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피파에서는 호주가 아시아로 포함되어 있지만 이 글은 아시아 대륙만으로 만들었습니다.
-알칸타라는 제외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뛴 필리핀 선수이지만 본인은 스페인 사람으로 살았고 혈통도 스페인쪽이라 애매해서 제외했습니다.
이운재
국적: 대한민국
주요 클럽: 수원 삼성(대한민국)
반박불가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선수이다.
2002년 대한민국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는 활약으로 세계 최고의 골키퍼, 독일의 울리버 칸과 야신 상을 두고 경쟁을 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 상대로 동물적 감각의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며 놀라움을 일으켰다.
2007년 아시안 컵 때 음주파동으로 잠시 대표팀에서 내려왔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까지 37살의 나이로 주전 경쟁을 펼쳤을 만큼 대한민국에서 전설로 평가받는다.
그의 클럽인 수원 삼성에서도 14년간 주전으로 300경기가 넘게 활약하며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 1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다.
이운재는 2002년에서 2005년 까지 세계 골키퍼 순위 13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아시아 골키퍼 사상 가장 높은 순위로 기록되고 있다.
LB
나가토모 유토
국적: 일본
주요 클럽: 인터 밀란(이탈리아)
대한민국의 이영표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의 레프트백중 한 명이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 팀 인터밀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다시 한번 일본의 세리에 돌풍을 만든 장본인이며
빠른 스피드와 강철 같은 체력이 장점인 선수로, 공격적인 드리블과 크로스는 세리에A에서도 상위급의 풀백으로 평가받는다.
공격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능력도 뛰어난데 2010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는 메시를, 2011년 아시안 컵 준결승전에서는 라이벌 대한민국의 이청용을 완벽하게 지워버리며 실력을 입증했다.
그의 이러한 활약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을 최초로 16강에 진출 시켰으며
2011년 아시안 컵 때는 일본 대표팀이 우승하도록 활약해주었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또 한번 일본 대표팀을 16강에 진출 시켰다.
CB
홍명보
국적: 대한민국
주요 클럽: 포항 스틸러스(대한민국), 가시와 레이솔(일본)
대한민국 최고의 주장이자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No.1 수비수로 평가받는 선수이다.
1992년 23살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하자 마자 MVP와 베스트11을 수상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94년 95년 세계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96년에는 리그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수비수로서는 놀라운 득점 기록을 가진 선수이기도 했다.
1999년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면서 그의 절친 황선홍과 함께 만년 중하위권 팀이던 가시와 레이솔을 2년 연속 리그 3위로 만들어 놓으며 경기당 실점률이 1.7이었던 팀을 0.8로 만들어 놓는 활약을 보여줬다.
1999년 세계 올스타전에서는 말디니와 호흡을 맞췄으며
그의 대표팀 활약상으로는
1989년 20살의 나이로 데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주전
1994년 미국 월드컵 독일전 멀티 골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부주장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대한민국을 4강에 진출시켰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이는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지역 출신으로서 최초이기도 했다.
CB
살레 뉘에이메흐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클럽: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중동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센터백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최고의 축구선수로는 두 번째로 뽑힐 정도니 사우디아라비아의 홍명보쯤 되는 선수이다.
A매치만 150경기를 뛰었으며 84년 88년 아시안컵에서 두 번 연속 팀의 우승을 도왔다.
RB
메흐디 마다비키아
국적: 이란
주요 클럽: 함부르크(독일)
로켓이란 별명을 가진 이란과 함부르크의 역대 최고의 수비수이다.
원래는 라이트윙으로 뛰었지만 함부르크에서 라이트백으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아시아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이 되었다.
2003년 함부르크에 입단하자마자 구단 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2004년에는 구단 내 올해의 선수상과 분데스리가 도움 왕을 기록하였다.(14도움)
국가대표에서는 알리 다에이, 알리 카리미, 자비드 네쿠남과 함께 이란의 전성기를 이끈 4인방중 한 명이었으며 주로 라이트윙으로 나오기도 했다.
2차례의 월드컵과 4차례의 아시안 컵에 출장했으며 아시안 컵에서는 두 번의 3위를 경험하였다.
A매치 기록은 110경기 13골을 기록하였고
현재는 함부르크에서 2군팀의 수석코치로 활약 중이다.
RM
박지성
국적: 대한민국
주요 클럽: PSV(네덜란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대한민국 축구의 전성기는 박지성이 있냐 없냐로 결정됐을 만큼 한국과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뽑히는 선수중 한명이다.
19살의 나이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21살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평가전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 상대로 골을 넣었고 본선에서는 포루투갈 상대로 골을 넣는등 팀을 4강으로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월드컵이 끝나고서는 2부리그에 있던 소속팀 교토 퍼플 상가를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천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최초이자 마지막 우승컵을 선물하고는 네덜란드의 PSV로 이적했다.
