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미야자키 하야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를 통해 하야오가 그려내는 애니메이션은 나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를 향한 열망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그 출발점 중의 하나가 바로 <미래소년 코난>이었다.
1970년대 말은 일본의 민영 방송사들 사이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의 새로운 붐이 조성되던 시기였다. 아사히, 후지, TBS(도쿄방송) 등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국영방송인 NHK도 애니메이션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였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은 제작 비용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제작 기간도 길다는 것이었다. 여러 기획안을 검토하던 NHK의 눈을 반짝거리게 만든 것은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로 이름이 난 닛폰 애니메이션(Nippon Animation)의 기획서였다. 닛폰 애니메이션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프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머리 앤> 등은 지금도 국내 방송에서 다시금 소개되고는 한다. 닛폰 애니메이션사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프란다스의 개>에서는 원화를 담당하였고, 다른 작품들 속에서는 작화나 화면 구성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다. NHK와 닛폰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위해 여러 기획안 중 <2222년 미래소년 코난>을 채택, 하야오를 전격 발탁하게 된다. 제출된 기획안의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았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그린 서스펜스 이야기다. 강력한 과학병기의 사용으로 지구의 지축이 흔들리고 지진이 일어나며 대해일이 일어 지구상의 대부분 인간이 죽어 버렸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인류의 생활을 바로 세우고 살아갈 것인가. 이것은 한 명의 용감한 소년과 한 명의 따뜻한 소녀가 중심이 되어 미소를 잃지 않는 기지와 단단한 신뢰로 맺어진 우정을 통해 … 거대한 악과 싸워 인간의 미래를 지키자는 장대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에서는 묘사해낼 수 없는 박력으로 가득 찬 ‘어른도 아이들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 서스펜스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기획 의도는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이름으로 1978년 4월 4일에 첫 방영된 작품의 의도일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의 요약본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한 인류종말이라는 배경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원령공주>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 온 하야오 드라마의 설정이자 세계관이었다.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은 미국의 작가인 알렉산더 케이가 1970년에 발표한 <멸망의 파도>(The Incredible Tide)였다. 일본에서는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소개 되었고, 일본어 제목에서는 다분히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시키는 의도가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설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작품의 주요한 두 공간인 산업과 과학, 문명의 도시 ‘인더스트리아’와 수백만 명의 소년소녀가 환란을 피해 살아남은 ‘하이하바’라는 설정은 고스란히 차용해왔다. 하이하바의 원래 지명은 High Harbor, 즉 높은 항구라는 뜻인데 일본식 영어를 따라 하이하바로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물론 알렉산더 케이의 소설에는 무질서한 상태인 하이하바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흡사하게 권력과 질서의 통치가 필요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에 비해 하야오가 그려내는 하이하바는 원시공산주의에 가까운 협업사회로 그려지고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는 평등의 정신이 충만하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의 어린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며 큰 인기를 모은 <미래소년 코난>
하이하바를 통해 그려내는 하야오의 공동체 모습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바람계곡’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바람계곡의 주민들은 집단적으로 생산하고 경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군국주의국가 ‘토르메키아’나 멸망을 경험하는 ‘페지테’ 국의 모습은 하야오의 세계가 다양한 국가이데올로기를 묘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원령공주>에서도 국가의 창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 많은데, 이러한 측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른 지면을 통해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미래소년 코난>의 기본 골격은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생존하게 되는 코난이라는 소년이 우연히 섬에 도착한 라나를 돕게 되고, 잡혀간 라나를 따라 계급주의 사회이자 전체주의 사회인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바로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멸망 이후 세상과 단절된 채 외톨이처럼 살아온 코난이 경험하게 되는 다른 두 세계의 모습이다. 하이하바에는 마을 사람들 이외에도 고아 소년 무리처럼 다른 지향점을 지닌 공동체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좀 더 세밀하게 보자면, 다양한 사람들의 거주 환경이나 이데올로기들이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소년들의 모험담이라 할 수 있는 <미래소년 코난>에서 아주 나쁜 악당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국내에서는 ‘포비’로 번역된 ‘지무시’를 만나 우정을 쌓는 과정은 소년들의 모험담에 걸맞은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인더스트리아의 권력자인 레프카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악당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약삭빠른 다이스 선장이나 결말 부분에서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 몬스키의 경우에도 최종적으로는 선한 사람들로 묘사가 된다.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하이하바를 떠나 신대륙을 찾아 나서고, 코난은 홀로 남은 섬이 계속되는 지진과 지각변동으로 인해 더 큰 땅덩어리로 융기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정착하여 새로운 인류로 살아갈 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의 제작 이후 1979년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1984년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선보인다. ‘아니마주’에 연재했던 자신의 만화를 원작 삼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웅서사, 환경 문제, 일본 사회에 대한 통찰 등을 담은 이 작품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시기부터 하야오는 자신의 뚜렷한 색깔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참여한 스태프들을 기반으로 다카하다 이사오와 같은 또 다른 거장 애니메이터들과 연합하여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다. 이때부터 <천공의 성 라퓨타>(1986), < 이웃집 토토로>(1988)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하야오 월드 혹은 지브리 월드의 흐름이 시작된다.
