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 이미자, 「달콤한 인생」(시) 우수 : 윤찬모 「돌아가는 것들에 대하여」(단편소설) 장려 : 박영순, 「(신)모범경작생」(단편소설) 한영미, 「반딧불이」(시조)
<심사를 마치고>
글을 읽고 삶을 배우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좋은 눈을 가져 글을 가려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욱 행복한 일은 글을 쓰는 것, 글쓰기를 즐기는 것입니다. 글벗문학상 공모에 제출된 스물 한 사람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주제를 담은 글들이 완성되는 순간 필자들이 누렸을 충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이미 상은 주어진 것이 아닐까 먼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 심사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제출된 글 중의 반은 끝까지 제 손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내려놓은 단편소설 김춘화의 「고백」과 이명옥의 「희망」은 우리네 징한 삶의 흔적들을 놓치지 않고 끌어 모으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플롯도 시점도 정리가 안 된 수기형식의 글이 되고 말아 안타까웠지만, ‘自他不二’의 깨달음과 삶의 무게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허무를 가슴 시리게 전해준 정옥선의 시 「어머니의 손톱」과 현상연의 시 「빈 집」 등은 수식어와 이미지의 과다한 나열이 시의 응축적 힘을 삭감시키고 있어 결국 수상작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끝까지 마음을 둘 만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박영순의 소설 「(신)모범경작생」은 ‘전통적인 교육조직시스템이 대량생산해낸 고급인력그룹’을 풍자와 냉소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고등룸펜으로 외도하는 남편이나 모 여대출신으로 공장노동자가 된 아내의 일상을 만연체 문장과 추상적 개념어의 나열을 통해 철저히 거리를 두고 그리고는 있지만, 결국 난해하게 하기 위한 의도의 과다와 어조의 통일성 결여, 풍자의 모호성 때문에 독자와 의사소통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는 이 작품이 해결할 문제로 남습니다. 한영미의 시조 「반딧불이」는 반딧불이 만들어 내는 초가을의 풍경과 한집안의 가문 잇기, 후세에 대한 염려와 희망을 병치한 깔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보여준 현대시조의 세련됨과 운율의 운치를 통해 시조장르에 대한 관심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차바퀴에서 소변, 믹서, 하수구, 시계, 컨베이어 벨트까지 모든 돌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윤찬모의 소설 「돌아가는 것들에 대하여」는 결국 인력의 분배와 소통에 초점이 가 있습니다. 실직과 구직의 사이 주인공의 혼란스런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삽입한 할머니의 자장가 가사는 작품에 안정감을 주는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돌아가는 것’에 대한 작위적인 표현과 나열, 구성의 산만함이 내내 마음에 걸려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미자의 시 여섯 작품은 모두 심상찮은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컴컴한 저녁」의 시작부분의 이미지 선택과 묘사나, 「독해」에서 보여주는 전도된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포착, 「그 산 중턱에는 케냐라는 카페가 있다」의 성냥갑을 상관물로 하여 그려내는 그리움과 망설임의 그림들 모두 매력적이었습니다. 일찌감치 선자에게 수상작으로 점찍어진 이 작품들 가운데 「달콤한 인생」을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달콤하나 달콤하지 않은 인생의 역설을, 혹은 늙음에 대한 ‘유쾌한’ 두려움을 누가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좋은 작품을 읽는 기쁨을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두들 정진해서 더욱 훌륭한 작품들도 서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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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 이미자, 「달콤한 인생」(시
달콤한 인생
이미자
엊그제 사다놓은 바나나에 말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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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시 이름 : 이미자
~~~~~~~~~~~~~~~~~~~~~~~~~~~~~~~~~~~~~~~~~~~~~~~ 우수 : 윤찬모 「돌아가는 것들에 대하여」(단편소설)
