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씨족 개관
1. 정씨 유래
본관은 옛 문헌에 210본 또는 247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동래(東萊)·연일(延日)·해주(海州)·진주(晉州)·하동(河東)·초계(草溪)·온양(溫陽)·경주(慶州)·청주(淸州)·봉화(奉化)·광주(光州)·나주(羅州)·서산(瑞山)·김포(金浦)·야성(野城)·함평(咸平)·청산(靑山)·장기(長鬐)·영덕(盈德)·곤양(昆陽)·서경(西京) 등 30여 본이다.
역사적으로 명벌(名閥)로서의 지위를 누려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동래정씨(東萊鄭氏)를 으뜸으로 연일·청주·온양·진주·하동정씨 등이 상당한 세력을 폈다. 정씨의 원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6촌(六村) 중 자산(觜山)진지촌(珍支村:本彼部)의 촌장인 지백호(智伯虎:佐命功臣)이다.
본피부락은 현재의 경주시 중심부에 있었으므로 정씨는 일찍부터 한반도 남단에 자리잡고 살던 선주민(先住民)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정씨의 각 본관별 시조들은 모두 지백호의 원손(遠孫)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혈연적 계보(系譜)를 가려낼 방도는 없다.
일반적으로 정씨는 한 혈손이며 그 중 경주정씨가 큰 집이 된다는 데에는 별로 이론이 없는 것 같다. 다만 동성이족(同姓異族)으로서 서산정씨가 있는데 그 시조 신보(臣保)는 원래 중국의 저장(浙江) 사람으로 송(宋)나라의 원외부(員外部) 벼슬에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고려에 망명해 온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름을 남긴 인물로는 의종 때 명신 정습명(鄭襲明), 그의 6대 손인 정몽주(鄭夢周), 의종 때 무신정변을 주동한 정중부(鄭仲夫), 예종 때 학자·문인이었던 정항(鄭沆)과 그의 아들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의 저자 정서(鄭敍), 고려 당대의 시객(詩客) 정지상(鄭知常) 등이 두드러졌으며, 그 위세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활짝 피었다고 할 수 있다.
2. 광주정씨 유래
광주 정씨(光州 鄭氏)는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말에 봉은사진전직(奉恩寺眞殿直)·상호군(上護軍)을 지냈고,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에 추봉되었다고 한다.
정신호(鄭臣扈) 이전부터 광주(光州)를 본관으로 하는 정씨가 있었던 것을 알 수는 있으나 그 상계는 상고(上考)할 수 없다. 광주 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4명을 배출하였다.
분파는 절제사공파(節制使公派), 응교공파(應敎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자의공파(諮議公派), 능파정공파(凌波亭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청백리공파(淸白吏公派), 양촌공파(楊村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소강재공파(昭江齋公派), 성재공파(醒齋公派), 봉사공파(奉事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사간공파(司諫公派), 통정공파(通政公派), 학생공파(學生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가 있으나 다른 씨족과 달리 체계적, 합리적인 계보(系譜)를 위해 3세~7세는 종(宗), 8세~11세는 파(派), 12세~15세는 문(門), 16세 이하는 가(家)로 하는 신체제를 도입하였다.
3. 본관 광주(光州) 별호(別號)
ㆍ광주(光州) ㆍ무진(武珍) ㆍ무주(武州) ㆍ광산(光山) ㆍ해양(海陽) ㆍ익주(翼州)
ㆍ화평(化平) ㆍ무진(茂珍) ㆍ익양(翼陽) ㆍ서석(瑞石) ㆍ벽진(碧津)
4. 인구
ㆍ1985년 광주정씨 (14,923명) + 광산 정씨 (4,105명) = 19,028명
ㆍ2000년 광주정씨 (15,149명) + 광산 정씨 (5,794명) = 20,943명
ㆍ2015년 광주정씨 (15,607명) + 광산 정씨 (5,914명) = 21,521명
5. 집성촌
ㆍ광주광역시 북구 대촌동
ㆍ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ㆍ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ㆍ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동암리
ㆍ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추자리
ㆍ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ㆍ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ㆍ경기도 동두천시 안흥동(안흥리)
ㆍ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화창리
ㆍ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경둔리
ㆍ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ㆍ강원도 춘천시 남면 서천리
6. 항열자
1957년 병신보 편찬 때 정한 항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