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따라 걷기ㅣ보성 녹차대축제와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5월의 신록은 녹차밭에서부터… 편백 숲에선 그윽한 피톤치드향

[인서]

5월 14~19일까지 다향축제 열려… 주행사장 활성산 차박물관이 걷기길 시종점

5월은 녹차의 계절이다. 파릇파릇한 녹찻잎이 신록을 부른다. 녹찻잎부터 시작된 신록은 온 숲으로, 산으로 퍼져 나가 ‘녹음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차나무는 대표적인 상록수다. 그 차나무의 새순을 4월 말~5월부터 본격 채취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른바 녹차다. 그 상큼한 녹차는 녹색음식(green food)의 대표로 상징된다. 녹색 음식, 즉 그린푸드는 시각적인 긴장은 물론이고 신경과 근육의 긴장까지 완화시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차나무가 인체에 미치는 유익한 영향은 글자에서부터 나타난다. 차를 뜻하는 한자 茶(차)는 풀(艸)과 나무(木)가 아래위로 포근하게 감싸 인간(人)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다. 또는 풀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것이 인간을 감싸 따뜻하게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그만큼 인간에 유익한 나무인 것이다.

우리나라 녹차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난다. <삼국유사>에 ‘신라 문무왕(661년)이 가락국의 제사에 차를 올리다’라는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디서, 무슨 차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0편에 구체적인 설명이 나온다.

‘신라 흥덕왕 3년(828) 12월 초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케 했다. 당의 문종은 사신을 인덕전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당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돌아오니 (흥덕)왕은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에 이르러 성행하게 됐다.’

부춘동 마을로 들어서기 전 녹색의 향연에 흠뻑 빠지게 하는 보리밭이 방문객을 활짝 맞고 있다. 그 사이 사이로 자란 쑥들도 주변을 더욱 짙푸르게 했다.

녹차 국내 최대 생산지 보성 ‘녹차 수도’ 자처

<삼국사기>의 기록만으로 볼 때 지리산이 우리나라 차 시배지로 보인다. 지리산 주변의 몇몇 지자체에서 서로 차 시배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고증이 안 된 상태다. 하동 쌍계사와 구례 화엄사 주변이 일단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쌍계사 인근의 장죽전엔 우리나라 차시배지라는 커다란 안내판을 붙여 놓고 있다. 차나무의 원조를 선점한 셈이다.

그러나 차 재배면적으로만 볼 때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전남 보성이 압도적이다. 농림부의 농림수산 2007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남 지역 차 재배면적은 전국 면적의 53.3%로 가장 넓고, 그 중에서 보성이 54.1%를 차지한다. 차 생산량도 비슷한 비율이다. 전남 지역의 차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64.9%를 차지하며, 그중 보성이 50.3%로 단일 시군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녹차 국내 최대 생산지이며, ‘녹차 수도’를 자처하는 보성에서는 매년 녹차가 본격 생산되는 5월을 기해 보성다향제 녹차대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도 예외 없이 보성 녹차밭이 있는 한국차소리문화공원 일원에서 5월 14~19일까지 6일간 성대하게 열린다.

보성의 차 생산이 전국 최대 규모인 이유는 차 생장에 필요한 기후와 강수량, 토지 등이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생육환경은 기후는 연평균 기온 13℃ 이상, 강우량은 연평균 1,400mm 이상이어야 최고 상품이 된다고 한다. 초의선사가 쓴 <다신전>에 ‘한국의 차는 햇살과 그늘이 잘 조화된 산골짜기에서 자란 잎이 가장 좋고, 대숲에서 찬 이슬을 머금으며 자란 잎이 그 다음이며, 물이 잘 빠지는 자갈밭에서 자란 것이 또 그 다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차나무는 물을 좋아하지만 물을 싫어하고, 그늘을 좋아하지만 그늘을 싫어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보성의 기후와 생장환경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한다.

보성은 산·바다·호수가 어우러진 지역으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 연평균기온이 13.4℃, 연평균 강수량 1,400mm이다. 토양은 맥반석 성분이 함유되어 차 생육조건에 아주 적합하며, 바다와 강이 인접해 있어 온도가 따뜻하고 안개일수가 많아 차나무 성장기에 많은 수분을 공급하는 한편, 자연차광에 의한 그늘을 마련해 차의 맛을 좋게 하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다. 보성 차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봄에 꽃이 제일 먼저 피는 생강나무와 벚꽃이 녹차와 어울려 봄의 향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녹차밭에는 봄나들이 나온 행락객들이 녹차 새순이 돋아난 것을 구경하고 있다.

