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자/김삼진
형, 오래간만이우.
정월 대보름이 지난 일요일 오후, 형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우.
부모님은 지금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계셔. 아버지가 “잘한다!”를 외치며 박수를 치시는구려. 저렇게 즐거운 정서를 유지하고 계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당신에겐 행복한 일일 게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나가시려 하고 있소. 얼른 쫓아 나가 만류했지.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우편물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계면쩍게 웃으시며 다시 들어오시네.
아흔여섯의 어머니에게 오는 우편물이란 공공요금 통지서가 대부분인데 그걸 기다리시는 것은 아닐 테고 뉴질랜드에서 오는 형의 편지를 기다리시는 게요. 불과 삼사일 전에 왔었다는 것을 잊어버리셨겠지. 열흘 정도는 더 있어야 올 것이지만 그걸 설명해 드리면 “너도 내 나이 돼봐라.”란 말만 되돌아올 뿐이오.
치매가 깊어지면 ‘시간’, ‘공간’, ‘관계’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지. 그것도 순서가 있는 모양입디다. 제일 먼저 오는 게 ‘시간’ 개념이지. ‘그게 언제였더라? 를 잊어버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치매 환자는 가르쳐 준 걸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물어보는 그 간차間差가 점점 짧아진다는 게요. 상상을 불허 할 정도로. 5분 사이에 열 번을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어. 처음엔 짜증스러웠는데 요즘엔 익숙해져서 심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소.
치매 4등급의 어머니가 ‘시간’ 개념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면 3등급의 아버지가 요즘 겪고 있는 혼란은 ‘공간’ 개념이지. 계신 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자꾸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와 아버지 집이라고 답해드리면 자꾸만 당신이 있는 이곳이 ‘당신 집이 아니다’라고 우기시는 게요. 느닷없이 “이제 집에 가자.”라고 하신다든지, “언제 갈 거냐?” 라며, “내가 옷을 어디에 벗어 놨더라?” 하고 이 방, 저 방 옷을 찾으러 다니실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지. 그럴 때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오. 요즘은 부쩍 더 하셔. ‘여기가 아버지의 집인데 왜 그러시냐’고 퉁바리를 주고 방으로 숨어버리기도 하지. 어떤 때는 성실하게 설명해 드리기도 해. 이 집은 아버지의 집이며 2001년에 명일동에서 이사를 온 이후 17년간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이 살아왔다고 말씀드렸지. 그러면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이며 어머니의 휘호 등을 가리키며 ‘많이 보던 것’이라고 수긍을 하시기는 해. 그런데 “여기서 산 적이 있었나 보구나.” 라고 말할 때는 유구무언일밖에. 그러나 불과 몇 초 후, 다시 불안한 표정이 되시어 ‘언제 집에 갈 거냐.’고 물을 땐 어쩌겠어?
당신이 계신 곳을 여관으로 알고 있을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어머니가 질색을 하시지. 질색하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그 혼란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되풀이해서 ‘여관비가 없는데 어떡하냐.’, ‘여관에서 쫓아낼 텐데 어디로 가냐?’ 며 걱정을 하시는 거야. 시달리다 못한 어머니가 기어이 소리를 지르고 말지.
“아니, 여관이라는 데는 나쁜 사람들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계집질하는 집인데 왜 멀쩡한 아파트를 여관이라는 거예요!”
그 지경쯤 되면 아버지는 억울하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야.
“당신이 몰라서 그러는데 전에는 여기 이 일대가 모두 여관이었다구. 알아들어?”
그런데 말이야 이 일대가 다 여관이었다는 아버지의 허언虛言을 듣는 순간,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가 떠오르는 게 아니겠어? 형! 건넌방 벽에 걸린 어머니의 족자簇子 기억나지? 하남서 만나면 건넌방에 술상 차려놓고 소주잔 부딪치며 좋다고 읊조리던 이 시의 첫 구절 말이야.
무릇 천지는 만물이 머무르는 여관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영원히 지나가는 나그네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형이 그랬지. ‘이 시는 멀쩡한 상태에서 쓴 게 아닐 거다. 친척끼리의 시회詩會에서 좌장이었을 이백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제일 먼저 붓을 들어 일필휘지하는 모습이 떠올라. 이 시가 말하자면 개회사開會辭가 된 거지. 그래서 서序자가 붙었잖아.’ 라고. 족자 앞에 서면 그리움처럼 형의 음성이 되살아 난다우.
형! 천지는 만물의 주막집. 우리는 ‘여관’에서 잠시 머물다가 본연의 집⟦宇宙⟧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자꾸만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쓰시면 마음이 언짢아진다오.
아버지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계시는군. 아니야, 졸고 계시나 봐. 따스한 볕에 선잠이 드셨는지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눈은 반쯤이나 감기셨네. 요즘 기력이 많이 쇠잔해지셨어. 하루 중 절반은 주무실 거야. 꿈속에서 아버지는 본연의 집에 머물고 계시는 것일까. 저러다가 금방 깨어나시면 또 그러시겠지. “집에 가자.”고.
아내를 보면 부끄러워진다/김삼진
“뭐 해?”
아내의 전화다. 요즘 들어 전화가 잦다. 저녁을 준비 중이라는 대답에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하면서도 끊을 생각을 않는다. 특별한 용건이 없는 전화이지만 가끔은 그 수다를 다 받아 주곤 한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김포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나, 밥해야 해”라며 전화를 먼저 끊기가 미안해서다.
