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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쫌 가입시더.” “이기 뭐고? 발 쫌 밟지 마소.” “아재요, 대구 한 마리 사 가소. 참말 싱싱합니더.”
규모가 크고 다루는 품목이 다양한 만큼 볼거리·살거리·느낄거리가 풍성하다. 가게주인·손님·행인·노점상인·배달꾼이 서로 부닥치고 밀치고 밟고 넘어지고 다투는 말썽거리도 잦다. 주말엔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며 줄지어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만 오가는 게 아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크고 작은 손수레들이 끊임없이 오고간다.
“아지매요, 미주구리(물가자미) 한 마리 더 얹어 주소.” “안된다카이. 고기값이 엄매나 비싼데 그라능교. 하나 덜 자시소.”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흥정하는 모습 구경하며 골목들을 순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질하는 생선좌판 아지매들, 대형 솥에 삶아 건져낸 커다란 문어, 전기톱날에 순식간에 토막나는 냉동 돔배기(상어고기) 등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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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들 경조사 때 빼놓지 않고 장만해 상에 올리는 해산물이 문어·돔배기·개복치다. 돔배기 토막에 칼집을 내던 아저씨가 말했다. “돔배기·개복치 이기 빠지모 재미 없다 카는기라. 그카모 상 차린 기도 아이다.”
개복치 잘라놓은 토막은 마치 흰 묵처럼 생겼다. 무슨 맛이냐고 묻자 상인회장 박씨는 “아무 맛도 없는 맛”이라고 말했다. “무색·무미·무취 이 3무가 개복치의 특징인기라요. 이 ‘맛없는’ 고기를 여기 사람들은 무쟈게 맛있어하는 기라.”
개복치는 복어목에 속하는 길이 1m 안팎의 대형 온대성 어종인데,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개복치 학명이 ‘몰라 몰라’(Mola mola)다. 라틴어로 맷돌을 뜻한다. 동서남해안에서 두루 잡히지만, 경북 중남부 해안지역 주민들이 유독 좋아해, 특히 잔칫상엔 빠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삶아서 잘라 놓으면 청포묵을 빼닮았다. 초고추장에 찍어 술안주로 많이 먹는다.
물건 사고 구경하다 허기가 느껴지면, 물회 골목으로 가거나 수제비 골목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200여곳의 횟집들이 빼놓지 않고 내는 대표 먹을거리가 물회다. 원하는 해산물로 즉석에서 시원한 물회를 만들어 준다. 갖가지 해산물 반찬에다 매운탕까지 곁들여진다. 광어나 가자미·우럭 물회는 1만원, 해삼·전복 물회는 시세에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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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원짜리 수제비 국물에 마음까지 뜨끈
값싸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 수제비 골목이다. 다양한 분식류를 내는 좌판식당들인데, 이곳 대표 종목이 수제비다. 감자를 썰어 넣은 다시국물에 밀가루 수제비를 뚝뚝 뜯어 넣고 끓여 김가루를 뿌려 내준다. 3천원. 딸·사위, 두 어린 손녀와 함께 수제비·칼국수를 주문해 들던 박순자(60·흥해읍 학천리)씨는 “돔배기 등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러 시장에 왔다”며 “수제비가 맛있어 올 때마다 이 골목에 들른다”고 말했다.
죽도시장이 포항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어시장 풍경을 찍으려는 사진동호회 회원들도 수시로 몰려온다. 대개 상인들은 환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거나, 덤덤한 표정으로 피사체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만, 생업에 바쁜 일부 상인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찍지 마소. 고마.” “이 문어만 찍으면 어떨까요?” “문어도 안된다카이. 초상권 침해 모르요?”
