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 / 홍은자
태양이 이글거린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피부도 시커멓게 변했다. 그늘로 들어가도 그다지 시원하지 않다. 실내 공간에서는 냉방기를 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다. 편리한 것에만 의존하는 생활은 확실히 육체 활동이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더불어 면역성도 약해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하면 전파속도는 순식간이다. 변종과 싸우는 가운데 항체가 생겨나는 듯도 하지만, 불청객은 여전히 소리 없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날씨의 변덕스러움이 요동친다. 폭염과 폭우에 주의하라고 시시때때로 기상특보를 알려 오지만,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동 수단이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어떻든 간에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망연자실하게 된다. 가슴 아픈 일은 느닷없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법이다. 얼마나 많은 현상이 위험 속에 놓여 있는가. 매스컴에서 보는 부분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 지고 흘려들을 때도 가끔은 있다. 소설 같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다.
땅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들었는가 싶더니, 갑자기 산사태 소식이 들려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가 내려 수해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집이 흙더미에 묻히고 농경지가 물에 잠긴 상태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 영화 장면과도 같다. 해안가나 범람하는 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집안에 들어 온 물을 퍼내느라 정신없다. 배수가 잘 안되는 도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앗아가고 있다. 매스컴으로 흘러나오는 소식은 과히 충격적이다. 제명을 다 해야 하는 아까운 생명들이 터널에 갇혀 물속에 잠겨버렸다. 오송 지하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울부짖음이 환청으로 들려온다.
태풍은 강력에서 초강력으로 더 세어졌다. 한여름에도 눈이 내려야 할 북극에는 비가 내린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극지의 빙하는 지구의 냉장고 역할을 해주는 보루가 아니던가. 외국의 상황을 전하는 뉴스를 듣다 보면 당장 내 눈앞에 닥칠 현실처럼 여겨진다. 섬들이 수면 아래로 잠겨 이미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 잠긴 이어도는 제주민요 속에서 슬프게 불린다. 한라산 높이 천구백오십 미터라는 숫자도 서서히 전설이 되고 있다. 또 다른 섬들도 이어도의 뒤를 이어 그리움을 안고 잠기겠지. 신은 폭풍·가뭄·홍수·지진 등을 통해 인간 활동을 꾸짖고 있다. 어리석은 인간은 신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연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일까지 서슴없이 벌인다. 자연에 역행하여 얻게 되는 행복이란 게 있을까. 고스란히 고통으로 되돌아올 뿐이리라.
지구는 펄펄 끓은 가마솥처럼 변해가고, 해수면 상승의 결과는 어찌 될지 눈앞에 그려진다. 수분 증발로 인하여 대기권은 불안정해진 가운데 국지성 호우가 내려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산불로 성이 안 풀리는지 지진과 화산폭발로 무서운 괴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지구촌 곳곳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모양새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에 사는 우리도 자연 재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몇 년 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인도양에는 동쪽과 서쪽의 바다에 온도 차가 일어났고, 호주에서는 초대형 산불로 죄 없는 온갖 동·식물이 타 죽었다. 몇 안 남은 생물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었다. 산불은 대륙 곳곳에서 성난 모습으로 반란을 일으키듯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바다의 수온이 오르고, 대기권이 열통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를 시사하는 예고편 같다. 자연을 거스른 인간에게 무서운 재앙으로 덮쳐오는 듯하다.
지구의 자전축이 변화했다는 뉴스가 귀에 꽂힌다. 연속되는 기후 속보를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사고 관련 이야기가 튀어나올 듯하다. 제주 바다 환경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흔했던 생물들이 그리움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문제가 없다고 한들 우리가 받는 불안과 공포를 과학의 잣대로 가라앉힐 수 있을까. 바다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언젠가 자연을 함부로 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이 아닌가.
남편은 오징어 사 온다고 새벽에 부두로 나가더니,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 스무 마리를 칠만 원 넘게 주고 사 왔다. 요즘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울상이다. 어판장에 경매되는 수산물에도 마트에 진열된 식품에도 점점 손대기가 두렵다. 과일이나 채소 등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니 식당에 들어가도 채소 구경은 어렵다. 모든 농수산물이 금값이다. 제사가 많은 집안에서는 제수 준비가 고민으로 다가오는 시점이다.
더위가 가라앉을 줄 모른 가운데 전국이 물 폭탄을 맞은 상황이다. 육지부의 흉작으로 제주의 농산물이 나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전국이 일일 권역에 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 아닌가. 어쩌다 농사에 실패를 맛본 사람들을 생각하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농사는 자연재해를 입느냐 안 입느냐에 따른 일이기에 하늘이 짓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풍어제나 기우제를 지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던 선조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첫댓글 환경에 경종을 울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바다에 너무 많은 것을 버리는 우리들,
지구 몸살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감당 해야 하는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