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법사님 무문관 제창>
제18칙 동산삼근洞山三斤
洞山和尙因僧問: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한 스님이 동산수초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화상이 답했다. “삼이 세 근!”
無門曰: 洞山老人, 參得些蚌蛤禪, 纔開兩片, 露出肝腸。然雖如是, 且道, 向甚處見洞山。 무문 화상 착어하기를, 동산 노인이 조개선[蚌蛤禪]을 조금 터득하여 얻었는데, 입을 조금 여는가 싶더니 간과 창자가 모두 드러났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 말해보라, 어디에서 동산을 볼 것인가?
頌曰: 突出麻三斤, 言親意更親。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게송으로 가로되, 갑자기 튀어나온 삼 세 근! 말도 가깝지만 뜻 또한 각별하다. 와서 이렇다 저렇다 따지는 이여, 그대야말로 시비인是非人!1
I. 배경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화상은 운문의 법사法嗣로「第15則 동산삼돈洞山三頓」에 나왔다. 운문 문하에는 동산수초 외에 지문사관智門師寬, 덕산연밀德山緣密, 향림징원(香林澄遠, 908~987) 등 뛰어난 제자들이 배출되어 운문을 법을 이었다. 특기할 것은 향림징원의 제자 지문광조智門光祚의 법을 이은 설두중현雪竇重顯이『전등록傳燈錄』에서 100칙을 뽑아 송을 붙였는데, 이『송고백칙頌古百則』이 시적詩的인 아름다움으로 선禪의 대중화大衆化를 이끌며 공안선의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마삼근麻三斤 한 스님이 “여하시불如何是佛?,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대개 ‘부처[佛]’2라고 하면 부처님을 연상하는 것이 보통이나 불법佛法을 가리키기도 한다. 불법은 부처의 가르침으로 석가모니가 깨달은 법계法界의 진리를 말한다. 종달 노사님은 부처님께서 ‘깨치신 도리’로 ‘진리眞理’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 물음에 대해 동산은 ‘삼이 세 근[麻三斤]!’3이라고 답한다. 조계종 수좌들이 많이 참구하고 있는 화두의 하나이다.
얼마나 멋진 대답인가! “불신佛身은 우주에 충만하여 일체중생 앞에 두루 나타난다.”거나 “사물 하나하나 부처 아닌 것이 없다”라는 개념적 설명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는가. (중략)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이 물음과 이에 대한 답변은 선서禪書에 수없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선사들은 각각 다른 말과 행동으로 답한다. 그것은 그때 그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깊은 체험의 표출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4
부처는 우주에 충만하여 어느 하나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해야 맞겠으나 동산은 그 대신 <마삼근>이라고 한 것이다. 말이나 행동 또는 세상 만물이 모두 부처 아닌 것이 없으니 일견 맞는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어떤 답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왜 동산이 그렇게 대답했을까? 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첫째로 거론되는 것이 “그대가 바로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물었기에 우회해서 답했다는 것이다.
즉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스님의 질문에 동산 화상이 “마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근[三斤]의 마사麻絲로 만든 가사(승복)를 걸친 스님이 바로 부처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질문하고 있는 그대가 바로 부처일세!’라는 의미이다. 법안 화상이 “그대가 바로 혜초일세!”라고 대답한 것처럼, ‘혜초, 그대가 바로 부처다’라고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부처를 밖에서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얻을 수도 없다. 또한 부처란 어떤 형체가 있는 존재도 아니다. 결국 부처란 자기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5
부연하면 <마삼근>이 부처라는 뜻이 아니고, 그 것을 물어본 사람(또는 내뱉은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에둘러서 답했다는 취지다. 그 근거로『벽암록』「제7칙 여시혜초汝是慧超」를 예로 들고 있는데, 혜초가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으니 법안(法眼文益, 885~958)이 ‘그대가 혜초’라고 대답한 공안이다.6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 병정 동자가 불을 찾는다’거나7,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 소타고 소 찾는’8 격이라는 선가의 일상적인 언구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당시 <마삼근>의 출처인 운문 문하에서 있었던 이 공안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는 일화가 전하는데, 한 스님이 운문의 제자인 향림징원의 법제자 지문광조智門光祚 선사를 찾아가 이 화두에 대해 물은 내용이다. 생생한 현장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이 지문(智門 : 설두의 은사)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삼 세 근이라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花蔟蔟錦蔟蔟],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남쪽 땅엔 대나무, 북쪽 지방은 나무이다[南地竹兮北地木].”9
지문은 향림징원의 제자이고, 향림징원은 동산과 더불어 운문 문하 사철四哲로 꼽히던 선사이니, 당시로서는 누구보다 동산의 의중을 잘 아는 그룹에 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지문의 대답을 듣고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직접 동산에게 가 들은 바를 고하고 그 뜻을 다시 묻는다. 그런데 그 경위를 들은 동산은 그 스님이 못미더웠던지 “그대에게는 말하지 않겠다. 대중들에게 직접 말하리라.”하고는 법좌法座에 올라 <마삼근>에 대한 본인의 의도를 스스로 밝힌다. 다음은 동산의 그 해명解明이다.
말로는 사事(현상적인 것)를 설명할 수 없고, 말로써는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가 없다. 말을 따르는 자는 죽게 되고 구절에 얽매이는 자는 흘리게 된다.10
이 말의 뜻이 또한 오묘한데, <마삼근>에 대한 직접적인 풀이나 설명은 하지 않고 말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로 들린다. 무심코(?) 내뱉은 말을 가지고 논란論難이 계속되니 수습하는 차원에서 하는 해명은 아니지만, 진리란 말이나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선가의 상투적인 언설言舌이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마삼근>에 대한 신비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통속적인 설명이 되어버려 그 선기禪氣마저 잃어버렸다. 무릇 공안이란 그런 것이다. 설명하면 사구死句가 되어 버린다. 그 문구가 각별各別했는지 손자뻘인 설두雪竇는 이 공안에 대해 송을 붙이면서 동산의 이 해명과 지문의 경계境界를 인용하였다.
