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 다니는 모습은 뱀이지만, 같은 뱀이라도 그 조상은 제각각이다. 맹독을 지닌 독사들은 그 조상이 파충류이고, 독 없는 밀뱀과 화사는 그 조상이 바다에서 올라온 물고기다. 알을 낳는 구렁이는 그 조상이 지렁이라 구렁이를 잡아 탕약을 끓이면 흙냄새가 진동한다. 한의학에서도 구렁이는 오행으로 토(土)로 분류되어 비장과 위장을 다스리는 약으로 쓰였고, 독사나 살모사는 화(火)로 분류되어 폐병을 다스리는 약재로 이용되었다.
기어 다닌다고 다 같은 뱀이 아닌 것처럼, 날개가 있다고 다 같은 새도 아니다. 닭은 그 조상이 파충류라, 닭과 독사를 합방시킨 독사약닭이 폐병을 치료하는 비방으로 이용되었다. 오리는 그 조상이 물고기인데 바다의 물고기가 뭍으로 올라와 새로 진화된 사례다. 그래서 닭의 육질은 산성이지만 오리고기는 알카리성이라 오리가 성인병에 좋다고 알려진 이유다.
인간도 생긴 건 다 같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의 전생 모습은 제각각이다. 미물과 축생으로 살다가 영적 진화를 통해 인간계로 업그레드한 사람도 있고,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사람으로 환도인생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천상계에 있다가 죄를 짓고 그 벌로 인간계로 좌천되어 태어난 사람도 있으며, 다른 은하계의 별로 있다가 어떤 사명을 부여받아 지구별까지 영혼 출장을 온 사람도 있다,
자기 삶의 전생 기록은 공간의 질소에 저장되었다가 블록체인처럼 수정 불가한 신의 사슬로 엮여 RNA로 전달되고 DNA로 복제된다. RNA와 DNA의 유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뉴클레오티드는 염기의 화학적 특성을 지닌 질소(N) 원자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를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공기 중 78%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가 하드디스크(Hard Disk)요, 21% 정도 분포되어 있는 산소는 캐시메모리(Cache Memory)에 해당한다.
생명체가 살아있을 때 가벼운 기억들은 산소에 저장되었다가 생명의 스위치가 꺼진 후에는 그 기억들은 사라지지만,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심한 고통과 충격에 의한 정보는 질소에 저장되어 죽은 뒤에도 지구라는 ‘공간OS’에서 작동되는 블록체인에 의해 그 데이터들이 유전체로 전달된다.
요즘의 생명공학은 그런 유전자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단계에 와있으며, 동양에선 그 같은 전생의 비밀을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로 구성된 육십갑자의 암호로 풀어내어 전생과 내생의 명리를 추론할 수 있게 했다.
전생(前生)과 금생(今生) 그리고 내생(來生)을 이해시키기 위해 옛 선인들이 남긴 글귀가 있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今生受者是(금생수자시)
欲知來生事(욕지내생사),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만약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요.
만일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행한 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전생은 현생의 삶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미물과 축생으로 있다가 운 좋게 인간계로 태어난 사람은 금생의 삶이 전생보다는 좋기에 어떻게 하면 금생의 낙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자 현실의 욕구충족에 몰두한다. 그래서 물욕, 색욕이 넘쳐난다. 한마디로 물질세계의 형이하학적 삶이다.
그러나 천상계나 다른 별에서 온 영혼들은 금생의 삶이 전생만 못하기에 무의식적으로 늘 전생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계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 세계를 늘 생각하고, 그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자기도 모르게 한다. 형이상학적 삶이다. 종교나 철학에 심취하거나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몰입하여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치를 추구한다. 무의식적으로 전생의 영적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이런 사람들은 신과 인간계의 경계선을 들락날락 하기에 촉이 빠르고 예지력도 있다. 그중엔 신탁을 받아 신의 신부름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