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withstanding ye would not go up, but rebelled against the commandment of the LORD your God: 27.And ye murmured in your tents, and said, Because the LORD hated us, he hath brought us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o deliver us into the hand of the Amorites, to destroy us. 28.Whither shall we go up? Dread not, neither be afraid of them. 30.The LORD your God which goeth before you, he shall fight for you, according to all that he did for you in Egypt before your eyes; 31 And in the wilderness, where thou hast seen how that the LORD thy God bare thee, as a man doth bear his son, in all the way that ye went, until ye came into this place. Deuteronomy : 26-31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두려움도 들음에서 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긍정적인 메시지와 부정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선택은 숫자가 많은 것을 선택했다. 선택의 근거를 숫자에 두었다. 숫자에 의지하는 삶이다. 2명은 긍정, 10명은 부정적인 말을 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것을 그냥 가질 수는 없었고 그 땅에서 죄악으로 관영한 아모리 족속을 몰아내고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그들을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 애굽에서 그곳까지 이른 것처럼 앞으로도 먼저 가시며 장막칠 곳을 찾으시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싸움도 주님께 속한 것으로 믿고 순종하면 싸워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움직이지 않았다. 장막에만 틀어 박혀 있었고 생각을 동원했다. 동일한 fact를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모리 족속에게 붙여 자신들을 죽게 하려는 불신의 생각이 틈탄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삶을 숫자에 기초하여 살 것이 아니다. 삶은 믿음에 기초해야 한다. 숫자는 number이지만 믿음은 실체이다. 하나님께서 이땅 모로코로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 이동하듯 존재를 옮기셨다. 이곳에서 할 일은 무엇인가? 순종하는 삶이다. 거룩한 삶이다. 말씀보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 삶이다. 장막속에 틀어박혀 불평하는 삶이 아니라 움직이고 걷고 뛰며 이동하는 삶이다. 성령님은 존재를 이동하게 하신다. 그 분이 이끄시는 파도를 타고 그분이 예비하신 또 다른 존재를 만나며 삶을 나누자. 존재는 이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