金烏急玉免速 해(金烏)는 급히 날고 달(玉免)은 빠르다. 善應何曾有輕觸멋지게 응수했으니 어찌 경솔하다고 할 수 있으랴! 展事投機見洞山사물을 제시하여 선기를 펼친 것이라고 동산을 본다면, 跛鱉盲龜入空谷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이다. 花簇簇錦簇簇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 南地竹兮北地木남쪽 땅에는 대나무, 북쪽 지방은 나무이다. 因思長慶陸大夫그래서 장경 선사와 육긍대부를 회상하노니 解道合笑不合哭‘마땅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줄 알았네. 咦아이쿠!11
한편,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은『벽암록』에 그때까지 항간에 떠돌던 갑론을박甲論乙駁의 견해들을 나열하면서 다음과 같은 평을 붙이고 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 공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이는 참으로 씹기가 어려워 입을 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담박하여 맛이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부처에 대한 답변을 제법 많이 했다. 어떤 이는 “대웅전 안에 계신 분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 분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장림산杖林山 밑에 있는 대나무 지팡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산스님은 “삼 세 근”이라 하였으니, 참으로 옛사람의 혓바닥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말 저말 둘러대어 “동산스님이 그때에 창고에서 삼[麻]을 저울질 하는데 어떤 스님이 이를 물었기에 이처럼 답하였다”하기도 하고, 또는 “동산스님이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였다”하기도 하고, 또는 “그대가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물었기에 동산스님이 우회해서 답변하였다”하기도 한다. 더욱이 썩어빠진 놈들[死漢]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이 삼 세 근이 바로 부처이다”하니, 전혀 관계가 없다 하겠다. 너희들이 만일 이처럼 동산스님의 말을 더듬거렸다가는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할 때가지 참구하여도 꿈에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말이란 도를 담는 그릇일 뿐인데, 옛사람의 뜻은 전혀 모르고 다만 말만 따지니 어찌 핵심이 있겠는가? 듣지 못하였는가? 옛사람의 “도란 본디 말이 아니나 말로 말미암아서 도가 나타나는 것이니, 도를 깨닫고 나서는 곧 말을 잊어야 한다”라는 말을. 이 뜻을 알려면 나에게 첫 번째 기틀[第一機]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 삼 세 근은 마치 장안長安에 쭉 뻗어있는 한 줄기의 큰길과 같아서 발을 들거나 내리거나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이 화두는 운문雲門스님의 ‘호떡[餬餅]’화두와 더불어 한결같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12
원오는 이어 ‘그대가 망정妄情, 육진六塵, 뜻[意], 망상, 헤아림, 득실, 잘잘못들을 한데로 쌓아 일시에 말끔히 없애버리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는 자신의 견해도 덧붙이고 있는데, 원오의 평창評唱도 직답直答은 피하면서 동산의 알듯 모를 듯한 해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 화두의 직접적인 의도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동산의 스승인 운문(雲門文偃, 864~949)이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사法嗣인 목주도종(睦州道蹤, 780~877)을 참예參詣하여 깨닫고 설봉(雪峰義存, 822~908)에게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 후 상서尙書 진조陳操(목주의 법을 이음)의 집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목주스님은 그를 설봉스님의 처소로 가도록 하였다. 설봉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대중 가운데 있다가 나와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잠꼬대하지 마라[莫寐語].” 운문스님은 바로 예배하고 줄곧 3년을 지났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설봉스님이 물었다. “그대의 경지는 어떠한가?” “저의 경지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인들과 더불어 실낱만큼도 틀리지 않습니다.”13
운문의 스승인 설봉이 말한 ‘잠꼬대하지 마라!’는 동산이 나툰 <마삼근>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표현만 은유적으로 바뀌었을 뿐 <마삼근>은 ‘잠꼬대하지 마라’와 어느 정도 같게 들린다. 꾸미지 않는 적절한 충고다. 물론 묻는 이에 눈높이에 맞추어 대답하였으리라. 묻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주선사에게 한 승이 물었다. “무엇이 도道입니까(如何是道)?” 조주 선사 왈, “어딜 감히....(不敢不敢....)!” 여하튼 이미 한 소식했던 운문은 그 말에 바로 수긍하고 그의 제자가 된다. 그리고 ‘저의 경지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인들과 더불어 실낱만큼도 틀리지 않습니다.’는 운문의 대답 또한 더 이상의 논의를 불허한다. 역시 꾸미거나 멋을 부리지 않는 직설적인 언구다. 숭산 노사님과 전강 선사의 제자인 대원 거사사이에 있었던 선문답도 ‘잠꼬대하지 마라’는 선가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숭산 선사 ․ 마삼근 도리를 일러보시오. 대원 선사 ․ (숭산 선사님의 뺨을 치다.) 숭산 선사 ․ 거사가 내게 물어 보시오. 대원 선사 ․ 마삼근 도리를 일러 보십시오. 숭산 선사 ․ (대원 문재현 선사님의 뺨을 치다.)14
견동산見洞山 동산의 스승인 운문은 평소에 의표意表를 찌르는 간단명료한 선문답을 즐겼는데, <간시궐乾屎橛>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운문호병雲門胡餠> <체로금풍體露金風> <수미산須彌山>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등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산 또한 이런 운문의 가풍을 이어받아 그의 선문답은 수다스러움이 없고 담백하다.
1231. 친절親切 동산洞山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친절親切한 한 구절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달마는 앞니[當門齒]가 없었느니라.”15
1232. 지연紙撚 동산洞山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선지식善知識의 안목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종이 심지에 기름이 없느니라.”16
<마삼근> 공안처럼 장황함이 없고 무미건조한 모습이 운문을 그대로 닮았다.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는 그런 동산에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단도리다(洞山老漢, 不是無, 只是大檢).’라고 착어하면서 “나에게 묻는다면 ‘소경이니라[瞎]!’라고 대답하겠노라”고 덧붙인다. 동산의 대답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모양새다. 진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년) 선사는『임간록林間錄』에 ‘세상에서는 운문스님을 찾아 뵌 자들은 모두가 생사에 자유자재하는 경지[坐脫立亡]를 얻는다고들 하는데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불법에 대한 지견知見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동산의 <동산삼돈洞山三頓>의 깨달음과 <마삼근>에 대한 평들을 묶어 네 개의 게송으로 엮어 놓았다. 그 구성이 재미있는데, 동산의 구인 ‘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에서 두 자씩을 빼서 사용하고 있다. 첫 게송은 일을 벌임[展事]을, 둘째는 기다림[投機]을, 셋째는 말을 따름[承言]을, 그리고 끝은 말에 막힘[滯句]을 읊었다.
大用現前能展事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나 일을 해나가니 春來何處不開花봄이 깃든 온누리에 어디엔들 꽃피지 않으랴 放伊三頓參堂去그에게 삼돈봉三頓棒을 주어 법당에 절하니 四海當知共一家온 천하가 한집안인 줄을 알겠네.
千差萬別解投機천차만별하게 기연에 계합할 줄 아는 것은 明眼宗師自在時눈 밝으신 종사께서 자유자재하던 시절 北斗藏身雖有語북두성에 몸 감추고 말을 하지만 出群消息少人知 보통을 뛰어넘는 소식을 아는 사람 흔치 않네.
遊山翫水便乘言산천경계 노닐면서 말에 의지하되 自己商量總不偏 스스로의 생각이 조금도 치우치지 않았으나 鶻臭布衫脫末得 냄새 절은 장삼을 훌훌 벗지 못하면 且隨風俗度流年 또다시 세속 따라 세월을 흘려보내리.
