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대전을 울리는 담담한 음성이 있었다.
일체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음성. 거기에는 한 가닥 살기가 스며 있었다. 뒤이어
[크아아! 컥!]
처절한 비명성이 대전을 가득 울리며 연이어 터져 나왔다. 백사혼을 비롯
한 백사지대의 수십여 명 고수들은 잠시 후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대전의 바닥을 적신 피. 그 위로 가슴이 뻥 뚫린 채 널브러져 있는 수십구의 시신. 단엽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은 북궁세가의 인물들...한데 저들이 왜?)
그의 시선은 전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사혼의 갈라진 시신이 있는 자리 앞에 고요히 서 있는 한 사람. 그는 일신에 허름한 검은 유삼을 걸친 청년이었다. 나이는 이십이 삼세 가량.
눈빛은 검은 늪과도 같아 도저히 감정표현을 느낄 수가 없다. 바로 북궁세가의 부가주인 북궁천이었다. 그리고 그에 의해 백사혼은 미처 반항도 제대로 못해본 채 죽음을 당한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만인을 압도하는 기도가 풍겨진다. 팔이 하나 없고 이마에 검은띠를 두른 것으로 보아 북궁세가의 인물임이 분명한데...)
단엽은 문득 짐작이 가는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북궁세가 사상 최고의 기재라는 북궁천이다. 저런 기도를 풍겨낼 수 있는 인물은 무림을 통틀어서 몇 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저 인물이 바로 북궁세가의 부가주임을 말하는 것이다.)
단엽은 북궁천을 보며 거듭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이토록 뛰어난 청년을 본적이 없었다. 물론, 백사혼도 뛰어났지만 이 청년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군협천주 철군무와 천엽성승에게도 손색이 없는 위엄과 기도를 뿌려내고 있었으니 이를 일컬어 일백년에 한명 태어날까 말까한 기재라 하던가.
한편 그의 뒤에는 검은 유삼에 이마에 검은 띠를 두른 외팔이의 노인들이 공손히 시립해 있었다. 정확히 열 명. 그들 역시 북궁세가의 인물임이 분명했다.
이때 무심코 단엽과 북궁천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의 눈빛이 미미한 흔들림을 보였다. 서로에게 영웅의 기도를 느꼈음인가. 말로써 영웅이라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것. 두 사람은 처음대하지만 이 순간적인 만남에서 어떤 숙명적인 운명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으니...
비록 희미하다 하나 그것은 두 사람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상으로 자리 잡는다.
어쨌든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 문득, 북궁천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러나 단엽이 미처 대답을 하기 전 그는 다시 물었다.
[서궁세가의 인물인가?]
(서궁세가? 어찌 이 인물은 일천년 전부터 북궁세가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초지자의 가문인 서궁세가를 들먹인단 말인가?)
단엽은 북궁천의 물음에 한 가닥 알 수 없는 의혹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의혹을 추스리고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찌 나를 서궁세가의 인물이라 하는가?]
[그 말은 아니라는 말이로군.]
북궁천은 담담히 말했다.
[본좌가 그대를 서궁세가의 인물이라 한 것은... 그대 정도의 나이에 그만한 기도를 뿌릴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서궁세가에서만 찾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북궁세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가?]
순간 북궁천의 얼굴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났다.
[북궁세가를 아는 것을 보니 그대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군. 대체 그대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그대는 어찌 자신은 말하지 않은 채 나만을 알려 하는가?]
[이미 그대는 본인을 알고 있지 않은가?]
북궁천의 표정은 시종일관 담담했다. 단엽은 그런 그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 내심 찬사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는 그대가 북궁세가의 부가주인 남궁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나를 말해야겠군. 나는 단엽이라 하오. 물론 서궁세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이 마황루와는 더욱 관련이 없소.]
단엽의 말투도 부드럽게 변했다. 그러자 북궁천 역시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받았다.
[당신이 이 마황루를 찾은 목적은 무엇이오? 이 물음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오.]
