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黃鳥歌)와 기산(箕山)
1)황조가(黃鳥歌)
13卷-高句麗本紀1-瑠璃明王-03年
作離宮於鶻川. 冬十月, 王妃松氏薨. 王更娶二女{姬}以繼室, 一曰禾姬, 鶻川人之女也, 一曰雉姬,
漢人之女也. 二女爭寵, 不相和, 王於涼谷造東西二宮, 各置之. 後, 王田於箕山,
七日不返. 二女{姬}爭鬪, 禾姬罵雉姬曰: “汝漢家婢妾, 何無禮之甚乎?” 雉姬慙恨亡歸. 王聞之,
策馬追之, 雉姬怒不還. 王嘗息樹下, 見黃鳥飛集, 乃感而歌曰: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해설]
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골천(結川) 사람의 딸 화희(禾姬)와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를 계실(繼室)로 얻었다.
이들이 서로 총애를 다투어 불화하므로, 왕이 양곡이란 곳에 동서(東西) 양 궁(宮)을 짓고 그들을 각각 두었다.
그후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 궁을 비운 사이에 둘이 다투게 되었다.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婢妾)일 뿐인데, 무례함이 어찌 이리 심한가?”라고 꾸짖으니,
치희가 부끄러워 원한을 품고 도망쳐 돌아갔다. 왕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 쉬면서 꾀꼬리가 날아 모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에 느껴 <황조가>를 지었다.
내용은 ‘펄펄 나니는 저 꾀꼴새는 수놈과 암놈이 저리 정다운데 나의 외로움을 생각함이여 그 뉘와곰 함께 갈거나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이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1 유리왕(瑠璃王)
해설출처:hhttp://www.art.go.kr/encyclopedia/directory/DirectoryView.jsp?ar_vvm_cd_seq=8094
2)기산(箕山)의 위치?
여기서 고구려 유리왕이 일주일씩이나 두 애첩을 나두고 사냥간 기산(箕山)의 위치는 어디일까?
箕山之節(기산지절) 기산지조(箕山之操), 기산지지(箕山之志)의 고사성어는,
《한서(漢書)》 <포선전>에서 “허유가 기산에 숨어서 요의 양위(讓位)를 받지 않고
절조를 지켰다는 옛일”에서 유래하였다고 되어 있다.
<산서통지>의 지도에서의 箕山은 中條山 근처로 되어 있음을 알 수있다.
또 기산은 산해경에서 箕尾之山(箕星 尾星은 별자리 이름이다.)으로 되어있으며,
<춘추>에서 晉人敗狄于箕라고 되어 있는데,
晉나라는 산성성 태원으로 중점으로 한 汾水, 太行山脈 일대 지역임을 알 수 있음을
앞 글에서도 설명한 바가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4330A49D6D23952)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영수(潁水)는 하남 등봉현에서 숭산 서남쪽에 있다)
<산서통지>에서의 기산
3)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 기산(箕山)
다음 <맹자집주> [만장] 에서,
○陽城, 箕山之陰, 皆嵩山下深谷中可藏處.
(陽城, 箕山之陰은 모두 嵩山 아래 깊은 골짜기 속이어서 몸을 숨길만 한 곳이다.)
숭산은 어디인가? 五嶽 중 하나이며 그 유명한 少林寺가 있는 곳이 아닌가!
陽城과 箕山은 모두 지금의 하남성 登封懸이다.
4)나라(國)으로서의箕
그러나 나라(國)로서의 箕는 여러 번 위치를 달리하였던바, 작고하신 최찬동 선생님에 의하면
箕는 다섯 군데 이상이나 지명을 이동하였음을 밝히셨으며 기자 조선으로서 箕子는 기자 당대에 끝났다고 하였다.
(箕子와 奇子는 엄연히 다른데, 후세 사가들은 혼동함으로서 기자조선의 역사도 현재 왜곡되고있다-필자)
천문 28宿에서 동방은 “각항저방심미기” 중에서 일곱 번째 箕星이 속하게 된 것은 箕의 마지막 이동지 箕星에서 연유한 것이다.
5)결어
황조가에서 기산의 위치를 고려할 때,
고려할 때 고구려의 대략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유리왕 때의 고구려는 반도가 아닌 대륙의 산서성 하남성 등은 고구려에 속하였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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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4607E1249D6D1866B)
첫댓글 기산이 여러자료에 나와 있네요