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를 다녀온지 꼭 3주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은 늘 설렘과 즐거움이 수반
되고
새로운
그리움을 낳는다지만 이번 여행은
마음이 그리 가벼운 편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여행을
떠나는 이번
주가 "어버이 날"이 포함되어 있는
그런 한 주였기 때문이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Beautiful"도 아니고, "Smile" 도 "Love" 도 아닌 바로 "어머니"(Mother)라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우리들의
어버이들이 몹쓸 세상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판
고려장이 그 한 예다. 나이 든 어버이를 먼곳으로 여행가자고 꼬드겨서
그냥
놔두고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들은 자식들을 찾아주려는 사람들에게 한사코 자식들이
없다며
함구한다고
한다. 이 일로 혹여 자식들이 겪을 불편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시(詩)도 있다.「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브레히트의
유명한 "나의 어머니"라는 시(詩)이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이 먹어도 부모와
헤어지면 서럽고
외로운 고아가 된다. 나 역시 50줄의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너무나 애절하고 그립기만 하다. 함께 했던
시간들,
부드럽고도
차분했던 음성, 따뜻했던 손길, 그 모든 기억들이 내 안에 녹아있다. 어머
니라는 이름은
불러도 불러도
다시 부르고 싶은 간절한 이름이다. 브레히트의 시를 읽고보니
어머니가
몹시
보고싶다.
함께 살을
비비고 살 때는 미처 몰랐었던 어머니의
여백이 내 인생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잉크
번지듯
나의 일상
곳곳으로 파고든다. 여행 길에 오르던 날, 엄마가 몹시
보고싶어서,
나만 떠나
는 여행이
너무
미안스러워서 문득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나직히 사랑의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지켜봐줘..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당신의 아들로 살테니.. 그리고 여행 잘 다녀올게." 이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필시 밥 보다 눈물을 더 많이 먹
었을 내
어머니, 눈을
감으실 때의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그 모
습만 떠올리면
결코 죽음이
무섭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죽음은 곧 평화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만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나 책, 여행 등
어떤
만남을
통해서
성장하고 형성된다. 아직 나는 늙었다고까지 말하기는 다소 민망하지만 더 이상
젊어질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를 그리면서 여행을
떠난다. 어젯밤 8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이곳 시간으로 12시 30분 경에 성도 국제공항에
도착
했으니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이튿날인 02시가 다 돼서였다. 사진은 우리가 첫날과 마지막 날에
묵게 될 성도
글로리아
호텔의 모습이다.▼
사진은 우리가
묵고 있는 글로리아 호텔 주변의 온강(溫江)공원에서 중국인들이
아침
운동(중국식 무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건강은 이 시대
최고의 화두가 되고있다.▼
이번 여행의 첫일정은 이른 새벽 5시에 기상해서 황룡 풍경구로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바쁜 일정상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성도를 출발한 지 두어 시간 만에
맞이하는 풍경이었다.
사진은 접계해자라는 곳이다. 해발 고도 4000미터에 위지해 있는 대형 호수로, 1933년 대규모
의 지진으로 인해 5개의 마을이 100m 이상 아래로 가라앉아 호수로 변했다고 한다. 호수 끝부
분에 있는 산의 정상에 하얀 눈이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접계해자를 출발하여 1시간 여만에 송판고성에 도달했다. 송판고성은 당나라 시절 토번국의 주요
도시로 과거 송주라 불리던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과거 고성(古城)과 다양한 송주시대의 건축물을
구경 할 수 있다.▼
송판에 있는 재건된 성문 앞의 티베트 송첸감포왕과 당나라 문성공주 석상이다. 이 석상 설명판에는
송첸감포왕이 송판에서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역사는 사라지고 티베트와 당과의 화합의 역사만 기재
되어 있다.▼
황룡 관광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07미터의 설산량이다. 이곳에 오르니 속이 조금씩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설산량, 낯선 이름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 해도 낯선 고유명사 앞에선 수시로 길을
잃는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고갯마루
였을 테지만 우리가 한번 두번 부르는 사이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
바깥 속세와는 담을 쌓고 이 백색의 고원 위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정상의 고결함과 평야의 부드러
움을 깊이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설산량, 정말이지 이곳이라면 여기에서라면 맑은 정신을 인간에
게 걸맞는 종교적 광희(狂喜)로 가꿔갈수 있으리.
