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구역 (꿀단지)의 展設.
둘이나 셋이 모인 곳 에 주님계시네 +
7구역 1반
변상호 스테파노
나 오늘밤 불을 지피며 지난날을 그린다.
눈을 감으면 꿈을 꾸는 듯 즐거운 곳이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놀던 일, 언제 다시 오려나?
여름하늘과 바른 양지와 시냇가의 맑은 물소리
기쁜 나의 집, 기쁜 나의 집. 나 오늘밤 불을 지피며 지난날을 그린다.
(가톨릭 성가 454번 1절)
나 오늘밤 불을 지피며 내일이면 떠오를 한가위 밝은 달의 넉넉함으로 내가 사랑하는 7구역, 꿀단지의 지난날을 어슴프레한 기억으로 그려본다.
내가 결혼 후 청주에 정착하여 서운동 성당에서 시작하여 수곡동 성당으로 분가 다시 모충동 성당으로 분가 하였다가 처음으로 내 집 마련하여 분평동 주공 7단지 아파트로 이사 오는 바람에 수곡동 성당으로 다시 전입 와서 그 당시 2.3.4.5.7단지 남자 교우들로 구성된 남성구역 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중 김원택 신부님께서 김동규 베드로 형님 댁에서 구역미사를 하시면서 오늘부터 7구역 남성 모임을 별도로 독립시키신다고 선포하시고 대뜸 구역장으로 나를 임명하시는 순간, 이제 다시는 어설프게 설치는 나의 모습을 여러 교우들 앞에서 보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 했었는데, 왠 날 벼락인가 싶어 못하겠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인연을 맺자고 박수치는 구역교우님들을 대하는 순간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라고 정리하고 인연을 따라 가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남성 7구역은 최용석 스테파노 형제님께서 스테파노 성인,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구역장인 나를 위하여 스스로 구역 총무를 맡아서 하여 주겠다하여 기분 좋은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기존 적으로 본당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여성 7구역의 박순양 데레사 구역장, 박선미 스테파니아 총무를 비롯한 아름답고 예쁜 여자 반장님들은 처음 시작하는 우리에게는 든든하고 튼튼한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힘입어 우리구역 애칭을 아름다운꽃밭, 7단지에 많은 나비와 벌들이 꽃을 찾아 향기로운 꿀을 만드는 곳 이라 하여 “꿀단지”라고 정하고 김원택 신부님께서도 미사 나 행사 때마다 공식적으로 불러 주시게 되었다, 다음은 구역을 가상적으로 여성구역처럼 4개 반으로 나누고 묵시적 책임자를 선정하여 반모임은 못하지만 구역장 전위대로써 구역모임 활성화에 공동선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함께 단지 내 남성교우 댁을 모두 방문하여 어느 정도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구역모임 1주일 전 에는 각동 통로 승강기에 모임 안내문을 부착하여 참석을 호소하며 우리 교회의 역동성을 간접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고. 어르신 교우님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하여 새해 세배 인사도 드렸으며, 주일에 교중 미사를 위하여 본당에 갈때는 정해진 장소에 다같이 모여서 같이 가고 올 때에도 본당 제일 큰 나무 그늘에 모였다가 같이 집에 걸어들 오면서 많은 대화를 나 눌 수도 있었다. 또한 매주 일요일 오후16시 이후에는 남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배구와 족구 배드민턴등 체육활동 시간으로 정하여 실시한바. 젊고 새로운 교우들이 가족과 함께 많은 참여를 하였으며 가끔 본당 신부님 들께서도 함께 참여 하시곤 하였다. 특히 자매님들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빈대떡과 각종 찌개 음식들을 시장기로 나누다보면 천상 음식이 바로 이것이 구나 할 정도로 너무 너무나 맛이 있었다. 또한 주일날 가끔씩은 10-20명 정도가, 교중미사 후 주변 가까운 산으로 등산 겸 소풍을 가서 자연과 함께 하루를 즐기고도 있다 (이제까지 50회 정도). 우리 마음들을 모두 아프게 하며 고인이 되신 이봉길 시몬 형님의 배려에 힘입어 그가 근무하셨던 부강중학교 테니스 코트에서의 열정들이 모여 본당 대건 테니스회 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구역 단독으로 “분평동 성당 꿀단지” 까페를 개설하여 운영하므로 써 지금의 “분평동 사랑 터”를 본당 까페로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항상 우리의 생각들은 여러 교우들과 함께하여서 즐거운 일이다 싶으면 곧장 둘이나 셋이 모이더라도 시행에 들어갔고 시행에 들어가서는 결과에 상관없이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리구역은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이가 되고자 하는데 한층 수월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수곡동 본당시절 구역별 연도대회에서 문종이로 상주완장 차고 최다인원으로 참여하여 일등 하던 일, 남자 단합대회 시 구역자매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멍멍이 2마리 값을 퀘 척하던 일, 불치병 어린이 고 김상엽 어린이 돕기 일일 바자회에서 남성 모두가 앞치마입고 봉사 하던 일. 각종 본당 행사 때마다 앞장서서 먼저 생각하고 먼저 행동하는 극성스러움으로 닦아 섰던, 이러한 모든 일 들이 오늘밤 저 하늘에 처다 보이는 저 별들이 내 마음에 별이 되어 추억으로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분평동 성당으로 분가 되어서는 소공동체 조직의 활성화를 통한 사목을 주창 하시는 이중섭 마태오 신부님의 이상과 우리 구역의 모습들이 좋은 하모니를 이루어 새로운 중흥 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하였는지 몰라도 분가 신설 본당 설립 후 초대 구역협의회. 구성 시 우리구역에서 고진태 요한 보스꼬 형제님과 권옥 로사 자매님이 남자 여자 총구역장으로 각각 임명 되어 신설본당 기틀 마련과 임시 새 성전을 마련하는데 공헌 봉사 하였고 새 성전 건립 공사에는 우리구역 원로이신 이종옥 아브라함 어르신과 김동규 베드로 형제님의 열정의 노고가 있었으며, 제2기 구역협의회 는 오성균 베드로 형제님과 오명옥 다니엘라 자매님이 남자 여자 총구역 총무로써 각각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그밖에도 본당 많은 단체에서 열심이 봉사하고 계시는 우리구역 교우님들이 많은 것을 보면, 구역활성화의 힘이 본당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신부님께서 새롭게 시도하신 주 1회 구역모임도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었으며, 본당 체육대회나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 두적 선도를 주도하였고. 