 생산·유통·재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코카콜라 RFID 음료 자판기에 사용되는 무선 네트워크는 버라이즌이며, 데이터를 모으는 DW(Data Warehouse)는 SAP 제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