滯句乘言是瞽聾 문구에 얽매이고 말에 의지하는 건 봉사이자 귀머거리라 參禪學道自無功 아무리 참선하고 도를 닦아도 안 될 수밖에 悟來不費纖毫力 깨달으면 조금도 힘들이지 않으리니 火裏螂蟟呑大蟲 불 속에서 사마귀가 호랑이를 삼키도다.17
II. 사설
여하시불如何是佛 ‘여하시불如何是佛’ 혹은 ‘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意,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냐?’는 선가의 흔한 질문 중에 하나로『무문관』에도 본칙 외에「제21칙 운문시궐雲門屎橛」「제30칙 즉심즉불卽心卽佛」「제33칙 비심비불非心非佛」등에 등장한다.『벽암록』에도 보이는데,「제7칙 여시혜초汝是慧超」「제12칙 마삼근麻三斤」「제32칙 불법대의佛法大意」등이 그렇고,『종용록從容錄』에는「제5칙 청원미가清源米價」「제30칙 대수겁화大隨劫火」「제63칙 조주문사趙州問死」「제65칙 수산신부首山新婦」「제73칙 조산효만曹山孝滿」「제86칙 임제대오臨濟大悟」「제99칙 운문발통雲門鉢桶」등이 그렇다. <萬法歸一 一歸何處>, 즉 만법萬法(불법佛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는 공안도 비슷하다. 조주는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고 대답한다.18 본칙은 부처[佛]을 물었고 여기서는 불법[萬法]을 물었는데 대답은 닮아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하나(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만법萬法입니까?(『운문어록雲門語錄』)’라고 묻기도 한다.
불법佛法을 일체의 만법, 혹은 제법諸法이라고 표현하는데, 불교는 삼라만상 모든 존재의 진실을 분명히 밝혀서 설한 법의 종교이다. 법을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하고, 법을 설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지도하는 것이 불법이며, 법을 중심으로 성립된 종교가 불교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만법의 주인인 자신을 등불로 삼고(自燈明), 올바른 진실인 법을 등불(法燈明)로 삼으라고 당부한 것이다. 불법은 일체의 모든 존재와 사물이 因과 緣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인연법과 연기법을 토대로 만법의 진실을 바로 알고, 만법의 근본인 마음으로 깨닫는 종교이다. 대승불교의 경전과 논서에서 불법은 심법心法이기 때문에,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하는 것은 외도外道라고 주장하고 있다.19
법을 깨달은 사람이 부처이고, 법을 설하여 중생들을 지도하면 불법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선가에서는 불과 불법의 구분이 모호하다. 더구나 불법은 심법心法으로 마음 밖에서 구할 수도 없다. 개구즉착開口卽錯, 말로 하면 어긋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은 ‘부처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처음에는 ‘즉심즉불卽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20라고 하였다. 그럼 이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저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이 “모호함”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모호함의 미학 오조법연(五祖法演, ? ~1104) 선사는 약산(藥山惟儼, 745~828)이 처음 석두(石頭希遷, 700~790)를 참문 했을 때 있었던 문답을 거론하면서21 공안의 무의미성과 절대성에 대해 논한다.
약산이 처음 석두를 참문 했을 때 묻기를,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22는 제가 처음부터 알았습니다만, 여기서 들은 남방의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서는 실로 모르겠습니다. 석두가 말하기를, 이렇게 해도 얻을 수 없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없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 얻을 수 없다. ......선사가 이르기를, 대중 여러분! 반드시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서 새가 날아가는 현묘한 길을 알아야 비로소 이 말을 깨달을 것이다. 석두가 이렇게 수시함이 바로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 동산의 “마 삼근”, 운문의 “호떡”과 같은 것이다.23
법연은 공안을 투과하는 조사관祖師關은 수행자가 반드시 뚫어야 하는 관문이라고 하면서24, ‘이렇게 해도 얻을 수 없고, 저렇게 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조주趙州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동산洞山의 <마삼근麻三斤>, 운문雲門의 <호떡[糊餠]> 등과 같은 것이라고 진단診斷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공안을 투과해야 비로소 석두의 수시垂示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어 법연은 “공안을 들어 참구하면 일마다 반드시 이룰 것이며, 밖을 향해 치달아 구하면 어리석은 놈이다.25”라고 착어하고 있다.
다시 <마삼근>으로 돌아왔다. 결국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보여줄 수도 없는 것이 불이고, 불법이고,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선문답은 사뭇 규칙도 없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일부러 혼란만 가중시키려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진리의 모습이라면? 거기에 선의 묘미가 있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26가 여기서도 통한다. 하나를 명확하게 하려하면 다른 하나가 불분명해진다. 기본적으로 확률로만 존재하는 것이 우주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라고 하면 저것을 놓치고 저것이라고 하면 이것을 놓친다. 그것이 진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니 그 모호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일이다. 진리란 명확하게 하려하면 점점 더 멀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등록』제7권 대매법상전에 다음과 같은 일단이 있다. 협산夾山과 정산定山이 같이 길을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산은 “생사生死 가운데 부처가 없으면 생사는 없다(生死中無佛即非生死).”라고 하니, 협산이 “생사 가운데 부처가 있어도 생사에 미혹되지 않는다(生死中有佛即不迷生死).”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함께 산(대매산)에 올라 참례할 때 협산이 앞의 일을 거론하며 물었다. “두 사람 중 누구 견해가 더 가깝습니까[親]?” 선사가 답했다. “하나는 가깝고[親] 하나는 멀다[疏].” 협산이 또 물었다. “어느 쪽이 親한 쪽입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다음날 오라.” 협산이 다음날 와서 다시 물으니, 선사가 말했다. “親한 이는 묻지 않고, 묻는 이는 親하지 않다.” (협산이 후에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때 한 쪽 눈을 잃었다.”)27
여기서 정산의 말은 생사 자체를 부정한 것이고, 협산의 말은 생사가 있다고 해도 미혹되지 않으면 된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그럼 누가 옳은가?
친親하고 친하지 않고는 상대적 개념이다. 나고 죽고, 있고 없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는 모두 상대적, 차별적 개념들로 선사에서는 피해야 하는 것들이다. 진리하고는 천리현격千里懸隔이다.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사람은 오직 상대적 차별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을 광고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도 이와 같다. 이를 따지려드는 사람은 결코 부처를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따져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칙 송에서도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사람은 부처를 알지 못하는 중생이라고 하고 있다. 시비를 초월한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붓다는 무아와 윤회가 모순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제자나 14가지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제자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붓다가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아를 직접 체험하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런 종류의 질문은 스스로의 종교체험을 통해 해결될 문제이지 남이 주는 대답을 통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28
‘여하시불’이라는 의문 또한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찌 어찌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깨닫는) 순간 해소되는 것이다.
제자의 질문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나는 것과 같다.29
한 가지 덧붙인다면, 요즘 들어 마음의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이 수행의 목적처럼 여겨지고 있다. 과연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행하는 것일까? 또는 행복해 지기 위해? 물론 안팎으로 생긴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해소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수행의 목적이고 깨달음이며 혜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자신과 우주에 충만한 진리 자체를 깨달아가는 즐거움이 더 크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만물萬物이 나我에게 다 구비되어 있느니라. 내 몸身을 돌이켜보아 우주의 성실함을 자각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즐거움이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살아가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서恕를 열심히 실천하면 인仁을 구求하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30
구분은 사람이 할 뿐 진리는 유교 도교 불교가 모두 같다.