"등록증은 사무실에서 찾아가세요." "검사 결과는 합격입니까?" 웃는다. 징징거리며 돈 달라던 90년산 엑셀이 잘도 구른다. 아직은 쓸만하다. 모두들 바꾸란다. 이만 한 놈 하나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아직 쓸만한 차에서 아직 쓸만한 몸이 세월을 죽이러 집으로 간다. 헛돌던 바퀴가 아스팔트 바닥을 밀치며 마구 돌아간다. 주변 풍경들이 지나간다. 열린 앞창으로 손바닥을 뻗는다. 부드러운 바람이 만져진다. 아직도 차는 제자리에서 바퀴로 지구를 돌린다. 차창 밖에 가로수가 뒤로 달려가는 것일까, 차가 가로수 사이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지구가 바퀴에 맞물려 마구 돌아간다. 지구를 돌리던 차를 주차장에 집어넣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들어선다. 엘리베이터 권상기가 돌면서 나를 끌어 올려다 뱉어 놓고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오르락내리락 돌아간다. 아파트 현관문에 다이얼을 맞추면서 좌우로 돌린다. (63에 고정한번. 좌로27두번. 우로45세번. 좌로99네번. 모두 9로 나누어지는 수다.) 딸깍 ! 금고 철제문처럼 열린다. 양지바른 베란다에는 원통 철망 안에 다람쥐가 반긴다. 마른 밤을 긁다가 나의 귀가를 눈치 채고 부지런히 철망을 돌리면서 전진한다. 향율 조각이 따라 구른다. 옆으로 이웃한 철망 안에 다람쥐가 따라 돈다. 다람쥐는 허공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놈에게도 철망 문을 살짝 열고 마른 밤 한 조각을 살짝 넣어 준다. 신이 났다. 벽에 걸린 시계가 두시다. 분침이 힘겹게 시침을 끌어당기며 세월을 이끈다. 그 힘에 방 깊숙이 파고든 햇덩이의 흔적도 서쪽으로 점점 끌려간다. 시계 침이 도는 대로 해가 지구를 돌아간다. 자동차 바퀴가 지구와 맞물려 돌려놓은 만큼 시계 침을 따라 지구는 돌아간다. 탁자 위에 놓인 지구본을 돌린다. 해 뜨는 쪽을 향하여 지구가 열심히 돌아간다. 시간이 재빠르게 지나간다. 세월이 열심히 흘러간다. 또 다시 하늘을 스쳐간 해를 찾아서 열심히 돌린다. 재빠르게 지나갔던 시간이 돌아온다. 열심히 흘러갔던 세월이 돌아온다. 지구를 세운다. 북위 37도29분37.8초, 동경 127도29분31.93초, 해발 63미터 아파트 15층 상공에 내가 있다. 시간이 멈추었다. 북위 38-38도선에 매달린 니가타,샌프란시스코,위치터,루이스빌,리치먼드,지브롤터,알제,튀니스,아디나,레시트,메세드,지난,칭다오를 숨 가쁘게 돌아서 정지한다. 숨을 멈춘다. 머리에 산소 공급이 끊겨 뇌세포가 죽어간다. 생각이 줄어든다. 눈을 감는다.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모두들 흘러가고 있는 데 왜 내 시간만 정지하는 것일까. 허파가 고프다. 어깨에 힘이 빠진다. 숨을 참는 것은 죽음이다. “푸-후!” 멈추었던 시간이 또다시 흘러간다. 들이키는 숨 맛이 달다. 멈췄던 지구가 돌아간다. 일본을 지나 태평양 진 푸른 바다로 시간이 흘러간다. 날짜변경선을 지나 아메리카로 흘러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먼저 흘러간 시간을 허겁지겁 쫓아간다. 다람쥐가 원통 철망을 돌리고, 타이머로 조작해 놓은 통돌이 세탁기가 돌기 시작한다. 덜그럭거린다. 갈아 치울 때가 되었는데도 열심히 돌아준다. 얼른 갈아 치워야 그 놈도 한생애가 돌아갈 텐데. 돈이 돌지 않는다. 거실에 뽀얀 먼지가 깊숙하게 들어온 햇발에 거슬린다. 며칠을 내버려둔 거실 바닥은 먼지 발자국이 선명하다. 청소기를 꺼낸다.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가 시끄럽다. 돌아가는 소리가 먼지를 먹는다. 소파 밑, 텔레비젼 뒤, 화분사이, 신발장 밑, 찻상 밑,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먹어 치운다. 개운하다. 걸레통에서 뻣뻣하게 말라 있는 걸레를 들고 욕실로 들어선다. 욕실에 달린 환풍기가 감지기로 침입자를 알아차리고 열심히 돌아간다. "임마! 지금은 안피워!" 녀석은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간다. 담배와의 전쟁에 들어간 아내가 전기과 출신 아들의 머리를 빌린 발명품이다. 감지기는 사람과 동물만 감지하고 담배 열기는 알아채지 못한다. 아내는 아직도 그 것을 담배연기를 감지하는 신기한 기계로 알고 있다. 욕조에는 게으른 아들 녀석이 잔뜩 받아 놓고 대충 씻은 물이 아직 가득하다. 땟덩이가 수면 위에 머물던 욕조 벽에 금을 그었다. 물마개를 뺀다. 쭈-욱 물줄기가 선다. 소용돌이다. 배수구를 향해 돌아간다. 외로 돈다. 예전에 아버지는 항상 시계침이 돌아가는 방향을 오른쪽이라고 하셨다. 반대방향은 왼쪽이라고 한다. 예전에 시계점에서 우연히 거꾸로 가는 시계를 사다 걸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순식간에 인상이 일그러지면서 부서졌다. "세상은 돌아가는 대로 따라서 돌아야 해 ! 거꾸로 돌려고 하면 바람이 너무 거세서 못견뎌!" “아버지! 그럼 자동차 바퀴는 왼쪽으로 돌아요, 오른쪽으로 돌아요?” “왼쪽에서 보면 왼쪽, 오른쪽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돌지.” “후진할 때는 다르잖아요.” “……” “선풍기는 오른쪽으로 돌아요, 왼쪽으로 돌아요?” “오른쪽이지.” “뒤에서 보면 왼쪽으로 돌잖아요.” “……”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 중에서 오로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게 뭐죠?” “나팔꽃? 소용돌이 물? 그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오른 손 중지에 뾰족한 둘째마디가 정수리를 강타하면서 패배를 무마하려 하신다. 아버지와의 2라운드가 시작된다. 자동차를 그린다. 화물차의 운행방향을 오른쪽으로 그린다. 왼손으로 그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왼손에서부터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그려 오려면 자동차의 머리 부분부터 꼬리로 그려야 한다. 그러니 자동차 머리는 항상 오른쪽으로 그려 놓아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녀석들은 모두 자동차 머리가 왼쪽에 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약속도 안했는데. 