활성산성길을 지나 부춘동길로 가기 전 더 넓은 진달래 군락지를 만난다.

보성의 녹차는 기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보성군 편에는 ‘땅이 많이 기름지고 간전(墾田)이 5,233결이다. 약재가 겨울살이풀뿌리(麥門冬), 호라비좆뿌리(天門冬), 녹각상, 가위톱, 차, 매화, 속돌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어, 과거부터 차는 많이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보성군편에서는 ‘보성 토산물로 감·비자·매산(苺山)·차·모시·닥종이·왕골·유자’ 등을 꼽고 있다. 1741년의 <보성군지>에서는 ‘보성은 차가 으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성에서는 지금도 문덕면 대원사 주변, 벌교 징광사지 주변 등을 비롯한 군 전역에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한 득량면 송곡리는 마을 이름이 다전(茶田)으로도 불려, 그 전통을 잇고 있다.

1939년부터 활성산 자락서 녹차 재배

보성 녹차는 잠시 명맥이 끊어졌다가 1939년 경성화학이 현재 대한다업이 있는 야산 30㏊에 차 종자를 파종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차밭은 빛을 보지 못하고 광복과 함께 황폐하게 버려져 있다가 1957년 활성산 자락 차밭을 대한다업이 인수해 본격적인 정비와 함께 녹차 재배를 하게 된다. 1962년부터 생산된 차를 가공하기 시작, 재배면적을 50㏊로 늘리고, 동양홍차가 가세하면서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후 웰빙바람과 커피붐으로 부침을 겪다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녹차는 잎의 채취 시기에 따라 이름과 품질이 달라진다. 가지 끝에 갓 돋아난 여린 잎을 청명 전후에 따는 것이 제일 좋다. 청명은 24절기의 하나로 춘분과 곡우의 사이로, 음력으로는 3월 무렵이며 양력으로는 4월 5일쯤 된다. 청명 전에 딴 차를 ‘명전’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고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곡우(양력 4월 20일쯤) 이전에 따는 ‘첫물차’를 우전차(雨前茶)라고 해서 최고의 상품으로 취급한다. 이 때쯤 수확하는 찻잎이 마치 새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작설(雀舌)이라고 부른다.

첫물차에 이어 약 1개월 후인 양력 5월 하순~6월 상순에 처음 찻잎을 딴 곳에서 돋아난 여린 잎을 두 번째로 채취한 찻잎을 두물차, 다시 1개월이 지난 6월 하순~7월에 세 번째 채취하는 찻잎은 세물차 또는 여름차, 그리고 8월 하순 처서와 9월 상순 백로 사이에 네 번째로 딴 찻잎을 끝물차 또는 가울차라고 한다. 찻잎은 따는 시기가 늦을수록 품질은 떨어진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곳곳에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스러진 나무를 재활용해서 만든 간이의자와 간이식탁 등을 설치해 쉼터를 만들었다.

보성군청 해양산림과 산림조성계 선남규 계장과 선종환씨가 편백나무를 안거나 앉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늘어나는 캠핑족들이 텐트를 치고 쉴 수 있도록 데크 같은 평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제 최고급 녹차를 따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파릇파릇한 녹차잎은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거리고, 보성 활성산 자락을 더욱 푸르게 만들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활성산 끝자락에 한국차·소리문화공원이 있고, 그 중앙에 한국차박물관이 득량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차박물관에는 한국의 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보성은 차뿐만 아니라 소리에서도 하나의 유파를 형성할 정도로 많은 판소리 명창들을 배출했다. 매년 10월엔 서편제 보성소리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한국차·소리문화공원은 차와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종합공간이다.

한국차소리문화공원은 보성에 있는 트레킹 코스의 시종점이다. 보성에는 다향길, 서편제보성소리득음길,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등의 걷기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조성했고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은 보성녹차축제를 즐기고 걷기에 안성맞춤인 길이다. 한국차박물관 바로 뒤에서 길이 시작된다. 그곳에 커다란 이정표가 있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은 긴 이름에서 보듯 푹신푹신한 토성의 활성산성과 쭉쭉 뻗은 편백숲, 그리고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을 복원해서 연결했다. 활성산은 보성 차나무의 주 생산지여서 사시사철 푸른 녹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으며, 바로 앞 득량만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걷는다. 산과 바다, 녹차와 편백숲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이 길은 활성산성길 2.1km, 삼수길 4.1lm, 부춘동길 4km 3부분으로 나눠져 총 10.2km의 거리다.