하남에 사시는 부모님을 누군가는 보살펴야 하는 때가 왔고 아내와 상의 끝에 나는 과감히 자원했다. 두 분을 혼자 모시기는 어렵다고, 부부가 함께 모셔야 할 것이라고 형제들은 말했지만 아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는 굳이 혼자 맡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내와 오 년 만에 또 별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긴 지가 오 년이 되어 간다. 따져보니 내가 사업을 시작했던 20여 년 전부터 우리 가족에게 ‘가정’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었다. 내가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말 할 것도 없이 아내다. 나는 사실상 50대 초부터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십오 년 전쯤, 부도가 났다. IMF 때라면 하던 사업도 접거나 축소를 해야 할 판에 창업을 했으니 예정된 결과였는지 모른다. 무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 년여를 지탱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5년 월급쟁이로 마련했던 두 채의 아파트는 없어져 버렸고 가족들은 모두 내 곁에 없었다. 제 힘으로 앞길을 개척해야 했던 두 아들과 졸지에 생계를 책임지게 된 아내는 서울에서 단칸방을 얻어 지내게 되었다. 나는 남한산성 중턱 오두막에서 세상과의 연을 끊고 칩거했다. 아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나 염려보다도 남편으로서의 면목 없음이 이산離散으로 감춰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몰염치의 시절이었다.
칩거 3년쯤 이었을 여름 어느 주말 아내가 산막에 오는 날이었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전원에서 하룻밤을 쉴 수 있어서였는지 아내는 명랑했다. 우리는 삼겹살도 구어 먹고 소주도 한 잔 했다. 몇 년 전 이곳에 이삿짐을 풀 때의 참담했던 심경을 떠올렸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몇 년 지나서는 곤궁한 환경에라도 이러구러 맞추어 지는 것이 신기했다. 잘 때가 되자 아내가 이부자리를 폈다. 그런데 베개 두 개를 나란히 놓는 게 아닌가. 근년에 없던 일이었다. 이제까지는 나는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혹은 인터넷을 하다가 잤고,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내로서는 부도 이후 서먹해진 부부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그래서 공식적으로 나를 그 죄로부터 사면시켜주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몸은 어떤 기대는커녕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아내는 자리에 들어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보일러를 좀 보고 오겠다며 어색해진 자리를 피했다. 밖에서 서성이며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서재로 들어갔다. 아내는 서울에서 예까지 오느라 피곤해서 잠이 빨리 들 것이었다. 거실 쪽에 귀를 기울이며 건성건성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끌었다. TV를 껐는지 사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좀 더 기척을 살피다가 거실로 나갔다. 살그머니 이불을 들추고 들어갔다. 아내는 낮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날따라 속절없이 시냇물 소리는 왜 그렇게 맑게 들리는지, 또 풀벌레는 왜 이렇게 박자까지 맞추며 울어대는지…. 천장을 향해 누웠던 몸을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잠을 청했다. 그때였다. 아내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다리가 내 다리에 얹힌 것이었다. 어느새 아내의 몸은 내 쪽에 밀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경직된 몸을 끝내 풀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아내의 차는 맥없이 툴툴거리며 마을을 떠났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멀어져가는 자동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고 난 후에도 내 손가락 사이에 끼인 담배는 가느다란 연기 한 가닥을 힘겹게 피어올리고 있었다.
올 10월이면 결혼 사십 주년이다. 이제까지 아내에게 변변한 곳에서 밥 한 끼 사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내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 휴가 날짜를 맞춰 호텔에서 하루를 지내고 오리라. 적어도 오성급 호텔은 되어야겠지? 아내에겐 뭐라고 해야 의심 없이 나와 줄까? 머리 염색도 하고 모처럼 정장을 할 것이다 에르메스 넥타이에 진주 타이핀을 꽂고 얼마 전 장만한 새 구두를 신어야겠다. 새신랑처럼 꾸미고 나갈 것이다. 아!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자줏빛 실크 포켓칩도 해 볼 것이다. 그리고 호텔로비에서 두리번거리는 아내 앞에 “짠”하고 나타나 뒤에 감춰온 장미 한 송이를 안겨 주는 것이다. 식사는 티본스테이크에 와인이 어떨까? 식탁엔 멋진 꽃장식과 촛대도 준비해 달라고 매니저에게 미리 말해둬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너무 늦었다. 집에 가야지”라고 하면 난 세련된 폼으로 일어나 내 검지를 아내의 입술에 갖다 대며 말하는 거다. “쉿, 마담, 28층에 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때 아내의 볼은 한껏 홍조를 띠겠지.
“딩동~!”
인터폰 모니터에 놀랍게도 아내의 얼굴이 떠 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이다. 부모님은 이미 잠자리에 드신 후다.
“어? 웬일이야. 이 시간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왔다가 지나는 길에 얼굴이나 보고 갈까 해서 들렀단다. 아내는 뒷정리를 하는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다정하게 군다. ‘늦은 시간인데 빨리 가지 않고….’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빨래감을 찾아내 세탁기를 돌리고 이내 서재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시계바늘은 이미 10시를 넘어서 있다.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이러다가 아내가 자고 가겠다고 하면…, 그때 나는 어떡해야 하지?
첫댓글 에세이스트에서 김삼진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저두요
어울려 같이 쓰고 웃는 글판을 꿈꿉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이러다가 아내가 자고 가겠다고 하면…, 그때 나는 어떡해야 하지?"
ㅎ~~웃음이 막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