설산량은 험하고 초인간적인 정상도 게으르고 풍성한 평야도 아니다 . 그러나 인간다운 맛을 잃지
않고 영혼을 고양시키는 곳으로는 더도 덜도 아닌 최적의 장소다. 아, 얼마나 멋진 곳인가? 이고독,
이행복, 눈을 감았다. 나른했다.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환희가 내 몸을 감쌌다. 내 주위의 백색신비가 바로 천국인듯햇다. 내가 느끼
는 신선하고 상큼하고 소박한 희열 자체가 바로 하느님인 듯했다.▼
성도에서 약 7시간 여만에 드디어 황룡 풍경구에 이르렀다. 황룡(黃龍)은 구채구에서 북동쪽으로 68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송판현내에 위치하고 있다. 황룡은 설복산 기슭에 계단식으로 펼쳐진 3400여 개의 석회암 연못
으로, 구채구와 마찬가지로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황룡은 해발 3,400미터 이상의 고지대이므로 심장질환 및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각별한 주의를 요
하며 건강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움직이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되도록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나는 이미
해발 450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경험했기 때문에 크게 게의치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산소호흡기를 준비해 갔는데 불과 3km 정도에 이르러서 용량이 다 떨어지고 말
았다. 수면은 부족하고 몸은 몹시 힘들었지만 그 좋은 풍광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 황룡
풍경구는 해발 3553미터라고 한다.▼
망룡평이다. "망룡평은 해발 3530미터이며 황룡 풍경구에서 해발이 비교적 높은 관망대로서 황룡의 주요
골짜기 및 설산의 산줄기를 바라볼 수 있다. 수많은 높은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고 울창한 삼림이 사방을
뒤덮였으며 발 아래에는 운무가 둘러싸여 있어
"천층의 푸른 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용이 날고 춤을 추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네" 라는 경지가 있다.▼
망룡평에서 바라다 본 황룡산의 모습이다. 때는 바야흐로 5월 하고도 중순에 접어드는데
하얀 설산을 바라볼 수 있다니 이 정도의 풍경을 위해서라면 7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라
도 가볍게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황룡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오채지에 이르렀다. 오채지는 황룡산의 만년설이 녹아 만드는
에메랄드 빛의 아름다운 호수를 일컫는다. 석회질이 침전된 강바닥에 물이 고여 계단식으로 만들
어진 연못인데,
하얀 석회암에 고인 맑은 물은 깊이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며 용의 비늘처럼 반짝
인다. 해발 3576미터의 높이에 총 면적이 21,000평에 이르며 총 693개의 채색 연못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세계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체지가 가장 많으며 해발 높이가 최고이다.
노천 칼슘 침적물 채지군으로 깊고 넓은 연못의 넘쳐흐르는 물은 마치 푸르른 옥반과도 같으며
붉은 색, 자지색, 하늘색, 녹색 등 농담이 서로 다른 여러가지 색조로 오색찬란하여 너무나도 아
름답기만 하다.▼
확실히 세상에는 거저가 없다. 꿈도, 희망도, 사랑도 노력이고 쟁취이다. 저 아름다운 풍경마저도
저마다의 노력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이제는 알겠다.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두고 온 고국의 산천과 낯익은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고 노래를 하니 옆구리께가 텅 비려고 했다. 아, 나그네의 향수병은 아름다운 풍광 앞
에서 여지없이 도지고 말았다.▼
진정한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자연과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오색의 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풍광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가볍고 순수한 산악공기를 느긋하고 기분좋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양지바른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그리고 멀리 우뚝 솟은 하얀 산봉우리에 친숙하고 그것의 의미를 잘아는 자만이 자연과 풍경을 완전하게
백배는 더 깊고 고상하게 즐길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연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
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된 오류다 .▼
황룡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황룡입구로 내려왔다. 우박을 동반한 강한 빗줄기를 맞으며
약 4시간 가까이 트레킹을 하는 사이에 내 육신은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생의
어두운 땅을 박차고 삶의 푸른 하늘을 향해 발돋음을 하며 목청껏 나의 삶을 외쳤다.