내 그림만 머리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왜들 이렇게 그렸을까? 고민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버지의 갸우뚱거림도 잠깐, 내 그림의 방향은 하루 만에 180도 뒤집혀 졌다. 동으로 향하던 차가 서를 향해 달린다. 그림책을 뒤졌다. 동물 그림을 모두 찾아봐도 대부분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기차도 왼쪽을 향해 달린다. 모두 오른손잡이들의 그림이다. 사진에 그들조차도 왼쪽으로 달린다. 아버지는 단호했다. 간단명료했다. 이쪽을 우측이라고 하고 저쪽을 항상 좌측이라고 한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 왜 고개를 외로 꼬냐고 흘긴다. 왼손잡이인 나는 항상 저쪽이고 시계 침이 돌아가는 반대방향이다. 우리 집 식탁에선 항상 좌측이다. 회전문도 오른손잡이들을 위하여 항상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다. "지금부터 이 술잔을 밥 먹는 손 쪽으로 돌린다." "전 왼손으로 먹는데요." "짜아슥 튀긴 ..." 회식장소도 항상 이런 식의 분위기였었다. 처음 발령 받았을 때 책상을 좌편수로 바꿔달라고 했다가 핀잔 한번 받았다. "그런 것도 있었나!" 그런데 편리한 건 전화기다. 오른 쪽에 앉은 선배와 전화기를 같이 써야 하는 데 오른 쪽으로 전화기를 들어야 빠르니 다행이다. 필기구를 잡은 왼손을 보고 팀장은 외계인 보듯한다. 밥 먹는 자리는 항상 좌측이다. 그게 편하다. 처음에 팀장은 밥 먹는 것을 보다 화장실에서 만나 소변보는 모습을 보면서 외계인은 아니라고 안심했다. 욕실 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고 참았던 소변을 쏟아 붓는다. 방광에 뭉쳐있던 불만이 변기 안으로 쏟아진다. 소변은 요도에서 좌회전으로 소용돌이치면서 내려간다. 왼손잡이의 요도 속도 너트 모양의 회전선이 있는가 보다. 조물주가 만들었나? 그런데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M16 소총 총신의 4조 강선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변기의 물줄기가 좌회전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쭈-욱 빠진다. 세면대에 던져 놓은 마른 걸레에 물줄기를 뿌린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도 외로 돈다. 흥건한 걸레를 건져 비튼다. 외로 비튼다. 물 빠진 걸레로 깔끔을 떨며 구석구석 훔쳐낸다. 결벽증이다. 다람쥐는 아직도 앞만 보고 달린다. 냉장고 속에 토마토를 씻어 믹서에 넣고 돌린다. 칼날은 오른쪽으로 돈다. 곱게 부서진다. 죽 같은 토마토 살이 유리컵을 껄쭉하게 채운다. 출출한 배 속에 옮겨 채운다. 아리하다. 회사에 생산 시설이 자동화되고부터 매년 5분의 1씩 안식년제를 운영한다. 쉬란다. 왜 나부터인가. 재충전 기회를 주는 것이란다. 5년 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쉴 것이란다. 시계는 매일 두 바퀴씩이나 돌아가는데. 돌아가는 기계들이 일손을 덜었고 남는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쉬게 되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일은 당신만 찬성하면 돼! 당신 하나 때문에 못하고 있잖아!" 그들 모두는 피해가 없다. 손해도 없다. 오로지 득만 있을 뿐이다. 나 혼자만 짐을 감당하기 힘들다. 다수를 위하여 희생하란다. 회사를 위하여 영광스럽게. 그러면 회사에선 그 공로를 알아줄 것이다. 잊지도 않을 것이다. 그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래야 회사가 잘 돌아간다. 무료함이 시작될 것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사무실을 돌아가며 악수하던 손에 사장은 두툼한 봉투를 쥐어주었다. "회사를 위해 좋은 아이템을 꽉 채워오게 " 사장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찌르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채워야 할 건 배가 아니라 머리야!" (머리가 무지 무지 고프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팀장은 나의 볼록한 배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씁쓰레 웃으며 배를 쓰다듬어 본다. 기름덩어리가 만져진다. 머리를 만져본다. 그리고 흔들어 본다. 전자저울을 베고 누어본다. 계기판을 보려고 손거울을 머리위에 비춘다. 3.3킬로그램이다. 가볍다.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지게 머리를 비육시켜보자. 꽉 채워보자. (뱃살이 빠져야 머리가 찬다. 풍선의 원리다.) 머리를 채우기 위한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사장이 쥐어준 봉투로 헛바퀴 도는 자전거와 달림틀(런닝머신)을 바꿔 거실 한 쪽을 채웠다. 뛴다. 가볍다. 버튼을 눌러 경사도를 높인다. 조금씩 땀이 맺힌다. 1키로, 2키로, 3키로 숨이 가빠온다. 주변에 전봇대가 지나가고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상가가 보인다. 6키로, 7키로, 8키로… 땀에 젖은 옷이 축축하다. 귓가에 스치는 강바람이 느껴진다. 벨트는 지구처럼 잘 돌아준다. 땀을 감추고 헛바퀴 자전거에 올라앉는다. 앞은 뻥 뚫렸다. 마음껏 밟는다. 주변 풍경이 더 빨리 스친다. 또 한번 숨이 가빠온다. 눈을 감고 달린다. 호젓한 시골길이다. 논과 밭 사이에 전봇대가 지나간다. 상쾌하다. 땀은 범벅이다. 거실 바닥에 벌러덩 나가 떨어져 눕는다. 천정에 전등이 뱅뱅돈다. 입 안이 뻑뻑하다. 