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최면의 비전 - 타인최면의 올바른 이해
1. 최면감수성(Hypnotic susceptibility)은 없다!
현대최면(1985년 이후)에서는 더 이상 개인적 특성으로서의 고착된 피암시성(suggestibility)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언어를 이해하고 평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트랜스를 체험할 수 있고 동일한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최면감수성의 개념을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한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최면(혹은 깊은최면)으로 유도되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일상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일상의 트랜스 의식’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심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현대최면에서는 최면감수성과 피암시성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며 다만, 어떤 이유로 인한 그때 당시의 '반응 정도의 떨어짐' 만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누구든 적절한 방법으로 충분히 반응 정도를 활성화 시킬 수 있으며 결국 최면(그것도 깊은최면)으로 유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현대최면에서 개인의 피암시성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니셜 포인트(시작점)에서의 피암시성 '상태'는 인정합니다. 이는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그날 그 시간의 상황에 의해 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오직 깊은최면(Somnambulism state)만이 유용한 상태이다!
현대최면에서는 얕은최면과 중간최면은 오직 깊은최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써만이 가치가 있을 뿐 그 외의 의미에서는 무가치한 상태로 봅니다. 이유는 오직 깊은최면만이 암시가 작동하는 최면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최면자 본인의 바램이 아주 강력하거나 혹은 최면 작업 자체가 많이 반복된다면 중간최면 정도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암시와 여러 가지 최면 작업이 제대로 작동하는 단계는 깊은최면 상태일 때 뿐입니다.
3. 이완은 최면과 큰 상관이 없다!
최면에 깊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몸과 의식은 이완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완을 잘 한다고 해서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이완이 최면유도의 필수 혹은 기본과정이라 여기고 최면관련 작업을 할 때 우선 이완부터 유도하며 그것이 안되면 최면 작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최면에 들어가면 이완은 자동으로 되지만 이완을 먼저 했다고 해서 최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상 중에 경험하는 트랜스 상태 중에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의 현실 속으로 몰입한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분명 나름의 깊은최면상태(몰입)이지만 오히려 몸과 의식은 약간 긴장의 상태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즉, 최면은 대화 중이거나 글을 읽거나 주의가 고정된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면과 트랜스의 유도에서도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바로 현대최면이 되겠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무대최면이나 기타 최면시연에서 보여주는 '순간최면'이 되겠습니다. 순간최면시에는 순식간에 이완 등의 단계는 전혀 없이 바로 깊은최면으로 피최면자를 유도하게 됩니다.
4. 최면암시가 작동하는 정신자세(mental attitude)는 한가지 뿐이다!
현대최면가들은 심지어 깊은최면상태에서 거의 모든 현재의식의 비판적 사고가 사라졌어도 어떠한 멘탈 에티튜드(mental attitude: 정신자세)를 일으키는 암시인가에 따라서 암시가 작동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는 발견했습니다.
<4가지 종류의 암시에 대한 정신자세>
(1). 와! 재미있겠다!!! (흥미유발)
(2). 음.. 좋은 이야기인데 뭔가 껄끄러워.. (주저함)
(3). 뭐.. 괜찮은데.. 그대로 돼서 나쁠껀 없지.. (중립 또는 관망)
(4). 와! 재미있겠다!!! 얼른 한번 해봐야지! 또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Try-Hope 반응)
위의 네 가지 정신자세 중에서 작동하는 암시는 첫 번째 암시 외에는 없습니다. 특히 네 번째 Try-Hope 반응은 절.대.로. 작동하지 않는 암시입니다. 그러므로, 사전면접 혹은 최면전대화에서 이것을 철저하게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금연을 위해 최면가를 찾은 내담자가 있을 때, 만약 이 내담자가 금연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아내, 의사 혹은 주위 사람들의 어떤 성화나 강요에 의한 것이고 금연에 대한 자기자신의 내적 자발성은 별로 없다고 할 때 최면가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내담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면가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해당 내담자가 본인이 원하는 변화를 위해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자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유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 그러한 내적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 다시 최면가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5. 트랜스 깊이의 각 단계에 해당하는 '최면깊이 테스트'를 하지 않는 최면은 최면이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의 단순이완기법이다!