[대답하겠소. 본인은 아마도 당신과 비슷한 이유로 인해 이곳을 찾았을 것이오.]
단엽은 뭐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실로 교묘했다. 어찌 들으면 단엽은 북궁천 일행이 이곳 마황루를 찾은 진정한 목적을 알고 있다는 듯 했으니...
(대체 저 자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북궁천은 단엽의 신비한 태도에 일말의 의혹을 금치 못했다.
북궁세가, 이 가문은 일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천마교주 적용화를 도와 천마교의 부활을 노리는 초지자의 가문이다. 그런 만큼 이 가문은 천마대회합을 위해 천마성을 찾아든 무림칠대뇌옥의 인물을 비롯한 거의 십만에 달하는 마도인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 면전의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그 신분을 파악할 수가 없었으니 북궁천이 단엽에 대해 신비함과 의혹을 동시에 느낌은 당연했다. 상대가 보통 사람이라면 신경도 안 쓰일 일이지만 적어도 북궁천이 보기에도 상대의 모든 것이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궁천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마황루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소?]
단엽은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는 듯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하다가 말
했다.
[생각해보니 별로 아는 것은 없소. 다만 북궁세가의 칠대가신을 죽인 여인이 이곳에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오.]
북궁천의 눈빛이 다시금 흔들렸다.
[생각보다 그대는 많은 것을 알고 있구료. 그리고 또 아는 것은 없소?]
[없소이다.]
단엽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북궁천은 당연히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는 듯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인다.
[당신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요? 그 여인이요, 아니면 천마교주요,
그것도 아니면 서궁세가의 인물이오?]
단엽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실은 모두를 만나고 싶소. 그 신비의 여인과 천마교주와 서궁세가의 인물까지도. 그리고 또 있소이다. 북궁세가의 가주를 또한 만나고 싶소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로군.]
[핫하하... 나의 욕심은 단지 그 정도는 아니외다. 진정한 나의 욕심은 천마교의 부활을 막는데 있소.]
북궁천은 단엽의 자신만만한 말에 잠시 무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
문득 단엽이 북궁천의 입술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말했다.
[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소?]
[무엇이오.]
북궁천은 담담히 단엽을 바라보았다.
[이 단엽이 알기로는 현 천마교주의 거처는 천마루라는 곳이며 북궁세가의 인물이 천마교주를 도와 천마교의 부활을 노린다고 했는데... 백사혼의 말에 의하면 이곳 또한 천마교주의 거처라 했소. 어찌된 일이오? 혹시 천마교주가 둘인 것은 아니오.]
북궁천은 빙긋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것을 대답할 수가 없소.]
[어째서이오?]
[당신은 당신 입으로 천마교의 부활을 막는 인물이라고 했소. 반대로 본인은 천마교의 부활을 원하고 있소. 다시 말해 우리는 적이지 결코 친구는 될 수가 없소. 적에게 천마교의 비밀을 고할 하등의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니오?]
[그런가?]
단엽은 말이야 맞는 말이라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 직접 천마교주를 만나 그 사실을 확인해야겠군.]
[그것은 당신 마음이오.]
북궁천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간단히 말한 후 몸을 돌렸다.
[천마교주에 용무가 있다면 나를 따르시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휘적휘적 대전을 빠져나갔다. 단엽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백사혼의 등으로 향했다.
(백사혼이 말한 천마교주와 북궁세가가 섬기고 있다는 천마교주는 결코 동일인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천마교주는 두 명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사이에는 무서운 알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단엽의 머리는 섬전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북궁천이 여기에 온 것은 바로 그 알력의 요인이 되고 있음이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저 자는 나를 끌어 들여 어떤 변수로 삼고자 함이고... 아뭇든 무서운 인물이다. 백사혼을 간단히 죽인 무공과 사태를 판단하는 능력... 과연 북궁세가가 사상 가장 뛰어난 두 명의 기재 중 한명답다.)
단엽은 어느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어차피 천마교주를 만나기로 작
정한 이상 저자를 따른다 해서 해가 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대전.