이 길을 보성군청 해양산림과 선남규 산림조성계장과 선종환씨가 직접 동행하며 안내를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전날 문화관광과 노정이 계장이 한국차박물관 주변 한국차소리문화공원을 안내한 데 이어 이틀 연속 보성군청 직원들의 도움으로 보성의 녹차와 도보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한다.

활성산성은 토성으로서, 조선시대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조성한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은 대개 주변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보성도 예외는 아니다. 바다와 접해 있는 보성은 활성산성을 통해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왜구를 감시한 것이다. 활성산은 불과 해발 465m밖에 안 되지만 보성에서 바다와 최근접한 산이며, 호남정맥의 큰 줄기가 지나는 곳이다.

편백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활성산성 토성 위 푹신푹신한 길을 걷고 있다. 편백나무는 겨울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주고 여름엔 햇빛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활성산성 둘레는 푹신푹신한 흙길

차박물관 뒤 북서쪽 방향에 있는 활성산으로 향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다. 선종환씨는 “이 길은 보성 소리득음길과 중복된다”며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턱골고개에서 두 길이 나뉜다”고 설명했다. 불과 1km도 채 못 가서 턱골고개에서 사거리가 나온다. 소리득음길과 전망대, 활성산(성)으로 가는 길 등으로 나뉘는 고갯길이다.  

턱골고개는 옛날 보부상들이 봇짐 지고 장을 보러 넘나들던 힘든 고갯길에서 숨이 턱까지 차서 턱골고개라 불렀다는 설과 사람이 살던 터가 있던 고개라고 해서 턱골고개라고 했다는 설 등 분분하다는 선종환씨의 설명이다.

턱골고개 사거리엔 버튼을 누르면 판소리까지 나온다. 소리고장다운 시설이다. 그 옆엔 운동기구와 화장실도 조성돼 있다. 길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과거에 고갯길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자취를 더듬어 길을 통해 현재화시켜 연결한 것이다. 보부상들이 잠시 이곳에서 쉬면서 삶의 애환을 얘기하던 장면을 상상해 본다.

활성산성으로 가는 길은 돌탑 몇 기가 입구를 알리는 듯 방문객을 반긴다. 활성산성으로 발을 딛자마자 푹신푹신한 흙길에 쭉쭉 뻗은 편백과 삼나무들이 가로수인양 양갈래로 시원하게 늘어서 있다. ‘아니, 보성에도 편백나무가 이렇게 많구나!’ 싶다. 토성 안쪽으로는 편백나무, 바깥쪽으로 삼나무가 키경쟁을 하듯 하늘 높이 솟아 있다. ‘편백나무 하면 장성 축령산’으로 대표되는데, 보성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나 다를까 보성은 전국에서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장성 축령산같이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을 뿐이지, 분포면적만으로 볼 때는 보성이 6,000ha로 으뜸이고, 장성이 그 다음 5,000ha라고 한다. 이 편백나무들은 전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조림한 것이며, 이제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산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온대성 나무인 편백나무는 장성이 생장 북방한계선이라, 자연 남부지방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보성 편백나무 6,000ha 중 활성산 일대에 50ha가 조림돼 있다. 그 외 철쭉으로 유명한 일림산 등에 자란다. 선남규 계장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사이 푹신푹신한 토성 위로 걸으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은 계단 하나 없이 흙길로만 되어 있고 경사도 거의 없는 완벽한 걷기길이며, 정상에 가면 캠핑족이 텐트를 칠 수 있게 데크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임도와 농로로 연결돼 자전거 이용도 가능하지요.”

그의 말대로 바이커족들이 한 번 오면 매우 반할 것 같은 길이다. 수령 4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80ha 면적에 양분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난 활성산성 토성길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걷고 즐기기에 좋다. 지난해 태풍 볼라벤이 몰아쳤을 때 넘어진 편백나무들을 활용해 의자와 쉼터, 산림욕대를 만들었다. 산림욕대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니 차나무와 피톤치드의 향기가 은은하게 코를 자극한다. 이게 바로 삼림욕이다.