아름다워서 다르고, 달라서 아름다운 여행, 아무래도 나는 여행에 열렬하고 과격하게 중독된
사람이 확실했다. 문득 흐렸던 마음 때문에 서로를 더 멀게 느껴 끝끝내 소통하지 못했던 내
생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동안 이겨낼 수 있는 만큼 외로웠고 넘치지 않을만큼 행복했다. 이제 그만 자리를 떠
나야겠다. 달콤한 환희가 너울거리는 이곳은 다른 분들에게 넘겨주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게
황룡에 대한 속 깊은 예의일 것 같았다. ▼
황룡에서의 멋진 풍광을 즐기면서 내 눈은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 우린 다시 구체구로 이동했다.
구체구 역시 행정구역은 성도에 속한다. 여기에서 잠시 성도의 도시 개요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인구 천만의 성도(成都)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4배에 이르는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볼거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4개
의 강, 즉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이 흐르는 곳으로 사천(四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산지와 평원이 물과 한데 어우러져 풍부한 자원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황룡, 아미산, 장강삼협, 도강언, 구채구 등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연유로 예로부터
'천부지도(天府之都)'라 불리었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문화유산 또한 풍부 할 뿐 아니라 성도를 대표하는 전통공예품
도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팬더의 고향', '이름난 역사문화의 도시', '천부의
자연풍경'은 성도의 3대 특징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도에서도 구체구는 단연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다. 봄철, 구체구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나
에게 도덕상의 악과 선에 대하여 그 어떤 현자(賢者)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이미
삶이란 지나가 버린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여기서 내가 느끼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뿐. 그래서 여행은 내가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인 것이다.
구체구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머무르게 될 신구체구 관광호텔의 모습이다.▼
중국 쓰촨성의 북쪽에 있는 구체구는 인구 10만 여명의 도시이다. 구체구의 유래는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는 골짜기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40여 분을 올라오니 구체구의 끝머리인 장해였다. 입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약 4~50 여 km나 된다고 한다.▼
측사와구는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으로 넓은 호수 뒤로 끝없이 펼쳐진 일년
내내 녹지않는다는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장해는 해발 3060미터, 길이
약 5km, 너비 600m, 총 면적 93만 평방미터의 호수로 측사와구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설산에서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온 물이 호수를 이룬 것으로 땅에 스며들거나 증발하여
절대 넘치거나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적색을 띈 나무가 많이 있었다.▼
황룡에도 오채지가 있었는데 이곳에도 오채지가 있었다. 이곳 구체구의 오채지는
해발 2995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100.8미터이고, 평균 높이 56m에 총 면
적은 5645평방미터라고 한다▼
구채구는 여러개의 풍경구로 되어 있는데 구채구 입구에서 부터 낙일랑폭포까지 이어지는 곳을
수정구라 부르며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을 측사와구라 불리운다. 수정구는 구채
구에서도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거대한 화분 모양의 <분경탄>, 갈대의 바다라는 이름의 한적하고 고요한 <노위해>, 호수에 비
친 노을의 모습이 한송이의 불꽃같은 <화화해>, 용이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와령해>등이
있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오화해의 멋진 풍경들이다. 황산을 보고나면 다른 산을
보지않고 구체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취처럼 영롱하고 명
랑한 색을 띈 구체구의 물은 확실히 구체구를 대표하는 미경(美景)임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물이 있는 풍경은 사람을 한 없이 착하게 만들었다. 문득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을 만나니 내가 세상과 관계를 하면서 남기는 모든 얼룩들을 흡수지처럼 빨아들여 내 안에
서 녹여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계면쩍은 일도 께적지근한 감정도 남기지 않고 싶었다.▼
진주탄 폭포로 향하는 물줄기이다. 물은 저렇게 조용히 흐르다가도 일단 폭포만 만나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시원스레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여트막한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낮은 휘파람 소리같기도 했다.