III. 현대철학자 老子31
인류문명사에 있어 철기의 등장은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고, 수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시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사회윤리와 정치질서, 통치이념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시기 석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등 성현들이 나와 인류 정신문명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이 폭발적인 시기를 20세기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기축시대基軸時代라고 하였다.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에 이르는 600여년의 기간 동안, 각 대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사유의 창조적 혁명, 새로운 종교적 에토스의 출현하였고,32 인간의 의식이 변하면서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동양철학과 모더니즘Modernism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33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성 우위의 서양 철학의 기초를 세운 플라톤34은 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35의 각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존재의 철학자로 알려진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계는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였는데, 사유思惟나 이성理性만이 진리이며, 생성生成 소멸 등 변화를 믿게 하는 감각感覺은 오류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였다. 플라톤은 이 철학을 이어받아 이 세계를 “완벽한 세계”와 “완벽하지 않은 세계”로 나누었다. 완벽하지 않은 이 세계는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세계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완벽한 세계는 사유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의 세계로 ‘본체의 세계’라고 하고, 완벽하지 않은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경험의 세계로 ‘현상의 세계’라고 한다. 감각적 경험에 의한 세계를 초월하는 어떤 영원불변의 이데아Idea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서양 사유思惟의 근간根幹으로, 서양 철학의 출발이자 서양 근대 철학의 관점으로, 서양철학은 본질주의 철학이고 실체관 철학이다. 이 실체관적 세계를 지탱해주는 인간의 능력이 바로 “이성理性”인데, 이성은 인간을 규정하는 단일성의 기초이자, 이 세계를 지탱해주는 근원으로 보았다. 정신은 육체의 우위에 있고, 또 이성은 감성感性의 우위에 있다고 보아, 서양 철학에 있어 실체, 본질, 이성은 항상 우위優位를 점하게 되었다.
정신과 이성의 실체관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정신분석학』과『논리학』등의 저자 헤겔(G.W.F. Hegel, 1770~1831)이다. 그의 관념철학은 서양지성사에 있어 최고의 위치를 점하는데, 그의 사후 그의 논리에 저항하는 철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포이에르바하(Feuerbach, 1804~1872)이다. 마르크스와 함께 청년 철학파라 불리는 그는 헤겔의 관념론 철학을 비판하면서 ‘물질이 정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는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진화론進化論이 발표되어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던 혁명의 시기이다. 인간과 동물을 하나의 틀로 해석하면서 인간의 동물성動物性이 부각되고 이성의 영역이 축소되었던 것이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현대가 열리는 모습이다.
사실 서양문명의 장처는 철학사에 있지 않고 과학사에 있다. 철학은 과학을 리드하여 온 것이 아니라, 과학을 뒤쫓아 왔을 뿐이다.’36
서양지성사에 있어 현대는 프로이드, 칼 마르크스, 니체 등이 열었다고 한다.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인간의 근원성은 물질적 조건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이성적 활동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 사상, 이성 등 상부구조는 물질, 경제 사회 등 하부구조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어서 근원은 물질에 있다는 주장이다. “신은 죽었다”로 잘 알려진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인간의 우주적 본성은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 의지다”라고 주장하였고,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근원성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있다고 하였다. 의식은 인간의 성적 무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인간의 근원성은 이성이 아니라 욕망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현대는 이성이 아니라 욕망의 세계이고, 사유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서양철학에 있어 현대성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며, 본체가 아니라 현상인 것이다. “경험”이 현대성인 것이다. 이것은 사실 철학의 사조의 흐름이 라기보다는 인간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적 진화의 단계였다. 인간이 실제로 있지 않은 것을 믿지 않을 정도로 개명開明했기 때문이다.
공자와 노자는 그의 철학을 구축하는데 기본적인 틀을 ‘경험’을 통해 얻는데, 눈에 보이고 경험하는 것이 실제의 세계라고 본 것이다. 현상의 세계, 경험의 세계를 긍정한 것이다. 속성상 사유보다는 경험에서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양 철학은 ‘경험의 구조물’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에 있어 진리는 항상 현상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사유思惟의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없는 것을 가지고 사유해야 하므로 논리학이 발달 할 수밖에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 만져지지 않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들로 되어 있어 사유 전개의 치밀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동양철학은 사유의 치밀성 보다는 경험의 확실성이 더 중요시 되어 애초에 논리학이 발달할 수 없는 구조로, 변화를 긍정하고 경험을 철학적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모더니즘을 닮아 있다. 공자와 노자의 현대성인 것이다.
도道의 시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37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와 천명론天命論을 극복하고 인간의 길 ‘도道’의 질서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공자는 도의 근거를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구하는데, 반면에 노자는 인간을 벗어나 자연에서 도를 구한다. 인간이 만들려는 질서를 인간의 내면에서 구하면 주관성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는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보편성, 투명성,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연의 도는 더 친하고 덜 친하고 없기 때문이다(천도무친天道無親). 즉, 유가에서는 자연의 도인 천도天道보다는 인도人道를 우선시하였으며, 人道는 ‘가도可道’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노자는 천도를 주장하였는데, 人道는 ‘可道’이지만 天道는 ‘상도常道’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이름[名]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人道이며 ‘가명可名’인데 반해 天道는 ‘상명常名’이라고 하였다.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한다는 것은 개념화하는 것으로 어떤 이름으로 개념화하면 이미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道可道非常道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名可名非常名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공자는 인仁을, 맹자는 사단四端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하였지만, 노자는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말하지 않는다.38 노자는 이 세계를 유有와 무無의 상호 의존 관계關係로 보았다.39 노자는 근대 철학이 주장하는 본질을 부정하고 관계론 적으로 본 것이다. 모더니즘이 본질을 부정한 것처럼 관계로 보는 것이 노자의 현대성이다.40 노자는 ‘무無’와 ‘유有’는 이름이 다를 뿐 선후先後가 없고, 신비롭게도 같이 공존하고 있다(同謂之玄)고 기술하였다. 노자는 이를 “유무상생有無相生”으로 표현하였는데, 유와 무가 서로 살게 해 준다 혹은 유와 무가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으로 이것을 “도道”라고 규정하였다.41
無名天地之始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有名萬物之母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故常無欲以觀其妙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常有欲以觀其邀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此兩者同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出而異名이름을 달리하는데, 同謂之玄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玄之又玄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衆妙之門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42
즉, 유와 무가 뒤섞여 있는 것을(有物混成), ‘도’라 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 ‘크다’고 하였는데(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43 도는 비어있지만 그 작용은 끝이 없고(道沖而用之 或弗盈), 그것은 마치 만물의 근원 같으며(似萬物之宗),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지만(吾不知誰之子) 상제보다 앞서 있다(象帝之先).44고 하였다. 도는 상제(혹는 하느님)보다 앞선다는 것은 천명天命을 완전히 극복한 모습이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도는 그렇게 의젓하지만 마치 초대 받은 손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대립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는 무의 손님이고 무는 유의 손님이다. 또, 도는 봄 날 얼음이 풀릴 때처럼 경계가 모호한데, 무 계열과 유 계열의 두 대립면의 긴장과 공존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무상생이기 때문이다.