침이 껄쭉하다. 마른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찾는다. 없다. 수도물을 받아 벌컥 벌컥 들이킨다. 십년 넘은 아파트에 수도관은 철분으로 꽉 차있어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쇳내가 입안에 가득하다. 웩 하고 뱉어 낸다. 정수기를 놓자고 하다가 모델 싸움에 쑥 들어갔다. 누구 고집이 더 센가 겨루는 냉전중이다. 입맛 잡치는 오렌지 주스라도 벌컥 들이킨다. 또다시 달림틀 위에 오른다. 앞으로 내 딛는 발은 열심히 뒤로 밀려난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은 쉬지 않고 또 다시 앞으로 내딛는다. 거실 창밖 다람쥐가 따라 돈다. 나는 겉으로 돌고 다람쥐는 철망 속에서 세상을 돌린다. 나는 돌아가는 틀에 따라 걷고 다람쥐는 원형 철망을 안에서 스스로 돌린다. 지금까지 나는 조립 벨트에 공정을 줄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많은 공정을 자동화 했다. 몇 년 사이에 조립라인에서 나와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친구들이 라인을 떠났다. “네가 우리를 밖으로 내몰고 있구나.” 공정을 줄이고 자동화를 확대하는 회사의 프로젝트가 조립 라인의 동료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그 들은 나를 적대시 했다. 회사는 그들에게 폐차 공장을 알선하였다. 자동차 생산 공장에서 퇴물이 된 사람들을 폐차 공장으로 내 몰아 자신들이 만든 차의 장례식을 치르게 하고 있었다. 폐차장에는 멀쩡한 차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폐차장 업주들은 성한 부분들을 떼어내 장기 이식하듯 알뜰하게 재생하여 정비공장으로 보냈다. 사장은 조립라인을 떠나는 사람들 중 폐차장 근무 경력을 쌓은 사람에게 1-2년 후에 복직을 약속했다. 폐차장에서 그들은 재생품 제로화라는 밀명을 받고 전략적으로 활동했다. 부분품 재생은 자동차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알뜰하게 폐차 처리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폐차된 차량은 고철로 순환하여 자동차공장의 조립부품으로만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사장의 지론이다. 날더러도 거길 가랜다. 방해꾼으로. 옛날 동네 방앗간에 팔십 마력짜리 원동기가 벨트로 돌리는 도정기에 빨려들던 호기심이 나를 컨베이어 벨트 기사로 만들었다. 구레나룻이 험상궂은 방앗간 기사의 알통 밴 팔로 돌리는 80마력짜리 발동기는 한 바퀴 두 바퀴째 숨을 몰아쉬며 돌다가 펑 하고 터지면 방앗간 지붕이 들썩거리는 힘으로 쌀방아, 보리방아, 밀방아, 고추방아기계를 돌린다. 여섯 살배기 궁금이는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쳐다보아도 싫증나는 줄 몰랐다. 벨트를 따라 큰 바퀴가 작은 바퀴를 돌리고, 작은 바퀴가 큰 바퀴를 돌리고 외로 돌리고 바로 돌리고 세워 돌리고 뉘어 돌린다. 제분기 쳇바퀴 안에서 하얀 눈가루가 쏟아진다. 고추방아 밑으로 빨간 매움이 쌓인다. 구수한 쌀겨 냄새가 허기를 채운다. 무서운 얼굴에 최기사가 저리 가라고 호통 친다. 쫓겨난다. 텅텅거리는 배기통 앞에 꽁꽁 언 손을 댄다. 따뜻하다. 그을음이 손을 감싼다. 초겨울바람에 콧물이 흐른다. 손으로 훔친다. 손등에 검은 얼룩이 진다. 그래도 따뜻하다. 돌아가는 것들이 이렇게 따뜻할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방앗간 벨트가 지금 발밑에서 돌고 있다. 보릿겨 냄새, 쌀겨 냄새, 고추 매움, 밀가루 범벅, 왕겨더미 속에서 돌아간다. 등줄기가 따끔하다. 손이 축축해진다. 딸애가 집안으로 침입했다. 이 시간에 방에서 운동하는 제 아빠를 외계인 보는듯하더니 다람쥐에게 다가간다. 어디서 구했는지 도토리를 하나씩 넣어준다. “아빠! 다람쥐 이름 만들어 왔어. 궁금하지. 나한데 물어봐. 아프지 않게.” “응 뭔데?” “주금이와 사름이, 미음자(ㅁ) 돌림으로” “무슨 뜻?” “아빠가 맞춰봐. 무슨 뜻인지.” 녀석은 벌써 삶과 죽음을 생각할 줄 아는가보다. 애비는 자동차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헤엄쳐 나왔는데. 멀쩡한 다람쥐를 죽일락 살릴락 한다. “도름이와 사름이라고 하면 어떨까?” 알아차린 티를 낸다. 그러나 딸애는 유성펜으로 이미 써서 철망에 문패를 달았다. 사름이와 주금이. 돌아가는 게 시원찮으면 문패를 바꾸겠다고 다람쥐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딸애는 요즈음 거꾸로 사전을 만든다고 야단이다. 벽에다 맨 뒤에 글자부터 자모순으로 정리된 말들을 잔뜩 붙여 놓고 첨삭작업이 한창이다. 회전, 전공, 공전, 전자, 자전, 전전, 전반, 반전, 전역, 역전, 전구, 구전, 전방, 방전, 전화, 화전, 전사, 사전, 전주, 주전, 전대, 대전, 전환, 환전… 감회,회개,개회,회교,교회,회동,동회,회사,사회,회유,유회,회의,의회,회상,상회,회합, 퇴진, 진퇴, 퇴조, 조퇴, 퇴사, 사퇴, 퇴고, 고퇴, 퇴출, 출퇴, 퇴장 장? 여기서 그쳤다. 의미 없는 말들의 퍼즐이 가득하다. 한쪽 벽에는 자모순으로 내림차순 한 단어들이 가득하다. 딸애 말이 머리가 무지 고프단다. 집에 오면 독욕(讀慾)이 솟구친단다. 손때 묻은 사전에서 글자들을 주워 먹듯 읽고는 단어를 벽 위에 토해낸다. 달림틀 앞 거울 속에 벽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왼쪽으로 돌아간다. 세상을 뒷걸음질 친다. 시계 앞, 벽 밑 방바닥에 양손가락 깍지를 끼고 두 팔꿈치를 벌려 삼각대를 만들고 머리를 감싼다. 양다리와 엉덩이를 번쩍 들어 벽에 눕힌다. 천정이 된 방바닥은 머리를 짓누른다. 피가 머리로 향한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지금껏 세상을 달려오느라고 머리에 생긴 빈혈이 충혈된다. 가슴과 머리에 피가 홍수로 흐른다. 