또한 그 물소리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애처로운 느낌이 배어있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같은 시간보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터져버릴것 같은 시간이 낫다. 불가능한 사
랑이어서 하면 안되는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무서운 불꽃으로 연명하게 돼있다.▼
드디어 물의 나라 구채구를 느낄 장엄한 소리가 들린다.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시원했다. 장엄했다. 상쾌했다. 그 어떤 말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곳이
이름하여 진주해(海)폭포 또는 진주탄 폭포라고 부른다.
해(海)를 쓰는 이유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호수를 바다로 표현한다고 한다. 부딛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알 같다고 해서 붙혀진 진주탄 폭포는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구체구를 물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 듯도 했다. 물빛이 아름다운 구체구는
늘 설레임 그 자체였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한 구체구는 봄은 화창하고 여름
은 눈부시고 가을은 아름답고 겨울을 청결하다고 한다.▼
구체구,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때묻지 않은 자연이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다. 아, 이곳에서 살고싶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싶
다.
만약 내가 이곳에 살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힘들고 지치고 외롭다고 말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고 견딜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구체구는 9개의 장족마을이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현재는 9개 마을 중 3개 마을만 개방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마을은 그 중 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백년이 지나도 아니 그 보다 훨씬 많은
수백년이 지나도 자신들만의 속도와 온도를 유지하면서 살것만 같다.
싸울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마을, 어린이가 태어나고 늙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계절의
순환처럼 균형있게 이루어지는 마을, 아마도 구체구의 장족마을이 그럴 것 같았다.▼
산사태로 인한 낙석 절개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 그 유명한 차마고도이다. 차마고도 (茶馬古道)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다.
이 길은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고대의 무역로로 알려져
있다.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잇는 이 길을
통해 차와 말 외에도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물품교역 외에도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교류되었다.▼
차마고도 아래 편에 "5.12 地震遺址"라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쓰촨성 대지진은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 쓰촨성 지방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큰 지진을 말한다. 미국 지질조사
국에서 처음 보도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현지에 인민해방군 파병을 지시하였다.사망자 약 69,000명, 부상자 약 374,000명,
행방불명자 약 18,000명, 재산피해자 누계 약 4,616만명, 붕괴된 가옥 약 216,000동의 피해를 야기
했다.
특히 학교 건물의 붕괴로 인해 교사와 학생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지방 간부의 독직과
부실 공사의 관계가 문제화되었다. 원자비오 총리는 지진 당일에 현지에 들어가 구원활동의 진두지휘
를 집행함과 함께, 매스컴에서는 연일 인민해방군들에 의한 구조 활동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또한, 전국에서 자원봉사자가 달려들고 성금도 많이 기부되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
에 산다는 것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지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하니 이에 대한 대책강구가 절실하다 하겠다.▼
무후사(武侯祠)에 왔다. 솔직히 말해 삼국지를 읽은지도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서 삼국지에 나
오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이 기억에도 없고 설사 기억이 난다고 해도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제갈
공명과 유비, 그리고 관우와 장비 정도는 아직 내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무후사의 무후는 제갈공명이 죽은 후 시호인 충무호에서 따온 것으로 6세기 초 당시에 유비를
모신 조열묘와 나란히 세워졌다고 한다. 그 후 14세기 말에 무후사는 조열묘와 병합되어 현재의
정식 명칭은 한조열묘이지만 주군인 유비를 능가하는 제갈량의 재덕을 기려서 무후사라 부른다.
국보 무후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삼절(문장, 서법, 석각기술)로 이름이 높은 당비, 촉한
시대에 유비를 받들던 문, 무관 28인의 소상,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낮에는 밥을 짓고 밤에
는 두드려 경보를 보냈다는 제갈고, 유비의 묘인 혜능 등을 들 수 있다.
