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일기 / 김혜련
외로움이 너무나 무거워
어깨 빠지는 듯한 밤이다 싶으면
야식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남편을 그 섬으로 보내고
아이들을 컴퓨터에 빼앗기고
안방에 홀로 남겨진
불혹에 익숙한 여자
칠오이에 구구빵빵 눌러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환장하게 매운 불닭을 시키며
매운 시를 쓰는 여자…’
화살나무 / 김혜련
토실토실 살이 오른 겨울 추위
어지간한 나무들은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합법적인 나체의 시간을 즐기는데
그녀는 한사코
회갈색 코르크 날개를 고집한다
머리카락까지 얼어붙게 하는
엄혹한 추위 속
그녀의 코르크 날개는 금속성 산업화를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열 달 내내 공들여 품어온
자궁 속 아이들을 지키려는
어미의 처절한 사랑이다
귀신의 화살 깃이라는 다소 거친 닉네임으로
자식을 잉태하고 지키는 우리 어머니다
심리 샤워 / 김혜련
우울증이 연필 한 다스처럼
기둥을 세우는 날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가라
외로움에 염장된 움츠린 발가락 하나
서문 입구에 수줍게 점찍으면
세상은 온통 봄꽃다발이다
타들어가는 가슴으로
불안한 눈동자에 전등을 켜고
서너 시간 기다려
정신과의사 일 분 상담 받느니
차라리 튤립, 수선화, 모란, 작약, 루피너스,
에리시멈, 히아신스, 아네모네, 라넌큘러스, 라일락
향기 가득한 손으로 체증 시원하게 뚫어주는
얼굴 예쁘고 마음씨까지 고운
심리치료사들과 교감하라
벌, 나비, 새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나는 지금 심리 샤워를 받으러 간다
따스한 봄햇살 라일락 향이 맨발로 뛰어나오는
순천만국가정원이 최고의 정신과전문의다
[ 김혜련 시인 약력 ]
* 전남 광양 출생 1965년생
*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석사 졸업
* 1988년 3월 1일 노화종고 교사로 첫 출발
* 2000년 5월 『문학21』 신인상 당선 등단, 2007년 11월 『시사문단』 신인상 당선
* 순천팔마문학회 회원,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빈여백 동인, 한국문인협회 상벌제도위원
* 현재 광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 시집 『피멍 같은 그리움(2007)』, 『가장 화려한 날(2010)』, 공저 『평행선(2001)』 외 24권
* 수상 : 명작선 한국을 빛낸 문인 선정(2015, 2018, 2019). 제2회 북한강문학상 수상(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