하체는 피가 가물어 진다. 피돌기가 활발하다. 발밑에 시계가 밤낮이 바뀌었다. 멀쩡하던 시계가 꼭 열두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아직 아홉시다. 흘러간 시간을 뒤집을 수 있다면 이렇게 될까. 방바닥이 천정이 되면 시간이 열두시간이나 물러가 있을까. 두 발목을 잡고 거꾸로 흔들던 산부인과 의사의 손목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빈혈로 피로했던 전두엽․후두엽․좌뇌․우뇌가 활발하다. 두 다리가 피의 무게를 덜어 홀가분하다. 이쯤이면 아직 세상을 더 걸어갈 만하다. 시간이 바로 흘러간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계바늘을 돌아가게 만들어 잃어버린 시간들이 매일 찾아오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게 한다. 시간은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흐르는데 회전하는 시계로 달아남을 붙들어 놓으려 애쓴다. 나는 오늘 일만칠천육백오십일을 살았다. 나의 삶은 태어나서 일만일이 넘게 화살처럼 돌진하는데 남들은 날(日로) 달(月로) 연(年으)로 회전하는 굴레에 얽어매려고 한다.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100년을 한 세기로 또 묶는다. 돌아가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그러나 ‘네가 살아온 시간을 헤아린 날도 반복하며 돌아가는 시간과 날들의 모음일 뿐이쟎느냐?’ 그 것은 돌아가는 시계의 시침 분침이 가리키는 숫자의 마력으로 시간은 돌아가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가두어 둔다. 분명 12시가 지나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건만 사람들은 열두시와 끊어지지 않으려고 1시가 되기까지 열두시를 달고 간다. 24시간 지나면 새로운 날과 시간이 시작되건만 24시를 달고 다음날의 1시까지 끌고 간다. 영시 오십분이 아니고 열두시 오십분이라고 말하며 지나간 시간과 끊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숨이 끊어졌다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영시를 열두시 속으로 감춘다. 시간은 돌아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굳히기 위한 자기최면에 빠져들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잊고 위안 받으려 한다. 그래도 지나간 어제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흘러갈 뿐인데. 태어난 점과 죽음의 점을 잇는 선분을 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흔적의 선처럼 시간은 곧게 과거를 남기고 미래 속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곧게 남긴 비행 흔적도 우주 밖에서 보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간 띠의 회전 곡선이 아닌가. 어이없다. 그래도 나의 삶은 되돌아 올 시간 없이 앞에 놓인 세월을 밟고 흘러간다. 지나간 시간이 다시 오는 것처럼 월력 앞에선 생일을 맞는다. 태어남과 죽음사이에 놓인 길에 두려움을 잊으려 영원히 살려는 욕심으로 시간은 회전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싶어 한다. 축복 속에 태어남도 결국 죽음 쪽으로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거울 속에 시계가 자꾸만 거꾸로 돈다. 거울 속 세상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여섯시에 애국가가 울리는 침대 머리맡 시계는 정시보다 십오 분이 빠르다. 화장실 변기 옆에 시계는 정시보다 십 분이 빠르다. 주방에 시계는 정시보다 오 분이 빠르다. 정시에 맞추어 놓은 시계는 거실 텔레비전 위에 걸린 시계뿐이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오 분을 저항하다 일어난다. 화장실에서 오 분을 씨름하다 주방으로 들어선다. 신문을 훑으면서 젓가락으로 밥알을 꿰지락거리다가 허겁지겁 나선다. 컨베어벨트 위에서 함께 돌아가다가 튀어나와서 거울 속에 시계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달림틀 위에서 헛걸음을 하고 있자니 너무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안되겠다. 회전 벨트 옆에 붙은 라벨에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거기가 건강마을이죠? 오늘 우리 집에 가져오신 런닝머신에 이상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뒤로만 돌아가고 앞으로는 안 돌아가는데 어떻게 된 거죠? 그게 맞는 거라구요? 자동차도 뒤로 가고 자전거도 뒤로 가고 기차도 뒤로 가고 시계바늘도 뒤로 가는 데 이건 왜 뒤로 갈 수가 없는 거죠?” 수화기 속에 목소리가 머뭇거린다. 상대가 한발 뒤로 물러서는 약점을 잡았다. 기세를 몰아 다그친다. “거기가 대한민국 최대의 메이커 아니요? 그런 대기업에서 그거 하나 못 만든단 말이요?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가던 길을 잘 못 갈수도 있잖소. 그러면 뒤로도 걸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연장통을 들고 조르륵 달려온 젊은이는 달림틀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무리 뒤로 걸으셔도 계기판은 거꾸로 돌릴 수가 없어요” 벨트가 역회전 하도록 조작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젊은이는 앞에 계기판 전체를 반대편으로 돌려서 설치했다. 