현대최면의 ‘엘먼 인덕션’의 특징은 최면 유도법 자체가 테스트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각 트랜스 단계에서의 테스트에 대해 최면가가 안심하고 테스트를 행하도록 구문이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현대최면은 이와 같이 기본 인덕션 구문에서부터 최면깊이 테스트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먼 인덕션의 경우 그냥 눈을 못 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 주위의 근육을 이완하라고 하고 나서 충분히 이완된 듯 하면 안 떠지는지 확인을 하도록 합니다. 이때 떠진다면 최면가의 실수가 아니라 충분한 이완을 하지 않은 피최면자의 비협조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최면가와 내담자는 최면세션을 시작하기 전의 ‘최면전대화(pre-talk)’에서 이미 ‘최면계약’에 대해 서로 합의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내담자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최면작업 자체가 최면가와 내담자의 적극적인 상호협력과 협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최면테스트가 없는 최면은 단순히 내담자를 이완시키기만 할 뿐 사실상 실제 내담자가 어느 정도 깊이의 트랜스 상태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확실한 깊은최면이 아닌 상태에서 진행된 작업은 내담자의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최면세션의 실패로 귀결됩니다.
6. 최면상태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이유는 ‘최면에 대한 두려움(fear)와 오해’이다.
현대최면에서는 최면감수성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피최면자들이 모두 동일하게 쉽게, 깊은최면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피최면자들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최면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최면에서는 세션 진행 전의 ‘최면전대화(pre-talk)’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만약 최면전대화에서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이 두려움과 오해를 완전히 없애지 않았다면 세션은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이러한 최면전대화의 중요성을 모르고 대강의 설명만으로 바로 최면세션에 들어가는 것은 가장 조심하여야 할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역으로, 이러한 부분을 최면전대화에서 확실히 처리하고 최면세션에 들어간다면 그 세션의 성공율은 당연히 최대한으로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최면전대화'는 데이브 엘먼의 그 강력했던 치유(단 1회, 15분 세션으로 수 많은 중증의 내담자를 치유)의 비결이었으며 현대최면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현대최면에서는 그래서 깊은 최면에 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0.3초이고 늦으면 3분이라고 합니다. 이는 누구든 그러한데, 최면 경험이 없는 피최면자의 경우조차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최면상태를 이미 경험한 경우는 거의가 1초미만에 깊은 최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즉, 최면에 대한 두려움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7. 최악의 최면가는 Progressive Relaxation Induction(점진적 이완법)으로 트랜스를 유도해서 Creative Visualization(창조적 시각화)로 암시를 하는 최면가이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 이미 최면유도를 받아본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점진적 이완기법이나 시각화 기법으로 유도되면서 사실상의 트랜스 상태를 전혀 체험해 보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이 됩니다. 이 기법을 사용하는 한은 20퍼센트이상의 성공률을 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점진적 이완법은 괜찮은 최면법입니다. 다만 테스트와 함께 행할 때라는 단서를 붙힐 때에 말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엄격히 말해 이완은 트랜스 상태와 직결되지 않습니다. 즉,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어느 정도 피최면자를 편안하게 해 주어 트랜스 유도를 용이하게 하는 효능은 있으나 이완이 깊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트랜스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진적 이완기법으로 유도된 많은 피최면자들이 사실상 이완상태만 경험할 뿐 정작 본래의 목적인 트랜스상태는 전혀 체험하지 못한채로 최면세션을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점진적 이완법은 인덕션과정이 너무 길어서 내담자에게도 지루하고 때때로 내담자는 잠이 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테스트를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내담자가 어느 상태인지 알길이 없습니다. 점진적 이완법이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의 인덕션이 테스트를 하지 않는 한은 트랜스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시각화는 문제가 시각화 훈련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경우 전체 인구에서 오직 20퍼센트만이 시각화를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80퍼센트는 시각화가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암시에서 "...를 보세요.."라고 하는데 안보이므로 자신이 충분히 깊은 트랜스나 최면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로 이 "생각"이 모든 최면 세션을 무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암시문에서 "...를 보세요."라고 할 부분은 "...를 상상하세요"로 바꾸어 사용하셔야 합니다.
첫댓글 2009년 이창우선생님에게 배울때와는 다른 내용도 있군요. 깊은 최면만이 최면이다에 공감합니다.
다시 읽어도 깊은 동의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