스웨덴 실비아 왕비의 일본 방문 때 지브리 미술관을 가이드하고 있는 하야오
하야오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간 탓에 여기에서는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유명한 작품을 제외한 몇 작품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1992년에 발표한 <붉은 돼지>는 일본 내에서도 “방향성을 잃었다. 비일본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시 흥행작이었던 <원초적 본능>을 제치고 일본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1920, 30년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아나키스트인 주인공을 통해 하야오 특유의 반전사상이 펼쳐지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야오는 일본의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자였음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하야오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색채는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기보다는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다양한 영웅들을 그려내는 특유의 태도가 아나키스트에 더 가깝도록 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1997년에 소개된 <원령공주>는 시대극이자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환을 보였던 작품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대작이라는 점에서도 경제학적인 해석도 가해졌던 작품이다.
하야오의 아들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후계자인
미야자키 고로의 작품 <게드전기>
하야오의 인터뷰나 그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언급만으로도 이 지면을 넘치도록 채울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하야오와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인 어슐러 K. 르귄과의 관계를 특별하게 살피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 된 측면이다. ‘땅바다’ 혹은 ‘지구바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 어스시(Earthsea) >는 6권으로 이뤄진 어슐러 K. 르귄의 판타지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게드 전기>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태초의 어스시에는 인간과 용이 공존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태초의 이름은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최고의 마법사 지위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 바로 ‘새매’ 혹은 ‘게드’이다. 평소 그는 새매라고 불린다. 새매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게드는 진짜 이름으로 신뢰를 얻은 자만이 이 이름을 알 수 있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마법을 통해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도 익히 보았던 설정이다. 마녀 유바바와 계약을 맺은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에서 글자를 떼어내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하쿠는 센이 된 치히로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잊지 않은 치히로는 마녀의 마법으로부터 풀려나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진짜 이름과 함께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세계의 균형이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마법사는 그 힘으로 날씨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모습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현자의 반열에 오른 마법사들은 ‘마법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한다. 마법이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에 비를 내리게 하는 마법을 사용한다면, 힘의 사용으로 인해 다른 곳은 가뭄에 목말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부해(腐海)'로 가득한 오염된 세계를 묘사한다. 곰팡이의 숲인 부해는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점점 더 좁히고 있다. 부해의 숲으로 들어간 나우시카 공주는 진정한 부해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부해는 단순한 파괴의 산물이 아니라 공기와 물을 정화하기 위한 균형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하울이 거대한 새 모양으로 변신한 뒤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 힘들어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역시 <어스시>에서 경고하는 부분이다. 변신마법은 본성을 망각시킬뿐더러 이를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본래대로 돌아오기 어려워진다. 이처럼 하야오의 작품 속에는 르귄의 세계가 중요한 철학으로 깔려있다.
르권의 판타지 소설 <어스시>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왼쪽),<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오른쪽)
하야오의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그는 일본에 있는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을 지낸 인물이다.)가 차세대 지브리의 후계자로서 <게드 전기 – 어스시의 전설>를 만들어 국내에 방문했을 때 필자와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다.
필자: <게드 전기>는 어슐러 르귄의 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세계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가령 ‘진실의 이름’에 관한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시키고, ‘세계의 균형’에 관한 문제는 <원령공주>와 닿아 있다.
고로: 당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슐러 르귄이 쓴 판타지 소설 <어스시(Earthsea)>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만들었다. 그 이후의 모든 작품이 <어스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 역시 그 중 하나다. 예전에 토토로와 인간은 하나였다.
필자: 그렇다면 토토로가 <어스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용인 셈인가?
고로: 맞는 말이다(웃음). 나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 아버지인 동시에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아버지이다. 르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철학을 제공한 부모 격인 셈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르귄은 나의 할머니가 되는 셈이다.
하야오의 세계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시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엿볼 수 있는 극우적인 태도와 전개에 대해 비판의 견해를 보였다.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듯한 하야오의 세계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견해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일궈낸 지브리 스튜디오가 오늘날 디즈니로 대변되는 애니메이션 스타일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스타일과 세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하야오의 의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 작품을 어느 정도 흥행시켜야 다음 작품을 제작할 경제적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에 하야오의 색깔이 보수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낭만적인 풍경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간의 대안적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의 작품에는 그를 알려주는 사인처럼 하늘을 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1941년 1월 5일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그는 비행기 회사를 경영하는 큰아버지와 공장장인 아버지 덕분에 비행에 친숙했을 것이다. 단순한 그림쟁이가 되기 싫었던 탓에 대학에서 일부러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던 하야오는 도에이 동화에 공채로 입사하면서 훗날 함께할 여러 지인들을 만난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조금 더 자유롭게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것이었고, 지브리 스튜디오는 그에게 요람이 되어 주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를 비롯하여 인간적 유대로 똘똘 뭉친 하야오의 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모험심과 꿈꿀 권리야말로 그의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기다려지는 중요한 이유이다.
하야오에 관한 책이나 그의 원화들이 여러 권 출간되기는 했지만 절판된 것이 많다. 이외에도 하야오에 대해 다룬 일본 쪽 저작의 번역본이나 서양의 평자들이 쓴 책들이 있지만 일본 사회에 대한 몰이해나 편중된 시각이 선뜻 추천하기에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행히 하야오의 그림체를 볼 수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박스판> 은 원화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유명한 책이다. 국내에서는 워낙 여러 번 출간되어서 중고책으로 다양한 판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반적인 흐름과 관련해서 추천할만한 저작은 <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재패니메이션>이다. 수잔 J. 네피어는 인문학적인 통찰을 가지고 하야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