북궁천과 단엽 일행이 이 대전에 들어서자 다시 문제는 발생하고 있었다. 스스스... 정확히 십팔인이 그들의 앞을 막어선 것이다.
결코 많지가 않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사기와 마기는 십만마인의 몸에서 풍겨지는 것처럼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일신에 걸친 옷음 검은 장포. 파도처럼 출렁이는 백발은 발 끝에 채이고 있었다.
나이는 어림잡아도 모두 백여 세가 넘어 보이는데...선두의 인물 그만은 백발을 지녔으되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완숙한 기품의 소유자. 손에 들고 잔잔히 흔들어 대는 검은 섭선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단엽은 그들을 바라보며 다소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으음...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가히 살인적이다. 이런 기도는 적사육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인데... 과연 누구인가?)
단엽의 시선은 특히 선두의 중년인에게로 던져졌다.
(특히... 저자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도는 충격적이다. 소수천마와 빙후에
비해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하지는 않다.)
단엽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대가 만겁뢰의 사뇌인가?]
북궁천의 음성이 단엽의 상념을 깨웠다.
(사뇌...만겁뢰의 사뇌가 바로 이 인물이었던가?)
단엽은 새삼스런 눈빛으로 사뇌를 주시했다. 검은 장포의 중년인.
그는 안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북궁천을 향해 가볍게 포권해 보였다.
[노신은 교주의 명을 받들고 부가주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고맙군.]
북궁천의 음성은 싸늘했다. 이어 그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대단하군. 북궁세가에 앞서 무림칠대뇌옥 가운데 만겁뢰와 백사지대, 그리고 만빙담과 고해동 무려 사뇌옥의 인물들을 아래에 두다니...]
다분히 조소가 담긴 중얼거림이었다.
[안내하라.]
그는 차갑게 말했다. 사뇌의 시선이 의혹을 담고 단엽에게로 향했다.
(교주가 이 땅의 최고 미남자인줄만 알았더니 이자의 얼굴은 더욱 뛰어나지 않은가.)
그는 내심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이분은 뉘신지?]
단엽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당신네 천마교주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외다. 만나기 전에 자격을 시험하고 싶다면 시험해도 좋소. 무공이든 다른 무엇이든.]
실로 자신만만한 태도. 사뇌의 표정이 가볍게 변했다.
(건방진 놈!)
그가 비록 지금은 한사람에게 심신양면으로 굴복해 하인의 신분으로 존재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천하제패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다.
사도 제일뇌, 이렇게 불리웠던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 헌데,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 같은 어린 아이가 자신 있게 자신을 시험하라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사뇌를 별 볼일 없이 본다는 뜻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라면 당장 분기탱천하여 날뛸 법도 하지만 그는 역시 사뇌였다.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감춘 채 단엽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인다.
[당연히 자격을 인정해야겠지요. 단지 부가주와 동행한 사실 한 가지만으
로도...]
[핫하하... 그렇게 봐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외다.]
단엽은 낭랑하게 웃었다. 고개마저 슬쩍 숙여 보였다. 적당히 자신을 과신하여 내보이고, 또한 적당히 상대를 높일 줄도 아는 단엽의 호방한 태도. 그 모습을 보며 북궁천은 내심 다시 감탄했다.
(대단하다. 보면 볼수록... 만약 저 자가 우리 북궁세가의 적이 될 경우... 어쩌면 저자는 나를 비롯한 우리 북궁세가 전체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북궁천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이 확신은 북궁천에게 알게 모르게 거대한 무게로써 작용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심의 생각일 뿐이었다.
겉으로의 그는 지극히 무감정하게 보였으며 담담했다.
[따르시지요.]
사뇌는 잠시 북궁천과 단엽을 번갈아 본 후 등을 돌려 대전을 빠져 나갔다.