달림틀을 거울을 향해 돌려놓았다. 계기판 밑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던 벨트는 계기판 밑으로 먹혀든다. 앞으로 흐른다. 계속 뒷걸음질치지 않으면 손잡이에 걸려 넘어진다. 거울 속에 시계도 거꾸로 돈다. 젊은이는 만족스런 내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그러나 계기판에 시간과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는 계속 앞으로 나간다. 나는 뒷걸음질 치고 있는 데. 경사도를 올린다. 뒤로 오르막이다. 속도를 높인다. 열심히 발뒤꿈치로 뒷걸음질을 올린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뒤로 옮긴다. 뒤로 넘어질 듯한 아찔함에 몸이 휘청거린다. 열심히 뒤로 오른다. 돋움발로 앞을 향할 때 요긴하던 아킬레스건이 움츠러들어 쉰다. 뒤꿈치가 비탈진 경사면을 밟는다. 거실 창밖 다람쥐들로부터 멀어지려고 계속 뒷걸음질친다. 다람쥐가 없던 베란다가 나타난다. 여러 날 째 관심을 주지 않아 잎이 누렇게 변한 센떼베리아 조각이 쓰러질 듯 불안하다. 꽃 떨어진 동양란 겉잎이 건초처럼 말라 있다. 타일 바닥을 세제로 닦아내는 아내의 모습이 젊다. 딸애가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 방해한다. 제 엄마에게 핀잔을 듣고 눈에 터질 듯한 울음이 가득하다. 내 눈치를 본다. 도움을 청한다. 제 엄마에게 손짓한다. 제 편이 되어 달란다. 보행기에 앉힌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보행기 바퀴가 문턱에 걸려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엄마는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솔로 베란다 바닥을 박박 긁는다. 딸애 따윈 아랑곳 않는다. 뒷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베란다엔 빨래 건조대가 놓이고 무명천 귀저기가 널렸다. 아직 가시지 않은 가루비누 냄새가 방안까지 자욱하다. 딸애는 포대기 속에서 절벽 같은 엄마의 등짝을 피해 좌우로 펼쳐진 세상을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엄마가 거실 창밖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그림책 속에서 보았던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내려다본다. 앞뒤로 기관차가 달린 객차는 사람들을 쏟아 놓고 내달린다. 앞뒤 모두 기관차가 달려 있어 뒤로 가는 것인지 앞으로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앞으로 걷고 있는지 뒤로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앞에는 둥그런 회전등이 시야를 막는다. 창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방바닥 벽에 기대어 회전등을 본다. 뒤통수가 매캐하다. 눈물이 찔끔한다. 앞에 보이던 창밖 풍경이 발밑에 있다. 딸애가 제 방에서 나와 팔을 흔든다. “아빠 괜찮아?” 영리한 달림틀이 홀로 돈다. 방안에 모든 아픔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계기판 밑으로 꾸역꾸역 삼키다 멋쩍게 멈춘다. 눈앞엔 회전등 밑에 바람개비가 서서히 돌아간다. 방안에 소란스러움을 평정한다. 딸애는 자투리 잠에서 놀라 깬 얼굴이다. 언제나 눈치 빠른 아내가 목욕탕에서 적신 꼬부랑 머리를 그대로 방안까지 가져와서 바뀐 분위기를 재빠르게 읽어낸다. 내 눈치를 살핀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시치미를 뗀다. 먼저 말해주길 바란다. 운동복 차림의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눈으로는 ‘앞으로 어쩔것이냐’고 묻는다. 대답을 못하고 달림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딸애는 얼른 베란다에 나가 다람쥐 두 놈을 마주 놓는다. “아빠! 쟤들 때문이야. 서로 창밖으로 달아나려고 경주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저희들끼리 마주보고 달리라고 하지 뭐. 사이좋게.” 도름이와 사름이는 우리 세 식구의 어색한 분위기도 모르고 열심히 달린다. “아빠가 운동하시다가 조금 다치셨어요. 엄-마.” 딸애는 거꾸로 돌던 달림틀을 가리켰다. 아내는 말없이 나를 잡아끌고 안방으로 든다. 경대위에 놓인 우편물을 내게 보인다. 「해바라기 하우스」 처음 보는 이름이다. (우리는 새로운 주거문화를 창조합니다./ 해를 따라서 돌아가는 주택을 만들어 드립니다./ 햇볕은 평생 당신의 건강을 지킵니다./ 이제 주택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당신을 우리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초빙합니다.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지금 곳 결정하세요./해바라기 하우스로 오셔요.) 차들의 장례식장인 폐차장보다는 낫겠다. 하지만 폐차장에 머무르지 않으면 복직은 날아간다. 회사로부터 받는 약간의 기본급의 대가로 1년 동안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한다. 가슴을 조여 온다. 사냥꾼들이 벌써 내 신상 변동을 눈치 챘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시작된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할까? 회사를 배신하고 나만의 득을 챙길 것인가. 회사와의 의리를 지킬 것인가. 회사가 나를 버릴지도 모르는데. 선택은 해야 한다. 아내의 눈초리가 회초리처럼 나를 흔든다. 딸애도 알 것은 다 안다. 모른 척 하려 애쓴다. 모두 나만 쳐다본다. 나의 입만 본다. 