古之善爲士者 옛날에 도를 잘 실천하는 자는 微妙玄通 深不可識 미묘하고 현통하며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夫唯不可識 알 수 없기 때문에 故强爲之容억지로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할 뿐이다. 豫兮若冬涉川 조심조심 하는구나! 마치 살얼음 낀 겨울 내를 건너는 듯이 한다. 猶兮若畏四隣 신중하구나! 사방을 경계하는 듯이 한다. 儼兮其若客 진중하구나! 마치 손님과 같다. 渙兮若氷之將釋 풀어져 있구나! 마치 녹아 가는 얼음과 같다. 敦兮其若樸 돈후하구나! 마치 통나무 같다. 曠兮其若谷 텅 비어 있구나! 마치 계곡과 같다. 混兮其若濁 소탈하구나! 마치 흐린 물과 같다. 孰能濁以靜之徐淸 누가 혼탁한 물을 고요하게 하여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으며, 孰能安以久動之徐生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서 생기가 살아나게 할 수 있는가? 保此道者不欲盈 이런 이치를 지키는 자는 꽉 채우려 들지 않는다. 夫唯不盈 오직 채우지 않기 때문에, 故能蔽不新成 자신을 너덜너덜하게 하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치 않는다.45
이와 같이 관계성 철학은 경계가 불분명한데, 노자는 그것이 바로 진리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경계에서는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하게 하려고 개념화 하는 순간 그 세계에 갇히게 되고 그 개념에 빠지게 된다. 노자는 경계의 모호함이나 애매함을 명료함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품는다. 양편을 모두 품는 것이 바로 진리를 바로 아는 통찰의 세계이고, 일日과 월月을 함께 인식하는 밝음[명明]의 세계인 것이다.46 도는 모호하다.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라. 세계가 보여 지는 대로 보라.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을 항상 이긴다. 이것이 무위의 진정한 의미다.47
IV. 참구
종달 노사님은 이 공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가며 친절히 설명을 붙여 놓으셨다.
‘어떤 것이 불입니까?’라는 물음에 ‘안횡비직眼橫鼻直’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장림하죽근편丈林下竹根鞭’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농적적膿滴滴’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견고법신堅固法身’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간시궐乾屎橛’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고,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고 대답한 이도 있다. 그런데 동산 스님은 ‘마삼근’이라고 대답했다. 처음의 ‘안횡비직眼橫鼻直’은 눈은 가로고 코는 내리 선다는 말이다. 눈이 가로 서지 않고 내리서야 되겠는가! 코가 내리서지 않고 가로섰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다음 ‘병정동자래구화’는 병정동자는 화신火神으로 화신이 불을 구하러 온다는 말인데, 화신이 불이 없어서 불을 구하러 올까? 그 다음 ‘장림하죽근편’으로, 대로 만든 채찍은 대나무 밭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음 ‘청정법신’의 경우 깨치고 보면 어느 하나가 청정법신이 아닌 것이 없다. 그 다음 ‘농적적’으로 종기에서 고름이 철철 흐른다고 했다. 그 다음이 ‘견고법신’으로 도심道心이 견고하여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다고 했다. 그 다음 ‘간시궐’로 변소에서 뒤 닦는 나무막대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어떤 것을 말해도 맞지 않는 것이라곤 없다. 즉 책상이라고 해도 맞을 것이고, 연필이라고 해도 맞을 것이고, 잉크라고 해도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불법이란 전 우주에 편만하다고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가져와도 맞지 않는 것이 없다.48
어떤 것을 가져와도 맞지 않는 것이 없지만 대답마다에는 나름의 활용活用이 있다. 활용이란 그 공안으로써 일상생활에 응용하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의 활용의 묘는 무엇인가?
V. 감상
부처가 무어냐고? 삼서근? 무슨! 아침은 끝났다.
몽롱한 것에서 뚜렷한 것으로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생각에서 감각으로 느낌에서 물질로 유에서 무로
무엇이 봄이냐고? 봄은 그냥 아는 것!
솟아오르는 새싹에서 터지는 꽃에서 따뜻함에서 초록에서 붉음에서
흠! 모르면 다음 해를 기약하라! 알았다면 팔 괴고 누워 또 다른 봄을 기다린다.
VI. 참고한 책과 글
1) 여기서 말하는 親은 麻三斤과 부처와 동산이 일체가 된 것을 말한다. 親은 親近, 親切 등과 같이 萬法一如, 打成一片, 萬物一體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며, 일체의 차별과 분별심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와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뒤의 두 구는)『보등록普燈錄』제11권 오조법연장에 보이는 말이다. 법연의 제자 淸素가 百丈野狐의 공안에 대하여 질문했을 때 대답한 말인데, 是非 善惡에 대하여 이것저것 따지고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是非 善惡의 상대적인 차별 세계에 떨어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시비를 따지는 사람은 부처를 알지 못하는 중생이라는 의미다. (무문혜개無門慧開, 정성본鄭性本 역주譯註,『무문관無門關』 pp. 174~175)
2) 불佛: 진리를 깨달은 사람, 부처님을 뜻하는 불佛은 불타佛陀의 줄인 말로 각자覺者, 즉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불타佛陀는 범어 buddha의 음역으로, 佛陀이외에도 불타佛馱, 부타浮陀, 부도浮屠, 부도浮圖, 부두浮頭 등 다양하게 음역된다. 부처님을 의미하는 佛은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한정해, 불교의 창시자요, 신앙의 대상인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의미 가운데에서는 우선, 앞서 밝혔듯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다. 둘째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격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다는 부처님이다. 과거에는 유명한 일곱 부처님이 있었다고 한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등 이다. 미래에는 미륵불이 있다. 셋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成佛)고 믿고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佛을 설명하면서, 사찰에 모셔진 불상에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데, 원래 부처님 자신은 그 스스로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했다. 오직 진리와 법만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부촉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로서는 불교의 가르침을 절실히 동감하면서 그 분에 대한 흠모와 숭배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부처님의 일화를 조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대승불교가 발흥하면서 불상이 제작됐으며, 이와 동격인 여러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참된 불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도 중요하지만, 佛의 본래의 의미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정진하고 수행에 힘써야 한다. [불교설화] (문화콘텐츠닷컴 용어사전)
3) 당대에 三斤의 마사麻絲가 하나의 단위. 한 뭉치 麻絲의 무게가 三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사 한 벌(승복)의 재료이었다. 당시 마포로 가사나 승복을 만들었다.(무문혜개無門慧開, 정성본鄭性本 역주譯註,『무문관無門關』 p. 172)
4) 장휘옥, 감사업 제창,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무문관『무문관 참구』 p. 170.
5) 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제12칙 동산화상의 삼 세근麻三斤」 p. 83.
6) 擧。僧問法眼。慧超咨和尙: “如何是佛。” 法眼云: “汝是慧超。” 『碧巖錄』「第007則 汝是慧超」.