단엽과 북궁천은 서로를 마주 본 후 말없이 사뇌의 뒤를 따랐다. 단엽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채 대전을 살피는 여유를 보였다. 하나 그는 내심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북궁천의 말대로 이곳 마황루가 무림칠대뇌옥 가운데 사뇌옥을 끌어 들였다면, 나머지 지옥굉, 독풍림은 북궁세가에서 끌어 들였겠군. 물론 적사도 역시 머지않아 이 두 세력 가운데 한 세력에 흡수가 될 것이고... 아무튼 놀라운 일이 아닌가?
적사도를 비롯한 무림칠대뇌옥의 수뇌들은 천마교주의 권좌를 넘볼 만큼 대단한 야망을 품은 일세의 대마인들이거늘 그들을 쉽게 흡수한 이 두 세력의 능력. 그 힘은 나를 비롯해 아버님과 군협천주 철군무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가공한 것이리라.)
아직은 이 두 세력의 거대한 잠재력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단엽의 가슴에 한 가닥 전율의 물결이 일고 있음은 이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쳤을 경우엔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반대로 이들이 자신들의 야망에 취해 서로 반목한다면 크게는 천마교의 부활을 막을 수가 있고, 작게는 천마교를 양분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백사지대인들의 죽음이 바로 그것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한 결론은 단엽의 내심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로군. 이 마황루라는 검은 대리석 건물 안에 거대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니...)
단엽은 연못을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황루의 중앙, 거기에는 놀랍게도 방원 십여장 남짓한 연못이 있었던 것이다.
사뇌는 북궁천과 단엽을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교주께서는 이 연못의 물속 백장 아래에 위치한 태상전에 계십니다.]
이어 그는 연못을 향해 가볍게 일지를 퉁겼다.
순간, 쿠르르르...
연못의 물은 돌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고 연못의 물은 점차 사라져 갔다. 도대체 어디로 물이 빠져나가는 것인지 순식간에 연못의 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대신 거대한 지하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에 잠긴 지하통로, 거기에는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이 있었다.
[태상전은 이 통로를 통해서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조심해서 나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사뇌는 천천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북궁천은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놀라운 기관장치로군. 내 마황루를 비롯한 천마성의 모든 건물을 보수공사 하였음에도 이곳에 이러한 기관장치가 있었음을 몰랐다니...]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단엽을 바라보았다.
[이런 정도의 기관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서궁세가의 인물들 뿐이오. 본인이 이기관장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이것의 설치가 불과 수일 이내에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 놀랍지 않소?]
[놀랍소.]
단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라면 이런 정도의 정교한 기관장치를 설치하는데 족히 백년이상의 세월은 걸릴 것이다. 설사 기관장치의 대가라 하더라도 수년의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한데, 그 어느 누가 있어 이런 거대하고 정교한 기관장치를 불과 수일에 설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서궁세가... 대체 그들의 진정한 능력의 한계는 어디란 말인가?)
단엽은 한 가닥 전율을 서궁세가에서 느낀다.
서궁세가에 대해 그가 처음 들은 것은 바로 북궁세가의 십대가신 중 일인인 북궁현으로부터였다. 일천년 이전부터 북궁세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어 오던 초지자의 가문, 북궁현의 말에 의하면 북궁세가는 무에 심취하여 새로운 무공의 창안에 일천년의 세월을 소비하였고 서궁세가는 학문에 심취하여 대자연과 동화된 상태에서 일천년의 세월을 보냈다 하였다.
헌데, 북궁세가의 무림활동에 이어 서궁세가의 무림개입이 보다 명백해진 것은 이곳 마황루에 들면서 비롯되었다.
(북궁천... 북궁세가의 최고기재라는 그는 이곳에서 두 번씩이나 서궁세가에 대해 언급했다.)
단엽은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짐작이 있었다.
(북궁천은 지나치리만큼 서궁세가에 대해 의식을 하고 있다. 그것은 서궁세가가 바로 이 마황루에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제 삼의 음모자와 서궁세가가 관련이 있음이 분명한데...)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가는 단엽의 발길이 무겁다.
(복잡하다. 무엇 하나 확실한 단안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단엽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계속하여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두렵지 않소?]
