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눈물 / 박범수
며칠 전 저녁 뉴스에서 20대 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한창 나이에 희망에 타오르는 초임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뉴스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무척이나 안타깝고 사연이 궁금했다.
해당 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 3구의 하나인 서초구에 있었다. 아주 오래전 30대 초반에 그쪽에서 직장 생활을 몇 년간 했다. 수도권 변두리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남역 근처로 출근을 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부와 새로운 유행이 흐르는 다소 특이한 지역이었다.
다음 날부터 모든 언론은 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을 학생과 교사의 인권, 학교 폭력, 공교육 정책 문제 등 다양한 각도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종로에서 교사들이 모여서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추모 집회를 열었다. 들리는 뉴스가 모두 생경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교육을 받았던 세대는 상상할 수 없는 진보적인 내용의 연속이었다.
한 사람이 자살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주변에 큰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아주 오래전, 가까운 후배가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한 지 얼마 후에 죽음을 택했다. 본인이 결재한 서류의 진실 공방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었다. 지방에 근무하던 그의 애타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부하 직원의 고의와 과실로 작성한 문서에 대해 후배도 일부 책임을 져야 했고, 주위의 비난을 받았었다. 나는 주변의 인연들을 위해서 의연하게 돌파하라고 조언했고 충분히 이겨내리라고 믿었다. 그가 홀연히 떠난 후에 나는 나의 불성실함과 느슨한 자세에 심각한 회의를 느꼈다. 그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한동안 괴로웠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매우 중요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다. 거기에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재력과 학력의 결합으로 새로운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무척이나 집요하게 출세를 지향하는 일부 힘 있는 사람들의 편향된 자세는 정치인의 보수, 진보의 색깔을 뛰어넘어 엄청나게 지탄받고 있다. 그 한편에 외롭게 서 있었을 학교 선생님, 20대의 선생님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 서초구의 학교를 찾아가 20대 젊은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의 조문을 하고 싶어졌다. 금요일 저녁에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서울에 함께 가서 그 학교를 방문하고 싶다고. 아내는 팔십을 목전에 두고도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으냐고 물었다.
아주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간편한 복장으로 나섰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1시간이 훨씬 지나서 강남역에 도착했다. 출구를 빠져나와 강남대로를 바라보니 낯익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옛 추억이 스며있는 거리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갔다.
초등학교는 멀지 않았다. 한 십 분쯤 걸었을까 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근조화환이 길고도 긴 학교의 담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화환에 매달린 하얀 조문 리본이 바람에 날렸다. 가슴이 아파졌다.
학교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검은색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있고, 조화 꽃다발과 추모의 메모지가 긴 탁자 위에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다. 적막한 분위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다.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침묵으로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모습이다.
본관 옆 건물 교실 쪽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생을 마감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이 그쪽에 있었다. 나도 그 줄의 끝에 서서 천천히 생각에 잠겨 따라갔다. 얼마 후에 그늘진 교실이 보였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줄에서 빠져나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학교 건물과 줄지어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조화가 보였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절망감에 어찌할 수 없었던 20대 선생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많은 사람은, 그리고 더 멀리 있었던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심각한 무력감과 미안한 마음이 몰아쳤다. 내 늙은 볼 위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첫댓글 서이학교까지 오셨군요.
저는 서초동 그 학교에 근무하였고
아이 셋이 그 학교를 나왔어요.
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갔지요.
동네가 재개발이 되면서 인심이 많이
달라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