구역 자체 성지순례를 4회 다녀오면서 한번은 100여명이 함께하여 대형버스 2대까지 동원해야 했던 풍요로운 버전을 만끽 하여 보기고 하였다. 우리 동네 7단지 부인회에서 주관하는 경노 잔치에 후원금과 함께 동참함으로써 이웃 속에 우리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특별이 구역교우 상가 장례 시에는 모두가 정성된 마음으로 가족처럼 참여하여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사랑이었으며 일치된 나눔의 잔치로써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 하여야할 덕목인 것 같다. 이 모든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주관하여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수행하는데 나와 함께 했던 총무님 들의 고마움을 기억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역장 재임 시 첫 번째 총무이신 최용석 스테파노. 두 번째 총무이신 전재복 안드레아. 세 번째 총무 이면서 현재도 열심이 봉사하고 있는 정철진 이냐시오. 그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적 사랑으로 함께 할것이다. 왜? 하고 물으신다면 그들은 하나같이 누구의 추천이나 어거 지기 떠맡김에서 총무를 맡은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선택하였고. 힘들다고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 때문에 부득이 그만둔 분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인 사정상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구역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 다음 구역장으로 선뜻 수락하고 구역을 열심이 이끌어 가고 있는 박재은 후재요한 현 구역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변함없는 동참과 성원을 약속드린다. 또한 내가 개떡 같이 얘기 하여도 찰떡 같이 들어주고, 고집스럽게 하고자하는 행사에도 불평 없이 지지하여주고 함께하여 주신 모든 7구역 교우님 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 오늘 불을 지피며 7단지의 아름다운 어제의 추억들을 이제까지 그려 보았다. 이제는 7단지의 내일을 그리기위해 여러분과 함께 불을 다시 지펴야 하겠다. 나는 평소 구역장시절 남성도 여자 반모임처럼 4개 반을 편성하여 주1회씩 반별로 반모임을 하고 월1회는 구역장 주관으로 각반별로 순회하며 구역 모 임을 하는 것이 작은 소망 이었고 이것이 명실상부한소공동체 조직 이므로 초기에 묵시적인 가상 반편성도 해 놓기는 하였었다. 그러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6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의 내 개인적 판단은 구역 모임 시 참석인원이 평균 15-20명 정도라고 보고 수면으로 떠오른 남성교우가 약50명 정도라고 볼 때에 지금이 남성 소공동체 결성의 최적기 가 아닌가 싶어 최근 몇 달 동안 구역 교우들께 개인의견으로 말해보곤 하였으나 전체에서 헤어지기가 아 쉬웠던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우세하여 그동안 언급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4년 9월 25일 권세형 바르톨로메오 형제님 댁에서 가진 구역 모임에서 이문제가 거론되어 여러 토론을 거쳐 10월부터 여성구역과 같이 4개 반 으로 편성하여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각반 조직 책임자들을 스스로 의견에 의하여 결정 하였다고한다. 이 얼마나 기다려 온 일인가, 일부에서는 반 상황에 따라 운영이 안 되는 반이 올수 있다고도 하나. 그것은 크게 우려 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여성 반모임과 상호 보완적 차원으로 운영 된다면 상당한 씨너즈 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형제들도 새롭게 참여할 수 있는 동기부여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경쟁심리만 발동 된다면 그만큼 활력 지수도 높아 질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부유한 자산인 믿음직한 구역장. 패기만만한 총무. 류류하게 부드러운 반장. 과 언제나 따듯한 힘이 되어주는 여자구역 모든 교우들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사람만이 희망” 이라고 하였던 말을 믿어 보자.
형제적 사랑으로 만나서 사귐과 섬김으로 일치하여 나눔으로 승화 시키며 6년 동안의 구역모임을 통하여 다져온 우리이기에. 충분히 잘 운영 되리라고 본다. 새로운 전진을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에서 탈피하고 변화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소공동체 모임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꿀단지에서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 보자. 그리하여 “멀리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전국에서 최고로 남성교우가 여성교우 보다 더 많은 구역으로 만들어 보자. 그리고 훗날 꿀단지를 떠난다 하더라도 오늘같이 불을 지피고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넉넉한 심정으로 정지용 시인처럼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음 음 음음 ”하고 노래 하고싶은 향수을 이곳 꿀단지에 심어 나가보자.
기쁜 나의 집. 기쁜 나의 반. 기쁜 나의구역. 기쁜 나의본당의 소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우리함께 노래 부르자.
둘이나 셋이 모인 곳 주님계시네.
찬미와 흠숭 드리려 모였나이다.
주여 어서 오시어 축복 하소서
주의 뜻을 이 땅 위에 채 우리이다.
(카톨릭 성가 456번)
2004 9월 27일
첫댓글 7구역의 역사를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본당문집 제5호에 실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많이 손을 볼 것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