박지성은 04-05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우승과 KNVB컵 우승을 이루었고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ac밀란 상대로 선제 골을 넣는등의 활약을 펼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비록 잦은 부상으로 맨유에서는 많은 경기를 못나왔으나 08-09,10-11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로 뛰었을 만큼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으며
맨유에서 그는 리그 우승 4번, 리그 컵 우승 3번, 커뮤니티 실드 우승 4번, 챔스 우승 1번, 클럽 월드컵 우승 1번을 만드는 활약을 해주었다.
대표팀에서는 2006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을 16강에 진출시켰으며
2015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팀을 3위로 만들었다.
CM
나카타 히데토시
국적: 일본
주요 클럽: 페루자(이탈리아), AS로마(이탈리아)
일본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뽑히며 아시아인 최초로 세리에 우승을 이룬 선수이다.
전형적인 축구 천재중 한 명으로 18살의 나이로 J리그에서 프로 데뷔했으며
데뷔 첫 시즌 26경기 8골을 넣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살에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으며 조별예선 1차전 브라질을 상대로 1대0 승리를 만들어냈다.
20살에 라이벌 대한민국과의 경기에 투입되어 A매치에 데뷔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뜬금없이 98년 21살이 되던 해에 세리에A 페루자에 입단하는데
아시아인이라는 약점을 이겨내며 세리에A 데뷔 첫 시즌에 33경기 11골을 기록한다.
페루자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AS로마로 이적하여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2대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1골1어시를 기록하며 2대2 무승부로 만들었고,
이러한 그의 헌신에 AS로마는 00/01시즌 세리에A 우승을 이룬다.
국가대표에서의 나카타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이 준우승하도록 만들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일본을 16강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후 빠른 속도로 실력이 하락하며 부진하게 되었고 29살의 이른 나이로 은퇴한다.
DM
자바드 네쿠남
국적: 이란
주요 클럽: CA오사수나(스페인)
이란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주장이다.
2007년 스페인 라리가 클럽 팀 오사수나에 입단하자 마자 주전으로 활약하며 첫 시즌 27경기 2골을 기록하고
UEFA컵 결승 토너먼트에서는 연장 후반에 결승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2008-09 시즌에는 32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프리메라리가 아시아 선수 최다 골이자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게 된다.
또한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인 베르나베우에서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국가대표에서는 이란의 전성기를 이끈 4인방중 한 명으로 A매치만 151경기를 출전했으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박지성과 많이 비교되었는데
실제로 박지성의 한국과 네쿠남의 이란은 서로의 홈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마지막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이 승리하며 이 둘의 승부는 박지성이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박지성 은퇴 후 대한민국은 네쿠남의 이란 상대로 승리가 없으며 4연패를 하기도 했다.
.LM
손흥민
국적: 대한민국
주요 클럽: 함부르크(독일), 레버쿠젠(독일), 토트넘(잉글랜드)
18살의 나이로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데뷔한 그는 첫 선발출전한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슈퍼스타의 시작을 알렸다.
데뷔 시즌 리그 3골을 넣자 다음 시즌에는 5골을 넣었고
20살이 되던 2012-13시즌에는 33경기 12골 2도움을 기록하며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는 13-14 시즌 31경기 10골 4도움, 시즌 12골 7도움을 기록했고
14-15시즌에는 30경기 11골 2도움, 시즌 17골 4도움이라는 대활약을 펼치며 토트넘으로 이적하는 계기가 됐다.
비록 첫 시즌에는 4골 1도움, 시즌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16-17시즌 34경기 14골 6도움, 시즌 21골 7도움을 기록하여 차범근이 가지고 있던 해외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고 17-18시즌에는 37경기 12골 6도움, 시즌 18골 11도움을 기록했으며
현재는 아시안게임에 차출됐음에도 16경기 8골 5도움, 시즌 11골 6도움을 기록하며 대활약중이다.
케인,알리,에릭센과 함께 DESK라인으로 불리며 토트넘을 우승경쟁팀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표팀에서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 19살의 나이로 출전하여 데뷔 골을 넣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상대로 추격골,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피지와 독일 상대로 골을 기록하였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에 추격골, 독일에 추가 골을 넣으며 박지성,안정환과 함께 26살의 나이로 대한민국 월드컵 최다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2018 아시안 게임에서는 팀의 에이스로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병역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서 손흥민은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현재는 2019 UAE 아시안컵에 도전중이다.
SS
차범근
국적: 대한민국
주요 클럽: 프랑크푸르트(독일), 레버쿠젠(독일)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뽑는 선수다.