활성산 자락에 있는 보성녹차밭은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푸르른 녹차잎이 활성산 자락을 더욱 푸르게 한다. / 사진 보성군청 제공

편백나무숲 사이엔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스러진 나무를 재활용해서 쉼터와 산림욕대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편히 쉬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캠핑족 이용하도록 나무 데크 곳곳에 설치

걷고 있는데 피톤치드 향기가 느껴진다. 시계를 봤다. 오전 10시51분이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시간이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햇빛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쬐고, 태양과 가장 근접했을 때 나무들은 본능적으로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지금이 그 시각이다. 길을 걸으면서 피톤치드를 맡는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정말 상쾌하다. 이정표에는 활성산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해발 260~400m에 위치한 활성산성은 총 1.6km에 달하는 토성(土城)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선조 26년(1593) 연해지대의 경비, 요새지, 훈련장, 경마장, 의병을 훈련시켰던 장소로 활용했으며, 성벽의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외부는 경사가 급하게 축조되었으며, 성 내부 평탄지에는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활성산성은 동서남북 총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쪽에 위치한 동문은 보성읍과 회천면의 특산품이 오갔던 턱골고개에서 성 안으로 보부상과 병사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다. 동문의 왼쪽 움푹 패여 있는 지점이 통제와 검열을 했던 초병이 근무했던 곳이라고 한다. 활성산성 주변에는 1968년에 심었던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한 바람(52m/sec)이 불었던 2012년 8월 28일 제15호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넘어지고 부러지는 피해가 발생하여 제거했으며, 제거한 편백나무를 그대로 활용하여 산림욕대 등을 만들어 설치하였다.’

활성산성 동문에 도착했다. 선 계장은 한쪽을 가리키며 “초병이 근무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초병은 동문과 남문에만 근무했다고 한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을 잘 다듬어 산림욕대를 만들어, 앉아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무에 기대 놓았다. 전신에 힘을 빼고 앉아서 하늘을 보니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바로 그 앞엔 360도로 회전하면서 자란 편백나무 한 그루가 기묘한 자태를 뽐낸다. 예사롭지 않은 나무다. 하늘로 향해 자라다가 땅으로 향해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하늘로 향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편백나무는 토질이 좋고 수분이 많으면 생장속도가 빠르다”고 선종환씨가 설명했다. 토성 바깥 왼쪽으로는 관리가 안 된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선 씨는 “이곳은 차따기 체험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며 “사유지이지만 지주가 방치하고 있어 설득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토성 위로는 득량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머리를 휘날리게 한다. 여름엔 정말 시원하겠다. 시원한 바다바람과 편백나무가 가려 주는 그늘, 푹신푹신한 토성 위로 걷는 기분은 어느 도보길보다 매력적이다.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오는 왜구들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도 있었으나 소멸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선씨는 “망루를 다시 복원하면 주변 경관만 해칠 우려가 있어 낮은 평상을 다용도로 활용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평상이 쉼터 곳곳에 있다. 그 평상은 또한 캠핑족의 데크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한다.

활성산성둘레길 정상엔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간이무대도 만들었다. 이 시설도 캠핑족들의 텐트 데크로 활용가능하다고 한다.

득량만으로 침입하는 왜구 감시용으로 산성 축성

활성산성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토성 좌우는 모두 사유지다. 하지만 토성 위 폭 5~10m 정도만 전부 국유지라는 사실이다. 선 계장은 “지적도를 펴놓고 보면 타원형인 토성 정상을 따라서 폭 5~10m 정도만 국유지고 나머지는 전부 사유지로서 희한하게 그려져 있다”고 했다.

어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옛날 토성을 보존하기 위해 성 안팎으로는 전부 불하·하사했지만 성 정상만은 훼손을 막기 위해 국유지로 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보성의 도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전국 어디 내놔도 전혀 손색없는 토성이며, 길이다.

길 옆으로 편백들이 길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지나치면서 향기를 그대로 맡는다. 딱 키높이 만큼 내려앉아 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잎의 차이를 비교하는 체험도 가능하다. 삼나무는 잎이 뾰족하면서 찌르는 듯한 느낌이지만 편백은 부드럽다. 겉으로 보면 구별이 쉽지 않지만 만져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활성산(성) 정상엔 넓은 평원이 나온다. 산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성 내부는 평지에 가깝고, 성 외부는 가파른 경사가 있는 지역이 성의 최적 입지조건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성이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을 개통할 때 정상 넓은 평원에서 숲속 음악회를 열었다. 그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고, 캠핑족들을 위해 데크도 몇 개 구비돼 있다.

정상엔 헬기장 흔적도 보인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남동쪽으로 왜구 침입 시 봉화를 피우고 지역의 재난을 알렸던 봉화산과 득량만 앞바다, 북쪽으로는 보성읍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여러 갈래 길로 나뉘는 이정표가 나온다. 활성산성 순환길로 돌 수도 있고, 왕새고개까지 부춘길로 가는 4.0km 길이 있다. 왕새고개에서 한치재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삼수길로서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최종 종점이니 부춘길로 방향을 잡았다.