북궁천이 단엽을 바라보며 넌즈시 물었다. 단엽이 얼굴가득 의아한 빛을 띄우며 물었다.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이 기관장치들 말이오. 만약 상대가 이 기관장치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죽이려 할 경우 당신은 어떤 대응책으로 이 기관장치들을 상대할 것이오?]
단엽은 침음했다.
(어떤 대응책이라... 기관장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게 대응책이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북궁천을 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무 대응책도 없소. 그들이 기관장치를 이용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어리석은 바람이오.]
[그렇다면 그들이 기관장치를 이용하여 우리를 죽이려 들것이란 말이오?]
[물론이오. 그들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면 이런 기관장치 따위를 애써 만들 하등의 이유는 없는 것이오.]
[딴은 그렇소.]
단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천은 그런 단엽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어떻소. 이제는 겁이 나지 않소?]
[하하하... 전혀 그렇지 않소. 이미 삼 년 전에 죽음을 향해 던져진 몸. 어찌 보면 삼 년 전에 이 몸은 죽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오. 그런 내가 새삼 죽음 따위를 두려워 할리가 있겠소?]
[삼 년 전에 죽은 목숨이라... 점점 신비를 가장하는군...]
북궁천은 단엽을 보며 흥미어린 눈빛을 던졌다. 단엽은 정색을 했다.
[솔직히 말해 본인은 당신네 북궁세가와 서궁세가에 대해 더욱 많은 신비를 느끼고 있소. 일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초지자의 가문들이 무슨 이유로 현세에 나타난 것인지. 그리고 무슨 일로 천마교의 부활을 돕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신비롭소.]
[당신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나 기실은 우리 북궁세가보다는 서궁세가에 대해 더욱 신비롭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나의 짐작이 맞는다면 당신은 이미 우리 북궁세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소. 반면에 서궁세가에 대해서는 우리 북궁세가를 아는 만큼이나 모르고 있소.]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렇소.]
북궁천은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엽은 부인도 시인도 않고 싱긋 웃었다.
(역시 예리한 안목을 지니고 있군. 그러나 내가 북궁세가에 대해 아는 것은 가주가 북궁추림이라는 여인. 그리고 부가주가 당신 북궁천이라는 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목적은 역시 모르고 있지. 그대들이 무슨 이유로 천마교주를 도와 천마교의 부활을 노리는 것인지는...)
단엽은 북궁현의 말을 상기했다.
(북궁현의 말에 의하면..그들 북궁세가는 단지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천마교의 부활을 노린다고 했지만 아직은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지.)
이때 북궁천의 음성이 다시 단엽의 상념을 일깨웠다.
[당신이 진정으로 천마교의 부활을 막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서궁세가를 파악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오. 서궁세가야 말로 이백년 세월 이전부터 천마교의 부활을 노려 온 장본인들이며 그들의 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엄청나기 때문이오.]
(이백년 전부터?)
[이백년 전부터 천마교의 부활을 노린 인물들이라면? 바로 그들이 군협천의 모든 힘을 이용한 음모의 주모자들... 그런 것이오?]
단엽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놀라고 있나를 대변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북궁천은 신비롭게 웃었다.
[그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겠소. 당신은 천마교의 부활을 노리는 우리 북궁세가와는 길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오. 단지 내가 서궁세가에 대한 경각심을 당신에게 준 것은 당신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친구가 아닌 적이오. 때에 따라서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그렇지 않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소이다.]
단엽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순간 그도 북궁천에게 일말의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그들 일행은 어느덧 계단의 끝에 이르고 있었다. 급경사를 이루며 끝없이 아래로 펼쳐진 계단은 한 거대한 검은 대리석 통로에서 그 끝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대리석 통로는 인공으로 형성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인공의 통로는 또 어디론가 끝없이 통해 있었다. 사뇌는 말없이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 뒤를 단엽과북궁천 일행은 말없이 따르고 이어, 통로를 따라 얼마쯤 가다보니 굳게 닫힌 하나의 철문이 나타났다.