대부분의 시장 주변이 그렇듯이 죽도시장 주변도 주말이면 교통체증이 상상을 넘어선다. 길 옆의 대형버스 주차장, 3곳의 승용차 공영주차장, 10여곳의 사설 주차장들이 빈틈없이 들어차고, 체증은 주변 도로까지 이어진다. 공중화장실이 세 곳밖에 없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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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구경 전후 포항 둘러보기
그윽한 분위기의 오어사
△호미곶=포항의 본디 이름은 영일(迎日)이다.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신라 태양신 관련 설화인 ‘연오랑세오녀’ 이야기에 뿌리가 닿아 있는 지명이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에 비유할 때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 포항 호미곶이다. 옛 지명에 걸맞게 해맞이 명소로 떠올랐다. 해맞이 장소가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짙푸른 빛깔의 바다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등대박물관과 바다에 세운 조각 ‘상생의 손’이 이름났다. 호랑이 꼬리 아래쪽에 자리잡은 구룡포는 과메기 본고장이다. 골목마다 집마다, 바닷가 언덕마다 과메기 건조가 한창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호미곶 주변의 드넓은 밭은 온통 일렁이는 청보리의 바다로 변한다.
△오어사=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 자락의 신라시대 고찰. 원효·혜공·자장·의상 등 고승들이 수도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오어사(吾魚寺)란 이름은 신라시대 고승 원효와 혜공이 물고기를 먹고 법력으로 다시 살려내는 내기를 했는데, 한 마리만 다시 살아나자 서로 “저게 바로 내(吾) 고기(魚)”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호수(오어지)와 어우러진 그윽한 분위기의 절이다. 부속 암자인 원효암·자장암 주변의 풍경과 절벽 위의 자장암에서 내려다본 오어사 풍경이 볼만하다.
△내연산계곡과 보경사=포항시 송라면엔 12개의 폭포가 차례로 물을 쏟아붓는 내연산 계곡이 있고, 계곡 들머리엔 신라 고찰 보경사가 있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까지 물길 따라 오르내리는 2.6㎞ 거리의 숲길을 거닐어볼 만하다. 보현·삼보·잠용·무풍·관음폭포 등 얼어붙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마침내 웅장한 바위절벽 옆에 걸린 연산폭포에 이른다. 왕복 1시간30분. 보경사엔 고려 때 고승 원진국사 비와 원진국사 부도(이상 고려 고종 때 조성), 적광전, 5층석탑(금당탑), 800살 된 회화나무 등이 있다. 포항시청 관광진흥계 (054)245-6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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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동해안 맛집들
대게 살 오르는 제철
경북 동해안은 대게·과메기·전복 등 입맛 돋우는 해산물이 풍성한 곳이다. 포항·영덕·감포 일대 해안에서 오랫동안 그 맛을 인정받아온 음식점들을 소개한다. 경북도청이 추천하고, 지역민들도 많이 찾는 식당들이다.
△해송정식당(경주 감포 대본리)=주인이 어선을 직접 운영하고, 안주인은 직접 물질을 해 전복을 따서 손님상에 차려내는 식당이다. 21년째 전복죽(1만~2만원)·전복탕(4만원)과 해삼요리를 전문으로 해온 집이다. (054)771-8058.
△할매횟집(경주 감포 전촌리)=참가자미 물회(1만원)와 회국수(7천원)·회밥(1만원) 등을 잘한다. (054)744-3411.
△호미곶회타운(포항 남구 대보면 대보리 호미곶)=30년 식당 경력을 자랑하는 주인이 동해안에서 나는 다양한 생선회를 내는 곳. 호미곶 활어위판장 중매인으로, 싱싱한 활어를 들여와 쓴다. 지역 특산물인 과메기도 다룬다. (054)284-2855.
△대게종가(영덕 강구면 강구리)=대게잡이는 12월부터 시작되지만 대게 살이 단단하게 차는 시기는 2월부터 4월 무렵이다. 요즘 한창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대게종가는 강구항 주변의 대형 대게식당 중 한 곳이다. 대게를 고르면 즉석에서 쪄서 요리해 준다. (054)733-3838.
△덕성대게·회식당(영덕 강구면 삼사리)=대게와 활어, 전복죽(1만원)·전복물회(2만원) 등 다양한 해산물 음식을 낸다. (054)733-9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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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 한겨레(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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