7) 법안이 측감원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가?” 측이 말했다. “3년쯤 됐습니다.” 법안이 말했다. “당신은 뒤에 온 후배로 보통사람인데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가?” 측이 말했다. “저는 감히 스님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일찍이 제가 청봉스님 밑에 있을 때 안락한 한 소식을 얻었습니다.” 법안이 물었다. “자네 무슨 공안[언어]으로 한 소식을 했는가?” 측이 말했다. “일찍이 제가 청봉스님에게 ‘어떤 것이 배우는 사람의 본래 주인공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청봉스님 말씀하시길 ‘병정동자래구화(병정동자가 불을 구하러 오다)’라고 했습니다.” 법안은 말했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자네가 그 참뜻을 모를까 염려된다.” 측은 말했다. “병정丙丁은 불(火)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병정동자래구화’란 ‘불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을 찾고 있다’는 뜻입니다. 장차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찾고 있다’는 뜻입니다.” 법안은 말했다. “측감원, 자넨 지금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 불법이 만일 이와 같다면 오늘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네.” (이 말을 들은) 측은 고민하다가 곧 떠났는데, 중간에 이르러 측감원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안스님은 5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린 대 스승[선지식]이시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측감원은 가던 길을 되돌아 와 법안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참회하며 물었다. “어떤 것이 저의 본래 주인공입니까?” 법안은 대답했다. “병정동자가 불을 구한다” (법안의) 이 말에 측감원은 크게 깨달았다. 법안이 말했다. “앞에서 (청봉이) 이렇게 (‘병정동자래구화’) 말할 때는 (측감원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서 (법안이) 이렇게 말할 때는 다시 크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 일러 보라. 그 핵심이 어느 곳에 있는가?”上堂舉則監院在法眼會中。一日眼問。爾在此多少時。則云三年。眼云。爾是後生。尋常何不問事。則云。某甲不敢瞞和尚。曾在青峰處。得箇安樂。眼云。爾因甚語得入。則云。曾問如何是學人自己峰云。丙丁童子來求火。眼云好語。祇恐爾不會。則云。丙丁屬火。將火求火。將自己覓自己。眼云。情知。爾不會。佛法若如此。不到今日。則躁悶便起。至中路卻云。他是五百人善知識。道我不是。必有長處。卻迴懺謝便問。如何是學人自己。眼云。丙丁童子來求火。則於言下大悟。師云。前來恁麼道。卻不會。後來恁麼道。卻悟去。且道。關捩子在什麼處。(覺上座有頌。丙丁童子來求火。南海波斯鼻孔大。狤獠舌頭會者難。直下而今照得破。照得破沒功過。知爾被底穿。曾與同床臥。廉纖脫盡舊時疑。柸影蛇絃留再坐。)(『굉지선사광록宏智禪師廣錄』)
8) 우습구나, 소 찾아 나선이여(可笑騎牛子), 소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騎牛更覓牛). 해 저물녘 방초 우거진 길에서(斜陽芳草路), 이 일이 진정 아득하구나(也事悉悠悠). (鏡虛禪師 尋牛頌 중에서)
9) 선림고경총서 35,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巖錄 上』「제12칙 동산의 삼 세 근[洞山麻三斤]」 p. 128. 원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착어하였다. 설두스님은 사람들의 정견情見을 타파하고자 고의로 이를 인용하여 하나로 뭉쳐서 송을 하였다. 그런데 후인들은 도리어 정견을 내어 말하기를, “삼[麻]은 상복喪服이며, 대나무는 상주가 짚는 지팡이다. 때문에 ‘남방에서는 대나무 지팡이를 쓰고 북방에서는 나무 지팡이를 쓴다’하였으며,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는 것은 관棺의 머리 쪽에 그려놓은 화초”라고 한다. 부끄러운 줄을 알까? “남쪽 땅의 대나무 북쪽 지방의 나무”라 한 것과 “삼 세 근”은, 아야阿爺와 아다(阿爹 : 둘 다 아버지라는 뜻으로 남쪽에서는 爺, 북쪽에서는 爹라 한다)가 서로 같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옛사람이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주기 위해 하신 말씀은 결코 이 같은 의도가 아닐 것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에서는 ‘智門’을 운문 문하 사철四哲인 지문사관智門師寬으로 보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스님이 지문관(智門寬. 1240則)에게 묻기를 “동산이 삼 서근[麻三斤]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사관師寬이 대답하기를 “꽃도 찬란하고 비단도 찬란하다[花蔟蔟錦蔟蔟]”이라 하였다. 스님이 다시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니, 사관이 “남쪽엔 대[竹]요, 북쪽은 나무니라[南地竹兮北地木]”하였다(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1233. 전사展事」 p. 393) 연대가 서로 겹치기 때문에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10) 선림고경총서 35,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巖錄 上』「제12칙 동산의 삼 세 근[洞山麻三斤]」장경각, p. 128. 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참고로『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말[言]이라 함은 혼자서 하는 말이요, 이야기[語]라 함은 남과 토론하는 것이며, 일[事]이라 함은 차별됨이요, 계기[機]라 함은 완전한 계기[全機]이니 이야기에 현묘玄妙함을 띠면 길이 없고 혀끝으로 이야기를 하나 이야기가 안 된다는 뜻이다. “말을 따르는 이는 멸망하고[承言者喪]”이라 함은 말꼬리 속에 휘말리면 자기 머리를 잘못 알고 그림자를 오인할 뿐 아니라 도리어 몸과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다. (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1233. 전사展事」 p. 389)
11) 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제12칙 동산화상의 삼 세근[麻三斤]」 pp. 84~86. 이어지는 해설은 이렇다.「해(金烏)는 급히 날고, 달(玉兎)은 빠르다. 멋지게 근기에 응수 했으니 어찌 경솔하다고 할 수 있으랴!」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스님의 질문에 동산은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삼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을 읊은 것이다. 해와 달이 급히 지나가는 것처럼, 스님의 질문에 시간을 맞추고 학인의 근기에 대응하여 적절하게 잘 대답하였다는 의미이다.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로써 학인을 상대했다고 동산의 안목(견해)을 파악하려 한다면,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이다. 이 말은 부처에 대한 질문을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로 대답했다고 해서 부처나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에 집착한다면 동산 화상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 남쪽에는 대나무, 북쪽에는 나무.」라고 읊은 말은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중략, 각주 7 참조) 즉, 봄이면 꽃이 천지에 만발하고, 가을이면 온 산에 비단의 단풍이 가득하며, 남쪽지방에는 대나무가 많고, 북쪽 지방에는 나무가 많은 산의 모습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세계가 아닌가? 라는 의미로 읊고 있다. 그래서「장경 화상과 육긍 대부를 생각하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네. 아이쿠(咦)!」라고 읊고 있다.「평창」에 이 말에 대한 고사를 언급하고 있다. 즉『전등록』10권 소주서선장에 육긍대부가 선주관찰사가 되어 남전선사를 참문하니, 남전선사는 이미 입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다 껄껄 큰 소리로 웃으니, 원주가 말했다. ‘입적하신 선사와 대부와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인데, 어찌하여 통곡하지 않습니까?’ 대부는 ‘말할 수 있으면 통곡하리다.’라고 말했다. 원주가 아무 말을 못하자, 대부는 큰 소리로 통곡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셨구나.’ 하였다. 뒤에 장경선사가 이 소문을 듣고 말했다. ‘대부는 웃었어야지! 결코 통곡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설두는 동산이 ‘삼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간의 인정과 분별적인 상식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으니, 수행자들은 이 공안을 잘 사유하여 참구해야 한다는 주의를 하고 있다.