사뇌는 철문 앞에 우뚝 멈추었다. 그러자 이때 철문 안으로부터 지극히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인가?]
[만겁뇌주 사뇌다.]
[동행한 인물들은..?]
[북궁세가의 부가주와 그의 일행 십인, 그리고 만겁뇌의 십칠인이다.]
[또 한사람은 누군가?]
[본인은 단엽이오. 당신네들 교주를 만나기 위해 왔소.]
단엽이 직접 대답했다. 이어, 북궁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북궁천의 손님이기도 하오.]
단엽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잠시 안의 인물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안
의 인물은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은 마황성의 입구를 수신하는 만빙담주 백빙이라 합니다.]
단엽은 관심 있는 눈길로 철문을 주시했다. 백사지대에 이어 만겁뇌, 그리고 만빙담의 인물이 차례로 이 마황루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북궁천의 말대로 물미칠대뇌옥 가운데 만겁뇌와 백사지대, 만빙담, 고행동 등이 마황루의 아래에 든 것이 확실한 듯 싶었다.
(한데 마황성이라니... 천마성 내에 마황성이 존재하고 있었던가?)
단엽은 크게 의혹을 느낀다. 만빙담주 백빙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 마황성을 출입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천마교주의 허락이 떨어진 인물에 한한 것. 본녀는 그 인물만을 출입시킬 뿐입니다. 현재 교주께서 기다리시는 인물은 부가주 뿐이니 부가주만 이곳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만겁뇌주와 함께 그곳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 말은 북궁천에게 하는 말이었다. 북궁천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화를 일으켰다.
[대단한 권위로군. 그가 이런 식으로 천마교주의 위세를 보이려 들고 있다니...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북궁세가는 우리가 모시고 있는 천마교주만을 교주로 인정할 뿐이다. 만빙담주 백빙, 그대가 말한 천마교주는 오직 그대의 교주인 것.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내 앞에서 그대들 교주를 언급 할때는 천마란 말은 빼라. 그렇지 않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든 내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북궁천의 음성에는 항거할 수 없는 위엄이 흐르고 있었다.
사뇌의 두 눈에 은은히 살기가 떠올랐으나, 그 빛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고 그는 담담히 철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단엽은 그런 그를 보며 심기가 깊은 인물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때 북궁천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든 이곳은 그대들의 영역이니 그대들의 말을 따라야 하겠지만... 한 사람이 나와 동행해야 한다. 단엽이란 바로 이 사람이다. 어찌 하겠는가?
그대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면 교주에게 직접 이 사실을 전하라.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릴 것이니...]
그러자 사뇌가 입을 열었다.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 만빙담주, 어서 문을 열어라.]
[그대가?]
[그렇다.]
[후후... 그대는 만겁뇌주라는 보잘 없는 존재를 너무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별로 좋지가 않아.]
[건방진 것.]
사뇌의 안색이 대변했다. 한때 천마교주의 자리를 넘볼 정도로 야심만만한 사뇌이다. 만빙담의 존재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그인데 지금 이런 모욕은 사뇌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후후...적어도 이 마황성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교주를 통해서만 수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독단적인 결정과 선택은 있을 수가 없어.]
만빙담주 백빙의 음성은 싸늘하게 이어졌다.
[사뇌, 당신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이를 거역할 시는 백사지대처럼 버려지게 된다. 백사지대의 백사혼 역시 교주의 허락 없이 저 단엽이란 사람을 교주에게 인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기에 교주는 그를 구할 수 있었음에도 버린 것이다. 교주에게는 인정이 없다. 그런 그 분에게서 관용을 기대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래도 그대가 책임을 지겠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그대는 차후 교주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사뇌는 말이 없었다. 그는 만빙담주 백빙의 말이 단지 협박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의 이 결정에 의해 교주의 분노를 사게 된다면 그대로 만겁뇌는 끝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교주가 원하는 것은 북궁세가의 제거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 분은 지금 북궁천이 마황성에 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 분에게 있어 북궁천은 한 하늘에 설 수 없는 존재.)