이정표는 200m마다 붙어 있어 길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간혹 활짝 핀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선씨는 “보성은 진달래와 철쭉이 전국 어느 지역보다 많다”고 자랑했다. 일림산과 초암산 등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철쭉 명산이 보성에 몇 군데 있다. 진달래도 철쭉만큼은 안 되지만 나름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진달래 사이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생강나무도 진노란꽃을 뽐내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묵은 길엔 갖가지 이름모를 꽃과 야생의 멧돼지 흔적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쌍둥이바위도 나온다. 그 주변으로 원형 의자를 촘촘히 만들어 눕기도 하고, 신발을 벗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들었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잘 어울린 시설물이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입구에 양쪽에 돌탑이 세워져 있다. 시원한 편백숲 입구이기도 하다.

쓰러진 편백 활용해 산림욕대·쉼터 등 조성

푹신푹신한 흙길은 계속 이어진다. 솔숲 사이로 간혹 감나무가 보인다. 옛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바위 사이를 뚫고 나온 나무가 눈에 띈다. 중앙에 비자나무가 있고, 양쪽으로 정확히 갈라진 바위가 나무 옆에 있다. 바위보다 힘 센 나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기도 하다.

봄을 녹색의 향연에 빠지게 만드는 차나무 외 또 다른 녹색의 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보리밭이다. 눈이 싱그럽다. 보리 이파리들이 바람에 흩날리면서 봄은 더욱 짙어가는 듯하다. 보리밭 사이 짙푸른 쑥들도 녹색의 향연에 동참하고 있다. 녹색은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눈을 건강하게 하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보리밭 사이를 걷는 기분은 정말 이국적이고 더욱 정취를 자아낸다.

부춘동마을로 접어들었다. 순국선열을 모신 모춘사가 있다. 이어 왕새고개를 지나 삼수길은 논 사이로 간다. 여름엔 다소 더울 것 같다. 도로를 따라 잠시 걷다 최종 목적지인 일림산 자락 한치재에 도착했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의 종착지다.

그러나 한치재는 철쭉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일림산 등산로의 출발점이다. 선씨는 “도보길과 등산로를 연결하기 위해 최종 목적지를 한치재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도보길 종착지인 동시에 등산 출발지인 것이다. 한국차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한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코스는 활성산성을 거쳐 부춘길과 삼수길을 연속으로 가면 총 8.3km에 이르며,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중간에 순환코스를 합하면 총 14.5km쯤 된다.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워킹족들에게는 토성 산성을 즐기고 편백숲을 걷고, 마을길과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기서 부족하다면 바로 일림산 철쭉동산으로 연결되는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걷고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 개념도

교통(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천안논산고속도→호남고속도→ 광주 제2순환도로로 진입한 뒤 지원교차로에서 화순·장흥 방면으로 향한다. 이어 너릿재터널→용두터널→이야터널→예재터널→보성녹차터널 진입 후 초당교차로에서 목포·장흥·보성차밭 방면으로 우측으로 방향을 튼다. 장수교차로에서 제암산자연휴양림·일림산·한국차박물관 방면으로 우측으로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보성터미널에서 한국차박물관까지는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오전 6시에 첫 출발한 버스는 시간당 1~2대씩 오후 8시까지 왕복운항 한다. 문의 보성터미널 061-852-2777. 택시 061-852-3232 또는 061-852-2525.

숙식(지역번호 061)  한국차박물관 바로 옆에 군청과 민자 공동으로 출자해서 건립한 보성다비치콘도(850-1111, 객실 81)가 있다. 활성산 자락에 있어 녹차밭과 득량만이 눈 아래 펼쳐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등산과 겸하려면 제암산자연휴양림(852-4434)도 괜찮다. 휴양림에는 캠핑장도 있어 여름철 텐트족에게 인기다. 군청에서 직영한다. 그 외 한옥민박은 웅치삼수마을(852-6651), 강골전통한옥민박(853-1333) 등이 있다.

별미로는 벌교꼬막이 단연 으뜸이다. 벌교읍에 거시기꼬막식당(858-2255), 궁한정식(857-7028) 등이 있다. 득량만 갯벌에서 잡히는 짱뚱어 요리인 청마루식당(852-8011)의 짱뚱어탕도 인기 있다. 벌교우렁집(857-7613)의 우렁탕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글·박정원 부장 | 사진·이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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