12) 선림고경총서 35,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巖錄 上』「제12칙 동산의 삼 세 근[洞山麻三斤]」 p. 123, 평창評唱에서 인용.
13) 선림고경총서 35,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巖錄 上』「제6칙 운문의 날마다 좋은 날[雲門十五曰]」 p. 72. 後於陳操尚書宅, 住三年。睦州指往雪峰處去, 至彼出衆便問: “如何是佛。” 峰云: “莫寐語。” 雲門便禮拜, 一住三年。雪峰一日問: “子見處如何。” 門云: “某甲見處, 與從上諸聖, 不移易一絲毫許。”
14) 대원 문재현 선문답집,『앞뜰에 ․ 국화꽃 ․ 곱고 ․ 북산에 ․ 첫눈 ․ 희다』 p. 108.
15) 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1231. 친절親切」 pp. 387~388. 洞山因僧問, 如何是親切一句. 師云, 達磨無當門齒. “친절한 한 구절[親切一句]”이라 함은 친절하고 간략하고 요긴한 경지요, “앞니가 없었느니라[無當門齒]”라고 함은 앞니가 없기 때문에 9년 동안 잠자코 앉아서 말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16) 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1231. 친절親切」 p. 388. 洞山因僧問, 如何是善知識眼. 師云, 紙撚無油. “종이 심지에 기름이 없느니라[紙撚無油]”함은 광명의 비춤이 없다는 뜻이다.
17) 선림고경총서 7, 백련선서간행회 편,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년)『임간록林間錄 上』「40. 동산 수초스님의 어록」 pp. 81~83. 송에서 ‘北斗藏身雖有語’은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한마디입니까?” 하니 “북두성에 몸을 감추느니라!” 한 것에서 인용하였다. 송 구성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염송설화를 따랐다. (염송설화) 네 수의 송은 각범의 경지이니, 첫 게송은 일을 벌임[展事]이요, 다음 송은 때를 기다림[投機]이며, 그 다음 게송은 말을 따름[承言]이요, 끝의 게송은 말에 막힘[滯句]이다.(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1233. 전사展事」 pp. 390~391)
18) 선림고경총서 736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嚴錄 中』「제45칙 청주에서 지은 삼베적삼[靑州布衫]」 p. 119. 擧. 僧問趙州, 萬法歸一, 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
19) 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제45칙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萬法歸一]」 pp. 281~282.
20)『무문관無門關』「제30칙 즉심즉불卽心卽佛」「제33칙 비심비불非心非佛」. 참고로『무문관無門關』「제34칙 지부시도智不是道」에는 “心不是佛, 智不是道, 마음은 부처가 아니며, 지는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반야般若, 즉 ‘견성見性의 지혜智慧야말로 불법의 제일의第一義’라고 하면, 사람들은 곧 心이나 智에 걸리기 때문에 남전은 그것을 막기 위해 마음은 부처가 아니며, 지는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21)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주 약산 유엄선사가 석두에게 물었다. 약산: “삼승 십이분교는 제가 약간 알고 있으니, 듣건대 남방에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켜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는 법이 있다는데, 그 뜻이 분명하지 않으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로 지시해 주십시오.” 석두: “이러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아도 안 되고, 이렇건 이렇지 않건 간에 모두 안 되나니, 그대는 어찌 하겠는가?” 이에 약산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니, 석두가 말하였다. 석두: “그대의 인연이 여기에 있지 않다. 강서에 마대사가 있으니 거기에 가서 물으라.” 약산이 강서에 가서 마대사에게 전과 같이 물으니, 마대사가 말하였다. 마조: “나는 어떤 때에는 그대에게 눈썹을 드날리거나 눈을 깜빡이게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눈썹을 드날리거나 눈을 깜빡이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때에는 옳고 어떤 때에는 옳지 않다.” 이에 약산이 깨달은 바가 있어 절을 하였다. 마조: “그대는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 약산: “내가 석두에 있을 때에 마치 모기가 무쇠 소에 기어 오른 것 같았습니다.” 마조: “그대가 이미 그러하니, 잘 보호해 유지하라.” 澧州藥山惟儼禪師,首造石頭之室,便問:「三乘十二分教,某甲粗知,嘗聞南方直指人心見性成佛,實未明了,伏望和尚慈悲指示。」頭曰:「恁麼也不得,不恁麼也不得,恁麼不恁麼總不得。子作麼生?」師罔措。頭曰:「子因緣不在此,且往馬大師處去。」師稟命恭禮馬祖,仍申前問,祖曰:「我有時教伊揚眉瞬目,有時揚眉瞬目者是,有時揚眉瞬目者不是。子作麼生?」師於言下契悟,便禮拜。祖曰:「你見甚麼道理便禮拜?」師曰:「某甲在石頭處如蚊子上鐵牛。」祖曰:「汝既如是,善自護持。」
22)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 삼승三乘은 탈것에 비유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을, 십이분교十二分敎는 부처님이 한 생애에 설한 불전佛典을 형식면에서 12종류로 나눈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교리敎理혹은 일체의 경론經論이라는 의미이다.
23) 월암月庵,『간화정로看話正路, 간화선을 말한다』 pp. 234~235. 小參, 舉。藥山初參石頭, 問云: “三乘十二分教, 某甲粗知。訪聞南方直指人心, 見性成佛, 實未明了。” 石頭云: “恁麼也不得, 不恁麼也不得, 恁麼不恁麼總不得。” (藥山罔措。一日坐次, 石頭遂問云: “汝在此作什麼。” 山云: “一物也不為。” 頭云: “恁麼則閑坐也。” 山云: “閑坐則為也。” 頭云: “你道不為。不為箇什麼。” 山云: “千聖亦不識。” 石頭遂有頌云: “從來共住不知名。任運相將只麼行。自古上賢猶不識。造次凡流豈易明。”) 師云: “大衆! 須是過得祖師關, 會鳥道玄路, 始會此般說話。石頭恁麼垂示, 便類趙州庭前柏樹子, 洞山麻三斤, 雲門超佛越祖之談。”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卷下).
24) 월암月庵,『간화정로看話正路, 간화선을 말한다』 p. 235. 법연의 조사관祖師關은 무문혜개에게 계승되어『무문관』「조주구자」평창으로 구체화 되었다.
25) 上堂云: “舉則公案, 事事成辦。向外馳求, 癡漢癡漢。”(『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
26)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 不確定性原理)는 1927년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가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법칙. 실제로 정확한 위치, 정확한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위치와 속도의 불확정도를 곱한 양은 어떤 미세한 물리량, 즉 플랑크 상수 h/(2π)로서 약 10-34 J·sec 이상의 값을 가진다. 원자나 원자구성 입자처럼 극히 작은 입자에서는 불확정도의 곱이 의미가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7) 夾山與定山同行言話次。定山云: “生死中無佛即非生死。” 夾山云: “生死中有佛即不迷生死。” 二人上山參禮, 夾山便舉問師: “未審二人見處那箇較親。” 師云: “一親一疏。” 夾山云: “那箇親。” 師云: “且去明日來。” 夾山明日再上問師。師云: “親者不問, 問者不親。”(夾山住後自云: “當時失一隻眼。”) (景德傳燈錄卷第七)
28) 방경일 지음,『초기불교 vs 선불교』 p. 146.