그의 시선이 단엽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이 단엽이란 인물 역시 북궁천의 아래가 아니며 제거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교주께서 북궁천을 원한 이상... 이 인물 역시 원하고 계실 것이다. 그 분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다면...)
그는 결정을 내렸다. 결코 자신의 결정이 교주에게 해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흐흐... 어차피 천마교주에 대한 나의 야망이 꺾인 이상 나는 누구보다도 교주에게 신임을 얻어야 한다. 지금은 저 계집이 교주에게 노부 이상의 신임을 받고 저 계집은 교주를 한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지만... 그래서 이 사뇌가 저 계집에게 큰소리를 칠 수 없는 입장이기는 하나... 곧 교주는 이 사뇌의 진정한 능력을 알게 되리라. 아니 알게 해야 한다.)
그는 생각을 굳히고 간단하게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서 문을 열어라.]
[어리석은 인간이로군.]
만빙담주 백빙의 음성이 다분히 조소의 빛을 담고 흘러나왔다. 바로 그 순간,
쿠르르...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대략 이십 여세 정도의 여인이었다. 겨울 서리처럼 차가운 기품을 지닌 여인. 그녀의 살결은 얼음처럼 투명했으며 그 아래의 얼굴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어쨌든 이 여인이 철문 안에 존재함으로 인해서 주위는 온통 만년빙동과 같은 무섭도록 싸늘한 한기가 뒤덮여 있는데 이 여인이 바로 만빙담주 백빙이었다.
이때 그녀는 철문 옆에 우뚝 서 있었다. 후리후리한 키가 인상적이었다.
(만빙담주가 어린 소녀였던가?)
단엽은 의아한 눈빛으로 소녀를 주시했다.
(무림칠대뇌옥의 인물들은 대부분 전대의 마인들이다. 헌데 백사혼을 비롯해 이 소녀 또한 이십대가 아닌가?)
단엽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백사혼과 이 빙백이라는 인물이 바로 백사지대와 만빙담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이때 그녀의 시선이 느릿하게 북궁천에게로 향한다. 무심하고 무섭게 싸늘한 눈빛이었다. 허나 북궁천의 아래 위를 쓸어보고 있는 그 눈빛은 더 이상 무심할 수가 없었다.
흔들린다. 그녀 자신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떨림.
(대단한 용모에 대단한 기도로군. 교주가 왜 이자를 죽이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만하군.)
그녀의 시선은 한동안 북궁천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이어, 그녀의 시선은 다시 느릿하게 북궁천의 뒤쪽에 있는 단엽에게로 향했다. 순간,
[아!]
어쩔 수 없음인가. 그녀의 피먹은 동백꽃과도 같은 진홍빛 입술이 열리며 가는 탄성이 흐른 것은. 그녀의 망막을 크게 흔들며 들어선 단엽의 모습. 치렁치렁한 흑발은 허리 아래까지 구름처럼 흘러내리고 헐렁한 마의에 햇살처럼 찬란히 드러난 단엽의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본래 요기를 타고 난 단엽. 비록 그 요기가 겉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기이한 마력을 여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라도 단엽을 한번 보면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만빙담주 빙백이라는 여인의 마음은 얼음덩어리와 같은 무심이었으나 오늘, 그녀는 생애의 두 번째로 자신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천마교주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천마교주에게서 느꼈던 그런 사랑의 감정보다도 더한 충격을 단엽에게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저 단엽의 얼굴은 마치 그녀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있는듯했다.
(내가...나의 마음이 이리도 흔들리다니... 천하의 사내들을 나의 치마 아래 두려했던 내가... 이 빙백이 아니었던가? 한데 나는 벌써 두 번씩이나 일개 여인으로 전락하기를 원하고 있으니...)
그녀의 시선은 한동안 단엽의 얼굴에 고정되어져 있었다.
마치 혼이 빠져버린 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곧 그녀의 표정은 예의 그 무심함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사뇌를 주시하며 말했다.