일자로 굳게 다물고 이를 악문다. 혈액이 꽉 다문 아귀 위로 치솟는다. 뜨거워진다. 눈 주위가 화끈하다. 딸애가 자리를 피한다. 아내가 손을 꽉 잡는다.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개발팀 얼굴들이 꽉 감은 눈 속에 들어찬다. 모두들 여유 있는 웃음을 짓는다. 굳게 악수한다. ‘자 모두들 열두 달 후에 봅시다. 얼마나 많이 변해있나.’ (아니다!) 머리를 흔든다. 아내가 어느새 신고배 한 덩이를 가져다 깎는다. 지구의 북극, 꼭지 떨어진 곳부터 시작하여 뺑뺑 돌려가며 땅거죽을 벗겨나간다. 지구를 나선형으로 다섯 바퀴 돌아서 남극에 배꽃 피던 꼭지에 칼끝이 머문다. 꽃이 열매 맺음을 마치고 떨어지듯 딸애 키만큼 긴 껍데기가 감싸 안았던 지구를 버리고 뱀처럼 똬리를 틀며 신문지 위에 앉는다. 지구의 알몸이 드러난다. 땅속에 샘처럼 물이 묻어난다. 누런 땅거죽이 벗겨지고 하얀 속살이 흥건하게 드러난다. 순식간에 잡혀 먹힐 만큼 지구 덩어리는 달다. 허물 벗은 지구를 먹는다. 「꺼-윽」금새 트림이 오른다. 뱃속에서 저항하며 뭉치던 자존의 「거부」가 배 트림으로 주저앉듯 무너진다. 폐차장은 공동묘지 너머 북향으로 자리 잡은 기숡에 있다. 폐차장에 작두는 아직 광택도 가시지 않은 자동차 엔진덮개를 싹둑 두 조각을 낸다. 네 자리 수 번호판이 작두에서 두 동강이 난다. 천 단위의 무거움이 두 자리인 십 단위로 가벼워졌다. 검은 얼굴이 뿌연 막걸리를 한 대접 들이키고 망나니처럼 작두를 향해 뿜는다. 장례식이다. 태어난 지 두 달도 못되는 앳된 차다. 검은 기름때로 가득 찬 동남아 얼굴이 이빨만 하얗게 드러내며 히죽 웃는다. 멜빵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제네레터, 스타트모터, 배터리, 휴즈박스, 캬브레타, 디스트리뷰더, 밋숀, 휠, 라지에터, 희터, 카오디오, 지피에스 등 쓸만한 것은 모두 뜯어낸다. 솔로 먼지를 털고 기름걸레로 닦아낸다. ‘순 정품이다’ 해체공이 뇌까린다. 어제 들어온 사고차인데 두 사람이 죽었단다. 차는 출고된 지 한 달도 못되어 보인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해체공은 정글에서 먹이를 얻은 하이에나처럼 자동차에 다치지 않은 장기들을 먹어치운다. 장례 절차는 이렇게 끝난다. 해체공은 부속품들을 모아 재생업자에게 부속품 값을 치루고 챙긴다. 부속품들은 재포장하여 자동차 부속상에 정품으로 나간다. 나는 그것을 사장에게 고발하고 해체공을 내쫒아야 한다. 부속품 값이 사장 손에 들어가야 하는데 해체공이 꿀꺽 삼켰다는 이유로 해체공은 자신의 직장에서 「해체」 당해야 한다. 공장장을 맡은 나는 부속품 해체를 감시한다. 하지만 나도 역시 부속품 값이 사장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데는 기여하지 못한다. 성한 것이든 고물이든 모두 절단, 압축하여 고철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내 임무다. 신품 재생품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사장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제철공장에서 자동차부품공장으로 부품공장에서 자동차 조립공장으로, 조립공장에서 폐차장으로 돌아가야 하던 부품들이 순로를 거치지 않고 지름길로 가면 돌아가던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은 불안해진다. 출고가 줄어든다. 함께 모여 인간들에게 봉사한 부품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모아 용광로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 부품공장과 조립공장을 거쳐 판매장에서 내손으로 들어와 지구를 돌려야 한다. 폐차장 사장의 수심어린 얼굴을 덮고 조립공장 사장의 얼굴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벨트를 돌리던 자네가 밖에서 회사를 돌리고 있구만’ 귓속으로 빤하게 들린다. ‘회사를 돌리고 있구만 …… 사장감인데……’ 어지러움을 정돈시키기 위하여 머리를 흔들어 본다. 여기가 어딘가? 돌아가는 사람, 돌리는 사람 어지러운 사람, 어지럽히는 사람 지구를 돌려라, 세상을 돌려라 담 너머 해바라기, 해를 보고 돌고 고추 먹고 맴맴, 하늘보고 돌지 돌아가는 세상, 춘하추동 돌고 돌아가는 날들, 해와 달로 돌고 돌아가는 인생, 동서남북으로 돌자 겉보리 서말 대끼려, 물레방아에 돌고 여울 건너 목로주막에, 막걸리 사발로 돌고 옆구리 시린 과수댁, 지게미 술밥에 돌고 한필 무명 실 잦으려, 호롱 빛 물레가 돌고 사흘 밤낮 삯바느질에, 서까래 천장이 돌고 느이 할애비 제삿날, 지지미 맷돌이 돌고…… 할머니가 등을 토닥인다. 가래 섞인 할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아련하다. 호적소리와 괭가리, 북소리, 장구소리, 징소리에 귀가 멍멍할 즈음에 동그랗게 둘러선 마당에 펄쩍펄쩍 뛰면서 상모 줄과 소고를 쥔 몸이 함께 돈다. 외로 돌고, 바로 돌고, 넘어질듯 몸도 따라 돈다. 그런데 이젠 전축위에 레코드판 바늘이 긁어내던 구성진 소리들이 누에고치만한 엠피쓰리 속에서 실 뽑듯이 귓속으로 흐른다. 동그랗게 돌지 않고 한 줄로 귀를 타고 뇌 속으로 흐른다. 실낱 타고 흐른다. 디엠비(DMB)에서 나오는 음성이 귀를 간질이며 돌아가는 소리들이 사라진다. 또다시 머리를 흔든다.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폐차장 사장의 주문이 관심 밖이다. 벌써 사장의 손이 여기까지 뻗쳤다. 나는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손금을 강물처럼 무서워하며 건너지 못하고 어물쩍 거리는 것이 아닌가?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편다. ‘해를 따라 돌아가는 주택을 만들어 드립니다. 해바라기 하우스로 오세요. 당신을 우리회사 기술고문으로 초빙합니다.’ 초빙이라는 말이 사위스럽다. 그러나 해를 따라서 돌아가는 주택에 대한 궁금증은 밤잠을 설치게 할 것 같다. 어느새 사냥감으로 낙점되었나.