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하중도에 정원 박람회가 오늘까지인데 가보시지요?’ 하며 출근했다. 2023 대구 정원 박람회를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다.
‘테마가 있는 정원 전시, 트렌드가 있는 정원산업전, 힐링이 있는 정원 페스티벌’ 등 주요 프로그램에 각 스토리를 부여해 진행되며, 정원 작가 중심의 정원 보다 시민과 학생의 참여를 통한 정원 조성을 유도한다고 되어있다. 취지가 건전해 보였다. 구미가 당겼다.
남편이 8시 반에 허리 경락마사지를 받으러 가더니 10시에 돌아왔다. 남편한테 거기 가보자고 했다. 신교장과 신말희 여사와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쌍꺼풀 수술하고 실밥도 빼기 전 얼굴이라 노출이 겁나서 깊숙이 모자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 부부만 출발하였다.
소요 시간을 보니 3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노곡교를 건너니 노원 체육공원 주차장이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다. 수목원 3주차장의 6배보다 더 넓은 공간에 벌써 차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오늘이 화요일, 평일인데 이 시간대에 자유로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어 놀랐다. 한 2천 명 정도는 구경을 즐기러 온 것 같다. 안쪽으로 들어가 겨우 주차를 시키고 걸어 나가니 바닥에 ‘하중도 박람회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노곡교에 들어서서 조금 걸으니 다리 중간에 강 아래로 내려가는 보도교를 설치해 두었다. 여기저기 안내 요원들이 봉사활동으로 안내하며, 오른쪽으로 붙어 한 줄로 서서 내려가란다. 양산을 쓰고 가는 사람은 양산을 접으라는 멘트까지 할 만큼 복잡하였다. 밑에서는 올라오는 사람들도 오른쪽으로 붙어 올라오고 있다. 내려가니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던 노란 꽃(유채꽃도 아닌데 이름을 모르겠다)과 분홍색이 팔랑거리는 코스모스가 저 멀리에 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원래 섬처럼 떨어져있던 강변 농지인데 대구시가 사들여 하중도 관광 명소화 사업을 추진하며, 시민 공모로 <금호꽃섬-2022.4.17.>이라는 새 이름을 달게 되었단다. ‘우리 대구에도 이런 꽃 단지를 조성해두었다니, 행정 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게 된다. 발걸음이 급하게 꽃을 찾아가고, 눈길이 발길보다 앞서가고 있다. 간간이 꽃무리 중간 중간에 아예 꽃을 심지 않고, 사람이 들어가 사진 찍기 좋을 공간으로 비워두었고, 그 안에 들어가면 무릎 높이의 꽃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반기니 그들의 눈웃음에 이끌려 들어서게 되고 사진 한 컷 찍을 수밖에. 길 중간 증간에는 높이 올라 설 수 있는 돌계단도 마련해두었다. 그 위에 올라서서 등 뒤로 보이는 노란색 무리꽃, 분홍색 코스모스 무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진 꽃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양손을 활짝 위로 쳐들고 사진에 사람과 꽃을 가득 담았다. 한참 사진을 찍고 돌아 나와 보니, 입구에 녹색과 흰색을 세로로 번갈아 박아 만든 천막 밑 부스에 꽃을 팔고, 피자 만들기 체험장을 마련하고, 종자를 팔고, 무료 차 마실 공간도 마련해 두었다. 나도 줄을 서서 믹스 커피 한 봉지를 뽑아 종이컵에 붓고 껍질은 쓰레기통에 단박에 던졌다. 온수를 붓고 보니 차를 저을 봉지를 곧장 버려버린 일이 후회되었다. 남편은 내 컵의 커피를 녹이려고 컵을 채로 휘두르며 내용물을 녹이고 있다. 메고 온 배낭에서 과일 꽂이 하나를 꺼내어 휘휘 저었다. 가을 커피 맛을 즐기며 정원을 돌고 싶어 종이컵을 들고나오는데 남편이 질색한다.
“나는 뭘 먹는 것 들고 다니는 사람들 질색이야. 얼른 마시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자.”
‘그래도 나는 커피 맛을 음미하며 들고 마시고 싶은데….’
어쩌다 한번 종이컵 커피를 만나 이 가을 속을 걸으며 즐기고 싶은데 남편이 질색 버전으로 윽박지르시니 어쩐담. 앞 팻말을 보니 마침, 달 + 빛 정원이라는 큰 제목 밑에 ‘화합의 데크(대구+광주) 대구는 달, 광주는 빛으로 설명 판이 쓰여 있다.
‘지금, 나는 달이요. 남편은 빛이니 우리도 이렇게 화합해야지.’ 싶어 남편을 불렀다.
“여보, 내 커피 마시는 모습, 여기 팻말 앞에서 사진 한 컷 찍어줘요.”
