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국민은행 본점 6층 복권사업팀.
월요일 아침에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불안한 기색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돈벼락을 맞은 로또복권 1등 당첨자다.
1등 당첨자가 오면 바로 복권사업부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있는 세 평 남짓한 밀실로 안내된다. 탁자 하나에 소파 4개뿐인 그곳이 매주 로또복권을 사는 600여만 명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로또복권 구매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복권사업팀 구경철 과장이 기다리고 있다. 具과장은 지금까지 460여 명의 1등 당첨자를 모두 만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눈 유일한 사람이다.
『다들 당첨되는 순간부터 혹시 복권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집에 불이 나지 않을까, 혹시 도둑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한잠도 못 잔다고 합니다. 올 때도 강도당하지 않을까, 교통사고당하지 않을까, 별의별 걱정을 다 한답니다』
복권이 당첨되는 그 순간, 기쁨이 아니라 「불안과 초조」가 밀려온다는 얘기다. 1등과 2등은 반드시 직접 복권사업팀에 와서 상금을 수령해 가야 한다.
1등 당첨자들은 비슷한 시각에 오더라도 절대 마주치지 않게 한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데다 국민은행도 당첨자 보호차원에서 노출시키지 않는다.
1등 당첨자들이 자리에 앉으면 具慶喆 과장은 우선 복권을 검사한다.
대부분 복권을 지갑에서 꺼내지만 호일에 싸서 갖고 오는 사람, 양말에 끼워서 오는 사람, 옷에다 주머니를 만들어 복권을 넣고 기워서 오는 사람도 있다.
『초창기에는 착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로또 티켓 「한 게임」에서 6개의 숫자가 다 맞아야 되는 건데 5게임 중에 6개가 맞으면 되는 줄 알고 오시는 거죠.
초창기에 충청도에서 노부부가 오셨는데 5등이라고 하자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비틀거리더군요. 괜히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번호가 맞으면 신분증과 통장을 확인한다. 국민은행 통장이 없으면 통장을 만들어서 입금해 준다.
10억원대 당첨자는 세금을 떼면 7억~8억원 정도의 당첨금을 받는다. 具 과장은 요즘 1등 당첨금을 받고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7억~8억원이면 얼마나 큰돈입니까. 굉장히 기분 좋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봐요. 예전과 비교하면서 「왜 이렇게 상금이 적냐, 세금을 왜 이리 많이 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지급하면서 具과장은 당첨자 보호 차원에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첫째, 당첨 사실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라. 가족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켜라. 둘째, 갑자기 집을 사거나 차를 바꾸지 말라. 외식을 자주 하거나 물건을 많이 사는 등 씀씀이가 헤프다는 느낌을 주면 모두들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짐작한다.>
1등 당첨자가 밀실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이다. 1등 당첨자들은 당첨금이 입금된 통장을 받아 들면 그제야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1등 당첨자들은 절대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빠르게 사무실을 나가 버린다.
상금 받으러 올 때 1등 당첨자 460여 명 중 딱 한 명이 박카스 한 박스를 사왔다고 한다.
상금을 받으러 올 때 배우자와 오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