제갈량(181~234년)은 자가 공명(孔明)이라 제갈공명이라고도 불리며 와룡선생(臥龍先生)이란
별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07년에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었던 유비에게 발탁되었으며
이 고사는 삼고초려(三顧草慮)로 유명하다.
유비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그에 부응하듯 신묘한 계략으로 보잘것 없는 유비의 세력이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고 황제로 칭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명군사(名軍師)로 알려져 있다.▼
의중도원(義重桃園)은 유비와 장비, 그리고 관우가 도원에서 의를 합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의형제였다 것은 소설 속의 창작일 뿐이라고 한다. 그럼 여기에서 세 사람의
인물평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유비(劉備, 161~223년)는 고대 황제 중에서도 인자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황제로 공
경을 받고 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는 유비, 장비, 관우를 우환과 재난을 같이하는 의
형제로 묘사했다.
장비(張飛, ?~221년)는 용맹하고 굳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홀로 장판교(長坂橋)에
서 조조(曺操)의 군대를 물리쳤다. 후세들은 장비를 용맹한 장군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관우(關羽, ?~219년)은 용맹한 장군으로 중국에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 관우는 다섯관
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죽이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유비의 휘하에 돌아가 고대의 충성과
의리를 지키는 자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금리(錦里)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는 삼국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골목으로 그 시대의
문화를 담은 복장과 건물로 고풍격을 물씬 풍기게 하는 쇼핑 및 맛거리이다. 여러가지 전
통 먹거리 및 다양한 현지 물품 등이 진열되어 있고 세련된 빠나 커피숍들이 널려 있다.▼
낙산대불로 가기 위한 유람선 선착장 주변의 모습이다.▼
낙산대불은 성도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낙산이라는 도시의 링원산(凌元山)에 조각된 불상이다.
불상의 전체길이는 71M, 머리의
길이가 14M, 발가락 하나에 성인남자 5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어
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이다.
당나라 741년에 완성된 낙산대불은 당나라 승려 해통이 홍수를 막기 위한 기원의 의미로 만들기 시작
하여 90년 만에 완성되었다. 민강[岷江] 강가 서쪽 암벽을 통째로 잘라내 새긴 마애석불로서, 713년
창건된 링윈사의 본존미륵보살이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낙산대불이 있는 링원산(凌元山)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마치 불상이 누워있는
형상이었다. 사진 좌편 중간쯤에 볼록 나온 부분은 부처님의 고추라고 한다.^^▼
첫댓글 좋은 필력과 사진에 눈과 마음이 호강했습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별로 읽을 거리도 없을텐데..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언젠간 저도 똑 같은 길을 답습해야지요..???
네, 꼭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강추합니다.^^
잘보고 읽고 갑니다
별로 볼것도 읽을 것도 없을텐데 감사합니다.^^
구채구의 물빛 다르긴 다르네요...
담에 저도 구채구 가야겠어요
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
차마고도 다녀오셨으면 별도로 가실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저의 경우 암튼 대만족
이었답니다. 물론 성도에서 황룡까지는 차마고도를
끼고 버스를 달렸습지요..^^
잘 감상했습니다, 들으니 6월 쯤에(?) 두견화 만개시에 황룡이 더욱 절경이랍니다.
맞습니다. 황룡은 6월이 최고 절정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때 여행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구요.^^
또 멋진 여행을 하셨네요...
덕분에 사진과 상세 설명으로 즐감합니다...
더 멋진 여행, 언제 같이들 한번 가야죠..^^
가을에 계획 세우고 있는 구체구
물빛이 예술 그 차체입니다.
자연의 경의로움에 감탄 합니다.
산행기를 읽어 보니 빨리 가고 싶어지네요..
네, 꼭 가셔서 좋은 카메라에 멋진 풍경 많이
담아오시기 바랍니다. 황룡, 구체구 여행은
결코 후회없는 여행이 되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