25살의 다소 늦은 나이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지만 군대문제로 2년 후 다시 진출했는데
프랑크푸르트 첫 시즌부터 리그 12골, UEFA컵 11경기 3골을 기록하며 팀을 UEFA컵 정상으로 이끌었다.
당시 그의 활약에 독일 스포츠 언론 키커는 차범근을 리그 공격수 부분 3위로 기록했으며
두 번째 시즌인 80-81 시즌에는 리그 27경기 8골, UEFA컵 5경기 2골, 포칼 컵 6경기 6골로 팀을 포칼 컵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차범근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81-82시즌 리그 31경기 11골, 시즌 38경기 12골을 기록하였으며
82-83시즌에는 리그 33경기 15골을 기록하며
그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되는데
레버쿠젠에서도 83-84시즌 35경기 12골, 84-85시즌 32경기 14골을 기록하고
85-86시즌에는 리그 34경기 17골, 시즌 38경기 19골을 기록하며 당시 중하위권 팀이던 레버쿠젠을 6위까지 올려놓았다.
또한 86-87시즌에는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그의 두 번째 UEFA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가 36살이 되던 1989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으며 그가 기록한 98골은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골 기록이었다.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은 1972년에 19세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데뷔하였으며
1986년 23살의 나이로 첫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차범근의 국가대표 활약 중 가장 유명한 경기는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인데
당시 1대4로 지고 있던 경기를 7분만에 헤트트릭하여 4대4 동점을 만들어냈다.
차범근의 대한민국을 월드컵에서 상대하는 국가들은 “차범근만 막아라”라고 지시했을 만큼 대한민국의 골게터를 맡았는데
그의 A매치 135경기 58골이 증거이자 대한민국 A매치 최다 골로 기록 되고 있다.
또한 차범근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FW
마제드 압둘라
국적: 사우디 아라비아
주요 클럽: 알 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
‘아라비아의 보석’ , ‘오리엔트의 펠레’ 라고 불린 선수이다.
알 나스르 최초로 영구 결번 선수이자 최다 득점 선수인데
그의 클럽 기록은 리그만 218경기 190골을 넣었으며 모든 대회를 합치면 240경기 260골로 경기 수를 앞지르는 기록을 보여준다.
18살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으며 2개월만에 데뷔 골을 넣었고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뛸 수 있게 된 4경기에서 4골을 넣는 시작으로 20시즌간 주전으로 뛰었다.
그의 클럽 비공식 기록은 320골이다.
국가대표에서도 당연히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사우디 아라비아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뽑힌다.
1977년 17세 이하 대회에서 3경기 7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보여줬고
19살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뽑혀서는 포르투칼 명문 클럽 벤피카와의 경기에서 7골을 넣으며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공식적인 국가간의 데뷔 경기인 케냐전을 시작으로 16년동안 116경기에 출전해 71골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비공식적인 국가대표 골 기록은 139경기 148골이다.
그의 활약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8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은메달
92년 아랍 네이션스 컵 준우승
84년과 88년에는 두 번 연속 아시안 컵 우승을 이루어낸다.
94년에는 35살의 나이로 월드컵에 참가하여 후배들의 사우디 아라비아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16강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의 A매치 71골은 현재까지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최다 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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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마제드 압둘라
손흥민-나카타-네쿠남-박지성
나가토모-홍명보-살레-마다비키아
이운재
첫댓글 낫베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원래 손흥민 자리에 차범근, 차범근 자리에 알리 다에이 였는데 손흥민을 넣어야 할거 같아서 누굴 뺄지 고민하다가 클럽 활약이 적은 알리 다에이를 뺐습니다
나카타보저는 카가와 아닌가요?
카가와는 전성기가 짧아도 너무 짧아요. 맨유에서 부진, 돌문 복귀후 첫시즌 제외하고는 쭉 후보에 현재는 벤치에도 못앉아서 제외했습니다
카가와도 들어갈만한듯 개인적으로 돌문때 로이스랑 비벼도 안밀렷름
전성기가 너무 짧아서 제외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위상면에서는 나카타가 압도적이라 뽑았습니다.
@요소보니따 아시안컵 우승시 나카타,네쿠남 대신 넣을겁니다ㅋㅋ
@야꾸얌 어떤점에서 못넘었는지 궁금해요
요즘 카가와 안좋구나
맨유이적이 악수인듯
카가와 전성기가 개짧아서 빠지는거 축잘알 ㅇㅈ ㄸ ㅇㅈ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카타를 선정한 이유는 박지성과 비슷합니다. 국대에서 없어서는 안될 활약과 로마에서도 비록 토티의 후보였으나 그의 활약이 있기에 우승했기 때문에 일본내에서도 위상에서 카가와가 나카타를 넘지 못하죠. 그래서 나카타를 선정한겁니다
영표형 크로스만 좋았어도 나가토모한테
안밀렸을거같은데 아쉽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