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장이 나에게 채워놓은 위치 추적의 족쇄가 나를 거기에 가지 못하게 할 것 같다.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천덕꾸러기 같은 휴대전화를 꺼내 소파에 던진다. 벨이 울린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오오오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딸애가 어버이날 선물로 카네이션 대신 벨소리를 선물했다. 애틋하다. 휴대전화 액정판을 읽는다. 「사장늠 011-0000-****」 나를 내쫓던 순간 휴대전화 숫자판에 「1」과 나란한 「님」자, 「l」에 꼿꼿한 존경을 쓰러뜨려 「ㅡ」로 늠에 끼워 넣었었다. 배터리를 빼서 던졌다. 「진자리」에서 「마른자리」넘어가기 전에 그쳤다. 족쇄를 풀었다. 「뽈롤롤로 뽈롤롤로 …」 아내가 수화기를 향한다. “받지 마!” 소파에 앉아 눈을 감는다.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뽈롤롤로 뽈롤롤로 …」 아내가 내 눈치를 살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입에서 무슨 말인지 터질 것 같다. 시선과 벨소리가 고문이다. 상황처리가 잘 안된다. 눈을 감는다. 모이 쪼는 장닭 채려, 소리개가 돌고 머시마 발에 채인 고양이, 씨암탉 꽁무니 쫓아 돌고 울렁 가슴 갑돌이, 갑순이 쫓아 돌고 풀죽은 영감 기 살리려, 상투 잡고 돌고 …… . 할머니의 사설은 항상 새로웠다. 아내가 이 소리들을 알까. 전화기 잭을 뽑아내고 피식 웃는다. 심각한 표정을 보여야 하는 데 표정 정리가 안된다. 할머니의 토닥거림이 감은 눈 속에서 더욱 정겹다. 이제 해바라기다. 모든 돌아가는 것들이 나의 직업을 만들었다. 자동차 바퀴의 돌아감도 컨베어 벨트의 돌아감도, 시계침의 돌아감도 나의 숙련을 도왔었다. 이제는 나 자신이 회전판 위에서 돌아갈 차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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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단편소설 이름 : 윤 찬 모
장려 : 박영순, 「(신)모범경작생」(단편소설
그 여자의 남편은 미소년형 배우 이준기를 상당히 많이 닮았다. 그 여자의 친절한 직장동료인 미수의 유난히 하얀 다리는 대형디스코텍 플로어의 또 다른 하얀 다리들과 그다지 구별되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다리는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아마도 직립포유류가 획득한 저토록 매혹적으로 진화된 변별적인 육체에 대한 열망의 오래된 증거로서, 케케묵은 동화 속에서조차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대가로 주고서 지느러미를 다리로 바꾸었던 것이다.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군중의 물결위로 사이키조명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끝없이 비추어대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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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학교; 방송통신대학 경기지역대학 4학년 장르 : 단편소설
~~~~~~~~~~~~~~~~~~~~~~~~~~~~~~~~~~~~~~~~~~~~~~~~~~~~~~~~ 장려 : 한영미, 「반딧불이」(시조
글 : 한영미
누군가 불티 달아 빙글빙글 돌리나 보다
손 내밀면 딸 수 있어 하자할 것 없던 생이
비로소 호흡 하는 하나 숨결 없던 하늘
가문을 이어 오며 딛은 자국 또 딛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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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학교: 방송통신대학 경기지역대학2학년 |
-편집국- |
첫댓글 좋은시, 좋은글 아침부터 배부르게 읽었습니다. 모두모두 축하드립니다. ^^*
수상자 모든분들께 축하드립니다. 예년과는 달리 여러 쟝르에서 응모수상하여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해를 보내는 막달에 좋은글 감동으로 만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문운이 활짝 열리길 기원합니다~! ^^
추억을 만들어 준 하고픈 글벗! 이곳을 통하여 시를 찾아 정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임원진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수상자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경사났네, 당선된 님들 모두 축하축하합니다.
좋은 글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국문인의 밤 행사에 더욱 빛나는 멋진 시낭송 잘 감상했습니다. ^^
거창하게 인삿말 남기는 것도 어쩐지 좀 쑥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러나 감사해요...결국 지나가겠으나 이렇게 지나가는 추억이 있어서 감사하고 그 추억에 정겨운 얼굴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그 추억속에 저를 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어제...참 행복했습니다.
축 추카추카 ~, 좋은글을 쓰시고 우리들의 가슴을 잠시나마 행복으로 물들여 주시고..... 감사 謝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