남편은 손전화기를 찾아 든다. (나는 오늘 손전화기도 집에 두고 왔다.) 난 얼른 커피를 마저 마시고 종이컵을 구겨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정원마다 초청정원, 학생정원, 시민정원, 가족 정원이라는 테마도 정해두었다 학생정원 설명 판을 들여다보았다.
① RI-VELOPE.RE665(가십거리라는 뜻일까?)
② RE:bloome:다시 피어날 공간을 향유하다. 민들레
③ 필름: 리브어스(자연주의 정신이 깃든 브렌드?) 그린픽처스(유니버스 픽처스는 미국 영화 배급사인데?)
④ 퐁당퐁당:하중도가 건너는 징검다리ㅡ꽃과 나비
⑤ 그들이 사는 세상-초식이
⑥ 녹색 물결을 만드는 우리의 발자국-가나효
⑦ 연흔(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눈 위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의 흔적):
금호강 물결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 파워퍼프걸즈
⑧ RE:VALUE(가치?)-체리 마루
⑨ 담다, 품다. 미니미('작은 나'라는 뜻으로 최신 유행을 즐기는 엄마가 아이에게도 어른용 패션의 축소판 같은 옷을 똑같이 입히는 것)
-④⑤⑥⑦ 우리 말이 정겹다
그런데 ①③⑧⑨번의 미니미 같은 국적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학생정원 설명 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의 말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소하여 네이버에서 찾아봤다. 찾은 대로 옆에 해설을 적어 봐도 정확한 의미 전달이 와 닿지 않아서 주최 측이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그냥 대구시 정원박람회였다.
학생 정원 작품 공모의 주제는 ‘리버스가든’이라고 포스터에 명시되어 있었다. 정원박람회 대상지인 하중도의 장소성을 반영한단다. 하중도가 금호강 사이에 있는 비닐하우스 농경지였는데 여기 수심 깊은 땅 한복판에 새로운 정원을 조성시킨 장소라서 붙인 이름이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한국말로 인사하고 말 걸어 올 때 우리는 자긍심이 높아지고 친밀감도 느끼게 된다. 우리도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오면 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 평소 이렇게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일까? 허허 헛웃음만 나온다. 대구신문에 칼럼을 쓸 때 같았으면 이 주제로 소리를 높여봤겠지만, 지금은 힘 없는 백성이라 속으로 혼자 걱정만 했다. 나라를 잃어도 우리말이 살아남으면 우리 얼을 잃지 않는 것인데….
시민들이 공모한 정원 작품도 전시해 두었다. 금상 정원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설명을 읽어보았다.
<사랑- 박후남/
숲속에서는 오래된 고목(나무가-삭제 해야 함)이 넘어지고, 부러진 틈에 꽃이 피고, 넝쿨과 이끼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또 하나의 정원이 된다. 이곳에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2023 대구정원박람회 시민정원 (금상)-
설명대로 부러진 나무. 썩어가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뒹구는 모습으로 놓아두었다. 발상이 좋고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무르녹아 있어 좋고, 순우리말 설명이 고맙다.
옆에는 <산 그림자>라는 작품이 놓여 있다. -호미 소리(김경애, 배은정, 박미나) 이름이 쓰여 있고 설명이 쓰여 있다.
<우리의 조상은 집의 문과 창문을 활용하여 쉼 없이 변하는 풍경화를 집안 곳곳에 걸어두고 즐겼다. 다양한 자원과 생명을 품고 있는 국립공원 팔공산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운무의 분위기를 산 그림자로 표현했다.
-2023 대구정원박람회 시민정원 (금상)
녹쓱 철판을 산 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흙산 모습에 군데군데 나뭇가지를 세워두었다. 설치보다 설명에 마음이 끌렸다. 문과 창문으로 변하는 풍경화를 걸어두고 즐겼다는 표현과 운무의 분위기를 산 그림자로 표현한 발상이, 빼어난 자연시 한 편을 읽는 느낌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슴을 벌름거리며 자연을 마시고 나니 배가 고팠다. 남편은 핫도그 하나씩 사먹잔다. 남편은 핫도그(4000원) 한 개, 나는 번데기(3000원) 한 컵 사 먹고 화원유원지에 점심을 먹으로 갔다.
‘화원 유원지 가면 화원 동산 개장했는데 둘러보자고.“
남편 말에
“글쎄요. 아직 개장 안 했을걸.”
했더니 자기는 벌써 했을 거란다. 들어서며 보니 화원 동산 올라가는 길목에 바리게이트가 처져있다.
“저것 보라고 아직 개장 안 했죠?”
해도 안내소에 가서 언제 개장하는지 물어보겠단다. 갔다 오더니 얼마 전에 3일 개장했다가 다시 문을 닫았단다. 개장 못 할 사정연이 있겠지. 쇠고기 국밥(6500원)을 시켜 먹으며 아들한테 금호 꽃섬에서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 아들 추천 덕에 구경 잘했다고. 아들도 기분 좋게 문자를 보내왔다.
“ㅎㅎㅎ 구경 잘하셨네요.”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