[당신도 교주에게 볼 일이 있는 것인가?]
사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볼일이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북궁세가의 나머지 인물들과 함께 철문 저쪽에서 기다려야 하겠군.]
[물론 그래야겠지. 나의 임무는 여기에서 끝이 났으니...]
사뇌는 무감정하게 대답한 후 천천히 철문을 빠져나갔다. 그는 내심 기이한 웃음을 흘렸다.
(백빙...노부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너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이제부터 너는 사랑이란 중병에 걸려 평생을 고뇌하게 될 것이다.)
그는 철문 앞에서 닫혀지는 철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는 앞으로 이 단엽이라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의 본능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후후... 그것은 바로 너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
그것으로써 천마교 제이인자 자리는 나의 차지가 될 것이다.)
천마교, 이 거대한 사마의 집단은 알게 모르게 무서운 알력 속에 휩싸여 있었다.
천마교주라는 인물이 천마루와 마황루라는 두 곳에 있는 것도 그렇고 천마성에 이어 마황성의 등장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으며 또한 무림칠대뇌옥의 인물들이 두 세력으로 갈라진 것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뿐인가 갈라져 있는 무림칠대뇌옥의 인물들은 그들대로 또한 알력에 휩싸여 있었으니 어쨌거나 천마교의 부활은 결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듯 싶었다.
병. 단엽의 병은 지금 또 발작하고 있었다.
[낭자처럼 뛰어난 미모를 내 일찌기 본 적이 없소이다. 한데 그 얼굴에 표정이 전혀 없으니 진정 애석한 일이오. 그러나 낭자가 만약 나와 하루 동안만 함께 있는다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어나게 될 것이오. 어떻소? 언제 우리 시간을 함께 하지 않겠소?]
[닥치세요.]
[핫하하... 알았소, 알았어. 뭐 그리 화를 낼 것 까지는 없지 않소.]
단엽은 만빙담주 백빙을 주시하며 짓궂게 웃었다. 그러나 그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낭자의 입은 작은데 어찌 목소리는 그리도 크오. 자고로 여인네란 목소리가 작아야 지아비에게 사랑받는 것이오.]
단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은근슬쩍 그의 손은 만빙담주 백빙의 엉덩이를 쓰다듬기도 하는 것이었다.
[치우지 못해요!]
백빙은 기겁을 했다. 그러나 그 음성은 좀 전과는 달리 조그마한 것이었다.
[핫하하...그래, 자고로 여인네란 목소리가 그렇게 작아야 하는 것이오.]
[흥...]
백빙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냉소를 쳤다.
(뭐 이런 안 되먹은 인간이 다 있어...)
그녀는 하오문의 잡배와 같이 너저분하게 행동하는 단엽을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게 여심이라 했던가. 그녀는 단엽의 이런 행동이 결코 싫지가 않았으니...
[엉덩이도 풍성하니 애를 쑥쑥 잘 빼내겠군. 낭자, 애를 낳고 싶지 않소? 아니 애를 어떻게 배는지 알고나 있소?]
[뭐...뭐에요?]
[핫하하... 애를 낳고 싶다면 내게 말하시오. 언제라도 사양하지 않고..]
[닥쳐요!]
빙백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이곳 마황성에 들어온 이상 당신은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런 가련한 신
세로 그따위 지저분한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니... 한심한 인간이로군.]
그녀는 단엽을 노려보며 조소를 날렸다. 그러자 단엽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이오? 내가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다는 말...]
[흥, 죽음은 두려운 모양이로군요.]
[정말 나는 이곳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오?]
단엽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그 얼굴은 처량하기까지 했다. 그는 시무룩하니 중얼거렸다.
[그...그렇다면 낭자는 다시 만날 수 없겠구료.]
백빙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표정이 점점 누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단엽의 슬픈 표정을 보자 그녀의 코 끝이 찡하게 아려오는 것이었다.
단엽은 힐끔 그런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며 더욱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아...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낭자를 한번이라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