29) 오경웅吳經熊 지음, 류시화 옮김,『선의 황금시대』 p. 126.
30) 도올 김용옥,『맹자, 사람의 길 下』 p. 720. 孟子曰: “萬物皆備於我矣。反身而誠, 樂莫大焉。强恕而行, 求仁莫近焉。”
31) EBS 인문학 특강,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최진석의「현대철학자 老子」에서 필요한 부분을 축약 하였다.
32) 카렌 암스트롱· 정영목 옮김,『축의 시대』서평에서 인용.
3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년 2월 15일 - 1947년 12월 30일)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호논리학(수학적 논리학)의 대성자 중 한 사람이다. 사적史蹟이 많은 영국 남부의 켄트 주 램즈게이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의 신부로 사립학교 교장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역사, 종교, 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을 함양시켜 주었다. 1880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전공하였으며, 이어 장학금 연구원(펠로)으로 선발되고 강사가 되었다. 1910년에 런던 대학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기까지 러셀과 10년간에 걸쳐 협력하여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논한 고전 『수학 원리(1910-1913)』 3권을 완성하였다. 1924년 63세로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초빙되어 도미하였고,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살며 『과학과 근대 세계』『상징작용』『과정과 실재(1929)』『관념의 모험(1933)』『사상의 제 양태』 등을 썼다. 1945년에 문화훈장인 ‘오더 오브 메리트’가 수여되었다.
34)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형이상학의 수립자로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젊었을 때에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의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385년경 아테네의 서북부에 학원 아카데메이아(Academeia)를 개설하여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소크라테스를 주요 등장인물로 한《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국가》등《대화편對話篇》다수를 지었고, 특히 중기에는 초월적인 이데아(idea)를 참 실재로 하는 사고방식을 전개하였다. 또한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두 번이나 시칠리아 섬을 방문하여 시라쿠사의 참주僣主 디오니시오스 이세二世를 교육하여, 이상적인 철인 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Daum 국어사전) 그가 이성 우위의 전통을 가진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영국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라 평했다.
35)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BC445?)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엘레아 출생, 엘레아학파의 시조. 철학 시《자연에 대하여》가 약 160행 남아 있으며, 그 사상의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립하는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만이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는 근본사상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의 성질을 논리적으로 연역演繹하였다. 그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불가분不可分인 것이며,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것으로서 완결된 둥근 구球처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사유思惟, 즉 이성理性만이 진리이며, 이에 반하여 다수多數 · 생성生成 · 소멸 · 변화를 믿게 하는 감각感覺은 모두가 오류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감각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빛)’과 ‘존재하지 않는 것(어둠)’을 병치倂置하며, 이 두 요소로부터 모든 것을 합성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존재와 비존재, 존재와 사유라는 철학의 중대 문제를 시사하고, 후에 대두하는 존재론存在論 및 인식론認識論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존재의 철학자라 불린다. (두산백과)
36) 도올 김용옥,『맹자, 사람의 길 下』 p. 565.
37)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란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이다. BC 770~476년은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춘추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38) 사실 이렇게 한 마디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맹자의 성론性論은 실체론essentialism이 아니며, 그것은 매우 일반적인 심론心論Philosophy of Mind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성性이 심心의 본체로서 이원화 되지 않는다.(도올 김용옥,『맹자, 사람의 길 下』 p. 596.)’ 공자는『논어』에 성性에 관하여 단 두 마디만 남겼을 뿐이다. 그중 하나는 자공이 공선생님께서는 성性과 천도天道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 부정적 멘트일 뿐이다. 그러나 그 멘트를 가지고 형이상학적 문제에 무관심했다거나 무지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충분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성性에 관해 매우 명료한 입장을 밝혔다.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 태어난 그대로의 성性은 모든 사람이 서로 가깝다. 그러나 후천적 학습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도올 김용옥,『맹자, 사람의 길 下』 p. 608.) 다시 말해 최진석 교수가 논하는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39) 無名天地之始, ‘무無’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有名萬物之母, ‘유有’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여기서 始는 비롯된다는 뜻인데, 옛 정의를 보면 시작을 뜻하는 初자가 옷 의(衣)자 + 칼 도(刀)자로, 칼로 옷을 자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말한다. 그러나 시작은 준비와 출발의 사이에 분명 존재하지만 잘 알 수는 없는데, 자르기 시작하면 벌써 시작점이 아니고 자르기 전은 시작점 이전이기 때문이다. 즉 시작은 없다. 시작은 준비와 출발의 교차지점에 존재할 뿐이다. 즉, 시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시작이라는 사건이 없으면 자르기라는 운동은 일어 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무’는 자기의 구체적인 모습은 없지만 이 세계를 가능하게 해주고 기능하게 해 주는 영역이다. 몸속의 빈 공간이나 교실 같은 빈 공간 같은 것으로 그런 것을 ‘무’라고 부른 것이다.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는데, 母는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온 상형문자로 만물을 기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름하여 ‘유’라고 하였다.
40)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은 노자 혼자의 저작이 아니다. 어떤 사상사적 흐름으로 보아야지 시비是非나 친소親疎의 관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올은 말한다. “유교는 결코 공자교가 아니다. 이 말은 유교의 전승이 공자 이전에 있었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어떤 한 사람의 창안일 수가 없다고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이야기는 이러한 창안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문명은 “거대한 흐름”일 뿐이며 모든 개인은 그 흐름에 참여하여 부분적인 “술述”을 감행하고 있을 뿐이다.” (도올 김용옥,『맹자, 사람의 길 下』 p. 564) 필자가 보기에 도덕경이 이론서理論書라면 논어는 실천서實踐書이다. 뚜렷하게 선후가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다.
41)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唯不居, 是以不去.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제2장)
42) 최진석 역,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제1장.
43)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제25장)
44) 道沖而用之, 或弗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제4장)
45) 최진석 역,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 제15장.
46) 知人者智 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자는 잘 안다고 할 뿐이지만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이를 명明이라고 한다. 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47) EBS 인문학 특강,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최진석의「현대철학자 老子」강의 중에서 인용.
48) 무문혜개無門慧開 원저原著, 종달宗達 이희익李喜益 제창提唱,『무문관無門關』 pp. 202~203. |
첫댓글 동서양을 넘나드는 법사님의 법문은 두리뭉슬한 혼동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주시려는데 모든 것을 바치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외국인 불자가 뜻도 모른 채, 한 스님이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만 하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또 한 어느 스님이 “관세음보살이 무슨 뜻인지는 아는가?”에 대해 물으니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물론 영어로...)
그래서 스님은 “자 지금부터 무슨 뜻인지 알겠는지 말해보거라” 하고, “빵구똥꼬, 관세음보살”, “코가콜라 관세음보살” 하며 읊어보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했더니 “코카골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와같이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다름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이 대화의 내용이랍니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한 개념정리는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법사님의 무문관 제창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